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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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서 논에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동요. 「농창농창」은 농군들이 논에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벼농사 노래 중의 하나이다. 이 노래는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정 민요이다. 시누이와 올케가 강변에 일을 하러 갔다. 그런데 상류에서 비가 많이 내려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 두 여자가 물에 떠내려가게 되었다. 그때 저만치서 오빠가 배를 타고 구하러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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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법리에서 독점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독점재와 오성」은 독점재가 장군이 태어날 지세인 것을 알고 이곳을 빼앗기 위해 이여송이 선조에게 바둑 내기를 청하였는데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1556~1618]의 도움으로 내기에서 이겨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를 지켰다는 지략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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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좌학리에서 성주에게 가정의 번영을 축원하며 부르는 의식요. 「성주풀이 노래」는 성주신(城主神)에게 가정의 번영을 축원하는 무가(巫歌)인 세시(歳時) 의식요 중의 하나이다. 이를 「성조풀이」라고도 한다. 본디 무당이 성주받이를 할 때에 복을 빌려고 부르는 노래였다. 우리 민속에서 집터를 맡은 신령인 성조왕신과 그의 아내인 성조 부인은 집을 짓는 일부터 일문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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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논에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동요. 「원가」는 농군들이 논에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벼농사 노래 중의 하나로서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정 민요이다. 어느 날 시누이와 올케가 강변에 일을 하러 갔다. 그런데 상류에서 비가 많이 내려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 두 여자가 물에 떠내려가게 되었다. 그때 저만치서 오빠가 배를 타고 구하러 오는 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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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에서 이여송과 이실고개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여송과 이실고개」는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이 큰 인물이 태어나는 것을 꺼려서 지맥을 찾아 맥을 끊었으나 결국 실패했다는 지명유래담이자 풍수담이다. 다산면 노곡리는 낙동강변의 넓고 기름진 땅에 논이 많다고 하여 일찍이 ‘논실’, 혹은 ‘전곡(田谷)’이라 불렸고, 개척 당시에는 갈대숲이 우거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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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이두훈(李斗勳)이 고령 지역의 강계(疆界)와 연혁(沿革) 등을 엮은 책. 조선시대 편찬된 관찬 읍지로 가장 오래된 것은 임진왜란 이전에 편찬된 『함주지(咸州誌)』다. 이후 숙종 대까지 경상도의 진주, 안동, 경주, 상주 등의 읍지가 나왔다. 영조와 정조 연간에는 32개 지역의 읍지를 묶은 『경상도읍지(慶尚道邑誌)』가 나왔으며, 1832년(순조 32)에 나온 『경상도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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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는 기념 공원. 개경포 또는 개포를 한때는 개산포라고 불렀다. 세계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강화도에서 선편으로 서해와 남해, 낙동강을 거쳐 개포나루에 내려 영남 일대의 승려와 신도들이 고령읍[현 대가야읍]을 거쳐 해인사(海印寺)까지 운반한 유래가 있어 대장경의 ‘경(經)’자를 추가하여 ‘개경포’ 또는 ‘장경나루’라 부르다가, 일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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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고령 개산포에서 김면이 이끈 의병이 왜적을 물리친 전투. 개산포대첩은 의병장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노고산성(老姑山城)과 무계리산성(茂溪里山城)에 의병을 집결시켜 왜군의 낙동강 운행에 일대 타격을 가한 전투이다. 개산포는 김면이 살았던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낙동강 쪽으로 불과 6~7㎞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면서 현풍의 도동 쪽에서 고령으로 바로 건너오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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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후부터 7세기 중엽까지 고령 지역의 역사.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 기록된 3세기 경상도 지역은 변한·진한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각각 12개의 소국(小國)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그보다 많은 소국들이 등장하며, 이들은 주변 소국들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다. 한국 고대 사회는 이러한 소국들이 주변 소국들을 병합하면서 영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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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 전적. 고령향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과 서적은 향교의 인적 구성과 교육 및 재정운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고령향교에는 현재 필사본 16건, 책판 1종 266장, 그리고 서적이 28종이 남아 있다. 고문서와 필사본으로는 『유안(儒案)』, 『향안(鄕案)』, 『고령향약안(高靈鄕約案)』, 『고령향약임원록(高靈鄕約任員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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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령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려시대까지 고령군에는 상설 지방관이 파견되어 있지 않았다. 940년(태조 23) 고령 지역에는 두 가지의 행정적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읍격(邑格)이 신라 경덕왕의 개명 이래 고령군으로 여전히 유지되었지만,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경산부의 속군으로 편제되어 위상이 하락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읍치를 두고 우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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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원(高天原)은 일본 역사 서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일본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에서 나왔다. 일본 건국 신들의 고향이 바로 고천원인 것이다. 고천원이 어디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이설(異說)이 분분한 가운데 한·일 역사학계에서는 고천원이 후기 가야의 수도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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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시민들의 보건·휴양·놀이 등을 위하여 설치한 시설이나 공공녹지. 고령군에는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은 없지만 여러 곳에 대가야 관련 기념관 및 유적지 등을 비롯하여 많은 공원이 분포하고 있으며 별도로 조성된 공원으로는 개경포기념공원, 주산산림욕장, 중화유원지, 생활체육공원, 고천원공원 등이 있다. 1. 개경포기념공원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낙동강을 따라 경상도 내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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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정 기간의 평균 기상 상태. 고령군은 한반도의 남부 내륙에 위치하며,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는 경상분지 내에 자리하고 있다. 고령군은 여름철 고온의 혹서기와 겨울철 저온의 혹한기가 있어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나타낸다. 그리고 몬순(monsoon)의 영향을 받아 겨울철에는 시베리아 대륙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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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이자 의병장.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지해(志海), 호는 송암(松菴). 아버지는 경원부사를 지낸 김세문(金世文)이다. 김면(金沔)[1541~1593]은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산야에 은거하며 조용히 소일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일가 및 가동(家僮) 등 700여 명과 분연히 궐기하였다. 이때 조종도(趙宗道)·곽준(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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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1942년생]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7월 개실마을을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개실마을에서는 마을 행사로 종손을 비롯한 주민들이 출타 중이어서 마을을 안내해 줄 사람이 없었던 같다. 이때 이병국 씨가 마중을 나와 마을 안내를 자청하였다. 처음 수인사를 나눌 때 이병국 씨는 호방한 호인형의 얼굴에 걸걸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나는 개실마을의 김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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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나룻배가 닿고 떠나는 일정한 곳. 나루는 교통로와 연결되어 발달한다. 육지가 연속된 곳에서는 도로가 발달하지만 큰 강이 흘러서 육로를 차단하는 곳에서는 육로와 육로를 연결하는 배를 정박시키는 시설이 갖추어진 장소가 필요한데 이것이 나루터이다. 대체로 유량이 풍부하여 선박이 운항할 수 있는 하천에는 배를 이용한 이동이나 물자의 수송이 더욱 효과적이다. 따라서 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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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계몽 운동 단체였던 대한자강회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 지회. 대한자강회는 교육을 통해 국민을 계몽시킴으로써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던 구한말의 계몽 운동 단체이다. 국민 교육을 강화하고 국력을 배양함으로써 독립의 기초를 다진다는 취지 아래 1906년 윤효정(尹孝定)·장지연(張志淵)·나수연(羅壽淵)·김상범(金相範)·임병항(林炳恒) 등이 1905년 5월 이준(李儁)이 조직한 헌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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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넓은 길. 조선시대 고령 지역에는 서울로 가는 제5대로의 지선과 본선에 해당하는 안림역[현 쌍림면 소재]과 무계역[현 성산면 소재]이 있었다. 안림역은 한성~유곡~고성~거제로 이어지는 5대로의 지선으로, 성주의 안언역에서 분기하여 나와 안림역에서 다시 합천의 금양역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이다. 낙동강 서변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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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가 있던 터. 도요지(陶窯址)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 유적으로, 우리말로는 가마터라고 한다. 토기 및 도자기를 원활하게 생산하기 위해서는 땔감이 되는 산림이 울창하고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제품을 옮기기 편리한 운송로, 양질의 점토와 도토(陶土)가 생산되어야 하는 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고령 지역은 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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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 있던 가야시대~조선시대 나루터. 도진나루터가 위치한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는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 직후 전라도 지방 나씨(羅氏)가 이주하여 개척하였다 전한다. 당시 사부리 도요지(沙鳧里陶窯址)와 기산리 도요지(箕山里陶窯址)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타지방으로 수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진나루로 모여들자 마을 주민들이 많은 이득을 얻어 마을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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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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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태양이 동지점을 통과하는 때인 12월 22일경에 지내는 절기. 동지(冬至)는 24절기의 하나로서 1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를 ‘아세(亞歲)’, ‘작은설’이라고도 한다.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태양의 황경이 270°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고 한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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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고령 지역에서 전개된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의 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교조신원(敎祖伸寃)과 외세 배척을 목적으로 전개한 농민 운동이다. 1860년 경주에서 시작한 경상도의 동학은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는데, 1874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민씨 정권이 들어서면서 삼남 지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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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고령 둔덕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0) 8월 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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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 고령 문학은 고령에서 태어난 작가가 고령의 언어로 고령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제재로 생산한 문학 작품을 말한다. 고령 출신은 아니지만 고령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이나 작가 역시 광의의 고령 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제외하였다. 1. 조선시대 이전의 고령 문학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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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성보(成甫), 호는 기은(耆隱). 증조할아버지는 이조판서 박장원(朴長遠)이고, 할아버지는 세마(洗馬) 박선(朴銑)이며, 아버지는 영은군(靈恩君) 박항한(朴恒漢)이다. 어머니는 공조참판 이세필(李世弼)의 딸이다. 박문수(朴文秀)[1691~1756]는 1723년(경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로 뽑혔고, 이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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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부리에 있던 조선시대 나루터. 박석진나루터가 위치한 고령군 개진면 부리(釜里)는 본래 현풍군 진촌면 지역으로서 옹기 가마가 있었으므로 ‘가암’ 또는 ‘부동’이라 하였다. 마을이 산에 둘러싸인 가마솥 모양이어서 마을 안에 샘을 파면 가마솥에 구멍이 나서 복이 나간다고 샘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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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반룡사는 802년(애장왕 3)에 해인사를 건립할 당시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중창하였고, 공민왕 때 혜근(恵勤)이 중건하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원나라 세조(世祖)가 이 절에 내린 방문(榜文)이 실려 있어 주목된다. 이 방문에는 일본 정벌을 위해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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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시대 고령 반룡사에서 승려 요일이 일으킨 화엄종 결사 운동. 고려 무신정권시대에 오면 불교계에서 결사 운동이 일어났다. 결사 운동은 불교가 당시 사회에서 이념적·윤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한계를 자각하고 반성하여 이를 개혁하려는 사회 변혁 운동으로 일어났다. 결사 운동은 중앙 집중적인 교단 체제에 대해 독자적인 지방 불교의 형태를 지향하였다. 주도 세력 및 구성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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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구분에 따른 전통을 중하게 여긴 반촌에서 여인들은 목소리를 낮추기는 했지만 반가의 전통과 살림살이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반촌의 여인들은 남성 위주의 의례와 일상이 반복되는 반촌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의례의 수행과 일상의 지속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존재였다. 예부터 유교적 전통에 따른 많은 제약 속에서 반촌의 삶을 지탱하는 반촌 여인들의 일상은 가급적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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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에 있던 조선시대 나루터.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 마을은 조선 인조 때 개척되었는데, 낙동강 범람으로 인해 늪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 ‘늪마을’이라 하다가 120여 년 전 이씨라는 선비가 들어와 마을 앞 큰 호수를 보고 ‘호촌’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한 낙동강이 범람할 때 이곳 흙을 많이 훑어갔다고 ‘훑촌’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906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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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산당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구멍 유적. 바위구멍 유적은 바위그림과 함께 소위 ‘성혈(性穴)’이라 불리는 자연 암면에 구멍을 파놓은 유적을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분포하고 있으며, 컵 마크(Cup Mark), 알구멍 등으로 불리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근래에는 그 성격에 대해 별자리를 형상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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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철휴(申哲休)[1898~1980]는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해영(海影)이며, 우동(愚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신진구(申鎭求)이다. 신철휴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한학과 글씨에 능하였고, 효도와 애국심이 강하였다. 20세인 1918년 5월, 민족의 비통한 참상을 개탄하여 만주로 건너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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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어휘, 음운, 문법적 체계와 특징. 언어는 경상북도 서남단에 위치하여 성주군, 달성군,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며, 소백산맥과 낙동강으로 둘러싸인 고령에서 사용하는 특이한 단어나 언어적 현상을 뜻한다. 이를 방언, 사투리, 지역 방언, 지역어 등이라고 한다. 고령의 지역 방언은 경상도 방언의 특성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어휘와 음운 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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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는 오곡(午谷), 신곡(新谷), 뱃가라 부르는 3개의 자연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선조 때 조일도 형제가 함안 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다 오곡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꿈에 심산유곡에서 학이 날아와 앉는 것을 보고 정착하게 되었다 한다. 이때 이 마을에 오전에만 햇빛이 들었기 때문에 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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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대원(大源), 호는 죽유(竹牖)·죽계(竹溪)·백암노인(白巖老人)·율계(栗溪) 등이다. 고려 중기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오학린(吳學麟)[1009~?]을 시조로 삼는다. 10대조 오세문(吳世文)은 동각학사(東閣學士)를 지냈는데, 고려 무신란 직후 해좌칠현(海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활동한 오세재(吳世才)의 형이다. 증조할아버지 삼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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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유두란 말은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으로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란 말의 약어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를 ‘물맞이’라고도 한다. 유두날에는 맑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을 하고, 특히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것은 동쪽은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라고 믿는 데서 기인한다.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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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53년 경상북도 고령군을 비롯한 한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선제공격에 의해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까지 3년 1개월 동안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고 셀 수 없을 정도의 물적 기반이 파괴된 전쟁이다. 전쟁은 민족 간 전쟁의 성격으로 진행되었으나, 이후 유엔 연합군과 중국군이 참전하였다는 점에서 국제전으로서의 성격도 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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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원(慶原). 초명(初名)은 득옥(得玉), 자는 미수(眉叟), 호는 와도헌(臥陶軒). 무신란 이전 고려 전기의 대표적 문벌 귀족인 경원이씨 가문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이오(李䫨)이고, 할아버지는 이언림(李彦林)이다. 부모를 일찍 여의어 숙부인 화엄승통(華嚴僧統) 요일(寥一)이 양육하였다 한다. 아들로는 이정(李程),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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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김면이 왜선 두 척을 포획한 전투. 2차 무계전투에 대한 기록은 『문수지』와 『용사일기(龍蛇日記)』에만 보이고 『모계일기(茅谿日記)』나 『고대일록(孤臺日錄)』 등의 다른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2차 무계전투의 노획 물품은 개산포대첩의 노획품과 함께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게 보내졌기 때문에 개산포대첩에서 획득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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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손인갑과 정인홍의 부대가 왜군을 물리친 전투.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후 동래로부터 좌·중·우의 삼로(三路)로 갈라 한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이때 우로의 왜군은 동래-김해-무계-지례-금산-추풍령-영동-청주-경기도를 따라 진군하였고, 경상북도를 장악한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는 개령현에 주둔하고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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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맞서 고령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부산포를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왜군의 주력 부대는 동래-기장-좌수영-울산-경주-영천-의흥-군위-문경의 좌로(左路)와 동래-양산-밀양-청도-경산-대구-안동-선산-상주의 중로(中路), 동래-김해-창원-영산-창녕-현풍-성주-지례-금산-추풍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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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령 지역에서 5일마다 열리던 사설 시장. 장시(場市)는 조선시대 각 지방에서 5일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던 시장이다. 성종 초 전라도에서 처음 개설되었다가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경상도와 충청도 등 삼남 지방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장시의 개설 일자는 한 달에 2회, 또는 3회였으나 후기로 내려오면서 6회로 증가하여 5일장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장시는 지역에 따라 일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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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때 고령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에 맞서 싸운 전투. 1597년(선조 30) 왜군이 조선을 재침략한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8월 초순 왜군이 고령 방면으로 침입하자 정기룡(鄭起龍) 장군이 고령에서 왜군과 맞서 7월 15일 도진리전투, 8월 7~8일 둔덕대첩, 8월 16일 용담천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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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는 조선부보상단의 후신(後身)으로 알려진 상무사 조직이 현재까지 남아 옛 상인 단체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1866년 조직되어 지역의 시장을 장악했던 고령상무사 좌사계와 1899년 조직되어 활동해 오던 고령상무사 우사상계가 바로 그들이다. 고령상무사 좌사계는 등짐을 지고 다니던 부상(負商)이, 고령상무사 우사상계는 보따리를 매고 다니던 보상(褓商)이 그 주요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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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고령 지역의 역사. 조선시대는 1392년 조선 건국에서 1910년 한일합방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의 역사를 말한다. 여기에서는 조선시대 지방 제도와 고령, 고령의 향촌 자치, 고령의 경제와 산업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던 조선의 지방 행정 제도는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 전국을 8도로 나누는 등 전면적인 개편이 이루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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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고령 유림계가 참여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한 운동.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郭鍾錫)의 문인 윤충하(尹忠夏)는 서울의 만세 시위운동 상황과 파리강화회의 등 국내외 정세를 설명하고,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을 작성, 곽종석이 대표로 나서 줄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곽종석은 김창숙(金昌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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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 상용마을 입구에 있는 자연 바위. 대가야읍에서 국도 26호선을 따라 쌍림면으로 가다 보면 우측으로 반룡사로 진입하는 도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월막리를 지나면 반룡사 방향과 용리 상용마을로 향하는 갈림길이 있다. 갈림길 좌측으로 상용마을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상용마을 입구에 큰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의 좌측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