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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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陟山陽書院廟庭碑 |
영어공식명칭 | Sanyangseowon Myojeongbi of Samch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1길 24[산양리 844]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상수 |
건립 시기/일시 | 1861년(철종 12) - 삼척산양서원묘정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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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복원 시기/일시 | 1971년 - 삼척산양서원묘정비 복원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363년(공민왕 12) - 황희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452년(문종 2) - 황희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4월 18일 - 삼척산양서원묘정비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삼척산양서원묘정비 강원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삼척산양서원묘정비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1길 24[산양리 843] |
성격 | 묘정비 |
관련 인물 | 황희(黃喜)|황맹헌(黃孟獻)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73(139)㎝×49.5㎝×18㎝ |
소유자 | 사유 |
관리자 | 산양서원 |
문화재 지정번호 | 강원도 문화재자료 |
[정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1길 24[산양리 843]에 있는 산양서원의 내력을 기록하여 세운 비.
[개설]
삼척산양서원묘정비는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1길 24[산양리 843]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척산양서원의 내력 전반을 기록하여 서원 안에 세운 비석이다. 산양서원 묘정비는 황희의 선정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세운 소공대와 관련한 내용, 황희를 기리는 내용 중심으로 1861년(철종 12)에 건립되었다.
[건립 경위]
삼척산양서원(三陟山陽書院)은 1824년(순조 24)에 홍명섭(洪明燮), 이우석(李禹錫), 민기용(閔夔鏞) 등 향중 사림이 익성공(翼成公)황희(黃喜)[1363~1452]의 은덕을 기리고 배향(配享)하기 위하여 소동사(召東祠)를 창건하였다가 1857년(철종 8) 서원으로 발전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건물은 그대로 있었지만 1913년 일본 헌병의 만행을 규탄하는 유림에 대한 보복으로 서원 건물에 방화를 하여 소실되었다. 1971년 묘정비 복원을 시작으로 1998년에 묘정비각이 복원되었고, 2001년에는 전청이 복원되었으며 2003년에 동재와 서재가 준공되었다.
1423년(세종 5)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한 황희는 이 지방에 흉년이 들자 백성들 구제에 헌신하여 삼척 지역에는 굶어죽은 자가 없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삼척도호부 백성들은 황희의 은덕을 잊지 못하여 그가 왕래하며 쉬어 간 와현(瓦峴)에 돌을 모아 대를 만들어서 소공대(召公臺)라 하였다. 1515년(중종 10)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한 황희의 4대손 황맹헌(黃孟獻)[1472~1535]이 무너진 소공대 자리에 소공대비(召公臺碑)[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7호]를 세웠고, 나중에 삼척 사림들이 소동사를 건립하였다.
삼척산양서원묘정비는 황희가 1423년 관동지방의 흉년을 구휼하기 위하여 와서 베푼 공덕과 그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세운 소공대 관련 내용, 황희를 기리는 내용 중심으로 1861년(철종 12)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숭록대부(崇祿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 이경재(李景在)[1800~1873]가 지었고, 숭정대부(崇政大夫) 이조판서 이종우(李鍾愚)[1801~?]가 썼다. 제액은 숭정대부 예조판서(禮曹判書) 홍열모(洪說謨)[1804~?]가 전서체로 썼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1길 24[산양리 843] 산양서원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삼척산양서원묘정비의 형태는 뚜껑돌[개석(蓋石)]이 지붕 형태인 팔작옥개석(八作屋蓋石)이고, 사각형[방형(方形)]의 비신 받침에 비를 세웠다. 비의 크기는 높이 173(139)㎝×너비 49.5㎝×두께 18㎝이다.
[현황]
현재 삼척산양서원묘정비는 ‘산양서원묘정비각(山陽書院廟庭碑閣)’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 비각 안에 있으며, 1998년 4월 18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삼척산양서원묘정비는 황희가 강원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삼척 지역 주민들에게 베푼 선정을 비롯하여 나중에 삼척 주민과 유림이 그의 은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소공대, 소동사 등 서원의 내력 전반을 기록한 비석이다. 이를 통하여 소공대비와 함께 지방관으로서 황희의 치적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금석문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