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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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臨院里-堂- |
영어공식명칭 | Imwonri Seonangdang and Flagpol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
집필자 | 김도현 |
현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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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제의 공간 |
[정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에 있는 마을 제의 공간.
[개설]
전승 주체는 임원2리를 중심으로 임원1리와 3리 이장, 마을 지도자들이 협력하고, 마을 어르신들과 주민들이다. 서낭굿을 하는 해에는 임원리 어촌계가 동참하여 서낭고사를 지내고, 굿은 임원리 어촌계에서 주도하고, 마을 주민들이 협조하는 형식으로 연행된다.
전승 범위는 임원1리~임원3리를 모두 포함한 지역인데, 특히 임원리 큰서낭당과 짐대가 있는 임원2리가 중심 마을이다.
임원리에는 큰서낭이라 불리우는 할아버지서낭당과 바닷가에 있는 정씨서낭과 고씨서낭이 있다. 마을 주민들이 개인적인 치성을 드리고자 할 때는 주로 큰 서낭에 가나,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씨 서낭이나 고씨 서낭에 가서 바다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예도 많다. 이 중에는 문어나 게 등을 잡아서 서낭님에게 천신(薦新)[철 따라 난 과일, 농산물을 신위에 올리는 것]하는 어민들도 있는데, 정씨서낭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서낭고사를 주재하는 제관과 제물을 준비하는 도가(都家)[제의를 도맡아 하는 집], 서낭고사를 도와주는 종사자는 마을 사람 가운데 깨끗한 사람, 즉 집안에 초상이나 출산, 우환이 없고,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도가와 종사자는 물을 건너 형성된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이 하면 안된다고 하여 항상 임원2리에 거주하는 주민 중에서 선정한다.
제관·도가·종사자로 선정되면 몸을 단정히 하고, 각종 금기를 잘 지켜야 한다. 즉, 서낭고사에 임하는 도가와 제관, 종사자는 고사 때까지 흉사에 가지 않고 되도록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등 전통적인 금기를 지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정해년 정월대보름 고사는 음력 정월 초사흘에 이장님들이 임원리에서 신수와 좋은 날을 잘 봐주는 김○○ 어르신으로부터 서낭고사를 주관할 수 있는 생기를 받아서 제관, 도가와 종사자를 선정하였다. 이들은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 정월 초아흐렛날부터 전통적인 금기를 지키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한다.
임원리에서는 정월 대보름날을 맞이하여 청년회 주최로 달집태우기 등의 행사를 하였으나, 삼척시에서 주최하는 삼척 정월대보름축제로 인해 마을 단위의 행사를 실시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는 개인적으로 용왕상을 준비하여 바닷가에서 용왕제를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2리, 임원초등학교 맞은편에 위치한다.
[형태]
큰 서낭당의 원래 위치는 임원초등학교 관사 옆 향나무가 있는 자리였으나 임원초등학교를 지으면서 남쪽 방향으로 20m 옮겼다고 한다. 2006년 7번국도 확장 공사로 인해 기존의 서낭당을 헐고,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유지되고 있다.
서낭당 입구에는 짐대가 세워져 있다. ‘성황당’이라 쓴 편액이 제당 전면에 걸려있으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지붕은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 형태이다. 서낭당 내부에는 1874년(고종 11)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 전통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큰서낭 내부의 정면 벽에는 서낭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을 그린 당신도를 양여닫이문을 설치한 벽장 내부에 신체(神體)로 모셨는데, 이를 그린 시기와 작가는 알 수 없다. 서낭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좌우 벽에는 수부신을 각각 3분씩 총 6분의 수부신을 그린 그림을 모셨는데, 수부신이 서낭 할아버지를 호위하듯 서로 마주보며 나란히 걸려있다. 마주보고 있는 수부신을 자세히 보면 문양과 색깔이 약간 다르지만 서로 쌍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정씨서낭은 향나무를 신목(神木)으로 하며,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씨서낭은 지금도 어민들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좋은 생선이나 게, 문어 등을 잡으면 서낭님께 올리며 발길을 잇는다고 한다.
임원3리에서 들어오는 물줄기가 흘러서 고래서낭까지 가는데, 현재 정씨서낭을 모신 곳이 터가 세다고 하여 당을 세웠다는 말도 전한다.
임원항과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남화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의 언덕에 자리잡은 서낭이 고씨서낭이다. 어업에 종사하는 고씨들이 서낭을 만들었다고도 전해지는 서낭당으로서 서낭굿을 할 때 맨 마지막에 들르는 서낭당이다. 바다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로 와서 치성을 드린다.
서낭당은 소나무를 신수로 제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막돌허튼층쌓기를 하여 만든 축대 위에 의례 공간을 확보하였으며, 신목 아래에 시멘트를 이용하여 제단을 마련하였다.
임원3리 사기촌 서낭당은 기와지붕에 나무기둥을 받치고 시멘트를 섞어서 돌담을 쌓았다. 당에는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어 놓고, 마당은 시멘트로 발라놓았다. 그리고 앞에는 ‘성황당’이라고 쓴 나무 현판이 걸려있다. 서낭당 내부에는 서낭과 수부자리에 각각 한지가 걸려있고, 앞으로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당집은 옛날부터 있었으나 새로 보수한 지 3년 됐다. 벽만 허물어 보수하고 기와는 오래된 것을 살리려고 시멘트만 발랐다.
[의례]
2007년 조사한 사례를 중심으로 제의 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07년에는 조○○ 어르신이 도가를 맡았다. 70세인 조○○ 어르신은 대대로 임원에서 살아왔는데, 도가를 맡은 것은 이번이 3번째다. 제관은 임원1리~3리 이장님과 마을별로 각 1명씩 선정하였는데, 임원1리 이장님은 제관을 겸하였다. 종사자는 도가를 보좌하여 어물 손질과 금줄 제작, 서낭당 청소, 제물 진설 등을 담당하는 사람들로서 손○○, 전○○님이 맡았다.
다른 마을과는 달리 임원리에서는 도가댁에 모여 제수 준비와 금줄 제작 등을 모두하고, 이를 운반하여 제물을 진설하고, 서낭당 청소를 하며, 금줄을 치는 등의 역할은 종사자들이 담당하였다.
임원리 서낭고사 준비와 진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금줄을 제작하여 건다. 금줄은 종사자들이 도가댁에서 만드는데, 오른손 바닥에 왼손으로 비벼서 만드는 왼새끼를 만든 후 한지를 끼워 완성한다. 이 때 금줄의 중간 중간에 짚의 대궁[짚대] 쪽이 8~10㎝ 정도 삐져나오게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금줄은 서낭당 3곳과 도가댁에 걸어 잡인의 출입을 막고, 신성 지역임을 대외적으로 알려 부정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금줄을 걸 때 사람들이 출입하는 대문 위에 거는데, 어두운 밤에도 금줄을 인지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지나다니면 머리에 걸릴 정도로 걸어 둔다. 금줄을 쳐 놓으면 이제 날을 받았으니 아무나 접근하지 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와 함께 집사도 금줄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제사 지낼 동안에 안 다니기에 도가댁 아주머니도 아무 데도 안 나간다고 하였다.
서낭당 청소 및 금줄치기, 황토 뿌리기, 제물 구입은 2월 26일[음력 1월 9일] 종사자인 손○○, 전○○님이 담당하였는데, 이들은 이전에 걸었던 금줄을 떼어내고, 서낭당 내부와 마당을 깨끗이 청소하여 주변을 정결히 하고 삶은 팥을 서낭당과 준비실 주위와 담 밖으로 뿌려 부정을 방지하고, 외부의 잡귀신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팥을 뿌리는 이유는 서낭당을 옮긴 후 처음 지내는 서낭고사여서 제관의 생기를 봐준 김○○님이 지시한 내용으로 행하였다.
금줄을 대문과 주변 담장 일부를 포함하여 담장 밖의 소나무에까지 걸어 부정을 막는다. 서낭당 뒷산에서 채취한 황토를 대문에서부터 서낭당 출입문 앞에까지 2열로 적당한 간격을 두어 뿌려 부정을 막는다.
정씨서낭과 고씨서낭에 가서도 청소를 한 후 금줄을 걸어 신성 구역임을 나타내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제수를 구입하기 이장님과 종사자가 3월 2일 삼척장을 찾았다. 원래 호산장날에 제수를 구입하는데, 올해는 고사를 지내기 전에 장이 서지 않아서 삼척장에서 구입하였다. 삼척장은 2일, 7일마다 서는데 인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장이다. 장에서 구입하는 제수는 주로 과일과 한지 등이다. 한지는 서낭에 드릴 예단용과 소지를 올릴 때 사용하는 한지를 구분하여 구입한다.
고사가 시작되는 늦은 밤이 될 때까지 제관과 종사자는 도가댁에 모여 마을에 대한 일들을 논의한다.
제비(祭費)는 도가인 조○○님이 이장을 할 때 모곡(耗穀)을 받았는데, 농사짓는 사람은 벼를 가져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돈을 가져왔다. 도개댁에서는 소머리국밥도 해놓아 도가를 대접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동네 치성비라 해서 2000원 씩 모아 임원1리~임원3리가 모아 올리고. 그 전에는 일 년에 두 번, 정월 대보름날과 10월 보름날에 모아 올렸으나 그것도 간소하게 하자고 해서 없애고 새해 들어 정월대보름에만 일 년에 한 번씩 했다.
서낭고사를 지내는 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월대보름 전날 저녁에 이장님과 종사자들이 제수를 도가댁에서 큰서낭으로 리어카를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옮긴다.
제수는 정면에 3상, 좌우 수부신 앞에 각각 1상씩 총 5상을 준비하는데, 당신도를 중심으로 양 옆의 수부신 앞까지 ‘ㄷ’자 형태로 진설한다.
서낭고사에 올리는 제수는 어물로 문어, 명태, 가자미, 열기, 포이며, 이와 함께 두부전, 삶은 달걀, 구운 김, 그리고 사과, 배, 곶감, 밤, 대추 등의 과실이다. 떡은 백설기로 두 시루를 쪄서 시루 째 올린다.
정월 대보름날이 시작되는 자시(子時)에 서낭고사를 지낸다. 임원리 서낭고사는 제의 절차에서 유교식이 많이 가미된 형태로 부정이 없고, 생기가 맞는 제관과 이장, 종사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으며. 여자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서낭고사를 진행한 순서는 다음과 같다.
· 제수를 진설하기 전에 한지를 다시 건다.
· 제수를 진설한다.
· 모사에 숯을 넣는다.
· 고사를 시작하기 전, 소나무 가지에 깨끗한 물을 묻혀 제관과 서낭당 내부 곳곳에 뿌려 부정을 가셔 낸다.
· 촛불을 켜고 각 잔을 술로 헹궈낸다.
· 모사에 향을 올리고 나면 서낭 할아버지와 두 부인에게 술을 한 잔씩 올린다.
· 참신(參神)·제관 일동 2배
· 초헌례
· 아헌례
· 종헌례
· 개반 및 삽시 정지
· 독축
· 유신례
· 사신례
· 유식제의인 고사가 끝나고 나면 제관들이 각 마을의 이장으로서 마을의 평안과 풍농 풍어를 거듭 기원한다.
· 음복 : 마지막으로 제에 올렸던 술을 음복하며 고사를 마무리한다. 음복은 신성한 신의 음식을 나눔으로써 그 신성성을 나누어 받고 한 마을이라는 연대감을 회복하는 제의이다.
· 소지 : 제의가 모두 끝나면 제관과 종사자들이 마을 주민들을 위해 소지를 올린다. 불꽃이 좋지 않거나 타지 않고 남으면 운이 좋지 않고 불꽃이 위로 솟으며 재가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면 좋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 철상
축관인 김○○ 이장님이 읽은 축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임원리 서낭당 축문(祝文)
유세차계유일월갑진삭십오일무오 초헌관 ○○○재락(維歲次癸酉一月甲辰朔十五日戊午 初獻官 ○○○再洛)
아헌관 ○○○재배(亞獻官 ○○○再拜)
종헌관 ○○○재배(終獻官 ○○○再拜)
감소고우(敢昭告于)
성황토지지신이수 천개지벽 음조양분 천지지간(城隍土地之神而受 天開地闢 陰肇陽分 天地之間)
만물연생 헌황화야 만물구분 명산대택 고사총림(萬物延生 軒皇畵野 萬物區分 名山大澤 古祠叢林)
개유주재 인비신무처제 성신비인 무이감응(皆有主滓 人非神無處齊 誠神非人 無以感應)
신인이화복록 영종백신 총령지중 성황욱령 유아촌민(神人以和福祿 永終百神 總灵之中 城隍욱灵 惟我村民)
불승현행 제명감복 근이청작 서수경전 우복원존령(不勝□幸 齊明感服 謹以淸酌 庶羞敬奠 于伏願尊灵)
감차비성 춘하추동 사시대서 광시대덕 구락차동(感此鄙誠 春夏秋冬 四時大序 廣施大德 救洛此洞)
사농공상 어선어부 소망지사 개위성취 사기산천(使農工商 漁船漁夫 所望之事 皆爲成就 使其山川)
오행지신 개위환희 사기오방 구난지사 개위환악(五行之神 皆爲歡喜 使其五方 苟難之事 皆爲歡樂)
질병화환 실팽조 삼재팔난 관구설일 소월소사(疾病禍患 失祊阻 三災八難 官口舌日 消月消使)
차일이삼차동 영수행복 복자길진 류심진성(此一二三此洞 永受幸福 卜玆吉辰 留心盡誠)
근이청작 포혜상천 우신상(謹以淸酌 脯醯祥薦 于神尙)
향(饗)
진설한 제수 중 메는 5그릇으로 할아버지서낭과 할머니서낭 두 분, 그리고 좌우 수부신을 위해 각각 한 그릇씩 올리는데, 술은 3잔만 올린다. 이유는 서낭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에게만 올리고, 좌우의 수부신에게는 올리지 않는다. 이유는 서낭님을 모시는 수부신이 술을 마시면 기강이 흐트러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라 하였다.
임원리에서는 큰서낭에서만 고사를 올리고, 정씨서낭과 고씨서낭에는 비록 금줄을 걸었지만 여기에 좌정한 신을 위한 예를 큰 서낭에 합사하여 고사를 지냈으므로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서낭고사를 마친 후 참여한 제관과 종사자들은 도가댁에 모여 준비한 제주를 나누어 마시며 결산을 하고, 수고비를 나누어 드렸다.
[현황]
임원리 서낭고사와 풍어제를 지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진행은 마을 간부와 노인회 간부들의 지도를 통해 전승 교육이 이루어진다. 현재 임원리 서낭고사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잘 보존, 유지되고 있다.
임원리에서는 3년 마다 1박 2일간 마을 대표가 주관하여 서낭굿을 하였다. 마을의 평안과 풍농·풍어를 기원하고, 주민들이 하나됨을 다지기 위해 설행하였다. 예전에는 큰서낭당에서 마을 대표들이 주관하여 서낭굿을 하였으나, 지금은 어촌계에서 주관하여 큰서낭당에 모셔진 신령을 바닷가에 마련한 굿당에 좌정시킨 후 굿을 한다. 이에 일부에서 ‘풍어제·별신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재정 악화와 무용론 등의 제기로 인해 중단되었다. 굿이 중단된 것은 경제적인 이유에서인데, 당시 어민들이 물고기가 안 잡혀서 생존을 위해 광산으로 가는 사람도 다수 있어 마을 주민 중 거의 3분의 2정도가 빠져나갔다. 이에 10년 정도 중단되었다가 어업이 활성화되면서 다시 굿을 하기로 하여 어촌계 주관으로 3년마다 어판장에 굿당을 마련하여 굿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임원리 서낭당은 임원리 전체를 관장하는 신앙 공간으로 하위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큰서낭당 역할을 하며, 서낭당 앞에 세워진 짐대는 임원리가 지닌 지리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