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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가리 삼척김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504
한자 交柯里三陟金氏世居地
영어공식명칭 Gyogari Samcheok K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
시대 고려,현대/현대
집필자 심일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집성지 교가리 삼척김씨 세거지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 일대 지도보기
성씨 시조 김추
입향 시조 김인궤

[정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에 있는 삼척 김씨 세거지.

[개설]

삼척김씨(三陟金氏)는 신라대보공(大輔公)김알지(金閼智)를 원조로 하여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가 시조이다. 그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삼척군(三陟君)에 책봉(冊封)되어 관향(貫鄕)을 삼척(三陟)으로 하였으며, 김추(金錘)는 김알지(金閼智)의 29세손이다. 교가리는 조선시대 교가역(交柯驛) 및 평릉도찰방(平陵道察訪)이 있던 곳으로 현재 삼척시 근덕면의 소재지이다.

[연원]

교가리는 고구려의 파리현(波利縣), 통일신라시대의 해리현(海利縣)의 소재지였다고 전해진다. 마을 가운데 느티나무[강원기념물 제14호]가 있어 나뭇가지가 상교(相交)한다 하여 교가리(交柯里)라 하였다. 고려 때 삼척김씨김인궤(金仁軌)가 살았던 곳으로 전해진다. 김인궤는 1290년(충렬왕 16) 합단적(哈丹賊)의 침입시 호군(護軍)으로서 왕(王)을 호위하여 많은 공을 세워 가야향(加也鄕)을 춘양현(春陽縣)으로 승격시키는데 일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마을에는 김인궤의 후손들과 그 이후 이거해온 우계이씨, 안동김씨, 밀양박씨 등이 집성을 이루며 살게 되었다. 1930년대 집성촌 자료인 『조선의성(朝鮮の姓)』에 따르면, 교가리에는 당시 삼척김씨 70호, 우계이씨 70호, 안동김씨 24호, 밀양박씨 17호 정도가 세거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1475년(성종 6)에는 삼척 북평 평릉에 있던 평릉도찰방 소재지를 이곳에 옮겨 평릉관[일명 산호관]이란 객사를 두어 강릉·삼척·울진·평해 지방의 16개 역을 관장하는 교통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나, 1895년에 폐지되자 산호관 객사는 헐어서 삼척군 미로면활기릉의 재실로 쓰였다고 한다.

[입향 경위]

고려 때 김인궤(金仁軌)교가리로 이주하였으며, 이후 김귀존(金貴存) 등이 거주하면서 삼척김씨 세거지가 되었다.

[관련 유적]

교가리 인근의 고청산(古靑山) 위에는 오룡당(五龍堂)을 지어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기도 했는데 1901년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교가리 마을 입구의 바위에는 “무릉동천(武陵洞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철종 때의 찰방 권중본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또 역대 찰방들의 선정비(善政碑)가 14기 정도 있는데, 이 비들은 본래 관로변에 있던 것을 1925년 삼척김씨김상국이 주선하여 지금의 자리인 옛 평릉관 뒷산 중턱으로 옮겼다. 한편 총죽정(叢竹亭)[일명 와유정]이라는 정자가 산호관 남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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