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서 효행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잉어뱅과 효행비」는 한 겨울에 잉어를 구해 병든 어머니를 구한 아들을 기리기 위하여 효행비를 세웠다는 효행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18일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거주하는 전 경상북도 교육위원...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서 김종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점필재 김종직의 선견지명」은 연산군의 사람됨을 알고 미리 피해 화를 면하고, 간신 유자광의 현판을 불살라서 곧고 바른 성품을 보여 주었다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에 대한 인물담이다. 쌍림면 합가리에는 문충공(文忠公) 사당(祠堂)이 있는데, 이는 김종직의 5대 후손인 김수휘가 정...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서 진상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진상암 전설」은 나라에 바치는 진상품을 지고 가다가 짐을 내려놓고 쉬거나 역원들이 교대하던 바위에 대한 암석유래담으로 「진상바위 전설」이라고도 한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0년에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계...
개실마을의 점필재 종택에는 김종직과 그 후손들이 남긴 유품들이 문화재로 전해 온다. 이 유물들은 1985년 10월에 ‘점필재 문적 유품 및 종가 문서’라는 이름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9호로 지정되었다. 유품은 『당후일기(堂后日記)』 등 서책 5책, 벼루 등 유품 14점, 교지 등 고문서 151매 등 총 170여 점에 이른다. 점필재 종손인 김병식 씨는...
이병국[1942년생]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7월 개실마을을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개실마을에서는 마을 행사로 종손을 비롯한 주민들이 출타 중이어서 마을을 안내해 줄 사람이 없었던 같다. 이때 이병국 씨가 마중을 나와 마을 안내를 자청하였다. 처음 수인사를 나눌 때 이병국 씨는 호방한 호인형의 얼굴에 걸걸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나는 개실마을의 김병국입니다....
종부(宗婦)는 종가를 대표하는 종손의 아내로서 한 종가의 살림을 도맡아 꾸려 나간다. 종부의 가장 큰 덕목은 넉넉한 마음 씀씀이로 접빈객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고, 조상을 정성으로 섬기는 일이다. 올해 여든을 맞는 개실마을의 김태문(金太文)[1931년생] 씨는 선산김씨[일선김씨] 문충공파(文忠公派) 17대 종부이다. 김태문 씨는 “다시 태어나도 이 집안과 인연을 맺어 종부를 한 번...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에 있는 정자. 벽송정은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정자 안에 통일신라시대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의 시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건립 연대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벽송정은 당시 지방의 유학자들로 구성된 유림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각지의 선비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며 토론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고령에서 합천으로 가는 국도...
김종직(金宗直)은 작고한 지 6년 만인 1498년(연산군 4)에 일어난 무오사화로 삭탈관직과 부관참시라는 큰 화를 입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도 큰 피해를 입었으나 다행히 어린 나이의 아들 김숭년(金崇年)이 화를 피해 가문은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506년(연산군 12)의 중종반정으로 김종직은 신원이 회복되고 그 후손들이 관직으로 진출할 수 있었지만 고위...
개실마을은 영남 지역에 산재한 유서 깊은 반촌 중 한 곳이다. 조선 전기 문신으로 영남학파의 종조로 추앙된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후손들이 수백 년간 세거하고 있는 개실마을은 종택과 사당, 재실 등 저명 반촌의 경관을 잘 보여 주고 있다. 2002년 아름마을 가꾸기 사업을 시작으로 전통문화 전승의 주요 현장이 된 개실마을은 반촌의 경관과 이...
개실마을 토박이 김병식[1933년생] 씨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17대 종손이다. 김병식 씨는 15세 때 결혼과 동시에 종가의 살림살이를 맡았다. 대구에서 중학 과정을 이수하던 15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듬해에는 다시 할아버지마저 별세함으로써 어린 나이에 2년에 걸쳐 두 번의 유월장(踰月葬)을 치러 내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중사랑채를 가리키며, “저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17대 종손 김병식[1933년생] 씨는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던 17세 때 6·25전쟁을 맞았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 누나와 생질과 함께 서울을 출발하여 포연 속을 걸어서 꼬박 한 달 만에 고향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발바닥은 불어 터져 피고름이 줄줄 흘렀다. 종가(宗家)인 문충세가(文忠世家)는 6·25전쟁의 포탄에도 건재했다. 그런데 고향집 사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