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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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眞珠 |
영어공식명칭 | Jin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고대 |
집필자 | 김도현 |
[정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현재의 삼척 지역을 지칭하던 별호.
[개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고려사(高麗史)』에는 삼척(三陟)의 별호(別號)가 ‘진주(眞珠)’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삼척을 왜 진주라고 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심의승(沈宜昇)은 『삼척군지(三陟郡誌)』에서 진주는 실직주(悉直州)의 ‘직주(直州)’ 두 글자를 문치상(文致上) 개서(改書)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삼척의 별호가 진주인 것은 639년(선덕여왕 8)에 진주가 하슬라주(何瑟羅州)에 설치한 북소경(北小京)의 장관에 임명되어 삼척 지역까지 관할하게 된 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에는 “일설에는 선덕여왕대에 진주도독부(眞珠都督府)를 두었다고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도 잘못이다. 선덕여왕대에는 도독부라는 지방 행정 구역을 설정한 적이 없다. 이것도 선덕여왕대에 진주가 북소경의 장관이 되어 삼척 지역까지 통치한 사실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삼척 명칭 변화 관련 기록]
삼척의 명칭이 실직(悉直), 진주, 삼척으로 바뀐 사실에 대해 심의승은 1916년에 편찬한 『삼척군지(三陟郡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실직곡(悉直谷)은 실즉곡, 실력골, 시력골, 시덕골 등(等) 고어(古語)가 현재까지 부내면(府內面) 사직리(史直里)에 잔존(殘存)하여 노인과 부녀자들의 언어에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사직곡(史直谷)[시력골]은 현재 사직리(史直里)에서 유판치(有坂峙)를 지나서 오비리(鳥飛里)에 이르는 곡명(谷名)이다. 신라선덕왕대에 진주도독부(眞珠都督府)를 설치하였는데 진주(眞珠)는 원래 실직주(悉直州)의 직주(直州) 두자(二字)를 문치상(文致上) 개서(改書)한 것이다. 그 후 경덕왕 19년에 삼척군(三陟郡)으로 개칭하였으니 삼척은 원래 실직(悉直)[실직, 솃적, 스이쳑]을 한자음독상(漢字音讀上)으로 개서(改書)한 것이다.”
삼척의 또 다른 명칭에 대해 『관동읍지(關東邑誌)』, 『강원도지(江原道誌)』, 『진주지』에서도 실직(悉直), 척주(陟州), 진주(眞珠)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그 변화 과정에 관한 앞에서의 분석이 한 가지 이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