항목 ID | GC0330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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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光默 |
영어음역 | Sin Gwangmuk |
이칭/별칭 | 응삼(應三),학습재(學習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출생 시기/일시 | 187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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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5년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
출생지 |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자작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이강년 의진 좌종사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가계]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응삼(應三), 호는 학습재(學習齋). 아들로 신재교(辛在敎)가 있다.
[활동 사항]
신광묵(辛光默)[1872~1949]은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자작리에서 태어났으며, 18세 때 유인석(柳麟錫)의 제자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유인석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봉기하였을 때 참여하였고, 1907년(순종 1) 군대 해산 이후에 이강년(李康秊)이 다시 의병을 일으키자 좌종사의 직책을 띠고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듬해 이강년이 순국한 후에는 그 시신을 제천으로 반장(返葬)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이후에는 고향에 은둔하여 10여 년간 제자를 기르며 항일 사상 교육을 하였다. 1917년 여름 단양경찰서에 붙잡혀 20여 일 동안 문초를 받기도 하였다. 그때 맏아들 신재교가 옥바라지를 하였는데, 부친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보고 귀가한 후 그 충격으로 피를 토하고 10여 일 후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만년에는 향리에 칩거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학습재집(學習齋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9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