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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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憁 |
영어음역 | Jeong Ch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석린 |
[정의]
고려말·조선초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만석(曼碩), 호는 복재(復齋)이다.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추(鄭樞)[일명 公權]의 아들이며, 조선개국공신 정탁(鄭擢)[1363~1423]의 형이다.
[활동사항]
1376년(우왕 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9세로 춘추관검열이 되고, 대간·응교·사예를 거쳐 대호군에 이르고, 1389년(공양왕 1)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며, 1391년 이조판서를 거쳐 정당문학에 이르렀다. 당시 중국에 보낸 「표전문(表箋文)」은 대부분 그가 지었다.
1394년(태조 3) 정당문학이 되고, 다시 예문춘추관태학사가 되어 정도전(鄭道傳)과 같이 『고려사(高麗史)』를 편찬하고, 그 서문을 썼다. 1395년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고명(誥命) 및 인신(印信)을 줄 것을 청하러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때마침 명나라에 보낸 「표전문(表箋文)」이 불손하다 하여 명나라 황제에게 억류되어 대리위(大理衛)에 유배도중 죽었다.
[상훈과 추모]
조선개국 후 개국공신 1등에 서훈(敍勳)되어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로서 서원군(西原君)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저술]
저서로는 문집인 『복재유고(復齋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