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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021
한자 先史
영어의미역 Prehisto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선사/선사
집필자 신종환

[정의]

구석기시대로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고령 지역의 역사.

[개설]

선사시대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은 시기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구석기시대의 문화적 특징은 수렵과 어로·채집을 생업으로 하는 채집 경제 단계로서 타제 석기를 도구로 사용하였으며, 토기와 마제 석기의 단계를 모르던 시대를 말한다. 고령 지역은 동부에 해당하는 낙동강 강변에서 구석기시대의 석기가 채집되고 있어 구석기시대로부터 인류의 활동 무대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고령 지역에서는 아직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약 1만 년 전에 시작하여 3천 년 전까지 존속한 신석기시대의 문화적 특징은 토기와 마제 석기의 사용, 직물의 생산과 정주 생활을 지표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초보적인 농경이 시작되어 단순한 획득 경제에서 생산 경제로의 이행이 이루어지며 취락을 형성하여 생활하게 된다. 고령과 인접한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을 감안해 보면 고령 지역에서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인 농업 사회로 전환됨에 따라 사회적 분화가 가속화되고, 그 결과 비로소 초기 정치 체제의 맹아가 출현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고인돌이나 입석과 같은 큰 돌을 이용한 무덤이나 기념물이 만들어지게 되며, 마제석검과 석촉 등 다양한 마제 석기들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또 신앙이나 제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암각화도 이 시기에 많이 만들어졌는데, 고령 지역에는 이와 같은 청동기시대의 각종 유적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구석기시대]

고고학적으로 보면 고령 지역에서는 홍적세시기에 해당하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된다. 고령군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 연안에 형성된 다산면개진면의 낮고 평평한 침식 구릉 지대에서는 지금부터 약 12만 년~3만 년 전인 중기 구석기시대의 여러면석기[多角面圓球]와 찍개 등이 채집된다. 이 가운데 여러면석기는 우리나라 중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석기의 하나로서 표면을 부분적으로 떼 내어 둥근 공처럼 만든 것인데, 손아귀에 쥐고 내리치는 돌망치나 끈을 묶어 빙빙 돌리며 던져 짐승을 잡는 사냥돌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상곡리 구석기 유적, 구곡리 구석기 유적, 반운리 구석기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신석기시대]

고령 지역에서는 지질학적으로 충적세 시기에 해당하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낙동강과 그에 유입되는 작은 지류들이 발달한 지형적인 조건과, 대구를 비롯한 김천·합천·거창 등의 신석기시대의 유적들을 참고할 때 고령 지역에도 곳곳에 신석기시대의 유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고, 특히 벼농사가 보편적으로 발달하는 청동기시대가 되면 우리나라의 어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령 지역에서도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생활 지역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곳곳에서 유적이 확인된다. 고령 지역의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고인돌[지석묘]이나 선돌[입석]처럼 드러나 보이는 경우와 토기나 석기의 파편이 채집되는 생활 유적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각종 공사를 시행하면서 부분적으로 발굴 조사되기도 했다. 이밖에 제사나 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되는 바위그림[암각화] 유적도 있다. 이와 같은 유적과 유물을 통해 고령 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1. 고인돌과 입석

청동기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는 고인돌의 분포를 살펴보면 운수면 순평리·봉평리·운산리를 비롯하여 쌍림면 산주리·하거리·매촌리·월막리, 대가야읍 내상리·저전리·본관리, 개진면 양전리·직리·개포리, 성산면 어곡리, 우곡면 사촌리 등 거의 전역에 걸쳐 있다. 고인돌 상석(上石)의 규모는 길이 120~180㎝ 정도의 비교적 작은 것도 있지만 대체로 200~270㎝ 정도가 가장 많다. 그리고 너비는 90~180㎝, 높이 50~130㎝ 정도이다. 따라서 대형 고인돌은 확인되지 않으며, 현재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길이 420㎝가 넘는 대가야읍 저전리쌍림면 산주리의 고인돌이라 할 수 있다. 고인돌의 형식은 굄돌[支石]이 드러나 보이는 경우도 간혹 있으나 대부분은 굄돌이 보이지 않거나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고인돌과 더불어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문화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선돌은 주로 평야나 계곡의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고인돌 부근에 있는 경우도 있다. 선돌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남근(男根)을 의미한다거나 지역의 경계나 신성한 곳을 나타내는 표석(標石)이라 하기도 한다. 운수면 봉평리신간리의 선돌은 가까운 곳에 있는 봉평리 순평 고인돌군·운산리 고인돌군과 함께 운수면 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상을 보여 주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2. 생활유적

고령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되는 유적은 여러 곳이 있는데, 유물의 내용에 따라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토기의 입술에 손톱무늬 또는 간단한 무늬가 새겨진 무문토기와 붉은간토기 조각, 그리고 석기가 출토되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이다. 운수면 운수평야 일대의 유적과 개진면 신안리 유적을 들 수 있으며, 이들 유적에서는 물고기 잡이에 사용한 토제어망추를 비롯하여 석기 파편과 함께 석기를 제작할 때 생긴 많은 돌날들이 출토된다. 특히 운수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대가천을 따라 6㎞에 걸쳐 길게 펼쳐진 운수평야는 벼농사를 짓기에 좋은 환경 조건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배후 산지인 의봉산에서 손쉽게 채취할 수 있는 질 좋은 석기 재료를 이용하여 대량의 석기 생산도 가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최근 고속도로 공사 구간에서 발굴된 성산면 대흥리 유적대가야읍 쾌빈리 통합 학교 이전 부지의 유적들에서도 집터와 함께 여러 가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는 대가야읍 본관리 앞의 평야에 독립 구릉으로 있는 옥산마을 유적과, 역시 평야에 독립적으로 솟아 개진면 양전리반운리·신안리에 걸쳐 있는 독산 유적이 있다. 그리고 양전리에서 대가야읍으로 통하는 금산재 주변의 능선을 비롯하여 그 산꼭대기인 망산산성에 이르는 비교적 높은 산지에까지도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또 안림천 유역인 쌍림면 백산리산당리의 마을 뒤 구릉에서도 같은 시기의 유물들이 채집된다.

이 유적들에서는 높고 길쭉한 굽이 특징인 두형 토기(豆形土器)와 검은간토기의 파편, 소의 혓바닥처럼 넙적한 형태의 토기손잡이가 출토된다. 또 마치 바나나처럼 생긴 이형 석기와 숫돌, 퇴화된 돌도끼와 화살촉 등도 있다. 이처럼 고령 지역에 있어서 청동기시대 후기의 유적은 주로 구릉상이나 산지에 입지하여 시기적으로 앞선 유적들이 주로 평야에 입지하는 점과 대조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토기의 종류와 모양도 변화되었고, 석기도 적당한 형태의 자연석을 찾아 최소한으로 가공하여 사용함으로써 석기 제작 기술상의 퇴화를 보이고 있다.

3. 암각화

고령의 선사 문화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으로 바위에 그림을 새긴 암각화가 있다. 특히 대가야읍 장기리고령 장기리 암각화[알터 암각화]가 유명한데, 동심원과 가면 모양의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비슷한 것이 쌍림면 안화리 안림천 옆의 바위 면에도 있고, 대가야박물관 앞에 있는 대가야시대 고분의 무덤 뚜껑돌에도 남아 있다. 이와 같은 바위그림들은 태양을 숭배하고 집단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 원시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와 달리 윷판 모양과 별자리 모양의 바위그림이 대가야읍운수면·성산면·쌍림면 등에서 확인된다. 이 가운데 윷판 모양 암각화는 주로 야산의 능선 상에 드러난 바위에 있지만, 별자리 모양의 암각화는 야산의 끝자락과 넓은 들이 만나는 지점이나 골짜기에 노출된 비교적 넓고 평평한 바위 면에 새겨져 있어 입지 상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윷판 모양 암각화는 모두 29개의 작은 구멍을 바위 면에 새겨 하나의 둥근 윷판 모양을 이루게 한 것인데 요즘의 윷판과 모양이 같다. 이와 달리 별자리 모양 암각화는 수백 개의 크고 작은 구멍을 파고 일부는 구멍끼리 홈을 내어 서로 연결시킨 형태로서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이 밖에도 쌍림면 하거리에는 마치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처럼 길쭉한 홈이 여러 개 새겨진 암각화도 있다. 이처럼 고령 지역의 암각화는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분포 밀도가 높아 ‘암각화의 고장 고령’이라 부를 만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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