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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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서 선산배씨 가문의 열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열부 이야기」는 불에 휩싸여 죽게 된 시아버지를 불길에 뛰어들어 살린 선산배씨 가문의 며느리가 열부상을 받게 된 효행담이자 열녀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25일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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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서 처녀와 윤씨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처녀와 상사병 난 윤씨」는 다산면 상곡리에 전승되는 한 처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이 담긴 비극적인 애정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1995년 6월 4일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3동 주민 정성근[남, 79]에게서 채록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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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 전적. 고령향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과 서적은 향교의 인적 구성과 교육 및 재정운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고령향교에는 현재 필사본 16건, 책판 1종 266장, 그리고 서적이 28종이 남아 있다. 고문서와 필사본으로는 『유안(儒案)』, 『향안(鄕案)』, 『고령향약안(高靈鄕約案)』, 『고령향약임원록(高靈鄕約任員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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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 성산이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양주. 토속주 혹은 민속주는 특정 지방에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온 술로서, 사용하는 재료와 제조법에서 특성을 지닌다. 토속주는 보통 특정 지역에서 세거해 온 집안의 종가를 중심으로 제조법이 개발, 전승되는데, 이는 술이 종가의 연례적인 봉제사와 접빈객의 역할 수행에 필수적인 음식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관동스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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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1942년생]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7월 개실마을을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개실마을에서는 마을 행사로 종손을 비롯한 주민들이 출타 중이어서 마을을 안내해 줄 사람이 없었던 같다. 이때 이병국 씨가 마중을 나와 마을 안내를 자청하였다. 처음 수인사를 나눌 때 이병국 씨는 호방한 호인형의 얼굴에 걸걸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나는 개실마을의 김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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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670년경(현종 11) 오씨와 김씨 등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어떤 도인이 지나가다 서남쪽으로 뻗은 세천(細川) 세 줄기는 닭의 오른쪽 날개, 동남쪽으로 흐르는 작은 내는 왼쪽 날개, 마을 뒷산은 닭의 몸통 같아 마을 형국이 마치 닭이 춤추는 듯하다 하여 무계(舞鷄)라 하였다. 그 후 손씨와 이씨가 들어와 살면서 낙동강 변에 번창하는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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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 있는 해주오씨 동성마을. 마을을 개척할 당시 어떤 도인이 지나가다 서남쪽으로 뻗은 실개천 세 줄기는 닭의 오른쪽 날개, 동남쪽으로 흐르는 실개천은 왼쪽 날개, 마을 뒷산은 닭의 몸통 같아 마을 형국이 마치 닭이 춤추는 듯하다 하여 무계(舞鷄)라 하였다. 그 후 오씨·조씨·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낙동강 변에 번창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성할 무(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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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 있는 성산이씨 문중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대가야읍 본관리 관동마을은 성산이씨가 모여 사는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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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나대리에 걸쳐 있는 산. 미숭산은 고려의 장군이었던 이미숭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 대항해 군사를 모으고, 미숭산에 성을 쌓아 고려를 되찾고자 싸움을 벌였던 곳이다. 당시 대세는 조선과 이씨 왕조 쪽으로 기운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숭은 결국 고려 회복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했다고 전해진다. 본래 산의 이름은 상원산이었으나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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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이재홍(李齋洪)의 딸이며, 배우현(裵瑀鉉)의 아내로 남편이 병으로 앓아눕자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으며, 남편의 생명이 위급에 처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소생케 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간 시묘하였으며, 또한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라 정절을 지키겠다는 표시를 하였다. 경상북도 고령군 명곡촌(明谷村)[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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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에 있던 조선시대 나루터.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 마을은 조선 인조 때 개척되었는데, 낙동강 범람으로 인해 늪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 ‘늪마을’이라 하다가 120여 년 전 이씨라는 선비가 들어와 마을 앞 큰 호수를 보고 ‘호촌’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한 낙동강이 범람할 때 이곳 흙을 많이 훑어갔다고 ‘훑촌’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906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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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이성관(李成觀)의 딸이며, 이수을(李洙乙)의 처로 가정 형편이 극도로 궁핍함에도 한번도 얼굴에 근심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고 극진한 효성으로 시부모를 모셨다. 밭을 갈러 나간 시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자 부축하여 집으로 모셔 와서는 3년간 수발을 들었다. 그 동안 아침 저녁으로 음식을 올리는 것은 물론 대소변을 손수 받아내었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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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열녀(烈女). 광산이씨(光山李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의 딸로 나이 19세 때 임진왜란을 당하여 피난을 가다가 왜적을 만나게 되었다. 왜구는 이씨를 희롱하며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이씨는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칼을 꺼내어 왜구에게 잡혔던 자신의 손목을 잘라버렸다. 이씨의 단호한 행동에 겁을 먹은 왜구는 도망치듯 물러갔다. 하지만 잘린 손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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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 상용마을 입구에 있는 자연 바위. 대가야읍에서 국도 26호선을 따라 쌍림면으로 가다 보면 우측으로 반룡사로 진입하는 도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월막리를 지나면 반룡사 방향과 용리 상용마을로 향하는 갈림길이 있다. 갈림길 좌측으로 상용마을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상용마을 입구에 큰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의 좌측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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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홍도(弘道), 호는 몽계(夢溪). 할아버지는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지낸 한련(韓璉)이고, 아버지는 전객령(典客令)을 지낸 한희적(韓希迪)이다. 부인은 이씨(李氏), 대언(代言) 권확(權確)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위위(衛尉) 장지순(張之順)의 딸 영가장씨(永嘉張氏)가 있었다. 아들로는 군수(郡守) 한진(韓珍),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