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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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羅-高句麗-三陟地域爭奪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배재홍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을 둘러싼 5세기 때의 신라와 고구려 간 공방전.
[개설]
5세기에 신라와 고구려는 삼척 지역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 결과 468년에 삼척 지역은 고구려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신라는 6세기 초에 고구려로부터 삼척 지역을 되찾아 505년에 실직주를 설치하였다.
[고구려·말갈의 삼척 지역 침입]
신라는 102년(파사이사금 23) 삼척 지역에 위치한 실직국(悉直國)을 복속시킴으로써 동해안 일대의 해상 교역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삼척 지역이 말갈 및 고구려와의 접경 지역이 되었기 때문에 신라의 삼척 지역 관리는 매우 불안정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반독립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던 동예계(東濊系) 말갈은 실직국이 신라에 복속된 2세기 전반부터 잇달아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하였다. 특히 395년(내물이사금 40) 8월에 신라는 북변을 침입한 말갈을 실직, 즉 삼척의 들판에서 대패시키기도 하였다.
[신라와 고구려의 삼척 지역 쟁탈전]
5세기에 들어와 고구려장수왕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서 강력한 남진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하여 나제동맹을 체결하였다. 이후 신라는 나제동맹을 배경으로 지금까지의 고구려와의 우호관계를 청산하고 변경에서 고구려 대상의 군사 도발을 감행하였다. 450년(눌지마립간 34) 7월 신라의 하슬라(何瑟羅)[현재의 강릉] 성주 삼직(三直)은 삼척 지역 들판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고구려 변장(邊將)[변경 장수]을 습격·살해하였다. 이를 보면 당시 삼척 지역은 신라와 고구려의 지배력이 중첩되는 접점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을 빌미로 고구려의 신라 공세를 본격화되었으며, 이후 신라와 고구려는 삼척 지역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 결과 고구려는 468년(장수왕 56) 2월에 마침내 신라의 전략 거점인 실직성(悉直城)을 함락시켰다. 삼척 지역을 확보한 고구려는 실직군(悉直郡)과 죽현(竹峴), 만약(滿若), 파리(波利), 우곡(羽谷) 등 4개 현(縣)을 설치하고 하슬라주(何瑟羅州)에 편입시켰다. 이로써 삼척 지역은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었다.
[신라의 삼척 지역 수복]
신라는 6세기 초 지증왕대에 다시 고구려로부터 삼척 지역을 찾았다. 신라가 북방 변경 지역의 전략 거점인 삼척 지역을 다시 수복한 것은 504년(지증왕 5)경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504년(지증왕 5) 9월 삼척 부근에 위치한 파리(波里)에 성을 쌓았다는 사실에서 추측할 수 있다. 삼척 지역을 수복한 신라는 505년(지증왕 6) 2월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