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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799
한자 協同油脂會社三陟工場
이칭/별칭 협동유지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차장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931년연표보기 - 협동유지회사 삼척공장 준공
개칭 시기/일시 1943년 9월연표보기 - 삼정유지화학공업주식회사
개칭 시기/일시 1946년 9월 12일연표보기 - 동양화학공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7년연표보기 - 동양시멘트에 인수된 뒤 이후 폐업
최초 설립지 협동유지회사 삼척공장 - 강원도 삼척군 오십천 하구지도보기
성격 제조업체

[정의]

일제강점기 삼척 지역에 있던 군수공장.

[건립 경위]

강원도 삼척 지역에 있던 협동유지의 정확한 명칭은 협동유지회사 삼척공장이다. 1931년 동해안에는 정어리가 많이 잡혀서 건너불 윗머리, 즉 정상리 7만 평 부지에 정어리 기름을 짜서 폭약을 제조하는 군수공장인 협동유지회사를 세웠다. 이때 건너불은 오십천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이다. 당시 삼척군청에서는 삼척항의 선박 접안 및 수산물, 석탄 등 하물을 싣거나 내리는 항만의 기능 안정화를 위하여 봉황산 동북단으로 유입되던 오십천의 물길을 오분동 동쪽으로 모두 돌리고 항만으로 유입되도록 강물을 조절하는 수문을 설치하였다. 수문 위로는 사람들이 오가도록 작은 교량도 건설하였다.

[변천]

1941년경 원료인 정어리 어획 부진으로 1943년 9월 삼정재단에 매도되어 삼정유지화학공업주식회사로 개칭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재금속 마그네슘 제조에 주력하여 군수공장으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면서 주인이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었고, 관리위원장에 김정수가 선출되었다. 이후 박천권, 한백용 등이 공동관리를 하다가 1946년 9월 12일 동양화학공사로 개칭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었으나 1967년 동양시멘트가 인수하여 연 750만 장 규모의 슬레이트 생산과 시멘트 포장지 등을 제조하다가 발암 물질 검출 문제로 슬레이트 생산은 중단되고, 회사 관련 부품 제작 공장으로 운영되다가 폐업하였다.

[구성]

협동유지회사는 유지부와 전해소다부로 나뉘어 있었다. 유지 공장은 1939년 5월 말에 준공되었으며, 전해소다공장은 1939년 6월에 완공되었다. 협동유지회사 경화유공장 유치 운동은 당시 함경남도 원산, 함경북도 청진, 강원도 삼척, 경상남도 부산 등 전국 4개 도시에서 치열한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처음에는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를 망라하여 어구 중추를 이루어 전력문제, 석탄, 용수, 원료 운임 등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원산에 유치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지만 1937년 10월 7일 협동유지 공장을 삼척과 청진에 건설하기로 최종 결정되면서 제1공장이 삼척에 건설되었다. 공장 건설 규모는 어유(漁油) 연액 250만 관을 처리하고 월산 2000t의 경화유를 생산하는 당시 전국 최대 경화유공장이었다. 공장 용지는 도유지 및 면유지로, 예정지의 매수 공장은 종료되었다. 건설 과정에서 삼척공장의 공장 규모를 예정의 2배로 확대하였고, 1939년 6월 1일 협동유지 공장이 준공되었다. 공장은 약유 연 5만t을 처리하는 대공장이었다. 제품은 경화유, 석감(양잿물), 글리세린, 지방산, 스테아르산, 그리스, 촉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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