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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51
한자 觀察使韓益相永世不忘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36년(헌종 2)연표보기 - 관찰사 한익상 영세불망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980년 - 관찰사 한익상 영세불망비 재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767년(영조 43) - 한익상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46년(헌종 12) - 한익상 사망
현 소재지 관찰사 한익상 영세불망비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지도보기
성격 선정비
양식 비의 윗부분을 둥글게 처리한 원수형
관련 인물 한익상
재질 화강암|대리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86㎝×39~33㎝×12~11㎝

[정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에 있는 강원도관찰사 한익상의 선정비.

[개설]

조선시대 강원도관찰사 한익상이 선정을 베푼 덕을 기리고자 1836년(헌종 2)에 세웠다. 현재 1980년에 옛 비석의 내용을 그대로 새겨서 만든 비석과 함께 도로변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한익상(韓益相)[1767~1846]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서원(西原)[지금의 청주]이다. 초명은 매권(邁權), 자는 치문(致文), 호는 자오(自娛)·백졸(百拙)이다. 영의정 한상경(韓商敬)[1360~1423]의 후손이며 한사주(韓師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한덕기(韓德箕), 아버지는 한명간(韓命幹)이다. 어머니는 신위(申緯)[1769~1845]의 딸이다. 1807년(순조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와 전적을 거쳐 경성부판관(鏡城府判官), 무안현감, 장령, 정언 등을 지냈다. 이어서 재차 경성부판관을 지내고 부호군, 우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836년(헌종 2) 전국에 기근이 심하고 탐관오리들이 횡행할 때 강원도관찰사로 임명되어 탐관을 적발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병조참판이 되었으며, 80세에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는 『자오집(自娛集)』이 있다.

[건립 경위]

1836년(헌종 2) 조선시대 강원도관찰사 한익상이 선정을 베푼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남쪽의 죽현(竹峴) 도로변에 있다.

[형태]

비석은 뚜껑돌[개석(蓋石)] 없이 비신(碑身)과 비좌(碑座)로 구성되어 있다. 비의 윗부분을 둥글게 처리한 원수형(圓首形)이며, 사각형[방형(方形)]의 비신 받침은 시멘트로 만들었다. 비의 전면 중앙에는 ‘관찰사한공익상영세불망비(觀察使韓公益相永世不忘碑)’라고 새겨져 있고, 그 좌우로 선정 내용이 적혀 있다. 후면에는 비의 건립 연월일을 새겨 놓았다. 비의 규모는 높이 86㎝×너비 33~39㎝×두께 12~11㎝이다.

[금석문]

전면:관찰사한공익상영세불망비 기정어공 우견환전 해륙구안 만성명심(觀察使韓公益相永世不忘碑 旣停魚貢 又蠲還錢 海陸俱安 萬姓銘心)

후면:도광십육년십일월 일(道光十六年十一月 日)

[현황]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봉평신라비전시관 앞마당에도 ‘관찰사 한익상 휼민선정비’가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관찰사 한익상 영세불망비는 강원도관찰사로 근무할 때 많은 선정을 베풀어서 그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당대에 청백리로 이름을 높인 한익상의 선정 내용을 살필 수 있는 금석문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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