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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60
한자 景行書院紀蹟碑
영어공식명칭 Gyeonghang Seowon Gijeokbi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 남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89년 10월연표보기 - 경행서원 기적비 건립
현 소재지 경행서원 기적비 -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 남산 지도보기
성격 기적비
관련 인물 김효원|민사관|허목|김진원
재질 오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90㎝[가로] 60㎝[세로]

[정의]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 남산에 있는 옛 경행서원의 자취를 기록한 비.

[개설]

조선시대 경행서원(景行書院)의 옛 자취를 기록하여 1989년 10월에 건립한 비석이다. 경행서원은 1631년(인조 9) 2월 삼척 교동북정산(北亭山) 아래에 삼척부사를 지낸 성암(省庵)김효원(金孝元)[1542~159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배향(配享)하기 위하여 사우(祠宇)를 창건하고 위패(位牌)를 모시던 곳이다. 1661년(현종 2) 2월 북정산 서쪽 기슭으로 옮기고 유애비(遺愛碑)를 세웠으며, 1824년(순조 24) 삼척부사 민사관(閔師寬)[1762~?]이 경행사(景行祠)를 중수하여 경행서원으로 승격되었고, 허목(許穆)[1595~1682]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1828년(순조 28) 동해시 송정동으로 이건(移建)한 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첼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 위패는 송정동화랑포(花浪浦) 북쪽에 묻었고, 학위전(學位田)과 서책(書冊)을 비롯한 여러 학구는 삼척향교(三陟鄕校)로 이관되었다.

[건립 경위]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삼척 출신 향토사학자 김진원(金振元)이 중심이 되어 경행서원 복원추진위원회(景行書院復元推進委員會)를 조직하여 없어진 서원을 다시 복원시키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진원이 기적비(紀蹟碑)라도 세워서 그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취지로 『육향정(六香亭)』을 발행해서 생긴 이익금으로 비를 세워 1989년 10월 경행서원 기적비를 세워 제막식을 하고 가락종친회에서 제사를 올렸다.

[위치]

경행서원 기적비강원도 삼척시 남양동남산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현재 비석은 남산 척주초혼단비(陟州招魂壇碑) 바로 뒤쪽에 있다. 높이 120㎝×세로 160㎝×가로 220㎝ 크기의 돌로 만든 기단 위에 오석(烏石)을 이용하여 ‘景行書院紀蹟碑(경행서원기적비)’라고 썼다. 기단 정면의 왼쪽 위에는 비문(碑文)을 음각으로 새겼다. 기단 정면 중앙에는 ‘성암김효원선생 문정공미수허목지단(省庵金孝元先生 文正公眉叟許穆之壇)’이라고 쓴 위패가 돌에 새겨져 있다. 위패 앞에는 가로 120㎝×세로 85㎝ 크기의 상석이 놓여 있다. 상석 옆면에는 ‘경안도예연구소 육산(六山) 김영수(金永洙) 증(贈)’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비석의 기단 뒷면에는 건립 내역을 간단히 새겨 놓았다. 비문은 홍종범(洪鍾凡)이 짓고 김진백(金振白)이 썼다. 비의 크기는 가로 90㎝×세로 60㎝이다.

[의의와 평가]

경행서원 기적비는 비록 1989년에 건립되었지만, 1631년에 창건되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오다가 1868년 철폐된 삼척경행서원의 옛 자취를 알려주는 기념물이라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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