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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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濬慶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준경길 333-36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수 |
[정의]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준경길 333-360에 있는 준경묘에 세운 비석.
[개설]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의 4대조 목조이안사의 아버지 이양무(李陽茂)[?~1231]의 무덤인 준경묘 앞에 세운 비석이다.
이양무는 고려시대 인물로, 조선태조의 5대조이자 목조이안사의 부친이다. 그의 부인 평창이씨는 상장군 이강제(李康濟)의 딸이다. 원래 전라도 전주 지방의 호족이었지만 아들 이안사가 중앙에서 내려온 산성별감(山城別監)과 시비가 생기자 후환이 두려워 전주를 떠나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할 때 이들도 함께 동행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이들이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자 시신을 활기리와 하사전리에 각각 매장하였다고 전해진다.
삼척 활기리 노동과 하사전리 동산에 있는 고총(古冢)이 이들의 무덤이라는 주장이 조선 초기부터 있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 조선 조정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덤은 국가의 수호를 받았다. 그리고 대한제국기인 1899년(광무 3)에 이르러 황실에서는 이 고총을 목조의 고비(考妣)[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무덤으로 인정하고 노동의 이양무 무덤을 준경묘, 동산의 부인 무덤을 영경묘라 하여 국가 사전(祀典)에 포함시켰다.
[건립 경위]
준경묘비는 1899년에 영경묘와 함께 묘소를 대수축하여 제각(祭閣), 비각(碑閣), 재실(齋室)을 건립했을 때 세워졌다. 1899년 7월 11일 의관(議官) 이근명(李根命)[1840~1916]을 준경묘 비문 서사관(濬慶墓 碑文 書寫官)으로, 10월 24일에는 준경묘 제각(濬慶墓 祭閣)의 상량문 제술관으로 신기선(申箕善) 및 서사관으로 윤길구(尹吉求)를 각각 임명하였다. 또 비석 제작을 위하여 사용하는 돌은 삼척에서 캘 수 있고 돌의 품질이 쓸 만하다고 하여 삼척군수가 기일에 앞서 돌을 캐내 다듬어 놓을 것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준경길 333-360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현재 비석은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뚜껑돌[개석(蓋石)]은 팔작지붕 형태인 팔작옥개석(八作屋蓋石)이고, 비좌는 사각형[방형(方形)]이다. 비의 앞면에는 다소 큰 전서체 글씨로 ‘대한준경묘(大韓濬慶墓)’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자헌대부(資憲大夫) 시종원경신(侍從院卿臣)이던 이근명이 고종의 칙명을 받들어 쓴 비음(碑陰)이 새겨져 있다. 비문의 주요 내용은 노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자리에 목조의 능을 만들었는데 이미 이전에 허목(許穆)[1595~1682]과 정철(鄭澈)[1536~1593]에 의하여 관련 사실이 언급된 바 있고, 이곳이 목조(穆祖)이안사(李安社)[?~1274]의 외향이어서 부로 승격시키고 서대(犀帶)를 하사하였는데 지금까지 전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풍수지리상 무덤 자리는 범이 엎드려 있는 형상임을 소개하고 있으며, 고종대에 준경묘를 수축하는 과정과 이에 관련된 내용들을 다소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187.0[137.0]㎝×너비 55.2㎝×두께 22.3㎝이다.
[금석문]
전면:대한준경묘(大韓濬慶墓)
후면:삼척치지서사십리유왈로동산자두타이래국세웅위형여복호부신이향을즉아목조황고의리지유장야고상신허목위부사시소저주지서급로동동산이묘기비술고적기언선묘시동백정철도상묘지청수축사심상허정개명신야소언실위확거국초승군위부사서대장지부사렬성조명도신년례봉심금양수호구유문헌가고유짐소자사복지삼십유륙년기해견재신리중하봉심여구전도지개험잉령정계립표동지기곡서지주봉후남지답곡북지직곡이량지척재지각삼천삼백립제각치관원수직조두지의일의각묘례이행세일사지례오호렬성조추원봉선지절미부용기극이흘유미황신지지야절유렬성소이루치신언자금가이준봉위김석용시이유시거개소이계술자이역부승광감우시언 광무삼년기해십일월일 정이품자헌대부시종원경신 이근명봉칙근서(三陟治之西四十里有曰蘆洞山自頭陀以來局勢雄偉形如伏虎負辛而向乙卽我穆祖皇考衣履之攸藏也故相臣許穆爲府使時所著州誌序及蘆洞東山二墓記備述古蹟其言宣廟時東伯鄭澈圖上墓地請修築事甚詳許鄭皆名臣也所言實爲確據國初陞郡爲府賜犀帶藏之府司列聖朝命道臣年例奉審禁養守護俱有文獻可攷惟朕小子嗣服之三十有六年己亥遣宰臣李重夏奉審與舊傳圖誌皆驗仍令定界立標東至基谷西至主峯後南至畓谷北至稷谷以量地尺裁之各三千三百立祭閣寘官員守直俎豆之儀一依各墓例而行歲一祀之禮嗚呼列聖朝追遠奉先之節靡不用其極而迄有未遑愼之至也竊惟列聖所以屢致愼焉者今可以遵奉爲金石庸是而有是擧盖所以繼述者而亦不勝曠感于是焉 光武三年己亥十一月日 正二品資憲大夫侍從院卿臣 李根命奉勅謹書)
[현황]
준경묘는 목조의 어머니이자 이양무의 부인 평창이씨의 무덤으로 알려진 영경묘(永慶墓)와 함께 1981년 8월 5일 강원도 기념물 제43호로 지정 관리되어 왔다. 남한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조선 왕실 선대(先代)의 능묘로서, 조선 왕조 태동의 발상지로서의 역사성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상의 가치 등 중요한 역사·학술 가치가 있어서 2012년 7월 12일 사적 제524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준경묘비는 조선을 개창한 태조이성계의 4대조 목조이안사의 아버지인 이양무의 무덤[준경묘] 앞에 세운 비석으로, 조선 왕실의 선대 능묘비로서 기념할 만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