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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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四金山禁標 |
영어공식명칭 | No trespassing sign in Sageumsan Mounta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수 |
건립 시기/일시 | 1804(순조 4) - 사금산 금표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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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사금산 금표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 |
성격 | 금표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54.0㎝×34.0㎝×16.5㎝ |
[정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에 위치하는 사금산 구역 안으로는 드나들지 말 것을 알리는 푯말 또는 표지.
[개설]
금표는 조선시대 왕이나 왕족의 사냥을 비롯하여 군사훈련·산림보호 등의 목적으로 신성 지역·유배지·지정된 산·산삼 자생지 등과 같은 일정한 구역이나 건물 안으로 드나들지 말 것을 알리기 위해 세운 표지이다. 일종의 금지나 경고를 알리는 푯말이다. 대개 금지구역의 입구·산비탈·하천 등 경계를 이루는 자연 지역에 세워졌다. 넓은 뜻으로는 금송(禁松)·금줄 등도 포함된다. 금표의 유형에는 사찰 구역을 알리는 금표·사냥 구역을 알리는 금표·왕의 태실이 있는 곳에 출입을 금하는 금표·산림 보호 목적으로 세운 황장금표·공물 확보를 위한 경계를 알리는 산삼봉표·유배지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금표 등이 있다.
사금산 금표는 금표가 서 있는 곳에서 서쪽 약 7.8㎞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사금산의 황장목(黃腸木)을 보호하기 위한 ‘황장금표(黃腸禁標)’로 추정된다. 황장목은 수백년 묵어 나무 속의 목질이 누렇게 된 소나무로, 조선시대 왕의 널[관(棺)]을 짜거나 궁궐과 관청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이 금표로부터 서쪽에는 입산을 금하였다고 한다. 또 인근에는 ‘사금산 황장목 목도꾼 소리’가 남아 있다. 목도꾼 소리에서 ‘마읍골의 사금산’이란 가사가 있어 사금산 금표의 설치 목적을 잘 시사하고 있다. 『관동지』와 김종언(金宗彦)의 『척주지』에 따르면 삼척에는 왕실에서 주로 사용한 황장목 생산을 위하여 적전산, 황지산, 소달산, 마읍산[사금산], 궁방산, 가곡산을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삼척부에서 처음 봉산(封山)이 지정된 것은 조선 전기인 1494년(성종 25) 무렵, 사금산 금표가 세워진 것은 1804년(순조 4)으로 각각 보인다. 이 금표는 우리 조상들이 일찍부터 무분별한 자연 훼손을 막는 자연보호와 함께 필요한 산림 자원의 효율 관리에 이정표로 삼아 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위치]
사금산 금표(四金山 禁標)는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이천3리이천폭포 상류에 있는 느티나무 서낭당 옆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크기가 다소 작은 화강암을 다듬어서 앞면에 ‘금표(禁標)’라는 큼직한 두 글자를 위에서 아래로 새겨 자연석 암반 위에 세워 놓았다. 금표의 크기는 높이 54.0㎝×너비 34.0㎝두께 16.5㎝이다.
[금석문]
전면:금표(禁標)
[의의와 평가]
사금산 금표는 조선시대 중앙 정부가 삼척 지역에서 필요한 목재를 원활하게 확보하기 위하여 무단 벌채를 금한 일종의 황장금표이다. 현재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표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