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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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리(白里)에는 배울·넘내·덕암·모실뱅이·새터·밤터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배울은 큰마·배월(背月)·백야촌(栢野村)·백동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에 성주이씨가 마을에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 주위 산과 들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야촌이라 하였고, 후일 마을 지형이 배 모양 같다 하여 배울이라 하였다. 넘내는 너부내·광천(廣川)이라고도 한다. 백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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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성주군 인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상동을 병합하여 본리동이라 하고 덕곡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덕곡면 본리리가 되었다. 북두산[688m]과 문수봉[672m]에서 발원한 오리천이 인곡(仁谷)에서 소가천(小加川)으로 흘러들고, 두 하천이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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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본리리에 있는 성산배씨 동성마을. 지금의 상승암 자리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전란은 물론 자연재해를 물리친다고 믿어 바위 이름을 ‘이길 승(勝)’자와 ‘바위 암(巖)’자를 써서 승암(承巖)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고려 말 성주이씨 승암 이인임(李仁任)이 이곳에 유배되어 살았는데 그의 호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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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사부리에 있는 성주이씨 동성마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분청사기를 구워 내는 가마터가 많아 사기골 또는 사부골이라 하였다. 지명 유래를 증명해 주듯 이 마을에는 사적 제71호인 성산 사부동 도요지가 있다. 성산 사부동 도요지에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만든 10여 기의 가마터가 있으며, 대접과 접시 등 분청사기 유물이 여럿 발굴되었다. 1537년경(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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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유(李純由)를 시조로 하고 이석견(李碩堅)과 이조년(李兆年)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고령군 세거 성씨. 성주(星州)는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로, 성주이씨 시조 이순유는 신라 경순왕 때의 재상이었다. 신라가 망하자 지금의 성주읍 경산리에 이주하여 숨어 살았다. 이에 태조 왕건이 그 절의에 감복하여 호장(戶長)으로 삼았다. 고려 원종 때의 인물인 12세손 이장경(李長庚)이 중흥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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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의 성씨 제도는 중국 제도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자 문화의 유입 이후인 삼국시대에 나타난다. 고대 국가에서는 주로 왕족이나 극히 일부의 중앙 귀족에게서만 보인다. 성씨 제도가 본격적으로 행해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이다. 나말여초의 격심한 사회 변동에 따른 신분제의 재편성 과정에서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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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곡리는 재석산 밑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조 중엽 성주이씨가 마을을 개척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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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는 함안조씨 동성마을. 오곡리에는 오실, 신곡, 뱃가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오실은 오전에만 햇빛이 들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마을이 다섯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신곡은 성주이씨가 들어와 새로 개척한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고향 마을 이름을 따서 상곡이라고도 한다. 뱃가는 나루터에 가까운 마을이어서 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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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이만년(李萬年)의 현손(玄孫)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태보(李台寶)이고, 할아버지는 이득방(李得芳)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이비이다. 형으로 이조판서에 증직된 문정공(文靖公) 고은(孤隱) 이지활(李智活)[1434~1457]이 있다. 이지활은 단종의 폐위 이후 박유산(朴儒山)에서 망월정을 짓고 애절한 시를 읊으며 지내다가, 단종의 죽음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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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동래(東萊). 할아버지는 정절공(靖節公) 설학재(雪壑齋) 정구(鄭矩)이다. 정구는 좌찬성을 지냈으며, 예서·초서·전서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다. 청렴하고 예의가 발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으로 옮겨 살았는데, 그의 자손들 역시 양주와 수원 등 경기 지역에서 많이 살았다. 아버지는 판관 정선경(鄭善卿)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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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세거하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집성촌. 집성촌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의 형성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전기부터다. 특히 조선 후기인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적장자 중심으로 상속 제도가 변화하고,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보급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