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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광업소 파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11
한자 京東鑛業所罷業
영어공식명칭 Kyoungdong Mining Guild Strik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86년 7월 25일~26일연표보기 - 경동광업소 파업 중 체불 임금 및 가족수당 등 최저 생계 임금 지급 요구
발생|시작 장소 경동광업소 광산노동자의 파업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경동광업소 지도보기
성격 노동운동

[정의]

강원도 삼척시 소재 경동광업소에서 1986년 7월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 동안 발생한 노동자들의 파업.

[개설]

1986년 7월 25일과 26일 이틀 동안 이유 없는 임금 체불 및 광부와 사무원 간 차별 대우 등을 이유로 경동광업소 광산노동자 2000여 명이 농성과 파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가족 수당 매달 3만원 지급 등 7가지 요구를 하였다.

[역사적 배경]

경동광업소 파업 사건은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고된 노동에 종사하는 광산 근로자들에게 기본인 생활 임금조차 제대로 지불되지 않은 당시의 사회 및 경제 상황, 노사 문제에 대한 사측과 관계 기관의 강압 대체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경과]

1986년 9월 8일 사측은 노사협의회에서 가족 수당은 지급할 수 없고, 7월 26일 노사 합의는 노동자의 공식 대표와 한 것이 아니며, 시한도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발뺌하였다. 이에 따라 800여 명의 노동자들은 9월 9일 오후 9시부터 광업소에서 농성을 시작하였다. 이때 어용 노조 측이 사측과의 협의를 통해 해결하려 했지만 협상은 타결되지 못하였다.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자 격분한 노동자들은 9월 10일 오후 5시경부터 영동선 철도와 국도를 차단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관계 기관은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하여 광산노동조합 전국위원장 이성식에게 사건을 위임하고 경찰 400여 명을 동원하여 강제 해산시켰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광업소 내로 들어가 계속 농성하였다. 이와 같은 농성으로 관계 기관은 1000여 명의 경찰을 도계읍 내에 배치시키고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삼엄한 경비를 서게 하였다. 검찰 측은 주동자를 구속하겠다는 위협을 가하기도 하였다.

[결과]

경동광업소 파업 사건과 관련하여 1986년 9월 12일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강원지부와 가톨릭광산인권문제상담소[도계] 및 가톨릭광산노동문제상담소[사북]는 노동자들에게 매월 가족 수당 3만원 즉각 지급, 어용 노조 집행부와 전국 광산노동조합 위원장의 즉각 사퇴, 연행자들에 대한 석방과 형사 책임을 묻지 말 것, 노동 악법 철폐,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매판 재벌 정권 퇴진 등을 요구하였다.

[의의와 평가]

경동광업소 파업 사건은 1980년대 광산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생활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 또 당시 강원도 석탄 산업 현장의 실상을 낱낱이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참고문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www.kd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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