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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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는 고령신문사가 발행하는 지역 주간지. 『고령신문』은 지방자치의 본격적인 출범과 함께 지역민을 대변할 수 있는 지역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995년 1월 13일 창간한 신문으로, 고령 지역민을 위한 지역 주간신문이다. 『고령신문』은 ‘정도(正道)·정론(正論)·정직(正直)’이라는 사훈 아래 1995년 1월 13일자 신문을 첫 호로 발행하였다.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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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은 고대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대가야의 수도였다. 철의 왕국 대가야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강력한 지배권을 확립했으며 가야 도공의 숨결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바탕이 됐다. 21세기 고령군은 이런 문화유산을 앞세워 ‘새로운 낙동강시대와 대가야르네상스를 선도하는 고령’으로 거듭 나는 한편, 인근 성주군 등 고대 가야문화권 지역 13개 시·군[대구광역시 달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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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을 포함한 경상남도·경상북도와 전라남도·전라북도 13개 시군의 시장과 군수들이 낙후된 가야문화권 개발을 위해 결성한 단체.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는 대가야를 비롯한 고대 가야문화권 지역 13개 시·군[대구시 달성군, 경상북도 고령군·성주군, 경상남도 거창군·산청군·의령군·창녕군·하동군·함양군·합천군, 전라남도 순천시, 전라북도 남원시·장수군]의 시장과 군수들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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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과 성주군 청파면·지사면에서 결성된 청년 운동 단체. 1926년 교육 장려와 생활 개선을 목표로 사회주의 청년 운동 단체인 고령청년연맹과 성주청년연맹의 면 지부 조직으로 창립된 청년 운동 단체이다. 교육 장려와 생활 개선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26년경 경상북도 23개 군 가운데 13개 군에서 청년연맹이 결성되었다. 이때 고령 지역과 성주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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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에 있던 나루터. 강정나루터가 위치한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는 본래 경상북도 성주군 다산면에 속하였던 곳으로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1914년의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지내동을 병합하여 곽촌동으로 불리다가 1988년 5월 1일에 행정 구역 명칭이 ‘동’에서 ‘리’로 바뀌면서 곽촌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꽉갈, 깍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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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있던 포구. 개경포(開經浦)는 개진면 개포리 앞 낙동강 변의 포구로 옛날에는 소금을 비롯한 곡식을 실어 나를 정도로 번창하였다. 개경포라는 이름은 현재 해인사에 보관된 ‘강화경판 고려대장경’[일명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서 낙동강을 거쳐 개포나루를 통해 이운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달리 개포나루, 개포진(開浦津), 개산강(開山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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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고령 개산포에서 김면이 이끈 의병이 왜적을 물리친 전투. 개산포대첩은 의병장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노고산성(老姑山城)과 무계리산성(茂溪里山城)에 의병을 집결시켜 왜군의 낙동강 운행에 일대 타격을 가한 전투이다. 개산포는 김면이 살았던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낙동강 쪽으로 불과 6~7㎞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면서 현풍의 도동 쪽에서 고령으로 바로 건너오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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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7일 개실마을에 경사스러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추진하는 ‘Rural-20 프로젝트’ 사업에 최종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던 것이다. ‘Rural-20 프로젝트’ 사업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G-20정상회의와 연계하여 농어촌 체험 관광의 글로벌화를 추진하기 위해 전국의 농어촌 관광지 21곳을 선정하여, 외국인들에게 집중적으로 홍보·지원하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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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던 나루터. 개포리는 본래 고령군 구곡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마을 앞 낙동강 강변에 개포나루가 있어 개포리라 하였다. 원래는 개산포구마을로 불렸는데, 고려 때 개경포(開經浦)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됨에 따라 시례동과 한제동을 병합하여 나루의 이름을 따 ‘경’자를 빼고 개포동이라 하였다. 이후 개포동은 개진면에 편입되었으며,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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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에 있던 가야시대 나루터. 객기나루터가 위치한 곳은 본래 현풍군 왕지면(旺旨面) 지역으로서 소재지는 왕지면 새터 471번지이다. 1896년(고종 33년) 지방 관제 개편에 의하여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터, 새터와 하미면의 사등동을 병합하여 객기동이라 해서 우곡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洞)’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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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객기리(客基里)에는 손터, 정터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손터는 대가야시대부터 손터나루터[일명 객기나루터]로 불리던 곳으로, 낙동강을 이용하여 김해(金海)·구포(龜浦), 멀리는 외국과도 통하던 수상 교통의 요지였고, 창녕·마산·합천·성주 지방과 육로 교통을 연결하는 요지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고령 방면으로 침공하던 왜군이 이곳을 통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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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산지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낮은 안부(鞍部)에 오랫동안 주민들이 왕래하면서 만들어진 교통로. 고개는 산지 능선의 해발고도가 높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낮은 안부로서 오랫동안 주민들이 왕래하면서 만든 교통로이다. 안부는 대체로 절리 밀도가 높은 곳이나 암석의 경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부분이 풍화 작용으로 형성된다. 고개의 영어명 ‘pass’는 ‘passa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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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고령 지역 역사. 통일신라시대 고령군은 야로현과 신복현을 영현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나 후삼국 시기 고령 지역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뚜렷한 호족이 없는 반면 인근의 성주 지역에서는 이총언(李悤言) 등이 고려 태조 왕건에 귀부하여 후삼국 통일에 기여하였다. 그 결과 성주 지역은 940년(태조 23) 주부군현의 명호 개정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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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고령군은 경상북도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경상남도와 접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시와 맞닿아 있다. 서쪽에 있는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大伽川)과 합천군 야로면에서 내려온 안림천의 물길이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만들며 흘러내려 대가야읍에서 합쳐져 회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처럼 고령군은 서쪽의 높은 산과 동쪽의 낙동강으로 보호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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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고령군 관할 행정 기관. 고령군은 42년(신라 유리왕 19)에 이진아시(伊珍阿豉)왕이 대가야국을 세워 그 도읍지로 삼고 왕조 16대 520년을 이어오다 562년(신라 진흥왕 23)에 신라에 병합되어 대가야군(大伽倻郡)으로 되었다. 이후 757년(경덕왕 16) 고양군(高陽郡)으로 개칭, 강주(康州)[현재의 진주]에 소속되었다. 1018년(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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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는 고령박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고려 후기인 1350년(충정왕 2)경 박경(朴景)이 입향한 이후 고령박씨의 본향을 이루었다. 이후 도진리의 고령박씨 문중은 지금까지 650년간 이곳에서 세거해 오고 있는데, 이 때문에 도진리 박씨들은 다른 문파와 구분하여 자신들을 특별히 ‘도진박씨’라고도 부른다. “고령 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으로는 도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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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령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려시대까지 고령군에는 상설 지방관이 파견되어 있지 않았다. 940년(태조 23) 고령 지역에는 두 가지의 행정적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읍격(邑格)이 신라 경덕왕의 개명 이래 고령군으로 여전히 유지되었지만,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경산부의 속군으로 편제되어 위상이 하락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읍치를 두고 우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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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이 나타나 있는 조선시대 지도. 고지도는 근대적인 투영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의 회화적인 지도를 말한다. 주로 행정·군사적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나 실학(實學)이 일어나면서 산업·경제·문화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산맥과 하천·항만·도로망 등의 표시가 정밀해졌다. 고지도는 지도에 수록되는 지역의 규모에 따라 세계 지도, 천하지도, 전국지도, 지방지도, 군현 지도,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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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 성산이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양주. 토속주 혹은 민속주는 특정 지방에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온 술로서, 사용하는 재료와 제조법에서 특성을 지닌다. 토속주는 보통 특정 지역에서 세거해 온 집안의 종가를 중심으로 제조법이 개발, 전승되는데, 이는 술이 종가의 연례적인 봉제사와 접빈객의 역할 수행에 필수적인 음식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관동스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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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말로 전해 내려오는 민간 문화의 총체. 구비전승(口碑傳承)은 비석에 새긴 것처럼 유형화(類型化)되어 오래도록 전하여 온 말이라는 뜻이다. 언어로 전승되는 구비전승 가운데는 언어 예술적 성격을 갖는 것과 속신과 욕설 그리고 민간요법처럼 언어 예술로 볼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언어 예술적 성격을 갖는 것이 바로 구비문학이다. 지금까지 구비전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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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급격한 사회 변동의 와중에서 민중의 생활 모습은 거의 기록되지 못한 채 빠르게 소멸되어 가고 있다. 이는 고령 지역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삶은 20세기 고령의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고령종합시장 앞에서 담배 가게를 운영하면서 경북유도회 부회장과 성균관전교 등을 역임한 후 2008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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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계몽운동가. 김성제(金性濟)[1868~?]는 지금의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에서 태어났다. 한주학파(寒洲學派)의 유학자로서 고령과 대구에서 활동한 계몽운동가이다. 김성제는 1890년대 후반 서울로 상경하여 1898년 대구우체사 주사[판임관 5등]에 임명되었다. 1904년 대구실업신문사 이사를 거쳐 7월 대구우체사 주사를 사직하였다. 1905년 10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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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계온(季昷)·효관(孝盥), 호는 점필재(佔畢齋). 아버지는 성균사예(成均司藝)를 지낸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이고,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사재감정(司宰監正) 박홍신(朴弘信)의 딸이다. 김숙자는 경상도 고령과 개령, 성주 등지에서 수령과 교수직을 역임하였으며, 밀양에 거주하던 박홍신의 사위가 되면서 처가를 따라 밀양으로 이주하였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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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 선생은 62세이던 1492년(성종 23) 8월 19일 밀양에서 별세했다. 사림파에서는 ‘도덕박문왈문 염방공정왈충(道德博聞曰文 廉方公正曰忠)’의 뜻을 따라 문충(文忠)으로 시호를 삼자고 했으나 훈구파에서는 ‘박문다견왈문 거경행간왈간(博文多見曰文 居敬行簡曰簡)’의 ‘문간(文簡)’을 주장하였다. 결국 훈구파의 주장에 따라 문간으로 시호가 결정되었다. 사림파와 훈구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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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정구 선수. 1930년대에 들어 고령 지역에는 정구의 붐이 크게 일어났다. 그 계기는 당시 일본 정구 대회를 10여 년간 석권해 오던 안동 출신의 조선 최고 선수인 권복인(權福仁)이 고령 영림창(營林廠)으로 부임해 온 것이었다. 권복임은 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고령에서 선수를 발굴하여 지도한 결과, 당시 정구가 성행하던 거창·합천·성주·밀양·진주·마산·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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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에 있는 가야시대 산성. 노고산성의 건립 연대는 문헌 자료가 전하지 않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잘 알 수 없다. 다만 노고산성 안팎에서 대가야시대 토기편이 발견되고 있으며, 맞은편에는 대가야시대의 백리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노고산성은 대가야시대에 축조된 산성임이 분명하다. 이후 신라에 의해 재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성벽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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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는 본래 성주군 벌지면의 지역으로 낙동강변의 넓고 비옥한 땅에 논이 많다고 하여 논실, 답곡(畓谷)이라 불렀으며, 개척 당시 갈대숲이 우거져 있어 노곡(蘆谷)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후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의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암동을 병합하여 노곡동이라 해서 다산면에 편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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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에서 음력 1월 15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령군 덕곡면 노2리는 해방 후에 65~75호가 벼농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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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높은 곳에서 면 전체를 내려다보면 닭의 형상을 하고 있어 다계면이라고도 하였다. 평리리가 닭의 머리 부분, 노곡리와 나정리가 날개 부분, 송곡리가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 신라 초기에 다사지현(多斯只縣)이었다가 제35대 경덕왕(景德王) 때 하빈현(河濱縣)으로 고치고 수창군(壽昌郡) 또는 수성(壽城)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9년(현종 9) 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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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일은 고령초등학교는 물론 고령 지역 사람들에게도 매우 뜻 깊은 날이었다. 바로 대가야의 후예를 기르는 고령초등학교가 문을 연 지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고령초등학교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교정 앞에 ‘개교 백년’ 기념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이렇듯 고령초등학교는 연조리 주민뿐만 아니라 고령 지역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전통의 상징이자 영남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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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690년경(숙종 16) 성주 지방의 도씨[또는 부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할 때 새로 일어나는 마을이라 하여 새방골[新坊谷] 또는 신촌이라 하였다가 1914년 대흥(大興)으로 바뀌었다. 신라시대에 가리현 소재지였고, 조선 말기에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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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넓은 길. 조선시대 고령 지역에는 서울로 가는 제5대로의 지선과 본선에 해당하는 안림역[현 쌍림면 소재]과 무계역[현 성산면 소재]이 있었다. 안림역은 한성~유곡~고성~거제로 이어지는 5대로의 지선으로, 성주의 안언역에서 분기하여 나와 안림역에서 다시 합천의 금양역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이다. 낙동강 서변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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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가 있던 터. 도요지(陶窯址)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 유적으로, 우리말로는 가마터라고 한다. 토기 및 도자기를 원활하게 생산하기 위해서는 땔감이 되는 산림이 울창하고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제품을 옮기기 편리한 운송로, 양질의 점토와 도토(陶土)가 생산되어야 하는 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고령 지역은 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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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 있던 가야시대~조선시대 나루터. 도진나루터가 위치한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는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 직후 전라도 지방 나씨(羅氏)가 이주하여 개척하였다 전한다. 당시 사부리 도요지(沙鳧里陶窯址)와 기산리 도요지(箕山里陶窯址)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타지방으로 수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진나루로 모여들자 마을 주민들이 많은 이득을 얻어 마을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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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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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고령 지역에서 전개된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의 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교조신원(敎祖伸寃)과 외세 배척을 목적으로 전개한 농민 운동이다. 1860년 경주에서 시작한 경상도의 동학은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는데, 1874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민씨 정권이 들어서면서 삼남 지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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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고령 둔덕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0) 8월 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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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읍 연조리는 이웃한 쾌빈리에 비하면 상가들이 많지 않다. 대가야읍에서 대구와 성주, 합천 방면으로 이어진 도로에 접한 부분이 적고, 고령장을 비롯한 상가가 밀집한 지역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가야읍에서 상가는 주로 쾌빈리에 밀집해 있고, 관공서는 지산리에 밀집해 있다. 이에 비해 연조리는 아파트와 빌라, 단독 주택이 밀집한 주택가이다. 연조리는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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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의 민중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전해 내려오는 노래. 경상북도 고령군은 가야 문화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이다. 그리고 고령군은 교통의 중심이기도 하며, 옛날부터 농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이러한 문화적·지리적 환경을 감안하면 고령 지역의 민요는 매우 다양하게 발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민요는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로 구분된다. 노동요는 「모찌는 소리」와 「모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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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병자호란 후 성주 지역에서 박씨 성을 가진 이들이 옮겨 와 정착하였으므로 박실(朴室) 또는 박씨골·박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박곡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박곡리가 되었다. 의봉산[535m]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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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숙빈(叔彬), 호는 용담(龍潭)·도천(道川). 증조할아버지는 박한하(朴漢何)이고, 할아버지는 참봉 박식(朴埴)이며, 아버지는 승지를 지낸 복재(復齋) 박양좌(朴良佐)이다. 어머니는 성산배씨(星山裵氏) 별좌(別坐) 배은(裵垠)의 딸이다. 둘째 아들로, 형은 남계(藍溪) 박이문(朴而文)이다. 부인은 충주박씨 참판 박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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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래(仲來), 호는 용재(慵齋). 아들은 박섬(朴暹)[1696~1760], 손자는 박사연(朴思淵)[1732~1756]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박종주(朴宗冑)이다. 양죽당 정완[참판공으로 임진왜란에서 창의함]의 5대손이다. 박태중(朴泰重)[1677~1729]은 5~6세에 이미 완숙한 군자의 모습을 갖추었고, 장성하여서는 덕행을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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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원전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반암서원은 여말선초 문신이었던 정구(鄭矩)로부터 아들인 정선경(鄭善卿), 손자인 정종(鄭種), 정비(鄭秠)를 제향한 서원이다. 정구[1350~1418]는 감찰대부(監察大夫) 정양생(鄭良生)의 아들이다. 자는 중상(仲常), 호는 설학재(雪壑齋)로 1377년(우왕 3) 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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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정구 선수. 1930년대에 들어 고령 지역에는 정구의 붐이 크게 일어났다. 그 계기는 당시 일본 정구 대회를 10여 년간 석권해 오던 안동 출신의 조선 최고 선수인 권복인(權福仁)이 고령 영림창(營林廠)으로 부임해 온 것이었다. 권복임은 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고령에서 선수를 발굴하여 지도한 결과, 당시 정구가 성행하던 거창·합천·성주·밀양·진주·마산·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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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령 지역의 관아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는 조선시대 변경의 긴급한 상황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통신 수단이다. 봉수의 설치 시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그 내용이 기록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활용되다가 조선 전기 전국의 봉수 제도가 정비되면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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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봉평리 고인돌은 대가야읍에서 성주 방면으로 난 국도 33호선을 따라 가다가 지방도 907호선으로 1.5㎞ 정도 지나면 봉평리에 있는 운수면사무소가 나오는데, 운수면사무소 뒤편 봉평초등학교 어귀 한다리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9년 도로 정비 사업으로 발굴 조사를 한 후 덮개돌은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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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 있는, 고려 충신 전순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사. 대가야읍 영생병원사거리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성주·왜관 방향으로 우회전하고, 덕곡삼거리에서 가야산·덕곡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1.3㎞ 지점 우측도로에 사와재 입구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에서 좌회전하여 300m 진행하면 마을길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사와재은 고려 충신 전순(全順)을 기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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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로 쌓아 만든 방어 시설. 성곽(城郭)이란 내성(內城)과 외곽(外郭)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시가지 전체를 에워싼 나성(羅城)을 ‘곽’이라고 한다면, 그 곽의 안쪽에 또 다른 성벽으로 둘러싸 있는 독립된 공간을 ‘성’이라고 한다. 나라를 뜻하는 국(國)이란 말이 성곽[口]을 창[戈]으로 지키고 있는 형상을 한 데서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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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고령군에서 성산면을 지나 국도 5호선을 따라 화원 방면으로 가다보면 달성중학교를 지나게 된다. 여기서 약 500m 더 가서 좌회전하여 구마고속도로 밑을 지나 성산동 새마을회관 방면으로 가면 낙동강 위로 나 있는 사문진교 다리를 건넌다. 여기서 계속 직진하면 다산면 상곡리 마을이 나오는데 사문진교에서 마을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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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 마을에 자리 잡은 농촌 체험 마을.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에 위치한 서우재 마을은 상비산의 맑은 물과 청정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조성한 농촌 체험 마을이다. 서우재의 옛날 이름은 명곡(明谷)이었다. 풀이하면 ‘날이 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마을은 해마다 사람이 죽어가고 전염병이 도는 등 불행한 일이 끊이지 않아 마을 주민들이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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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일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고령군 세거성씨. 성산이씨(星山李氏)는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한다. 이능일은 신라 말 성산[성주의 옛 이름] 일대를 통치해 온 호족으로 후삼국 정립 시기에 고려의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다. 원래 이름은 이능(李能) 또는 이능필(李能弼)이었는데 왕건이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점을 치하하는 뜻에서 통일을 의미하는 ‘일(一)’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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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都順)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고령군 세거성씨. 성주도씨(星州都氏)는 중국 여양 출신의 도계(都稽)가 한(漢) 무제 때 북파장군으로 여가의 반란을 평정하여 도씨 성을 받음으로써 비롯되었다. 『경술보(庚戌譜)』에 따르면 도계의 후손으로 한(漢) 성제(成帝) 때 고구려에 와서 동명왕의 맏아들 유리가 이복동생인 비류와 온조와 왕권 쟁탈을 벌일 때 유리를 도운 도조(都祖)를 시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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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유(李純由)를 시조로 하고 이석견(李碩堅)과 이조년(李兆年)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고령군 세거 성씨. 성주(星州)는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로, 성주이씨 시조 이순유는 신라 경순왕 때의 재상이었다. 신라가 망하자 지금의 성주읍 경산리에 이주하여 숨어 살았다. 이에 태조 왕건이 그 절의에 감복하여 호장(戶長)으로 삼았다. 고려 원종 때의 인물인 12세손 이장경(李長庚)이 중흥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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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 이후 귀화한 중국인 무장. 아버지는 명나라 병부시랑(兵部侍郞) 시윤제(施允濟)이다. 시문용(施文用)[1572~1623]은 1572년 중국 저장성[浙江省]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당시 유격장군(遊擊將軍) 남방위(藍方威) 휘하의 행영중군(行營中軍)으로 종군하여 7년간 각지에서 많은 전공을 올렸다. 임진왜란 이후 신병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경상북도 성주에 우거하였다.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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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을 대상으로 시사적인 뉴스나 정보·오락·광고 등을 제공하고 있는 정기 간행물. 신문은 특정한 조직체가 뉴스나 정보를 수집·처리·제작한 것을 신문지라는 대중 매체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고 그 대가로 이윤을 추구하는 활동인 동시에 공공성을 지닌 문화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다. 일제강점기 고령군 지역의 언론은 소수의 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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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에 있는 성산전씨 동성마을. 가야산에서 흘러오는 내와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에서 흘러오는 내가 마을 앞에서 만나 안림천을 이루는데, 마을 사람들이 안림천을 건너기 위해 나루를 만들려 하자 봉새가 날아와 울었으므로 나루 이름을 봉나루·봉진이라 하였고, ‘봉(鳳)’자를 빼고 새나루·새나리라고도 하였다. 신촌은 새나루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붙인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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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에서 성주군 용암면 동락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시리재는 해발고도 60m 정도의 낮은 안부로 불당산[172.5m]의 남서쪽에 위치한 고령군과 성주군의 경계에 위치하여 두 지역을 연결해 주는 교통로 역할을 한다. 아시리재에 있는 나정리 아시터마을과 아시리재의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아시터마을은 옛날 어느 스님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산수가 수려해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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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방송, 신문,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하여 사실을 전달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언론이란 고령 지역의 정치·사회·문화·교육·사회 전반에 걸친 정보의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말이나 글로써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정보 전달, 문제 제기,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통틀어 말한다. 고령 지역 언론은 크게 신문과 방송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재 2개의 지방지와 1개의 케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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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고령군의 역사. 고령이라는 지명은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대가야군(大加耶郡)을 고령군(高靈郡)으로 개칭할 때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 고령현(高靈縣)에 현감이 내려와 다스리기 시작하였고,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개정하면서 경상도 고령현을 고령군으로 개칭하였다. 1896년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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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령 지역에 있던 역과 원. 역원(驛院)에서의 역(驛)은 군사적 의미가 매우 크고 관에서 설치·운영하여 교통을 지원하는 행정 기관의 역할을 한 반면, 원(院)은 민간 여행객들을 위한 시설로 숙박과 음식을 제공하였다. 역은 대로변에 12㎞마다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전국 각지에 두었다. 중앙과 지방간에 공문 전달, 관리의 사행 및 운수를 뒷받침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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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고령 지역에서 김면이 의병을 일으켜 벌인 전투. 송암(松庵) 김면(金沔)이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첫 전과는 6월 9일 개산포대첩에서 거두었지만, 고령을 떠나 거창으로 가기 전 4월 말에서 5월초 연강(沿江)에서 한 차례 왜군과 전투를 벌인 것이 연강전투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면은 1592년(선조 25) 4월 하순 가솔을 피난시키고 사촌 아우들과 가동(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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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에 있는 중국 절강시씨 후손들이 세운 재실. 시문용(施文用)은 1572년 명나라의 예부상서(禮部尙書) 시윤제(施允濟)의 아들로, 병부좌랑(兵部佐郞)을 지내다가 1597년 명나라의 황제 신종의 명을 받아 병력을 이끌고 합천, 가야산 등지에서 왜적을 토벌하고 조선에 머물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임명되었다. 1622년 벼슬을 사직하고 타계함에 따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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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고령 지역의 지명.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고령 지역을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상도지리지』 고령현조에 고령을 “전해 오는 이야기로서 고려 때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고, 또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在高麗時稱高陽大都護府又稱靈州牧官此則諺傳也]”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 등의 다른 자료에는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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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예리에 있는 가야시대 산성. 예리산성은 대가야시대의 석축 산성이다. 대가야시대에 신라군이 침입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예리산성을 축조하였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는 설화가 전해오기도 한다. 실제 예리산성은 대가야시대에 축조되어 신라의 침입을 막는 산성으로 기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리산성의 건립 연대는 문헌 자료가 전하지 않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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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도학자 이기춘의 묘각. 국도 33호선을 따라 성주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덕곡삼거리에서 덕곡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다시 도로변에 있는 덕곡면 반성2리 표지석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100m쯤 진행하면 반성2리 경로회관을 지난 50m 부근에 옥산재가 위치하고 있다. 옥산재는 성산인 도학자 옥산 이기춘(李起春)을 위하여 고령, 성주, 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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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결성된 ‘대가야문화가꾸기회’는 77~80세 되는 지역 원로들의 지역 사랑, 문화 사랑 모임이다.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기억이 있을 때 대가야 문화를 잊히지 않도록 해야지요.”라는 회장 서경규[1931년생] 씨의 말이 이 모임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잊혀 가는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 전승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한편으로 젊은 세대들이 잘 알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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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월산리 고인돌군은 운수면 월산리 가남들 서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고령에서 성주 방향으로 국도 33호선을 따라가다가 봉평교로 이어지는 지방도 907호선과 나누어지는 가남삼거리에서 성주 방향으로 300m 정도 직진한 지점에 해당한다. 국도 33호선의 기슭 비탈면 아랫부분 일부 도로변에 묻힌 상태로 있어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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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공자에 의해 체계화된 사상을 실천하고자 하는 학문적 활동과 의례적 행위 일반. 중국 춘추시대 말 공자에 의해 체계화된 유교는 전국시대에는 맹자·순자 등에 의해 계승되고, 한대에 이르러서는 무제가 그 왕조의 권위를 이데올로기 면에서 정당화하기 위해 유교를 공식 국교로 승인하였다. 이후 유교는 중국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하게 되었다. 유교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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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정구 선수. 1930년대에 들어 고령 지역에는 정구의 붐이 크게 일어났다. 그 계기는 당시 일본 정구 대회를 10여 년간 석권해 오던 안동 출신의 조선 최고 선수인 권복인(權福仁)이 고령 영림창(營林廠)으로 부임해 온 것이었다. 권복임은 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고령에서 선수를 발굴하여 지도한 결과, 당시 정구가 성행하던 거창·합천·성주·밀양·진주·마산·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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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상적(商的) 유통, 또는 물적(物的) 유통과 관련된 산업. 유통이란 생산자에 의해 생산된 재화가 판매되어 소비자·수요자에 의하여 구매되기까지의 계속적인 여러 단계에서 수행되는 여러 활동을 말하며 매매 거래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인 상적 유통과 재화(財貨)의 보관·수송 및 하역 등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인 물적 유통으로 대별된다. 그리고 유통 활동을 담당하는 기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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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와 지산리 일원에서 매 4일과 9일에 개시되던 오일장. 읍내장은 고령 지역에서 열리던 오일장 중 규모가 가장 큰 시장으로서, 조선 후기부터 대가야읍 관문 밖 동쪽 1리쯤에서 대가야읍내에서 개설되었다. 관문 부근에서 서던 읍내장은 1868년(고종 5) 장기동(場基洞)[현 대가야읍 장기리]으로 옮겨졌다. 장기동에서 열리던 시장은 1906년(고종 43)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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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 있는 조선시대 성산이씨의 재실. 대가야읍 영생병원사거리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성주·왜관 방향으로 우회전하고 다시 덕곡삼거리에서 가야산·덕곡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1.2㎞ 지점 좌측 도로에 의재 입구의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 방향으로 200m 지점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의재는 세종 때 사간원 헌납을 지낸 이사징(李士澄)과 후손인 죽포(竹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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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계욱(季郁), 호는 옥산(玉山). 이기춘(李起春)[1541~1597]은 어릴 때부터 성현지학(聖賢之學)을 강구(講究)하여 학문과 덕행이 높았으며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송암(松菴) 김면(金沔), 성주의 한강(寒岡) 정구(鄭逑), 현풍의 대암(大庵) 박성(朴惺), 인동의 청휘당(晴暉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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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에서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례재 주변의 산지를 구성하는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층으로 자색 셰일·이암사암·이암셰일·갈회색 역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진주층이다. 이례재는 북서부의 해발고도 340m의 산지와 의봉산(儀鳳山)[551m]의 한 줄기인 남동부의 440m 산봉우리 사이의 곡부에 위치하며, 해발고도는 약 170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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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호는 모은(慕隱). 증조할아버지는 이장경(李長庚)이고, 할아버지는 성산군 이조년(李兆年)이며,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이포(李褒)이다. 형제로 이인복(李仁復), 이인임(李仁任), 이인립(李仁立), 이인달(李仁達), 이인미(李仁美) 등이 있다. 외조부는 설문우(薛文遇)이고, 장인은 진승서(陳承緖)와 윤당(尹襠)이다. 아들 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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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극례(克禮), 호는 초은(樵隱). 할아버지는 성산군(星山君) 이조년(李兆年)이고,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을 지낸 이포(李褒)이다. 권신인 이인임(李仁任)의 형이다. 아들로 이향(李向)과 이용(李容)을 두었다. 이인복(李仁復)[1308~1374]은 지금의 고령군 성산면에서 태어났다. 1326년(충숙왕 13) 문과에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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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중(子重), 호는 승암(勝巖). 할아버지는 성산군 이조년(李兆年)이고, 아버지는 성산후 이포(李褒)이다. 이인임(李仁任)[?~1388]은 지금의 고령군 성산면에서 태어났다. 음보(蔭補)로 전객시승(典客寺丞)이 된 후 전법총랑(典法摠郞)을 거쳐 1358년(공민왕 7) 좌부승선(佐副承宣)이 되었다. 1359년(공민왕 8) 홍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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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원로(元老), 호는 매운당(梅雲堂)·백화헌(百花軒). 증조할아버지는 이돈문(李敦文)이며, 할아버지는 이득희(李得禧)이고, 아버지는 경산부(京山府) 향리 이장경(李長庚)으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인은 경산부사 정윤의(鄭允宜)이다. 아들로 검교시중(檢校侍中) 이포(李褒)를 두었고, 손자로는 이포의 아들인 이인복(李仁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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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정구 선수. 1930년대에 들어 고령 지역에는 정구의 붐이 크게 일어났다. 그 계기는 당시 일본 정구 대회를 10여 년간 석권해 오던 안동 출신의 조선 최고 선수인 권복인(權福仁)이 고령 영림창(營林廠)으로 부임해 온 것이었다. 권복임은 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고령에서 선수를 발굴하여 지도한 결과, 당시 정구가 성행하던 거창·합천·성주·밀양·진주·마산·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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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이만년(李萬年)의 현손(玄孫)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태보(李台寶)이고, 할아버지는 이득방(李得芳)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이비이다. 형으로 이조판서에 증직된 문정공(文靖公) 고은(孤隱) 이지활(李智活)[1434~1457]이 있다. 이지활은 단종의 폐위 이후 박유산(朴儒山)에서 망월정을 짓고 애절한 시를 읊으며 지내다가, 단종의 죽음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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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김면이 왜선 두 척을 포획한 전투. 2차 무계전투에 대한 기록은 『문수지』와 『용사일기(龍蛇日記)』에만 보이고 『모계일기(茅谿日記)』나 『고대일록(孤臺日錄)』 등의 다른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2차 무계전투의 노획 물품은 개산포대첩의 노획품과 함께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게 보내졌기 때문에 개산포대첩에서 획득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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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상가(尙加). 할아버지는 경산부(京山府) 향리 이장경(李長庚)이고, 아버지는 예문관대제학(禮文館大提學)을 지낸 이조년(李兆年)이다. 아들로 이인복(李仁復), 이인임(李仁任), 이인미(李仁美), 이인립(李仁立), 이인달(李仁達), 이인민(李仁敏)을 두었다. 이포(李褒)[?~1373]는 1323년(충숙왕 10) 문과에 급제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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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고령군은 경상북도 남서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남도 창녕군, 남쪽은 경상남도 합천군, 서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상남도 거창군, 북쪽은 경상북도 성주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내륙 지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의 연교차가 크고, 특히 여름에는 영천시, 대구광역시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유명하다. 경관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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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경상북도 지방을 대표하는 도자기 주산지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기록된 고령현 소속 공장에 소속된 사람들을 보면 야장(冶匠)·시장(矢匠)·피장(皮匠)·목장(木匠)·석장(席匠)·칠장(漆匠)·유구장(油具匠) 각 1명, 지장(紙匠) 3명, 사기장(沙器匠) 6명 등 모두 16명이다. 이 중 도자기를 제조하는 사기장이 6명으로,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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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손인갑과 정인홍의 부대가 왜군을 물리친 전투.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후 동래로부터 좌·중·우의 삼로(三路)로 갈라 한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이때 우로의 왜군은 동래-김해-무계-지례-금산-추풍령-영동-청주-경기도를 따라 진군하였고, 경상북도를 장악한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는 개령현에 주둔하고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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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맞서 고령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부산포를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왜군의 주력 부대는 동래-기장-좌수영-울산-경주-영천-의흥-군위-문경의 좌로(左路)와 동래-양산-밀양-청도-경산-대구-안동-선산-상주의 중로(中路), 동래-김해-창원-영산-창녕-현풍-성주-지례-금산-추풍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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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를 연결하는 다리. 교량이 있는 곳이 수륜면 남은리 작천마을에 있기 때문에 마을의 이름을 따서 작천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작천이란 지명은 마을 앞에 개천이 흐르고, 옆에 있는 산의 모양이 까치가 나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유래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작천교는 교장 170.0m, 총 폭 9.0m, 유효 폭 8.0m, 교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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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때 고령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에 맞서 싸운 전투. 1597년(선조 30) 왜군이 조선을 재침략한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8월 초순 왜군이 고령 방면으로 침입하자 정기룡(鄭起龍) 장군이 고령에서 왜군과 맞서 7월 15일 도진리전투, 8월 7~8일 둔덕대첩, 8월 16일 용담천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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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동래(東萊). 할아버지는 정절공(靖節公) 설학재(雪壑齋) 정구(鄭矩)이다. 정구는 좌찬성을 지냈으며, 예서·초서·전서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다. 청렴하고 예의가 발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으로 옮겨 살았는데, 그의 자손들 역시 양주와 수원 등 경기 지역에서 많이 살았다. 아버지는 판관 정선경(鄭善卿)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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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경상북도 고령군에 설치되었던 수리 시설. 제언이란 바닷물이나 강물을 막아서 농업용수를 저장·관리하는 수리 시설, 즉 돌이나 흙 등으로 쌓은 둑을 말하는데 벼농사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예로부터 국가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에서 제언은 일찍이 삼한시대에도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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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고령 지역의 역사. 조선시대는 1392년 조선 건국에서 1910년 한일합방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의 역사를 말한다. 여기에서는 조선시대 지방 제도와 고령, 고령의 향촌 자치, 고령의 경제와 산업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던 조선의 지방 행정 제도는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 전국을 8도로 나누는 등 전면적인 개편이 이루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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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죽유 종택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의병장인 오운(吳澐)을 기리기 위해 지은 종가이다. 오운[자는 태원(太源), 호는 죽유(竹牖) · 죽계(竹溪)]은 1540년에 출생하였으며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에 등용되어 학유, 직강 등을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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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에서 성주군 용암면 덕평리로 넘어가는 고개. 칠령재의 주변 산지를 구성하는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및 상부 쥐라기에 형성된 낙동층으로 이암·사암·역암 등이며, 회록색 내지 갈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칠령재는 북서쪽의 추산(楸山)[524.1m]과 연결되는 능선에 있는 해발고도 260m의 산봉우리와 서쪽의 해발고도 241m의 산봉우리 사이에 위치한 해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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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쾌빈리 고분군은 대가야읍내 중심지에서 성주 방향으로 약 2㎞ 떨어진 국도 33호선 왼쪽 구릉에 위치한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본관리 고분군 사이에 있다. 전방 동쪽으로는 가야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한 소가천이 남쪽으로 흐르며 대가천에 합류하는 곳이며, 일대 대가천 변에 충적 평야가 발달해 있다. 구릉의 고위 산등성이에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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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 쾌빈리 1호 덧널무덤은 고령읍내 중심지에서 성주 방향으로 약 2㎞ 떨어진 국도 33호선의 왼쪽 언덕에 위치한다. 쾌빈리 고분군의 전방 동쪽에는 가야산 남쪽 산기슭에서 발원한 소가천이 남류하여 고령의 주천인 대가천에 합류한다. 따라서 쾌빈리 고분군의 전방 일대는 천변 충적지가 잘 발달해 있다. 쾌빈리 1호 덧널무덤은 언덕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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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는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집을 짓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이다. 풍수지리에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으며, 실제로 조경과 건축 등에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는 주로 묘지 풍수나 주택 풍수, 명당(明堂)과 같은 터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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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있는 효부 해주오씨의 비각. 효부 해주오씨(海州呉氏)는 창녕인 조규승의 처로 오원의 딸이다. 시집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백방으로 약을 써 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는데,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 그런데 시아버지께서 보니 며느리가 다리를 절고 있어 그 연유를 물으니 자신의 살을 베어 드렸다는 말을 하자 감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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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정치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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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서 발원하여 소가천·안림천 등을 합류하고,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에서 낙동강의 중류로 흘러드는 하천. 회천은 대가천(大伽川)·소가천(小伽川)·안림천(安林川)·용담천(龍潭川)이 모여서 된 하천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회천은 낙동강 권역의 낙동강 수계에 속하며, 고령군 운수면에서 시작하여 대가야읍 본관리에서 소가천이 흘러들고, 대가야읍 동남 하류 지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