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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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긴 자녀. 효 사상은 삼국시대에 이미 전개되었다. 고구려에서는 태학(太學)에서 오경(五經)과 중국의 사서들을 교육하였고, 신라도 국학(國學)에서 『논어(論語)』와 『효경(孝經)』 등을 교육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國子監)을 설치하여 유교 경전을 학습하고, 『논어』와 『효경』을 필수 과목으로 하여 유교적 충효 사상을 중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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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晋陽). 할아버지는 강상홍(姜相洪)이다. 강병관(姜炳觀)[1901~1928]은 불행하게도 29세의 젊은 나이에 병이 걸려 죽음에 이르렀을 때 눈물을 흘리며 “부모가 집에 계시니 눈을 감을 수 없다”면서 울부짖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937년 5월 아버지가 이질에 걸려 3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는데 온갖 약을 썼으나 전혀 차도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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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숙도(叔道), 호는 월계(月溪). 아버지는 진사(進士) 곽수강(郭壽岡)이다. 곽유(郭逌)[1655~?]는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서 학문을 하였으며, 1690년(숙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평소 부모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고, 부모가 병이 들어 위급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먹여 소생하게 하였다.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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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달원(達元). 중종 때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지낸 김효동(金孝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호일(金浩一)이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상능(金相能)[1834~?]은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에서 태어났다. 평소 부모를 극진한 효성으로 모셨는데, 칠순의 아버지가 수개월 동안 병이 들어 온갖 약을 써도 효험이 없고 아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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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선산[一善]. 초명은 세옥(世玉), 자는 문원(聞遠), 호는 모헌(慕軒)·연한당(燕閒堂).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8대조이며, 김종직의 넷째 아들인 김숭연(金嵩年)[1486~1539]이 7대조이다. 김숭연은 일직손씨(一直孫氏) 사이에 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인 김윤(金綸)이 일찍 졸하여 6대조인 김유(金維)[1515~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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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일선(一善). 호는 매암(梅庵).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7세손이다. 김시사(金是泗)는 아홉 살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기를 마치 어른같이 하고, 표주박 하나를 벽에 걸어 놓고 죽을 먹는 그릇으로 사용하였다. 어머니의 등에 종기가 나자 상처를 입으로 빨아내어 낫게 하였으며,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는 지나친 슬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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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삼연(三然). 아버지는 김보경(金寶鏡)이다. 김영곤(金永坤)은 타고난 성품이 남달라서 어려서부터 늙어서까지 부모님을 모시는 데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이러한 성품을 가졌기에 부모의 명을 단 한 번도 거역하는 일이 없이 성심으로 받드는 모습으로 이웃을 감동시켰다. 고종 때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중학교관(中學校官)에 추증되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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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고조할아버지는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오른 김탁(金鐸)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무과로 출신하여 경원도호부사 겸 경원진병마첨절제사(慶源都護府使兼慶源鎭兵馬僉節制使)를 역임한 김세문(金世文)[1520~1569]이다. 정경부인(貞敬夫人)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맏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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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변이(變而). 증조할아버지는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낸 노삼(魯參)이다. 노지도(魯至道)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아버지와 함께 왜구에게 붙잡혀 그 칼날에 죽임을 당하려는 순간, 아버지를 품에 안듯이 하여 칼날을 막았다. 화가 난 왜구가 마구 칼을 휘둘러 온몸을 난자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적장에게 혈서를 써서 던지고는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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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효자. 평소를 부모를 모시는 데 효성을 극진히 하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앓아누워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문득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박문창은 급히 강으로 달려가 고기를 잡고자 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고기가 잡히지 않자 박문창은 애타는 마음에 땅을 치며 큰 소리로 울었다. 그러자 큰 물고기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또한 아버지가 꿩고기가 먹고 싶다하여 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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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효자. 부사(府使)를 지낸 박윤서(朴潤緖)의 아들로 효종(孝宗)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 선전관(訓練院 宣傳官)에 이르렀다. 박윤서(朴潤緖)는 평소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부모의 생명이 위급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소생케 하고자 하였다. 박윤서(朴潤緖)가 부모에게 보인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예절을 뛰어 넘는 것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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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치순(致淳), 호는 사포(沙圃). 증조할아버지는 박사준(朴思峻)이다. 박상림(朴尙林)[1839~1904]은 10세에 배우던 책을 덮고 나무를 하여 부모의 수고를 대신하였고, 15세에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극진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머리에 종기가 나서 온갖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고 고통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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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덕부(德夫), 호는 죽연(竹淵). 아버지는 양산군수를 지낸 박계조(朴繼祖)이다. 박윤(朴潤)[1517~1572]은 남명(南冥) 조식(曹植), 낙천(洛川) 배신(裵紳) , 황강(黃江) 이희안(李希顔), 송계(松溪) 신계성(申季誠), 월오(月塢) 윤규(尹奎) 등과 교우하며 학문을 닦았다. 아홉 살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극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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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출신의 효자. 박진문(朴震文)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고, 병이 깊어 위독하자 피를 내어 약을 지어 올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초막도 짓지 않고 무덤 옆에 기거하였는데, 이웃 사람들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여막을 지어 주었으나 들어가 거처하지 않고 밤이면 무덤에 엎드려 슬피 울고 낮이면 나무에 매달려 목 놓아 큰 소리로 울기를 밥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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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래(仲來), 호는 용재(慵齋). 아들은 박섬(朴暹)[1696~1760], 손자는 박사연(朴思淵)[1732~1756]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박종주(朴宗冑)이다. 양죽당 정완[참판공으로 임진왜란에서 창의함]의 5대손이다. 박태중(朴泰重)[1677~1729]은 5~6세에 이미 완숙한 군자의 모습을 갖추었고, 장성하여서는 덕행을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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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화일(華日). 아버지는 배경혁(裵敬赫)이다. 배학조(裵學朝)[1872~1922]는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근검하여 일찍이 벼슬에 뜻을 버리고 부모님을 모시는 일에 마음과 몸을 다하였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형제들이 한집에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스스로 모범을 보여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하게 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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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고려 시중(侍中)을 지낸 성송국(成松國)의 13세손이다. 성풍세(成豊世)[1572~1650]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홀로 된 어머니를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로 피난시키고 난 뒤 자신은 상주진(尙州鎭)의 병사로 입대하였다. 훈련을 마치면 상주진에서 나정리까지 180리 길을 저녁에 갔다가 아침이면 돌아오기를 계속하였다. 상주진의 병마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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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여인(汝引). 아버지는 신경추(申景樞)이다. 신급(申汲)[1624~1695]은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급하자 자신의 피를 내어 약으로 썼다. 어머니의 장례 후에는 여막도 없이 무덤 아래에서 끼니도 거른 채 슬피 울었는데,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치는 일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몸이 상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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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초천(樵川).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신계상(申啓相)이다. 신정제(申正濟)는 부모가 동시에 전염병에 걸려 생명이 위급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모두 베어 피를 흘려 넣어 회생하게 하였으며, 입맛을 잃어 음식을 먹지 못하자 얼음 속에서 잉어가 솟아오르고 눈 속에서 토끼가 기어 나오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 그것으로 부모의 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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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한은(閒隱). 신정제(申正濟)의 고손자이다. 신종록(申鍾祿)[1830~1902]은 3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를 극진한 효성으로 섬겼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앓아눕자 낮에는 곁을 지키며 보살피고, 밤이면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정화수를 길러 놓고 천지신명에게 어머니 대신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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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국서(國瑞), 호는 국포(菊圃). 오운(吳澐)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오연순(吳演淳)이며, 맏아들로 태어났다. 오상옥(吳相玉)[1847~1910]은 밖으로는 능숙한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안으로는 극진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병들어 의원에게 약을 구하러 가자, 인분을 약으로 먹이라고 하였다. 이에 인분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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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아버지는 군자감(軍資監)을 지낸 유정의(兪正義)이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경해(兪景海)[1501~1589]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효성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며, 14세에 아버지가 등창을 앓아 고생하자 입으로 환부를 빨아 낫게 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운명이 경각에 이르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모두 목숨을 연장하게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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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훈혜(薰兮). 증조할아버지는 유경해(兪景海)이다. 유세훈(兪世薰)[1583~1649]은 평소 지극한 정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는데, 아버지가 학질에 걸려 오랜 병고 끝에 입맛을 잃었다가 갑자기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엄동설한이라 고기를 잡을 수 없어 두껍게 언 얼음을 두드리며 통곡하자 물새가 날아와 물고기를 떨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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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여경(汝慶). 유세훈(兪世薰)의 고손자이다. 유정환(兪鼎煥)[1716~1785]은 아버지가 오랜 병환으로 고생하자 13세의 어린 나이로 아버지의 인분을 맛보며 병세를 살폈으며, 생명이 위급함에 이르러서는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함으로써 연명하게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여 의원을 모시러 그믐밤에 홀로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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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주(驪州). 안동장군(安東將軍) 이미숭(李美崇)의 5세손이다. 이광영(李光榮)은 부모를 모시는 데 극진한 효성을 보였으며, 부모의 생명이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여 연명하게 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6년간 시묘하였으며, 해상(解喪) 전에 또다시 상을 당하자 다시 3년간 시묘를 하였다. 1558년(명종 13) 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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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성산(星山). 호는 죽함(竹檻). 이근수(李根壽)[1832~1886]는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예리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하였지만 부모를 모시는 데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이웃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아버지가 방안의 냉기와 습기로 말미암아 몸에 마비가 일어나는 풍비(風痺)에 걸려 생명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고, 매일 하늘에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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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이지(以之), 호는 경모재(敬慕齋). 할아버지는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를 지낸 전극창(全克昌)이다. 전주국(全柱國)[1692~1777]은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33세가 되던 1723년(경종 3) 부친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를 하였고, 1728년(영조 4) 모친상을 당하여 3년간 여막을 지켰다. 1734년(영조 10) 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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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진양(晋陽). 호는 월담(月潭). 아버지는 정린(鄭麟)이다. 부인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여동생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정사현(鄭師賢)은 9세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슬퍼하기를 어른같이 하여 몸이 야윌 정도였다. 아버지의 상을 치르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또한 슬픔을 금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효성에 큰 감화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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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현서(玄瑞), 호는 소은(蘇隱). 아버지는 조후식(趙厚植)이다. 조성린(趙性麟)[1856~1935]은 지금의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효성과 총명으로 이름이 자자하였다. 20세 때 어머니가 학질에 걸려 사경에 이르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게 한 후 쾌차하게 하였다. 그리고 1870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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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효자. 최광도는 학문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성현의 가르침을 외워 남 앞에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최광도의 이러한 생각은 그로 하여금 일찍이 과거 시험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게 했다. 그 대신 일상 생활 속에서 예절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덕을 쌓아갔다. 최광도는 지극한 정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부모가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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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여보(儷甫). 아버지는 허명신(許命申)이며,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허항(許伉)[1636~?]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이웃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병들어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꿩이 홀연히 부엌으로 날아들었고,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이 덮인 못 위로 고기가 뛰어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이 같은 기이...
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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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열녀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로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충·효·열 관념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 형태로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체계화되면서 열녀는 사회적으로 더욱 중요성을 강화해 갔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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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성산(星山). 남편은 곽희수(郭希壽)이다. 곽희수 처 성산이씨(星山李氏)는 시아버지가 결혼 초부터 병으로 앓아눕자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 남편은 전력부위 수문장(展力副尉水門將)으로 근무하기 위해 한양으로 떠났다. 이 사실을 안 왜구가 남편의 군사 기밀을 탐지하기 위해 약장수를 가장하고 성산이씨에게 접근하자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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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기계유씨(杞溪兪氏)로 유문준(兪文濬)의 딸이며, 기봉연(奇鳳衍)의 아내로 가정 형편이 매우 궁핍하여 아침 저녁의 끼니를 죽으로 때워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밥상에는 항상 흰 쌀밥을 지어 올렸다. 그리고 형편이 너무 어려워 쌀을 마련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자신의 머리를 잘라 팔아 그 돈으로 시아버지를 봉양하였다. 유씨는 부지런한 성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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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김성희(金性熙)이며, 남편은 기용걸(奇龍傑)이다. 기용걸 처 경주김씨는 시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슬퍼하며 곡하기를 한결같이 하였다. 살림이 빈곤한데도 술을 좋아하는 시아버지를 위해 하루 세 잔씩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드렸으며, 조석을 받드는 데 밥이며 반찬을 정성을 다해 지어 올렸다. 그러다 중한 병에 걸려 수개월 앓아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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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여흥(驪興). 아버지는 첨지(僉知) 민국창(閔國昌)이며, 남편은 문헌공(文憲公) 기대승(奇大升)의 6세손인 기원택(奇元澤)이다. 기원택 처 여흥민씨는 시부모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으며, 부지런히 베를 짜 집안의 살림을 도맡았다. 시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여 조석을 받드는 데 술을 빠뜨리지 않았으며, 이 같은 일을 60여 년간 한결같이 하였다. 불행히 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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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지역의 효부. 본관은 완산(完山). 외가가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11세손이며, 남편은 김세유(金世瑜)이다. 김세유 처 완산최씨(完山崔氏)는 평소 가난한 살림에도 홀로 된 시아버지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그러던 중 남편과 시아버지가 학질에 걸렸는데, 좋다는 약을 써도 전혀 차도가 없고 오히려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우연히 집 마당으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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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충열공 대소헌(大笑軒) 조종도(趙宗道)의 증손녀이다. 박사전(朴思全)의 아내로 나병에 걸린 남편의 병세가 극도로 악화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부인 조씨는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남편을 소생케 하였다. 하지만 남편의 병세가 워낙 깊어 얼마 있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르고 난 조씨는 남편의 뒤를 따르기 위해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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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성산(星山). 이기춘(李起春)의 조카딸이며, 남편은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배두(裵(山+斗))이다. 배두 처 성산이씨(星山李氏)는 규범이 엄한 가정에서 자라 출가하여 정성과 공경으로 시아버지를 모셨다. 그러던 중 초상을 당하여 슬픔으로 몸과 마음을 온전히 수습하지 못하고 있을 때 화재가 일어나 집과 사당이 모두 소실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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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이재홍(李齋洪)의 딸이며, 배우현(裵瑀鉉)의 아내로 남편이 병으로 앓아눕자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으며, 남편의 생명이 위급에 처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소생케 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간 시묘하였으며, 또한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라 정절을 지키겠다는 표시를 하였다. 경상북도 고령군 명곡촌(明谷村)[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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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열녀. 한씨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남편은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포로가 된 처지에 이르렀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그녀를 왜구들은 때로는 회유하고 때로는 위협하며 겁탈하려 달려들었다. 이에 그녀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다. 하지만 왜구들의 강압에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마침내 그녀는 칼로 자결하였다. 그녀의 죽음을 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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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이성관(李成觀)의 딸이며, 이수을(李洙乙)의 처로 가정 형편이 극도로 궁핍함에도 한번도 얼굴에 근심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고 극진한 효성으로 시부모를 모셨다. 밭을 갈러 나간 시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자 부축하여 집으로 모셔 와서는 3년간 수발을 들었다. 그 동안 아침 저녁으로 음식을 올리는 것은 물론 대소변을 손수 받아내었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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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성산(星山). 아버지는 배정휘(裵正徽)이며, 남편은 이재복(李載福)이다. 이재복 처 성산이씨(星山李氏)는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장례를 치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옷을 갈아입지 않고 엎드려 자리를 뜨지 않았으며, 머리를 감거나 빗지도 않았다. 또한 밥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남과 말도 하지 않았고 하늘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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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열녀(烈女). 광산이씨(光山李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의 딸로 나이 19세 때 임진왜란을 당하여 피난을 가다가 왜적을 만나게 되었다. 왜구는 이씨를 희롱하며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이씨는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칼을 꺼내어 왜구에게 잡혔던 자신의 손목을 잘라버렸다. 이씨의 단호한 행동에 겁을 먹은 왜구는 도망치듯 물러갔다. 하지만 잘린 손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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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창녕(昌寧).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여동생이며, 남편은 월담(月潭) 정사현(鄭師賢)이다. 정사현 처 창녕조씨(昌寧曺氏)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계절마다 의복을 지어 묘소 앞에 드렸다가 불에 태우는 일을 3년간 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식들을 불러 놓고 “나는 언제나 너희 아버지를 뒤따르고자 하였으나 너희들이 어려서 차마 그러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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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해주오씨(海州 吳氏) 오원(吳瑗)의 딸이며, 조규승(曺奎承)의 아내로 병든 시아버지를 봉양하는데 효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시아버지의 병이 너무 깊어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누군가가 인육을 먹으면 효험이 있을 것이라 하여 오씨는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시아버지에게 드렸다. 그러자 시아버지의 병세가 점차로 차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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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김재협(金載協)의 딸이며, 조범환(曺範煥)의 아내로 시집을 온지 얼마 되지 않은 21세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김씨는 손수 남편의 묘소 옆에 거처를 짓고 신주를 받들었다. 김해김씨(金海金氏)가 시묘를 하는 동안 길쌈을 하여 남편 무덤의 모든 석물을 마련하였다. 그 후에도 김씨는 시묘살이를 그치지 않고 평생토록 이어갔다. 경상북도 고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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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현감을 지낸 임중수(林重秀)의 딸이며, 조상벽(趙相璧)의 아내로 평소 시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임씨는 남편이 병으로 생명이 위급하게 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소생케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고, 얼마지나지 않아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오씨는 장례가 끝나는 날 남편의 뒤를 따르기 위해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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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진사(進士)를 지낸 하서천(河瑞千)이며, 남편은 조정필(趙廷弼)이다. 조정필 처 진주하씨(晋州河氏)는 남편의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곡을 하였는데, 그 곡소리가 처음 상을 치를 때와 같았다. 아들을 잃은 시아버지의 슬픔을 씻어 드리기 위하여 온갖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그러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하늘을 우러러보며 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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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역의 열녀. 최흠(崔欽) 처 박씨는 어려서부터 마음이 어질고 사리가 밝을 뿐만 아니라 미모도 뛰어나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받으며 자랐다. 나이 19세가 되어 최흠과 결혼하였으나, 불행하게도 남편이 결혼한 지 20일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박씨는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슬픔을 다하였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자 남편의 허리띠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