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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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哲常 |
영어음역 | Won Cheolsang |
이칭/별칭 | 형백(瀅伯),하정(荷汀),민와(敏窩)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출생 시기/일시 | 187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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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5년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거주|이주지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미당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이강년 의진 참모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형백(瀅伯), 호는 하정(荷汀)·민와(敏窩).
[활동 사항]
원철상(元哲常)[1877~?]은 제천의 대미[현 제천시 봉양읍 미당리] 또는 동산(銅山)에 살았다고 한다. 장담에 출입하던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화서학파 학자들과 시국관을 공유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지도자로 하는 호좌의진이 봉기하자 참여하였다.
의병이 실패하고 난 후에는 유중교가 강학하던 부근에 자양영당(紫陽影堂)을 설립하는 데 힘을 쏟아 주희(朱熹)·송시열·이항로·유중교의 영정을 봉안하여 지역 사회에 남아 있던 의병론자들의 정신적 귀의처로 삼았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변고를 당하여 이강년(李康秊)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의 참모로 활약하다가 그해 12월 16일 영춘 복상골 전투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동료 이중봉(李重鳳)·신숙(辛橚)·신명희(辛明熙) 등과 함께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