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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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년(충렬왕 즉위년) 원나라에서 고령현의 반룡사에 게시한 방문. 「반룡사 방문(盤龍寺榜文)」은 여원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원(元) 황제 세조가 자국의 군사들이 의안(義安)의 단성촌(丹城村)에서 마소를 놓아기르면서 인근 반룡사 등에 피해를 줄 것을 경계하고자 반룡사에 게시한 방문이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29권 고령현 불우 반룡사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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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에서 단발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서자가 상투 잘리고 한양 가 성공한 이야기」는 고창오씨 문중에서 쳐다보지도 않던 서자가 강제로 머리를 잘리고 분통하여 한양에 가서 출세하였다는 성공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25일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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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알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알터 전설」은 김알지의 탄생담이자 가야의 건국담이며, 알터의 유래를 담고 있는 지명유래담이다. 이를 「장씨 박골 전설」이라고도 한다. 알터는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532번지[아래알터길 15-5]에 위치하고 있다. 알터마을은 개진면 양전리에 있으며, 이곳 면사무소의 책자에 의하면 양전에서 조그마한 재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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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이마에 뿔난 사람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액유각인」은 이마에 뿔이 난 미오사마국(弥烏邪馬国) 왕자가 소와 바꾼 흰 돌이 변신한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서 일본에까지 건너갔다고 하는 이주도래담(移駐渡来談)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11월 9일 경상북도 고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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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송암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일본 장군 죽인 송암정」은 송암 김덕룡이 일본인 장군을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고 하는 지명유래담이다. 송암정이라 부르는 우물은 개진면 양전1리에 있다. 둘레가 성인 12명이 손을 마주 잡고 두르는 정도이며, 깊이는 160m 정도 된다고 한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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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생산, 유통되는 청정돼지고기. 가야그린포크는 경상북도 고령군, 경상북도 성주군, 경상남도 합천군의 청정 돼지로 생산된 제품이다. 위생적이며 무공해 제품으로 수출 규격 돼지만을 원료로 하여 생산된다. 고령 지역에서는 정부가 지정한 돼지고기 품질 개선 단지의 20여 호 농가가 과학적인 사양 관리로 돼지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돼지는 최신 위생시설을 갖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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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은 고대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대가야의 수도였다. 철의 왕국 대가야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강력한 지배권을 확립했으며 가야 도공의 숨결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바탕이 됐다. 21세기 고령군은 이런 문화유산을 앞세워 ‘새로운 낙동강시대와 대가야르네상스를 선도하는 고령’으로 거듭 나는 한편, 인근 성주군 등 고대 가야문화권 지역 13개 시·군[대구광역시 달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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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리에는 모두 네 곳의 마을길이 있다. 도진1길에서 도진2길로 둘러보는 1코스인 웃마길과 도진3길과 도진4길을 둘러보는 2코스인 아랫마길을 따라 강변에 자리한 양반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문연서원 유허지 는 도진리로 들어오는 지방도 67호선의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모두 5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이 ‘죽연박선생 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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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와 강정리 사이에 형성된 평야. 강정들은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 마을 주변에 있는 평야로서, 강정마을의 지명을 가지고 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정마을은 조선 중기 때 한 선비가 개척한 마을로, 마을을 개척한 수년 후 마을 뒷산인 봉화산[108m] 기슭 낙동강 변에 정각을 짓고,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즉, 낙동강 강변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강정(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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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림면 귀원교를 지나 합천 방면으로 난 옛날의 국도 33호선 모퉁이를 돌아서면 오른쪽으로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개실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을 입구에 들어와 도로 오른쪽 민가 몇 채가 있는 곳이 1651년(효종 2) 김종직 선생의 후손이 처음 정착한 무근터이다. 또, 도로 왼쪽 편의 하천 변에는 세 그루의 왕버드나무가 반갑게 맞이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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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던 나루터. 개포리는 본래 고령군 구곡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마을 앞 낙동강 강변에 개포나루가 있어 개포리라 하였다. 원래는 개산포구마을로 불렸는데, 고려 때 개경포(開經浦)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됨에 따라 시례동과 한제동을 병합하여 나루의 이름을 따 ‘경’자를 빼고 개포동이라 하였다. 이후 개포동은 개진면에 편입되었으며,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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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에 있던 가야시대 나루터. 객기나루터가 위치한 곳은 본래 현풍군 왕지면(旺旨面) 지역으로서 소재지는 왕지면 새터 471번지이다. 1896년(고종 33년) 지방 관제 개편에 의하여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터, 새터와 하미면의 사등동을 병합하여 객기동이라 해서 우곡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洞)’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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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박씨 소윤공파 27세손인 박재흔[1924년생] 씨는 도진마을 최고령자 중의 한 사람이다. 박재흔 씨는 일제 강점기인 1923년 도진마을에서 3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학교 문턱에조차 가 보지 못했다. 땅 한 뙤기 없는 상황에서 박재흔 씨는 집안의 입 하나를 덜기 위해 7세 때부터 남의 집 꼴머슴부터 시작해 과수원 노동, 건축 미장공을 차례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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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고령 지역 역사. 통일신라시대 고령군은 야로현과 신복현을 영현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나 후삼국 시기 고령 지역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뚜렷한 호족이 없는 반면 인근의 성주 지역에서는 이총언(李悤言) 등이 고려 태조 왕건에 귀부하여 후삼국 통일에 기여하였다. 그 결과 성주 지역은 940년(태조 23) 주부군현의 명호 개정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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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에 있는 대가야 시대의 벽화고분. 고령 고아리 벽화고분은 가야 유일의 벽화고분으로, 구조와 축조 방식은 백제 중앙의 묘제를 답습한 대형 무덤이다. 피장자(被葬者)는 고분의 규모와 정밀성 및 벽화 등으로 보아 대가야 말기의 최고위 부부[왕과 왕비]로 추정된다. 고분의 제반 내용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고분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으므로 국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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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던 고적 보존 단체. 고령고적보존회는 조선총독부가 고령 지산동 고분군(高靈池山洞古墳群)을 발굴하여 출토된 유물을 보존한다는 명목 아래 만든 어용 단체이다. 고대 시기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두고 한반도 남부 지방 일대를 식민지로 지배하였다는 설을 입증하고 이를 선전하기 위하여 1938년 설립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일본인 고고학자와 관계 전문가를 동원하여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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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저전리 내곡미술촌에서 매년 개최되는 행위 예술제. 고령국제행위예술제는 농어촌 활성화와 문화예술 창달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2004년부터 개최되었으며, 문화 소외 지역에 문화를 전파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작가들에게는 문예 진흥을 위한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농어촌에는 지역 경제 활성에 도움을 주고 있다. 내곡미술촌의 촌장 윤명국의 부단한 노력과 행위 예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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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고령군은 경상북도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경상남도와 접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시와 맞닿아 있다. 서쪽에 있는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大伽川)과 합천군 야로면에서 내려온 안림천의 물길이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만들며 흘러내려 대가야읍에서 합쳐져 회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처럼 고령군은 서쪽의 높은 산과 동쪽의 낙동강으로 보호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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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1908년 전개된 국채 보상 운동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 의연금 모집 기관. 국채 보상 운동은 전 국민이 합심하여 일본에 대한 국채 1,300만 원을 갚아 경제적으로 독립하자는 국권 회복 운동으로 1907년 2월에 대구에서 공식화되었다. 1907년 1월 부산상무소[회두: 서상돈]에서 처음 논의되어 1907년 1월 29일 대구관문사 사장 김광제, 부사장 서상돈, 대동광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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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실마을을 비롯해 고령군 쌍림면 일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딸기 생산 단지로 유명하다. 그 때문에 대구를 비롯한 경상북도 지역의 대도시에서는 ‘고령딸기’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판매되고 있는 딸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실마을을 비롯한 쌍림 지역에서 생산되는 딸기는 가야산에서 발원한 안림천 변의 맑은 물과 비옥한 토양에서 친환경적으로 재배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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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 있는 정보화 마을. 고령안림딸기마을은 지형적으로 경상북도의 최남서단에 위치하여 대구광역시와 접하고, 88고속도로 고령인터체인지와 바로 접하는 사통오달하는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가야산과 낙동강 사이의 환경이 쾌적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전원 도시, 근교 농업, 중소 규모의 공업지로 투자 가치가 충분한 매력이 있어 각광받는 곳이다. 고령군 쌍림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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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직리에 있는 도자기 제조업체. 가야 토기로 유명했던 대가야의 도읍지이자 도자기의 원료인 고령토가 생산되는 고령 최초의 무형문화재 토인(土人) 백영규 선생이 운영하는 도자기 제조업체이다. 고령백자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순백 색깔의 백자에 비해 독특한 전통 유약 처리로 다소 검푸른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또 주병, 항아리 위주의 다른 백자와는 달리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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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6일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조직된 치안 유지 단체. 해방에 즈음하여 안재홍 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한 여운형이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중요 물자의 소각·파괴 등을 막기 위해 해방 직후 자연 발생적으로 조직된 지방 조직을 기반으로 건국준비위원회 직속으로 치안대·학도대·청년대·노동자의 직장 자위대 등을 조직하였다. 여운형은 당시 YMCA 체육부 간사 및 유도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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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고아리 고분군은 대가야의 주 고분군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약 500m 떨어진 남쪽 야산 산등성이 끝에 위치한다. 앞쪽은 고령의 주천인 대가천과 안림천[조선시대 소가천]이 합류하여 회천이 되는 합류 지점으로, 대가야 말기 왕도의 고분군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떨어져 두 하천의 합류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최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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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묘제 중 하나.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선사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이다. 고인돌이라는 명칭은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일본에서는 주로 지석묘(支石墓)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석붕(石棚)·대석개묘(大石蓋墓), 유럽에서는 대체로 거석기념물 또는 돌멘이라고 부른다. 세계적으로 선돌[立石]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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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공원. 일본 츠쿠바대학의 명예 교수 마부치가즈오[馬淵和夫]는 일본 왕실의 고향이라고 전해지는 고천원(高天原)이 경상북도 고령 땅이라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작성한 바 있는데, 이를 알리기 위해 고령군에서 대가야읍 지산리 야산 쪽[옛 가야대학교 내]에 고천원공원을 조성하였다. 1999년 6월 28일 고천원의 옛터요 연고지라는 의미에서 ‘고천원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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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원(高天原)은 일본 역사 서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일본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에서 나왔다. 일본 건국 신들의 고향이 바로 고천원인 것이다. 고천원이 어디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이설(異說)이 분분한 가운데 한·일 역사학계에서는 고천원이 후기 가야의 수도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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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시민들의 보건·휴양·놀이 등을 위하여 설치한 시설이나 공공녹지. 고령군에는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은 없지만 여러 곳에 대가야 관련 기념관 및 유적지 등을 비롯하여 많은 공원이 분포하고 있으며 별도로 조성된 공원으로는 개경포기념공원, 주산산림욕장, 중화유원지, 생활체육공원, 고천원공원 등이 있다. 1. 개경포기념공원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낙동강을 따라 경상도 내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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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곽태진(郭泰珍)[1917~2006]의 호는 해파이며,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답곡리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 졸업하였다. 묘소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3묘역에 있다. 곽태진은 1942년 3월 호의단(護義團)의 성일영(成一永), 도종표(都鍾杓) 등 동지 100여 명을 규합하여 현풍신사(玄風神社)를 불살라 민족혼을 일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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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매촌리에 있는 대한천지교 소속의 사찰. 구국사는 쌍림면사무소에서 국도 33호선을 타고 귀원교를 지나자마자 매촌리 방향으로 우회전해서 대창양로원 방향으로 가면 대창양로원 오른쪽에 있다. 뒤로는 대보산(大宝山)을 등지고 앞으로는 안림천이 흐르는 서향(西向)의 사찰이다. 재일동포 오기문은 사찰 이름처럼 나라를 구한다는 의미에서 1974년에 구국사를 창건하였다.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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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말로 전해 내려오는 민간 문화의 총체. 구비전승(口碑傳承)은 비석에 새긴 것처럼 유형화(類型化)되어 오래도록 전하여 온 말이라는 뜻이다. 언어로 전승되는 구비전승 가운데는 언어 예술적 성격을 갖는 것과 속신과 욕설 그리고 민간요법처럼 언어 예술로 볼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언어 예술적 성격을 갖는 것이 바로 구비문학이다. 지금까지 구비전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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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급격한 사회 변동의 와중에서 민중의 생활 모습은 거의 기록되지 못한 채 빠르게 소멸되어 가고 있다. 이는 고령 지역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삶은 20세기 고령의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고령종합시장 앞에서 담배 가게를 운영하면서 경북유도회 부회장과 성균관전교 등을 역임한 후 2008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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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근대교육은 근대 국가의 성립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된 교육으로 주로 계몽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근대교육은 한국의 근대를 어떻게 시기 구분하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본격적인 개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880년대부터 1945년 해방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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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의 대가야시대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 지금까지 대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관(冠)은 지산동 30호분과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을 비롯해 호암미술관 소장 금관, 일본 오쿠라 컬렉션 금관 등이 알려져 있는데, 이 중 출토지나 부장 상태가 확인된 것은 지산동 30호분과 32호분의 금동관이다. 대가야관의 문양은 초기에는 점으로 마치 선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곡선적인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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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삼도(金三道)[1900~1967]는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에서 태어났다. 김삼도는 1919년 3월 8일 토요일 수업을 마친 학생들과 함께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서문장터에 집결한 뒤 신명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 등의 학생들 및 남산교회·남성정교회 등 교회 측 인사들과 시위대를 형성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다. 이날 시위는 교사 백남채·최상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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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덕(金尙德)[1891~1950]은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저전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영주(令州)이다.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상덕은 1912년 고령공립보통학교와 1915년 경신학교를 졸업한 후 1917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를 거쳐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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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활동한 행정가. 김정근(金正根)[1916~]의 호는 우영(宇瑩)이며,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한 후 문경군수를 지냈다. 1948년에는 이홍직(李洪直)의 후임으로 제2대 고령군수가 되었지만, 5개월 만인 1949년 2월 퇴임하였다. 이후 광업과 상업에 종사하다가, 1958년 5월 2일 시행된 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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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정구 선수. 1930년대에 들어 고령 지역에는 정구의 붐이 크게 일어났다. 그 계기는 당시 일본 정구 대회를 10여 년간 석권해 오던 안동 출신의 조선 최고 선수인 권복인(權福仁)이 고령 영림창(營林廠)으로 부임해 온 것이었다. 권복임은 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고령에서 선수를 발굴하여 지도한 결과, 당시 정구가 성행하던 거창·합천·성주·밀양·진주·마산·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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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나룻배가 닿고 떠나는 일정한 곳. 나루는 교통로와 연결되어 발달한다. 육지가 연속된 곳에서는 도로가 발달하지만 큰 강이 흘러서 육로를 차단하는 곳에서는 육로와 육로를 연결하는 배를 정박시키는 시설이 갖추어진 장소가 필요한데 이것이 나루터이다. 대체로 유량이 풍부하여 선박이 운항할 수 있는 하천에는 배를 이용한 이동이나 물자의 수송이 더욱 효과적이다. 따라서 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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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는 낙동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고령 지역은 낙동강 총 연장의 20%에 해당하는 55㎞의 연안을 끼고 있어 옛날부터 왜관과 함께 낙동강 중류의 중심 고장이 되었다. 대가야읍 고아리 일대의 지명이 ‘배울’·‘뱃골’·‘주곡(舟谷)’인 데서도 알 수 있듯 이곳은 대가야 시절 배를 건조하던 곳이기도 했다. 고령군에는 잘 알려진 것처럼 개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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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형우(南亨祐)[1875~1943]는 본관이 의령(宜寧)으로, 호는 유석(瘐石)이다.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에서 태어났다. 남형우는 1908년 문인인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의 권유로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한 뒤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평의원과 1909년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보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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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서 생산되는 약초. 향부자(香附子)는 여러해살이풀로 바닷가 모래땅이나 냇가의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지만 추위에는 약하다. 분포 지역은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열대 지방이나 아열대 지방이며, 개화 시기는 7~8월이다. 다산향부자는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어가고 줄기의 밑 부분이 굵어지며 뿌리 끝에 둥근 덩이줄기가 생긴다. 가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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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대가야시대의 무덤. 고분은 고대인들의 분묘 유적으로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고령 지역에는 대가야의 도읍지라는 사실에 걸맞게 40여 개소에 가까운 대가야시대 고분군들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도성이 위치했던 대가야읍의 배후에는 사적 제79호로 지정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다. 대가야 고분은 대가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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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읍 연조리는 1600년 전 대가야의 궁성을 비롯해 관아 건물이 즐비한 중심지였다. 이 대가야 사람들은 사후(死後) 세계를 현세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계세(繼世) 사상을 지녔다. 그 때문에 연조리를 중심으로 생활하던 대가야의 왕과 왕족, 귀족 들이 죽으면 뒷산인 주산 능선 위에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덤 속에는 내세(來世)에서 사용할 각종 물품과 자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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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조성 중인 생태 관광 탐방로. 경상북도는 생태 관광 탐방로를 동해안과 낙동강 축 2개로 나눠 21곳 549.8㎞의 거리에 개발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150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할 예정이다. 우선 동해안권이 녹색 관광 휴양 거점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동해안을 따라 125.8㎞의 ‘블루로드’ 10곳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블루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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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규(兪炳圭)[1941년] 씨는 고령 토박이로 어린 시절 공부하느라 고향을 잠깐 동안 떠나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고령에서 살았다. 그래서 고령의 역사와 문화에 해박할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대가야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는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또 지역 유지로서 정치, 사회, 경제 분야에서 대가야 도읍지 고령을 더 큰 외부 세계와 소통시키는 역할도 해 왔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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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조3리와 쾌빈리의 경계를 이루는 국도 33호선 자락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고령 지역에 석유를 공급해 온 상점이 있다. 영창상회 로 알려진 이곳은 전동기나 절삭기와 같은 공구, 시멘트·타일·목재를 비롯해 각종 건자재와 경유·석유 등의 기름을 취급하는 곳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다. 영창상회는 현재 상점을 운영하는 김인태[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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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가 있던 터. 도요지(陶窯址)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 유적으로, 우리말로는 가마터라고 한다. 토기 및 도자기를 원활하게 생산하기 위해서는 땔감이 되는 산림이 울창하고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제품을 옮기기 편리한 운송로, 양질의 점토와 도토(陶土)가 생산되어야 하는 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고령 지역은 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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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도자기. 도자기(陶磁器)는 원래 도기와 자기를 합친 것을 의미하지만 도기와 자기는 그 재료나 굽는 온도가 전혀 다르다. 도기는 도토[찰흙]를 재료로 하여 500~1,100도를 전후로 구워지는 그릇으로 대개 적갈색, 회백색, 회청색, 회흑색을 띠고 있다. 도기 중에는 물의 흡수 여부에 따라 경질 도기와 연질 도기로 나눌 수 있다. 삼국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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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 있던 가야시대~조선시대 나루터. 도진나루터가 위치한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는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 직후 전라도 지방 나씨(羅氏)가 이주하여 개척하였다 전한다. 당시 사부리 도요지(沙鳧里陶窯址)와 기산리 도요지(箕山里陶窯址)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타지방으로 수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진나루로 모여들자 마을 주민들이 많은 이득을 얻어 마을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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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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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민족 독립을 위해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운동가들. 독립운동가들은 개항기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거나 일제강점기에 국내외에서 일제에 저항한 사람들이다. 독립운동의 범위는 한일 병합을 기점으로 앞선 시기에는 크게 계몽 운동과 의병 운동으로 설정할 수 있고, 이후 시기에는 국내외 무장 투쟁, 3·1운동, 노동·농민·학생 운동 등 대중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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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고령 둔덕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0) 8월 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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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상직(文相直)[1893~]은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에서 태어났다. 문상직은 스무 살 즈음, 서울에서 약 1년간 학문에 전념하다가 곧 만주로 건너가서 통화현(通化縣)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수학하였다. 그 후에는 중국 난징[南京]과 만주 안동(安東)에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만주 안동에서 고령 출신인 박광(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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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 고령 문학은 고령에서 태어난 작가가 고령의 언어로 고령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제재로 생산한 문학 작품을 말한다. 고령 출신은 아니지만 고령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이나 작가 역시 광의의 고령 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제외하였다. 1. 조선시대 이전의 고령 문학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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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기로(朴基魯)[1871~1938]는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박기로는 1919년 4월 8일 밤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한이군(韓二君)·한용발(韓用發)·도말용(都末龍)·박용학(朴龍鶴)·한광룡(韓光龍) 등 마을 청년들에게 도진리의 상황을 알리고 만세 시위를 권고하였다. 박기로는 이들에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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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학자. 박기열(朴璣烈)[1862~1929]은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자는 기옥(幾玉)이다. 1919년 3월 만세 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잡혀 심한 고문을 받고 구속된 고령군의 대표적 애국지사 박재필(朴在弼)의 아버지이다. 박기열은 1880년(고종 17) 성균관생원이었는데, 유학에 조예가 깊었다. 학문이 뛰어나고, 제자를 지도하는 데 힘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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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박순천(朴順天)[1898~1983]은 지금의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본명은 박명련(朴命連)이다. 한학자인 박재형의 무남독녀로, 일찍부터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17년 동래의 일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마산의 의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교육 활동과 정치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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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용학(朴龍鶴)[1893~1954]은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박용학은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1919년 4월 8일 밤,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 김성원(金成源)의 집 앞 거리에서 한이군(韓二君), 한용발(韓用發), 도말용(都末用), 한광룡(韓光龍) 등과 함께 박기로(朴基魯)를 만나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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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채환(朴採煥)[1882~1962]은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도진리에서 박재필(朴在弼)이 주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있은 이틀 후인 4월 8일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8일 우곡면 도진리에 사는 박기태(朴基太) 집에서 혼례가 있었는데, 네 명의 일본 경찰이 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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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반룡사는 802년(애장왕 3)에 해인사를 건립할 당시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중창하였고, 공민왕 때 혜근(恵勤)이 중건하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원나라 세조(世祖)가 이 절에 내린 방문(榜文)이 실려 있어 주목된다. 이 방문에는 일본 정벌을 위해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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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기석(裵基奭)[1887~1956]은 본관이 성산(星山)으로,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에서 태어났다. 배기석은 전국 각지에서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고령 지역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애국적 의분을 참지 못하였다. 1919년 3월 29일 덕곡면사무소에 뽕나무를 심기 위한 부역에 동원되었을 때 부역 나온 면민 20여 명 앞에서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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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정구 선수. 1930년대에 들어 고령 지역에는 정구의 붐이 크게 일어났다. 그 계기는 당시 일본 정구 대회를 10여 년간 석권해 오던 안동 출신의 조선 최고 선수인 권복인(權福仁)이 고령 영림창(營林廠)으로 부임해 온 것이었다. 권복임은 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고령에서 선수를 발굴하여 지도한 결과, 당시 정구가 성행하던 거창·합천·성주·밀양·진주·마산·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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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변희용(卞熙瑢)[1894~1966]은 지금의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서 변창모의 3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일파(一波)이고, 부인은 신민당 고문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순천(朴順天)이다. 변희용은 20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분가한 뒤, 곧 일본에 유학하여 1917년 게이오대학[慶應大學] 이재과(理財科)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조선인유학생학우회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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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것은 주산(主山)의 능선 위로 불쑥 솟은 지산동 고분군이다. 이곳에는 가실왕(嘉實王)을 비롯해 하지왕(荷知王), 이뇌왕(異腦王), 도설지왕(道設智王)의 무덤들도 있을 것이다. 대가야의 왕들이 묻힌 이곳에는 해마다 수많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코흘리개들이 오르내린다. 무덤 사이를 헤집으면서 뛰노는 아이들은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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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예가. 조선시대 국가기관인 사옹원(司甕院)에 소속되어 사기를 만드는 장인을 사기장이라 불렀다. 조선 전기에는 경기도 광주에 관영 사기제조장(官營沙器製造場) 분원(分院)이 있어 왕실에서 쓸 도자기를 만들다가 조선 후기에 관요(官窯)가 폐쇄되면서 도공들이 흩어져 민간에서 도자기를 만들게 되었다. 현대 고령에서 그 맥을 잇고 있는 대표적인 사기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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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에 있던 조선시대 나루터.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 마을은 조선 인조 때 개척되었는데, 낙동강 범람으로 인해 늪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 ‘늪마을’이라 하다가 120여 년 전 이씨라는 선비가 들어와 마을 앞 큰 호수를 보고 ‘호촌’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한 낙동강이 범람할 때 이곳 흙을 많이 훑어갔다고 ‘훑촌’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906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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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가락국 제8대 질지왕이 허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로왕과 혼인하였던 땅에 왕후사(王后寺)를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기록이 전하는 바와 같이 고령 지역에 사찰이 처음으로 창건된 시기는 5세기 중엽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고령 지역의 사찰 창건이 활발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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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전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說話)는 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이다. 설화 중에는 사실을 가장하는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실이 아닌 사실적인 이야기이며, 사실 여부보다는 문학적인 흥미와 교훈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설화를 신화, 전설, 민담으로 3분하는 것은 세계적인 통례이다. 이 셋 사이에 확연한 선을 긋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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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서 생산되는 멜론. 멜론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의 고온 건조지로서 비가 적은 지방에서 재배, 분화된 서양계 멜론(Western melon)과 동양의 비교적 습윤한 지방에서 발전된 동양계 참외(Oriental melon)로 구분된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적으로 멜론이라 하면 주로 서양계 멜론인 온실 멜론[머스크멜론], 캔털루프(Cantaloupe), 겨울 멜론(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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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고령의 도공 김해김씨가 이룩한 일본 도자기 문화의 일맥. 오늘날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말한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강토 방방곡곡에서 무차별로 끌고 간 수많은 도공들을 일본의 사쓰마[薩摩]와 아리타[有田]·가라쓰[唐津]·아가노[上野]·다카도리[高取]·하기[萩]·야쓰시로[八代]·소다이[小代] 등 규슈[九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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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있는 주물 및 목형 제조업체. 1997년 4월 세화엔지니어링으로 설립되었으며, 2005년 1월 25일 세화엔지니어링(주)으로 법인 전환하였다. 2009년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 1786번지[다산산단3길 41]에 제2공장을 설립하였으며, 그해 기술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2012년 6월 본점을 제2공장 위치로 이전하면서, 같은 해 7월 지점을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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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보한재(保閒齋). 아버지는 공조참판을 지낸 신장(申檣)이다. 신숙주(申叔舟)[1417~1475]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는데, 자라면서 읽지 않는 책이 없었다. 1438년(세종 20) 초시와 복시에 연달아 장원하였고, 1439년 문과 제3인으로 급제한 뒤 집현전부수찬이 되었다. 장서각에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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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에서 거주한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靑泉). 밀양에서 출생하였고, 고령에서 거주하였다. 친아버지는 신태래(申泰來), 어머니는 김석현(金碩玄)의 딸이며, 신태시(申泰始)에게 입양되었다. 신유한(申維翰)[1681~1752]은 33세 때인 1705년(숙종 31)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1713년(숙종 39) 계사(癸巳) 증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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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철휴(申哲休)[1898~1980]는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해영(海影)이며, 우동(愚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신진구(申鎭求)이다. 신철휴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한학과 글씨에 능하였고, 효도와 애국심이 강하였다. 20세인 1918년 5월, 민족의 비통한 참상을 개탄하여 만주로 건너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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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을 배경으로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종합 예술. 연극은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탐색하고 조망하는 예술 장르의 하나로, 무대라는 공간 위에서 연기자와 연출자·무대 스텝들의 창조적인 작업의 결과로 나타나는 종합예술이다. 모든 예술이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두듯 연극 역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탐색하는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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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 있는 가야시대 궁성 터. 고령 주산성과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배경으로 대가야읍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설상대지(舌狀臺地)에 입지하고 있는 대가야 때의 궁성지 유적이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고령향교가 있으며, 조선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궁성지와 관련된 기록들이 전해오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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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과 관련한 내용을 가지고 연속 촬영한 필름을 연속으로 스크린에 비추어 물건의 모습이나 움직임을 실제와 같이 재현하여 보이는 영상. 고령 지역에서는 그동안 영화 산업과 영화 관련 내용이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최근 우륵의 생애를 소재로 한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를 영화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현의 노래」는 6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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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조리 원로들은 대가야 왕궁 터를 감싸고 있는 뒷산 자락을 ‘봉두골(鳳頭골)’ 혹은 ‘봉두동’이라고 부른다. ‘봉의 머리’라는 봉두골이란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은데, 이곳은 독립 운동가를 비롯해 고위 관료, 정치인, 군인, 실업가 등 쟁쟁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항간에서는 대가야의 정기를 받은 곳인 만큼 풍수지리적으로 터가 좋아서 인물이 많이 배출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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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년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관청과 민간에서 사용하는 일본 상품을 보관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창고. 조선시대의 대일 관계는 1년 3사(使)의 정기 사행이 규정되었던 중국과 달리 교린(交隣) 체제에서 비정기적인 사행이 오갔고, 무역도 회사(回賜)·답례(答禮)·하사(下賜)를 바탕으로 하는 공무역과 사행의 왕래에 부수하여 허용된 사무역 외에는 민간 차원의 사무역을 일체 금지하였다.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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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서 생산되는 수박. 1997년 2월 수박 재배 농가 80여 집이 모여 우곡수박작목반연합회를 결성하였으며, 2000년에 우곡수박의 고유 브랜드를 개발하여 우곡그린수박이라는 상표를 등록하였다. 현재는 16개 마을 408명의 반원이 360㏊에 약 6,000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수박을 생산하고 있다. 우곡수박은 낙동강 변의 사질토양과 가야산 지류의 맑은 물로 재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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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에서 캔 원석(原石)으로 만든 벼루. 운수벼루는 자색, 녹색, 흑색 등 우아한 색깔과 견고성을 가진 원석을 사용한 것으로, 먹이 잘 갈리고 먹물이 마르지 않으며 글을 쓸 때 붓이 잘 나가고, 서예 작품을 오랫동안 보관해도 색이 변하지 않는 우수한 벼루이다.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조선시대에는 왕가에서 주로 애용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인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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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결성된 ‘대가야문화가꾸기회’는 77~80세 되는 지역 원로들의 지역 사랑, 문화 사랑 모임이다.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기억이 있을 때 대가야 문화를 잊히지 않도록 해야지요.”라는 회장 서경규[1931년생] 씨의 말이 이 모임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잊혀 가는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 전승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한편으로 젊은 세대들이 잘 알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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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53년 경상북도 고령군을 비롯한 한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선제공격에 의해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까지 3년 1개월 동안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고 셀 수 없을 정도의 물적 기반이 파괴된 전쟁이다. 전쟁은 민족 간 전쟁의 성격으로 진행되었으나, 이후 유엔 연합군과 중국군이 참전하였다는 점에서 국제전으로서의 성격도 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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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 사람들이 착용해 온 의복이나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복식의 풍속은 식생활, 주생활과 함께 기층문화의 알맹이일 뿐만 아니라 예의와 의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문화 현상이다. 다른 문화 현상이 그러하듯, 우리나라의 복식은 외래 복식과 고유 복식의 이중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왕실과 귀족층 일부를 포함하는 상류층에서는 외래 복식의 영향을 받은 반면, 서민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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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이경용(李慶容)[1911~]은 일본 가와사키중학교[川崎中學校]를 졸업하였으며, 해방 이후 생사(生絲) 업체인 대구 옥균공업(玉菌工業)과 경북잠사공업주식회사를 경영하였다. 그 후 달성제사공업주식회사의 후신인 대구 달성산업 대표를 역임하였으며, 대한잠사회 경상북도지회 지회장, 한국생사수출조합 이사장으로도 활동하였다. 경북잠사공업주식회사와 달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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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령 출신의 계몽운동가. 이두훈(李斗勳)[1856~1918]은 고려 왕조 이후 고령에서 세거한 성산이씨(星山李氏) 문중의 후예로, 초명은 중훈(中勳)이고 자는 대형(大衡)이며 호는 홍와(弘窩)이다. 한평생 학문과 예법을 숭상하며 제자 양성에 힘썼다. 이두훈의 집안은 세종 대의 이사징을 비롯하여 이동례(李東禮), 이현룡(李見龍), 이문룡 등의 학자를 배출하였다. 특히 9대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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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영수(李英守)[1924~?]는 지금의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에서 태어났다. 이영수는 중국 충칭[重慶]에서 조직된 항일 군대인 광복군 전방지구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선전 공작에 몰두하였다. 1943년 7월 일본 경찰의 지명 수배를 피하여 안후이성[安徽省] 부양(阜陽)으로 가서 제3지대에 입대하였는데, 특히 탈출한 학병들을 포섭하는 데 힘써 광복군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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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활약한 고령 출신의 의병. 이완발(李完發)[1864~1912]은 본관이 합천(陜川)으로 자는 성숙(聖淑)이고, 호는 만취(晩翠)이다. 대한제국 말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대구 의병중대에서 활동하였다. 이완발은 학행(學行)이 널리 알려졌으며, 한일병합 후 대구 의병중대의 문대장(文大將)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이 일로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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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김면이 왜선 두 척을 포획한 전투. 2차 무계전투에 대한 기록은 『문수지』와 『용사일기(龍蛇日記)』에만 보이고 『모계일기(茅谿日記)』나 『고대일록(孤臺日錄)』 등의 다른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2차 무계전투의 노획 물품은 개산포대첩의 노획품과 함께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게 보내졌기 때문에 개산포대첩에서 획득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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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행정가. 1945년 10월 미군은 경상북도를 접수한 뒤 일본군의 무장 해제, 김대우(金大羽) 지사를 비롯한 일본인 관리의 파면과 함께 한국인 관리의 임용을 단행하고 도내 각 군청을 접수하여 11월 13일 도내 전역에 군정을 실시하였다. 이때 고령군은 달성군, 성주군과 더불어 미 제34 군정대 관할이 되었고, 고령 출신 이홍직(李洪直)이 초대 고령군수에 임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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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고령군은 경상북도 남서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남도 창녕군, 남쪽은 경상남도 합천군, 서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상남도 거창군, 북쪽은 경상북도 성주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내륙 지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의 연교차가 크고, 특히 여름에는 영천시, 대구광역시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유명하다. 경관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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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경상북도 지방을 대표하는 도자기 주산지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기록된 고령현 소속 공장에 소속된 사람들을 보면 야장(冶匠)·시장(矢匠)·피장(皮匠)·목장(木匠)·석장(席匠)·칠장(漆匠)·유구장(油具匠) 각 1명, 지장(紙匠) 3명, 사기장(沙器匠) 6명 등 모두 16명이다. 이 중 도자기를 제조하는 사기장이 6명으로,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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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고령 지역의 역사. 개항 이래 조선은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는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가시화되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한반도는 실질적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갔다.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헤이그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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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임나일본부설을 기정사실로 만들기 위해 고령향교 옆에 세운 비석. 1939년 4월 29일 제7대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는 고령향교 옆에 ‘임나대가야국성지(任那大伽倻國城址)’라는 이름으로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관음사(觀音寺) 북편 언덕 에는 ‘임나일본부지(任那日本府址)’라는 팻말을 박았다. 이는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정확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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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발생한 기상·지변·생물 등 자연 현상으로 인한 피해. 고령군은 한반도 남부 내륙의 경상분지 내에 위치하고 있어 쓰나미 등과 같은 해안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는 없다. 그러나 동쪽으로 낙동강이 인접해 있어 여름철 집중 강수로 인한 풍수해와 겨울철 강수량 부족으로 인한 가뭄으로 인해 봄철에 모내기를 하지 못하는 피해를 겪기도 한다. 고령 지역에서 발생하는 자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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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령 출신의 친일 승려이자 언론인. 장도환(張道煥)[1903~?]은 지금의 고령군 쌍림면에서 태어났다. 경상남도 하동군 쌍계사에 적을 둔 승려이며, 금성(金城)이라는 필명으로도 활동하였다 장도환은 1926년 일본 도쿄 유학 중 재일본조선불교청년회라는 재일(在日) 유학승(留學僧) 모임의 간부를 맡았고 기관지 『금강저(金剛杵)』 발행에도 참여하였다. 1932년 와세다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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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열·정경순 씨 부부는 도진리에서 결혼 후 50년 이상을 함께 해로하는 장수 부부에 속한다. 박준열 씨는 일제 강점기던 1925년 도진마을에서 2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평생 한 마을에서만 살아온 토박이다. 정경순 씨는 1936년 인근의 합가2리[한적골]에서 태어나, 20세 때 결혼해 도진마을로 들어왔다. 2010년 올해는 이들이 결혼한 지 56년째가 되는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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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의 고분군에서 출토된 대가야시대 장신구. 지금까지 대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관(冠)은 지산동 30호분과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을 비롯해 호암미술관 소장 금관, 일본 오쿠라 컬렉션 금관 등이 알려져 있는데, 이 중 출토지나 부장 상태가 확인된 것은 지산동 30호분과 32호분의 금동관이다. 대가야관의 문양은 초기에는 점으로 마치 선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곡선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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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금제 유물.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은 고령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유물로서 문양 형태와 디자인이 독특하며, 특히 금관은 신라의 출자형 금관과 다른 초화형의 관이다. 1971년 12월 21일에 국보 제138호로 지정되었다. 금관은 풀잎 모양의 장식이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신라관의 형식과 차이가 분명하다. 관테는 비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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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정치인. 정남택(鄭南澤)[1912~]은 본관이 연일(延日)이며, 그의 아버지는 고령면[현 대가야읍] 내 자산가 정운한(鄭雲漢)이다. 정운한(鄭雲漢)정운한은 1920년과 1936년 대홍수를 겪으며 물이 넘쳐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다섯 개의 마을 주민들을 위해 마을을 흐르는 하천 양쪽에 제방을 쌓았다.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하여 교토 동사중학교를 졸업한 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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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때 고령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에 맞서 싸운 전투. 1597년(선조 30) 왜군이 조선을 재침략한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8월 초순 왜군이 고령 방면으로 침입하자 정기룡(鄭起龍) 장군이 고령에서 왜군과 맞서 7월 15일 도진리전투, 8월 7~8일 둔덕대첩, 8월 16일 용담천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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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해방 이후 고령 지역에서의 정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의 정치와 정부 수립 이후의 정치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부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고령 지역에서의 정치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제도화되지 않은 채 다양한 사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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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행정가이자 정치인. 정희택(鄭喜澤)[1919~2000]은 본관이 연일(延日)로, 지금의 고령군 고령면[현 대가야읍]에서 태어났다. 정희택은 1942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을 졸업한 후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하였다. 1946년 사법부 감찰관을 시작으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와 부장검사, 대구지방검찰청 및 부산지방검찰청 차장검사, 대구고등검찰청과 서울고등검찰청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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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와 성산면 어곡리에 걸쳐 있는 산. 제석산(帝釋山)과 관련된 설화는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 위치한 어실마을의 유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중기에 어느 정승이 황제의 명을 받고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한데서 제석산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명을 받고 정승이 다녀간 마을이라 하여 어실마을이라고 한다. 제석산 남쪽으로는 앞산[210.4m]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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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정치인. 조일환(曺逸煥)[1916~]은 본관이 창녕(昌寧)으로, 지금의 고령군 다산면에서 태어났다. 조일환은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한 후 한동안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에서 강사 생활을 하였다. 1958년 5월 2일 시행된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면서 정계에 투신, 대구시 남산동·대명동·봉덕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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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褓負商)은 등짐, 봇짐을 지고 여러 지역의 시장을 다니면서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을 통칭한다. 여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로 500년 도읍지 고령에도 보부상은 존재했는데, 그 중에는 연조리 사람들도 있어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한기마다 등짐과 봇짐을 지고 전국을 돌아 다녔다. 고령 보부상들은 19세기 중후반부터 조직화를 꾀해 1866년에는 좌사계(左社契)를 그리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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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 지산동 44호분은 고령 주산성의 서남쪽 주능선이 완만한 대지를 이루는 지점에서 서쪽의 너른 비탈면을 이루는 부분에 단독으로 위치한다. 중턱 대지의 지산동 제32~제35호분보다 위쪽이고 지산동 제45호분보다 아래쪽에 해당한다. 1977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가야 문화권의 유적 보존을 위한 정화 사업의 일환으로 경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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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야광조개로 만든 국자. 1977년 발굴 조사 때 지산동 44호분 주석실에서 출토된 야광조개국자로 대가야와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준다. 주걱 부분이 타원형인 오목한 국자로서, 납작한 손잡이가 마련되어 있다. 큰 소라 모양의 야광조개 껍질을 둥글게 따라가며 오려서 만들었다. 출토 당시 손잡이와 주걱 부분 등이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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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 지산동 32호분은 고령 주산성에서 서남으로 뻗어 내리는 주능선의 중턱에 형성된 설상대지(舌狀臺地)의 중형급 봉토분 5기 중에서 앞부분인 동남쪽에 위치한다. 동남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그 반대편 서북쪽에 가까이에 있는 지산동 33호분 사이의 평탄한 빈터는 설상대지에 축조된 봉토분의 공동 제사 터로 활용되었다. 1978년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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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 지산동 73호분은 대가야박물관 어귀의 주차장 동쪽 가까이 언덕 위에 위치한다. 이 구릉은 주산의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주능선에서 파생하여 고령과 합천을 잇는 국도변과 근접한 세 언덕 중 중간에 해당한다. 언덕에 형성된 대지상 평탄부가 꺾여 마지막 경사를 이루기 시작하는 지점에 축조되어 있다. 지산동 73호분도 고령 지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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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못이 있어 못안골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모산골로 되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지산(池山)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기동·막곡동·신기동을 병합하여 지산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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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의 군화(郡花). 철쭉은 쌍떡잎식물 진달래목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으로, 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는 뜻의 ‘척촉(擲燭)’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먹을 수 없는 꽃이란 의미로 ‘개꽃’이라고도 하는데, 진달래는 먹는 꽃이라 하여 ‘참꽃’이라 불린다. 야산이 많은 고령 지역의 산마다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며, 고령군을 대표하는 군의 꽃으로 지정되어 있다. 붉고 맑은 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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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기순(崔基淳)[1893~1927]은 본관이 강릉(江陵)으로,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에서 최능한(崔能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15세쯤에 부모를 따라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로 옮겨 살았다. 최기순은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고, 1925년 33세에 만주로 갔다. 1920년 청산리전투 후 일본군의 간도 지방에서의 학살과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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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이상의 집성촌을 이룬 마을! 조선 전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외침에 나라를 구하려는 충(忠)과 부모에 대한 효(孝)가 존재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구비한 마을! 한 명의 큰 인물보다 한 마을, 한 가문 출신으로 충과 효행이 누대에 계승되는 마을! 1350년대 사재감(司宰監) 소윤공(少尹公) 박경(朴景)[중시조 부창정(副倉正) 박환(朴還)의 8세손]이 마을을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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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토기는 원삼국시대 와질 토기에서 발전한 것으로, 주로 낙동강 이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가야 토기는 김해 대성동 29호묘와 양동리 235호묘 출토품으로 볼 때 3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에 처음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기원은 그릇 모양이나 자연유, 성형법 등으로 보아 한(漢)의 회유도(灰釉陶)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제작 기술면에서는 이전 시기의 토기들과 차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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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생산되는 특색 있는 산물. 지역마다 지형, 기온과 강수량에 차이가 있고 토질이 달라 그 지방의 풍토에 알맞은 특산물이 생산된다. 특히 한국은 예부터 지역성이 강하여 지방 특산물이 많다. 고령 지역은 낙동강의 수리 시설을 개선하고, 경지 정리 등을 통하여 농업의 근대화를 도모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고령 지역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다산 지역의 약초인 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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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고령의 도공 팔산(八山)이 이룩한 일본 도자기 문화의 일맥. 오늘날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말한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강토 방방곡곡에서 무차별로 끌고 간 수많은 조선 도공들을 일본의 사쓰마[薩摩]와 아리타[有田]·가라쓰[唐津]·아가노[上野]·다카도리[高取]·하기[萩]·야쓰시로[八代]·소다이[小代]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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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팔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팔산(八山)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 일본 다카도리야키[高取燒]의 시조가 된 조선의 도공이다. 그는 일본에 건너가 도자기를 구웠는데, 품질이 우수하여 녹봉과 벼슬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 후에도 후손들이 가업을 계승하여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다카도리야키는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 브랜드가 되었다. 팔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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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광룡(韓光龍)[1901~1957]은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한광룡은 1919년 4월 8일 밤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같은 마을의 한이군(韓二君)·한용발(韓用發)·도말용(都末龍)·박용학(朴龍鶴) 등과 함께 도진리에 사는 박기로(朴基魯)에게서 도진리의 만세 운동 상황을 들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박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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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이군(韓二君)[1897~1938]은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한의균으로도 불렸다. 한이군은 1919년 4월 8일 밤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같은 마을의 한용발(韓用發)·도말용(都末龍)·박용학(朴龍鶴)·한광룡(韓光龍) 등과 함께 도진리에 사는 박기로(朴基魯)에게서 도진리의 만세 운동 상황을 들어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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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이후 경상북도 고령 지역의 역사. 현대라 함은 역사학의 시대 구분 가운데 사상(思想)이나 그 밖의 것이 현재와 같다고 생각되는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동양사에서는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서양사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현대라고 말한다. 고령군은 옛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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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서예가이자 한국화가. 홍순록(洪淳鹿)[1916~1983]은 호는 해정(海亭)이며, 일본 센슈대학[專修大學] 문과를 졸업하였다. 시(詩)·서(書)·화(畵)에 능하였는데, 서양화·서예·한국화에도 실력을 발휘하였다. 대구 지역에서 개성 있는 서화의 예술 세계를 펼친 서화가로 알려져 있으며, 한묵(翰墨) 정신의 전통을 이어오며 영남 서예계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도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