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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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陟-慶州交通路 |
영어공식명칭 | The Traffic Route of Samcheok and Gyeong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배재홍 |
[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 경주와 강원도 삼척 지역을 잇는 교통로.
[개설]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인 경주와 삼척 지역을 잇는 교통로로는 육로와 해로가 있었다. 육로의 경우 경주, 안강, 흥해, 영덕, 울진을 거쳐 삼척에 이르는 경로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일 후 교통로의 재정비로 5통(通)·5문역(門驛)이 설치된 이후에는 간문역과 북해통이 경주와 삼척 지역을 잇는 교통로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육로]
삼척 지역에 위치한 초기국가 실직국(悉直國)은 경주의 사로국(斯盧國)과 정치 교섭 관계에 있었다. 이에 따라 일찍부터 삼척 지역에서 경주로 통하는 일정한 교통로가 개설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신라는 안전하고 원활한 통행과 물자 수송을 위해 487년(소지마립간 9) 사방에 우역(郵驛)을 두고 관도(官道)를 수리하였다. 전국의 교통 요지에 역과 관(館)을 두어 통행과 숙박을 편리하게 하고, 각 지역 우역들을 연결하는 도로를 정비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경주에서 삼척 지역으로 연결되는 교통로도 정비된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경주에서 삼척에 이르는 동해안로는 지금의 경주에서 안강을 거쳐 흥해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북상하여 울진을 거쳐 삼척에 이르는 경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로]
당시 경주에서 삼척 지역에 이르는 교통로는 육로뿐만 아니라 해로도 있었다. 이는 눌지마립간(訥祇麻立干)[?~458] 대에 박제상(朴堤上)[363~419]이 고구려에 인질로 가 있던 왕의 아우 복호(卜好)를 구출하러 갈 때 뱃길로 북으로 가서 고성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에서 추측할 수 있다. 당시 박제상의 출발 지점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영일만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통·5문역]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자 지방을 좀 더 유효하게 지배하기 위하여 주군현제(州郡縣制) 정비와 함께 교통로를 재정비하였다. 그 결과가 5통(通)과 5문역(門驛)으로 나타났다. 5통은 경주를 중심으로 하여 각 지역, 특히 9주(州)의 주치(州治)나 소경(小京)으로 통하는 5개의 간선도로였다. 이 5통은 당시 행정 통로임과 동시에 군사 도로로서 주군현제가 완비되는 신문왕대에 정비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5통 가운데 어느 것이 삼척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로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명칭으로 보아 북해통(北海通)이 경주에서 동해안을 따라 삼척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해통은 경주에서 형산강을 따라 가다가 안강을 지나 흥해에 이르고, 여기서 북상하여 청하·영덕·울진을 거쳐 삼척에 이르는 경로였을 것으로 보인다. 1916년에 삼척군수 심의승(沈宜昇)이 편찬한 『삼척군지』에는 신라시대 때 경주로 통하는 대로가 삼척시 노곡면의 산 위로 개설되어 있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5문역은 수도인 경주에서 각 지방으로 나가는 5개의 출발역이었다. 이 가운데 어느 문역이 삼척 지역으로 나갈 때 이용한 출발역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명칭으로 짐작할 때 간(艮)이 동북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간문역(艮門驛)이 동북 방면으로 가는 교통로인 북해통과 연결되는 문역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