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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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Banga Taryeong |
영어의미역 | A Miller's S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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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1년 |
채록 시기/일시 | 2010년 |
채록 시기/일시 | 2012년 |
채록지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도리 |
성격 | 민요|노동요 |
기능 구분 | 제분 노동요 |
가창자/시연자 | 박진호 |
[정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방아를 찧을 때 부르는 공동체 노동요.
[개설]
「방아 타령」은 방아를 찧을 때 박자에 따른 동작의 통일성과 일의 수고를 덜기 위해 부른 제분 노동요인데, 사설은 방아 찧을 때만이 아니라 논에서 김매기를 할 때도 불린 것으로 파악된다. 제천 지역 「방아 타령」의 특징은 후렴에 있다. 봉양읍이나 청전동의 넓은 뜰 등지에서 김을 매며 부르는 「방아 타령」에는 느리고 빠른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가장 느린 「긴방아 타령」을 부르다가 어느 정도 흥이 오르면 중거리 빠르게 엮는 방식으로 부르는 「방아 타령」을 부르고, 석양이 되어 김매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 빠른 장단의 「잦은방아 타령」을 부른다.
[채록/수집상황]
「방아 타령」1은 2010년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도리 주민 박진호에게서 채록하였고, 「방아 타령」2는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이요·이언급통속적독물등조사(俚謠·俚諺及通俗的讀物等調査)」에 실려 있는 것을 1981년 임동권이 집필하여 집문당에서 발행한 『한국민요집』에 재수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방아 타령」은 공동체 민요로서 후렴이 붙으며, 제천 지역의 특징적인 형세를 끌어와 일의 재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노래이다.
[내용]
1. 「방아타령」1
떼워라 방아에 에헤헤 에허허허/ 떼워라 방아에 에후후후/ 떼워라 방아에 떼워라 방아우헤후후/ 사해이 창생 농부들아 에이워라 방아우/ 일생신불은 지지마라 떼워라 방아우/ 사공훈장 생기인후에 떼워라 방아우 아후후후/ 시종할손 농사로다 떼워라 방아우/ 큰인지 행색이요 떼워라 방아우 이후후후후/ 좋은하지 대분이라 떼워라 방아우/ 좋은하에 농부덜은 떼워라 방아우 이후후후/ 신춘을 만냈다고 떼워라 방아우/ 농구를 둘러메고 떼워라 방아우/ 처의처후에 방애를하며 떼워라 방아우/ 생각겉은 소년들은 떼워라 방아우/ 하로우충충 흥을 겨워 떼워라 방아우/ 방에를 찧어서 널릴적에 떼워라 방아요/ 에후후후 후후후후 떼워라 방아요/ 이 후후후.
2. 「방아타령」2
원산에 봄이 드니 불탄 잔디 새파랗게 새 속잎 난다/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 강태공의 조작방아 연포동지 밀따리 방아/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 들로나려 물방아 산에 올러 산진방아/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 여주이천 자차방아 저룩때 방아때떨/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 둘러미고 여주이천 자차품 팔러가자/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 산지조종은 곤륜산이라 수지조종은 황하수요/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 충청도 속리산은 은장대 둘러 있고/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 경상도 태백산에 낙동강 둘러 있고/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 황해도 구월산에 섬진강이 둘러 있고/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 천하명산을 다 찾이랴면 몇날갈 줄 몰으겠네/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 빙혈냉천 길어다가 시원하게 마신 후에/ 천하대본 힘을 쓰세/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디딜방아나 물레방아 등을 쓰던 시절의 풍속이 선소리와 뒷소리[후렴] 속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방아 타령」은 논농사 소리에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의의와 평가]
방아를 찧는 풍속은 사라졌지만 「방아 타령」은 현재도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동체 민요이다. 특히 1912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민요를 수집하여 간행한 자료 「이요·이언급통속적독물등조사」에 실려 있는 「방아 타령」을 통해 제천 지역에서의 후렴 변이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즉 1912년에 후렴으로 쓰였던 “에헤 우후 아리 아 아하 우 호”가 1970년대 이후 “떼워라 방아우 이후후후”로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