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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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가야 때 관청이 있었다 하여 고아리(古衙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치사리를 병합하여 고아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령읍 고아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고령읍 고아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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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한들[大坪]의 이름을 따서 대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흑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성동·내성동·평촌동을 병합하여 대평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대평리가 되었다. 가야산(伽倻山)의 남동 비탈면에서 발원한 대가천(大加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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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고개. 떡곡재는 이 재의 서쪽에 위치한 대가야읍 지산리 떡곡마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조선 중기 때의 한 선비가 이곳에 정착해 살면서 골짜기가 워낙 깊어서 큰골·대곡·덕곡이라고 불렀으며, 후에 음이 변해 떡곡이 되었다. 옛날 이곳 아낙네들은 떡을 만들어 행상을 많이 했다고 한다. 떡곡재는 북동쪽에 주산(主山)[310.3m]과 떡곡재의 남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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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일원에 분포하고 있는 바위면 위에 구멍을 새겨 놓은 바위구멍 유적. 바위구멍[성혈(姓穴)]은 일반적으로 암각화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구별하여 바위 면에 둥근 구멍을 파 놓은 바위구멍 유적을 말한다. 바위구멍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알구멍’이나 ‘굼’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바위구멍은 보통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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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470년경(성종 1) 김녕김씨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무봉산·수만산·수리봉산의 세 산 밑에 마을이 있으므로 삼산(三山)이라 하였다. 그 후 삼대(三垈)로 바뀌었다가 김녕김씨·광산이씨·김해김씨의 세 성이 모여 발전을 기약하는 마을이란 뜻에서 삼대(三大)가 되었다고 하며, 삼대(三垈)·반장(班庄)·멍더미의 세 마을을 합하여 삼대가 되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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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가야가 망한 뒤 신라 제53대 경덕왕 때 명칭인 신복현(新復縣)에서 ‘신’자를 따서 신동·신리·새마라고 하였다고 하나 고증이 필요하다. 신복현은 본래 신라의 가시혜현(加尸兮縣)으로 경덕왕 때 신복현으로 고쳤다. 조선 말기 고령군 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음동을 병합하여 신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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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둘러싼 산이 겨울의 세찬 북풍과 여름의 태풍을 막아 주어 주민들이 편안하고 화합하는 마을이므로 안화(安和)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 국토가 왜군에게 짓밟히자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리 안홧골·안화곡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유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부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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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岩刻畵)란 말 그대로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암벽 등에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시베리아와 중국, 몽골 등의 동북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1970년대 초 고령 장기리 암각화와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가 학계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대략 20여 개소 이상의 유적이 발견·소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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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엽 마을을 개척할 당시 한 정승이 어명을 받고 이곳에 있는 제석산[387m]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으므로 어실 또는 어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어곡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어곡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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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라산(雲羅山) 밑에 있어 운산(雲山)이라 하였다. 마을 동쪽에 큰 산이 있어 아침이면 늘 그늘진 곳에 안개가 많이 끼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구르미·구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구음면(九音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하동을 병합하여 운산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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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못이 있어 못안골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모산골로 되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지산(池山)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기동·막곡동·신기동을 병합하여 지산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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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시대 강화도에서 가져온 팔만대장경판을 개포에서 해인사로 옮길 때 이 마을로 바로 갔다고 하여 직통(直通)이라 하였는데 후에 직동(直洞)이 되었다. 마을에 양조장이 있어 직동도가라고도 하였다. 열뫼 또는 열미는 마을 북쪽 산 모양이 칼로 잘라 벌려 놓은 듯하여 붙인 이름이다. 개산(開山)은 열뫼의 한자 표기이다. 교통의 요로였으므로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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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직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직리 고인돌군은 고령군 개진면 직리 송천마을의 동쪽 뒤편에 위치해 있다. 송천마을 뒤편에 동북쪽으로 형성된 큰골의 계곡물을 가둔 저수지인 송천지(松泉池)가 있는데, 그 아래 계단식 논 가운데에 100m 정도 간격으로 2기가 있다. 대가야박물관에서 시행한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한 고인돌 유적이다. 2기의 고인돌 가운데 아래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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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세거하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집성촌. 집성촌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의 형성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전기부터다. 특히 조선 후기인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적장자 중심으로 상속 제도가 변화하고,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보급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