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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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孟芳里古城 |
영어공식명칭 | Maengbangri Castle |
이칭/별칭 | 맹방고성,자성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 산3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상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4년 - 정석교에 의해 조사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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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맹방리 고성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 산31 |
성격 | 성 |
양식 | 토석혼축성 |
관련 인물 | 김은정 |
크기(높이,길이,둘레) | 약 700m[둘레] |
[정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에 있는 고대 성터.
[개설]
맹방리 고성(古城)의 내력과 관련하여 여러 문헌에는 단편 기록이 전해 오고 있다. 즉 삼척부사 허목(許穆)[1595~1682]이 편찬한『척주지(陟州誌)』에는 “맹방 옆에 고성이 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그 연대를 알 수 없다.”고 하였고, 『척주지』의 동일한 조항에 “해리현(海利縣)은 김부식이 말하기를 옛날 고구려 때는 파리현(波利縣)이라 했고, 지금 교가(交柯)의 서쪽에 옛 성이 있다. 가정 연간에 이곳 소리(小吏) 김은정(金殷鼎)이 성 밑 냇물 가운데에서 파리라고 하는 현명 두 자를 새긴 돌을 얻었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19세기에 김종언(金宗彦)이 편찬한 『척주지』에 따르면 부남고성과 관련하여 “옛날 교가(交柯)로 옛 해리현(海利縣)을 이른다.”라고 하여 맹방 고성과 광태리 고성[부남고성]에 대한 인식이 서로 섞여 있다. 또 1916년 심의승(沈宜昇)이 발간한 『삼척군지(三陟郡誌)』에는 “근덕면 하맹방리 서쪽에 자성산(子城山)이 있으며, 토성 옛터는 둘레가 약 18정(町)에 이르는데 신라 때 자성첨사(子城僉使)가 거주한 곳이라는 말이 전한다.”라고 하였다.
이 성터에 대한 최초의 조사 보고는 1984년 정석교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시 보고자는 문헌상에 보이는 자성산성(子城山城)을 맹방고성(孟芳古城)으로 이해하여 하맹방리 북서쪽에 위치한 자성산[해발 56m]의 남동 능사면에 위치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성터에 주목한 바 있다. 이곳은 2001년 6월~2009년 12월 7번국도삼척~원덕 간 4차로 확장 공사로 도로가 자성산을 관통하여 산성이라 추정할 수 있는 건물지(建物址)와 수원(水源)이 사라졌다고 한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 산31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성터[성지(城址)]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해발고도 20~50m에 위치하는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쪽과 동쪽의 외측은 급사면을 이루고, 서쪽은 능선으로 분리되며, 남쪽으로 향한 입구는 극히 좁은 편이다.
[현황]
완경사의 곡지(谷地)는 건물지로서 기와편이 산재해 있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퇴비장(堆肥場)을 만들기 위하여 인근 주민들이 성벽의 돌을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우물 흔적이 있으며, 둘레는 약 700m이다.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 정확한 위치와 현황은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일명 ‘자성산성’으로도 불리는 맹방리 고성은 현재 그 정확한 소재지와 현황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단편성 문헌 기록과 1984년 보고자료 등을 고려할 때 삼국시대 신라의 군사 거점 성으로 활용한 산성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이 지역의 고대 관방 유적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의미가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