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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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 강정마을에 있는 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강정마을 나무에 얽힌 전설」은 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에 자결한 영월댁 사이의 고부갈등담이다. 성산면(星山面) 강정리(江亭里) 강정(江亭)은 조선 중엽 성봉화(成鳳和)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수년 후 마을 뒷산 기슭인 낙동강 주변에 정각을 짓고 공부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강변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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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에서 곽재우 장군과 왜양못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곽재우 장군과 왜양못」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 곽재우(郭再祐)[1552~1617] 장군이 전공을 세웠다는 전쟁무용담이자 후퇴하던 왜군이 많이 빠져 죽었다는 연못에 대한 지명유래담이기도 하다. 곽재우 장군은 조선시대의 의병장으로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본관은 현풍(玄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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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 강정마을에서 위령제와 웅덩이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귀신이 보답한 효험 있는 웅덩이」는 공사장의 웅덩이에서 나온 인골의 위령제를 지낸 후에 웅덩이에서 약물이 솟아올랐다는 풍수담이다. 강정리 강정(江亭)마을은 조선 중엽 성봉화(成鳳和)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수년 후 마을 뒷산 기슭인 낙동강 주변에 정각을 짓고 공부하였다.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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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에서 당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당고개와 선비 전설」은 꿈에 나타나 선몽한 백발노인으로 인해 목숨을 건진 선비가 사당을 세웠다는 구사일생담이다. 또한 진두나루가 당고개로 바뀌고, 물로 인하여 사람들이 몰살당했다는 몰인대와 반대편 마을은 사람들이 살았다는 활인대 등에 대한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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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에서 장수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대가야의 장수바우」는 대가야의 장수가 손으로 바위를 짚어 바위에 손자국을 남겼다는 장수바우에 대한 암석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장수바위는 장사암, 장수암 등으로도 불린다.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는 마을 개척 당시 먹으면 힘이 세지는 기이한 풀이 칡덩굴 아래에서 자랐다는 곳이며, 또한 마을 안의 못에서 미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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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학암덤 절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몽고의 침입과 학암덤」은 고려시대에 몽고가 침입하자 학암이라는 호를 가진 윗대 할아버지가 피난을 하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2년에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주민 박돈헌[남, 50]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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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서 봉수대와 제석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봉수대와 제석산」은 전란 때 봉화를 올려 한양에 알린 제석산과 봉화산, 그리고 의봉산 등에 있는 봉수대전설이다. 고령군 성산면 일대는 여러 산으로 둘러져 있는데 그 중 의봉산, 봉화산, 그리고 제석산이 대표적인 산이다. 이 세 산은 모두 과거 봉화를 피우던 산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꼭대기에 봉화대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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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서 봉화산 소나무와 처녀 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봉화산의 처녀 곰」은 어여쁜 처녀가 된 곰의 변신담, 처녀와 사냥꾼 사이의 애정담, 그리고 사냥꾼의 배신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18일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 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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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수양버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수양버들에 얽힌 이야기」는 아랑낭자가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간 배도령을 기다리다가 자결했다는 열녀담이자 강가에 수양버들이 되어 애절한 모습으로 피어났다는 식물담이기도 하다. 1988년 고령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 지방의 민담·전설 및 지명 유래』와 2006년 고령군에서 발행한 『옛날 옛적 고령에서』, 그리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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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이마에 뿔난 사람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액유각인」은 이마에 뿔이 난 미오사마국(弥烏邪馬国) 왕자가 소와 바꾼 흰 돌이 변신한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서 일본에까지 건너갔다고 하는 이주도래담(移駐渡来談)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11월 9일 경상북도 고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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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에서 동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운산1동 동굴에 얽힌 이야기」는 동굴 입구를 막으면 강 건너 마을 처녀가, 동굴 입구를 헐어 버리면 운산동의 처녀가 바람난다는 풍수담이자 동굴에서 기운이 센 장수가 살았다는 인물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97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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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에서 이여송과 이실고개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여송과 이실고개」는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이 큰 인물이 태어나는 것을 꺼려서 지맥을 찾아 맥을 끊었으나 결국 실패했다는 지명유래담이자 풍수담이다. 다산면 노곡리는 낙동강변의 넓고 기름진 땅에 논이 많다고 하여 일찍이 ‘논실’, 혹은 ‘전곡(田谷)’이라 불렸고, 개척 당시에는 갈대숲이 우거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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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장씨 박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장씨 박골 전설」은 꿩이 알을 낳은 곳이라는 뜻으로 장씨 박골이라고 한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이는 「알터 전설」의 전반부와 내용이 같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11월 13일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직리 주민 이춘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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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서 하로다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로다의 유래」는 노인들이 많다는 뜻과 노론의 무리가 많은 곳이란 뜻을 지닌 지명유래담이다. 다산면 송곡리의 하로다(下老多)마을은 금곡(金谷) 혹은 송곡(松谷)이라 일컫기도 한다. 금곡은 가을에 단풍이 들면 골짜기가 비단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생긴 것이고, 송곡은 소나무가 울창하여 생긴 것이다. 마을의 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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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 이두훈이 지은 역사서. 이두훈(李斗勳)[1856~1918]은 본관이 성산이씨로 국포(菊圃) 이문룡(李文龍)의 9세손인 이인한(李寅漢)의 아들이다. 초명은 이중훈(李中勳), 자는 대형(大衡), 호는 홍와(弘窩)이다.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만년에 내산서당(乃山書堂)을 지어 교육에 힘썼다. 예학에 뛰어나 예설과 관계된 서간문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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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년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신라 진흥왕은 562년(진흥왕 23) 대가야를 멸망시킨 뒤 나라 이름을 그대로 군의 명칭으로 삼아 대가야군으로 편제하고, 예하에 적화촌[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가야면 일원, 고령군 쌍림면 일부]과 가시혜성(加尸兮城)[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개진면 일원]을 두었다. 대가야의 직접 지배 영역이었던 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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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년 대가야 이뇌왕(異腦王)이 신라 법흥왕에게 구혼을 청하여 맺은 대가야와 신라 사이의 결혼동맹. 6세기 들어 고구려의 남하 정책으로 신라와 백제의 우호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 무렵 신라는 종래의 왕호(王號)인 마립간을 ‘왕(王)’으로 바꾸고 국호를 확정한 후, 대외적인 팽창을 재개하고 법흥왕 대에 율령 반포와 공복을 제정하는 등 완전한 중앙집권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백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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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은 고대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대가야의 수도였다. 철의 왕국 대가야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강력한 지배권을 확립했으며 가야 도공의 숨결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바탕이 됐다. 21세기 고령군은 이런 문화유산을 앞세워 ‘새로운 낙동강시대와 대가야르네상스를 선도하는 고령’으로 거듭 나는 한편, 인근 성주군 등 고대 가야문화권 지역 13개 시·군[대구광역시 달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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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예사 사람들과 구별되는 절대적 권위와 초월적 경이를 지닌 이야기이다. 또 신화는 현실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초월적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예사로 들어 넘길 수도, 사실 여부를 따질 수도 없다. 그러나 신화는 일상생활에서 검증할 수는 없지만 일상적인 경험 이전에 또는 일상적인 합리성을 넘어 존재하며, 그 진실성과 신성성을 의심하지 않을 때 신화는 신화로서의 생명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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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에 있던 나루터. 강정나루터가 위치한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는 본래 경상북도 성주군 다산면에 속하였던 곳으로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1914년의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지내동을 병합하여 곽촌동으로 불리다가 1988년 5월 1일에 행정 구역 명칭이 ‘동’에서 ‘리’로 바뀌면서 곽촌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꽉갈, 깍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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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와 강정리 사이에 형성된 평야. 강정들은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 마을 주변에 있는 평야로서, 강정마을의 지명을 가지고 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정마을은 조선 중기 때 한 선비가 개척한 마을로, 마을을 개척한 수년 후 마을 뒷산인 봉화산[108m] 기슭 낙동강 변에 정각을 짓고,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즉, 낙동강 강변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강정(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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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엽 선비 성봉화(成鳳和)가 마을을 개척하고 몇 년 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뒷산 기슭에 정자를 짓고 글공부를 하였다. 이에 강변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므로 강정(江亭)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형곡동을 병합하여 강정동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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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에 있는 창녕성씨 동성마을. 입향조인 선비 성봉화가 마을 뒷산 기슭 낙동강 변에 정자를 지어 학문을 닦았는데, 강변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므로 강정이라 하였다. 조선 중엽 성봉화가 마을에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성풍세(成豊世)[1572~1649]의 고향이기도 하다. 강정리는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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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있던 포구. 개경포(開經浦)는 개진면 개포리 앞 낙동강 변의 포구로 옛날에는 소금을 비롯한 곡식을 실어 나를 정도로 번창하였다. 개경포라는 이름은 현재 해인사에 보관된 ‘강화경판 고려대장경’[일명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서 낙동강을 거쳐 개포나루를 통해 이운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달리 개포나루, 개포진(開浦津), 개산강(開山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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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는 기념 공원. 개경포 또는 개포를 한때는 개산포라고 불렀다. 세계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강화도에서 선편으로 서해와 남해, 낙동강을 거쳐 개포나루에 내려 영남 일대의 승려와 신도들이 고령읍[현 대가야읍]을 거쳐 해인사(海印寺)까지 운반한 유래가 있어 대장경의 ‘경(經)’자를 추가하여 ‘개경포’ 또는 ‘장경나루’라 부르다가, 일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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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고령 개산포에서 김면이 이끈 의병이 왜적을 물리친 전투. 개산포대첩은 의병장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노고산성(老姑山城)과 무계리산성(茂溪里山城)에 의병을 집결시켜 왜군의 낙동강 운행에 일대 타격을 가한 전투이다. 개산포는 김면이 살았던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낙동강 쪽으로 불과 6~7㎞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면서 현풍의 도동 쪽에서 고령으로 바로 건너오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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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생산되는 무공해 감자. 개진감자는 낙동강 연안의 알칼리성 토질에서 재배되어 전분이 많고 저장성이 탁월하다. 고령군 개진면 지역은 낙동강 변의 퇴적물이 충적되어 배수가 양호하여 감자 재배지로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개진감자는 이러한 사질토양에서 재배되어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감자보다 전분이 탁월하게 많아 맛이 좋고, 비타민이 풍부하여 영양가가 높으며,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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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반운리에 있는 농공 단지. 농공 단지는 1983년 말에 제정되어 1984년부터 시행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에 의하여 지정되었다. 고령군에는 5개의 산업 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3개의 지방 산업 단지와 2개의 농공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다산지방산업단지의 규모가 가장 크며, 그 다음이 개진농공단지, 쌍림농공단지, 개진지방산업단지의 순이다. 개진농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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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개포(開浦)의 ‘개’자와 진촌(津村)의 ‘진’자를 따서 개진면(開津面)이라 하였다. 신라시대에 대가야군에서 고양군이 되었고, 고려시대에 영천현으로 개칭하여 감무를 두었으며, 1394년(태조 3) 고령현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고령군 구곡면(九谷面)이 되어 개포·시례(詩禮)·한제(漢制)·오사(吾士)·광도(廣道)·구곡(九谷)·봉동(鳳洞)의 7개 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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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던 나루터. 개포리는 본래 고령군 구곡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마을 앞 낙동강 강변에 개포나루가 있어 개포리라 하였다. 원래는 개산포구마을로 불렸는데, 고려 때 개경포(開經浦)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됨에 따라 시례동과 한제동을 병합하여 나루의 이름을 따 ‘경’자를 빼고 개포동이라 하였다. 이후 개포동은 개진면에 편입되었으며,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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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포(開浦)는 원래 개산포구(開山浦口)로, 일찍이 낙동강을 이용한 수운(水運)의 요지로서 소금과 곡식을 운반한 선창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고려시대에 팔만대장경판을 강화 전등사에서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로 옮길 때 서해안을 거쳐 김해의 낙동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와 개포나루에 이른 뒤, 육로로 대가야읍 화갑을 거쳐 해인사에 다다랐다. 이후부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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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개포리 고분군은 대가야읍 중심부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8㎞ 떨어져 있는 낙동강 개포마을의 뒷산에 위치한다. 고분군 상부에서 개포마을 쪽으로 보면 마치 부챗살처럼 해발 40~160m 사이의 가지 능선과 각 비탈면에 군데군데 파괴된 고분 또는 고분 석재로 추정되는 것들이 산재해 있다. 개포리 고분군에서는 발굴 조사된 고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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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개진면 직리 열뫼마을에서 개포리 개포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열뫼재라는 고갯마루를 넘어가야 한다. 개포리 고인돌은 열뫼재를 올라서 바로 왼쪽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다. 열뫼재를 넘으면 곧바로 군도 4호선 왼편으로 민묘와 론테크 공장이 나오는데, 민묘 바로 옆에 1기가 자리 잡고 있다. 2006년 대가야박물관에서 시행한 고령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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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에 있던 가야시대 나루터. 객기나루터가 위치한 곳은 본래 현풍군 왕지면(旺旨面) 지역으로서 소재지는 왕지면 새터 471번지이다. 1896년(고종 33년) 지방 관제 개편에 의하여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터, 새터와 하미면의 사등동을 병합하여 객기동이라 해서 우곡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洞)’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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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객기리(客基里)에는 손터, 정터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손터는 대가야시대부터 손터나루터[일명 객기나루터]로 불리던 곳으로, 낙동강을 이용하여 김해(金海)·구포(龜浦), 멀리는 외국과도 통하던 수상 교통의 요지였고, 창녕·마산·합천·성주 지방과 육로 교통을 연결하는 요지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고령 방면으로 침공하던 왜군이 이곳을 통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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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에 있는 경주김씨 동성마을. 낙동강 상류와 하류, 내륙 지방의 육로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였던 까닭에 많은 행인들이 묵어가거나 거쳐 가는 곳이어서 손터라 하였다. 객기(客基)는 손터의 한자 표기이다. 객기마을이 속한 객기리는 조선 말기 현풍군 왕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6년(고종 32)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터·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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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에 있는 경주최씨 동성마을. 객기리(客基里)에는 손터[客基], 새터[新基]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손터는 낙동강 상류와 하류, 내륙 지방의 육로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였던 까닭에 많은 행인들이 묵어가거나 거쳐 가는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객기(客基)는 손터의 한자 표기이다. 새터는 손터가 생긴 뒤 새로 개척한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그릇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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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박씨 소윤공파 27세손인 박재흔[1924년생] 씨는 도진마을 최고령자 중의 한 사람이다. 박재흔 씨는 일제 강점기인 1923년 도진마을에서 3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학교 문턱에조차 가 보지 못했다. 땅 한 뙤기 없는 상황에서 박재흔 씨는 집안의 입 하나를 덜기 위해 7세 때부터 남의 집 꼴머슴부터 시작해 과수원 노동, 건축 미장공을 차례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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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경상북도 고령군은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성주군, 경상남도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광주대구고속도로[구 88올림픽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동서남북으로 관통하고 동고령JC 및 IC와 고령IC가 국도 26호선 및 국도 33호선으로 연결되는 등 전국 어디에서나 3시간 이내 접근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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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산지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낮은 안부(鞍部)에 오랫동안 주민들이 왕래하면서 만들어진 교통로. 고개는 산지 능선의 해발고도가 높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낮은 안부로서 오랫동안 주민들이 왕래하면서 만든 교통로이다. 안부는 대체로 절리 밀도가 높은 곳이나 암석의 경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부분이 풍화 작용으로 형성된다. 고개의 영어명 ‘pass’는 ‘passa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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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조리에는 오래 전부터 지산 고분을 오르며 장삿길을 열었던 고령 보부상의 후예들이 많다. 이들은 대가야 시대 선조들이 낙동강을 따라 세계로 나아갔듯이, 튼튼한 다리 하나로 온갖 물건들을 이고 지고 전국 방방 곳곳으로 다녔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고령 보부상의 후예들은 지산 고분을 넘고 또 넘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어려운 가세를 일으키고 부모 봉양과 자녀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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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딸기 생산지 가운데 한 곳이다. 고령군에서 딸기 재배가 성행하는 곳은 합가리를 포함한 쌍림면과 대가야읍 일대이다. 가야산과 낙동강에 접해 있는 고령군의 지형과 토질이 다양한 만큼 재배되는 농산물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낙동강이나 회천에 인접한 성산면과 다산면, 우곡면 등지에서는 참외와 멜론, 향부자, 수박 등의 작물을 주로 재배한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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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랑채. 장육당은 조선 후기의 학자 이윤(李玧)이 거처하던 사랑채이다. 이윤의 자는 여온(汝溫), 호(號)는 장육당(藏六堂)이다. 문음으로 통덕랑(通德郞)을 받았다. 참의 이지화(李之華)의 아들이고 손처눌(孫處訥)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외가의 일로 벼슬에 나가지 못하였으나 후학 교육에 힘써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부윤 윤리(尹理)·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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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삼대리와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위천리를 연결하는 다리. 대구에서 낙동강을 지나 고령으로 진입하는 초입에 위치하여 고령의 관문 역할을 담당하므로 고령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초기에 건설된 옛 고령교는 교장 300m, 총 폭 7m의 교량이다. 현재의 고령교는 교장 721.6m, 총 폭 11.5m, 유효 폭 10.0m, 교고 15.5m이다. 경간 수는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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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고령군은 경상북도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경상남도와 접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시와 맞닿아 있다. 서쪽에 있는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大伽川)과 합천군 야로면에서 내려온 안림천의 물길이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만들며 흘러내려 대가야읍에서 합쳐져 회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처럼 고령군은 서쪽의 높은 산과 동쪽의 낙동강으로 보호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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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던 공산주의자 조직. 고령군 인민위원회는 6·25전쟁 중 고령을 점령한 북한 공산군이 점령지를 공산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점령 정책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설립되었다. 6·25전쟁 당시 고령군의 경우, 북한 공산군이 1950년 8월부터 9월까지 약 2달 간 머물러 있으면서 공산군 사단 본부가 있는 저전동[낫질]에 고령군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인천 상륙 작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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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고령군 관할 행정 기관. 고령군은 42년(신라 유리왕 19)에 이진아시(伊珍阿豉)왕이 대가야국을 세워 그 도읍지로 삼고 왕조 16대 520년을 이어오다 562년(신라 진흥왕 23)에 신라에 병합되어 대가야군(大伽倻郡)으로 되었다. 이후 757년(경덕왕 16) 고양군(高陽郡)으로 개칭, 강주(康州)[현재의 진주]에 소속되었다. 1018년(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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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농기구 생산 업체. 고령장 대장간으로는 현재 고령대장간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고령대장간은 매월 4일과 9일에 열리는 고령오일장 안에 위치하고 있는 50년 전통의 대장간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되고 있다. 고령오일장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시대에 대가야읍 장기리에 큰 시장이 형성되어 영남 내륙의 곡물을 낙동강 수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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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고령성산교회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 주님의 말씀을 이루는 교회’라는 목적 아래 고령군 성산면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5년 고령군 성산면 삼대2동의 허수가 낙동강 멍덤나룻가에서 선교사로부터 전도지를 받고 김경호와 함께 사부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였다. 1916년 1월 12일 고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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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 있는 정보화 마을. 고령안림딸기마을은 지형적으로 경상북도의 최남서단에 위치하여 대구광역시와 접하고, 88고속도로 고령인터체인지와 바로 접하는 사통오달하는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가야산과 낙동강 사이의 환경이 쾌적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전원 도시, 근교 농업, 중소 규모의 공업지로 투자 가치가 충분한 매력이 있어 각광받는 곳이다. 고령군 쌍림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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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의 발전을 위해 결성된 관민협의체. 고령군 지역 개발의 전반적인 방향과 관련된 문제점과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고령지역발전협의회는 지역의 사회, 문화, 환경, 역사 보존 등 지역 발전을 위한 연구 활동의 추진과 함께 군정 참여 및 평가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2009년 4월부터 12차례에 걸쳐 읍·면 회장단을 구성한데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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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묘제 중 하나.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선사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이다. 고인돌이라는 명칭은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일본에서는 주로 지석묘(支石墓)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석붕(石棚)·대석개묘(大石蓋墓), 유럽에서는 대체로 거석기념물 또는 돌멘이라고 부른다. 세계적으로 선돌[立石]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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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이 나타나 있는 조선시대 지도. 고지도는 근대적인 투영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의 회화적인 지도를 말한다. 주로 행정·군사적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나 실학(實學)이 일어나면서 산업·경제·문화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산맥과 하천·항만·도로망 등의 표시가 정밀해졌다. 고지도는 지도에 수록되는 지역의 규모에 따라 세계 지도, 천하지도, 전국지도, 지방지도, 군현 지도,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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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원(高天原)은 일본 역사 서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일본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에서 나왔다. 일본 건국 신들의 고향이 바로 고천원인 것이다. 고천원이 어디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이설(異說)이 분분한 가운데 한·일 역사학계에서는 고천원이 후기 가야의 수도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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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시민들의 보건·휴양·놀이 등을 위하여 설치한 시설이나 공공녹지. 고령군에는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은 없지만 여러 곳에 대가야 관련 기념관 및 유적지 등을 비롯하여 많은 공원이 분포하고 있으며 별도로 조성된 공원으로는 개경포기념공원, 주산산림욕장, 중화유원지, 생활체육공원, 고천원공원 등이 있다. 1. 개경포기념공원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낙동강을 따라 경상도 내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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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이루어지는 자연 과학·응용과학·공학 및 생산 기술의 총칭.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으로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의미하나 좁은 뜻으로는 자연 과학을 지칭한다. 그리고 기술은 과학의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자연의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은 상호 밀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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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개척 당시 뒷산 칡덩굴 아래 자라는 기이하고 향기로운 풀을 먹으니 힘이 세어지고 장수가 났다 하여 곽갈(藿葛)이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반상(班常)의 차가 심하여 까다롭다고 하여 꽉걸이라고도 하였고, 옛날 마을 안에 있던 못에서 미역이 났다 하여 곽촌(藿村)이라고도 하였다. 달리 깍껄·꽉깔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성주군 다산면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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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에 있는 달성서씨 동성마을. 곽촌리에는 곽촌(藿村), 못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곽촌은 옛날 마을에 있던 연못에서 미역이 났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개척 당시 뒷산 칡덩굴 아래 자라는 기이하고 향기로운 풀을 먹으니 힘이 세어지고 장수가 났다 하여 곽갈(藿葛), 마을 사람들이 반상(班常)의 차가 심하여 까다롭다고 하여 꽉걸이라고도 하였다. 달리 깍껄·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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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에 있는 대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곽촌리 유물산포지(1), 곽촌리 유물산포지(2)로 구분되어 있다. 두 유적은 개뚝천을 사이에 두고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다산면사무소가 있는 평리리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도로 좌측에 곽촌리 곽촌마을이 나온다. 곽촌마을의 서쪽에 우뚝 솟은 미륵봉이 있고, 거기서 동쪽으로 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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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낙동강과 가야산이 이루어 놓은 고령은 서기 42년부터 520년까지 대가야의 수도로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웠던 유서 깊은 고장이다. 특히, 예술성과 실용성이 뛰어난 토기 문화와 갑옷 등의 철기 문화를 비롯하여 가야금을 만든 한국 3대 악성의 한 사람인 우륵의 공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고령의 주요 관광지를 명소 관광, 테마 관광,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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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지형지물의 위로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인공 구조물. 고령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와 경계하고, 군의 중심부 및 주변 지역에는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소가천, 대가천, 안림천, 회천 및 기타 지류 하천들이 흐르고 있어 교통 소통에 있어 교량 가설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현재 많은 교량들이 건설되어 있다. 고령군의 교량 현황을 도로 종류별 및 읍면별로 살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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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1. 조선시대 고령은 예로부터 대구에서 현 경상남도 합천군과 거창군, 경상북도 성주군 등의 지역을 연결해 주는 육상 교통의 중간 요충 지대였다. 대구와 고령 간의 물자 이동과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여 두 지역 간의 교통로가 발달하였다. 그리고 낙동강 수운을 통해 부산 방면의 물자와 사람의 왕래도 빈번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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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에 있던 나루터. 구곡리(九谷里)는 본래 고령군의 지역으로 범이 살았던 범산골, 절이 있던 절골, 바위에 글이 있었던 문바위골, 문안 같은 문안골, 고기를 구웠던 국게골, 원당사가 있었던 원당골, 햇빛이 많이 비치는 대양골, 동에 있는 전방골, 골이 깊은 올방골 등의 아홉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어 ‘구실’ 또는 ‘구곡’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시대 ‘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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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올밧골, 올밤골, 건진골, 월당골, 진방골, 밋골, 문안골, 골안골, 새안골 등 아홉 골짜기로 둘러싸여 구실 또는 구곡(九谷)이라 하였다. 범이 살았던 범산골, 절이 있던 절골, 바위에 글이 있었던 문바위골, 문안 같은 문안골, 고기를 구웠던 국계골, 원당사가 있었던 원당골, 햇빛이 많이 비치는 대양골, 동에 있는 전방골, 골이 깊은 올방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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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를 이루는 다산면과 개진면 일대의 저평한 침식 구릉 지대에는 제4기 홍적세 층이 발달하였다. 그곳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으로는 상곡리 구석기 유적, 구곡리 구석기 유적, 반운리 구석기 유적이 있다. 구곡리 구석기 유적은 낙동강 하안 단구 지대의 고령기와공장 주변에 있다. 현재는 제방을 높게 쌓아 낙동강의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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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에 있는 김해허씨 동성마을. 올밧골, 올밤골, 건진골, 월당골, 진방골, 밋골, 문안골, 골안골, 새안골 등 아홉 골짜기로 둘러싸여 구실 또는 구곡(九谷)이라 하였다. 이와 달리 범이 살았던 범산골, 절이 있던 절골, 바위에 글이 있었던 문바위골, 문안 같은 문안골, 고기를 구웠던 국계골, 원당사가 있었던 원당골, 햇빛이 많이 비치는 대양골, 동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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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마을 앞 낙동강이 흐르는 일대에 늪, 즉 벌이 뒤덮여 있어 붙인 이름이다. 달리 지버리·재벌이라고도 한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알 수 없고, 다만 약 300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인근 봉동마을에 안동권씨가 세거하여 온 점으로 미루어 봉동과 같은 시기에 안동권씨가 지벌리마을에 들어왔을 것으로 여겨진다. 봉동마을에는 지금도 안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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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말로 전해 내려오는 민간 문화의 총체. 구비전승(口碑傳承)은 비석에 새긴 것처럼 유형화(類型化)되어 오래도록 전하여 온 말이라는 뜻이다. 언어로 전승되는 구비전승 가운데는 언어 예술적 성격을 갖는 것과 속신과 욕설 그리고 민간요법처럼 언어 예술로 볼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언어 예술적 성격을 갖는 것이 바로 구비문학이다. 지금까지 구비전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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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평리리에 있는 국립환경과학원 산하 연구소. 국립환경과학원 낙동강물환경연구소는 조사 연구 사업, 환경 기초 조사 사업, 수질 자동 측정망 운영, 목표 수질 및 유량 조사 사업, 조류 예보제 등을 통한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1994년 7월 16일 낙동강수질검사소로 개소되어 2002년 8월 8일 낙동강물환경연구소로 기관 명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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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직리에서 성산면 득성리에 연결되는 군도. 군도4호선은 개경포로라고도 하는데, 팔만대장경나루터로 가는 도로로 역사적인 지명을 반영한 것이다. 고령군 대가야읍에서 개진면을 거쳐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으로 갈 수 있는 도로이며, 개진면에서 오곡리를 거쳐 성산면 소재지로 갈 수 있는 도로가 요구되었다. 고령군 개진면 직리에서 개포나루터의 낙동강을 따라 개진면 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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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에 있는 고개. 기산고개는 깃대봉[311m]과 성산면 기산리 기산마을 뒷산[248.2m] 사이에 있는 안부로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 거의 평지에 가까운 고개이다. 이 고개는 금산재와 더불어 고령과 대구를 왕래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중요한 교통로로 여겨지고 있다. 기산고개의 서쪽에 위치한 성산면 기산리 기산마을의 이름을 따 부르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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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직리와 성산면 기산리에 걸쳐 있는 산. 깃대봉은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낙동통에 속하는 진주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주층은 하산동층을 정합적으로 덮고 있고, 이암·셰일·사암이 주를 이루며 부분적으로 역질사암도 나타난다. 본층에 협재된 엷은 탄질셰일은 이층이 형성되던 환경이 배후 습지성 소택지였음을 시사하므로, 중생대 백악기에는 깃대봉 일대가 배후 습지성 소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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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나룻배가 닿고 떠나는 일정한 곳. 나루는 교통로와 연결되어 발달한다. 육지가 연속된 곳에서는 도로가 발달하지만 큰 강이 흘러서 육로를 차단하는 곳에서는 육로와 육로를 연결하는 배를 정박시키는 시설이 갖추어진 장소가 필요한데 이것이 나루터이다. 대체로 유량이 풍부하여 선박이 운항할 수 있는 하천에는 배를 이용한 이동이나 물자의 수송이 더욱 효과적이다. 따라서 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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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 불당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를 지나는 하천이라서 나정천이라고 한다. 나정(羅亭)은 임진왜란 때 전라도에 사는 기씨(奇氏)가 이곳에 와서 정자나무를 심었으므로 전라도의 나(羅)자를 따서 불렀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마을 앞 정자에서 뒷산을 바라보니 비단을 펼쳐 놓은 것 같이 보인다고 하여 나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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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시 함백산(咸白山)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안동시를 거쳐, 고령군의 하천과 합류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강. 낙동강 유역의 지리적 범위는 최북단의 경우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 황지천 상류이고, 최남단의 경우에는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갈천천의 상류이다. 낙동강 유역의 최동단은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백암산이고, 최서단은 지리산 지역인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장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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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낙동강 연안의 홍수와 가뭄에 대한 대책으로 실시된 종합 개발 사업. 낙동강개발사업은 1987년부터 시작되었으며 낙동강 유역의 토지 및 수자원을 지역 특성에 맞도록 종합적으로 개발하여 한해와 수해를 방지하고 농업 기반 시설의 확충으로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한국 제2의 하천인 낙동강은 안동에서 하구에 이르는 중류부와 하류부는 하상 경사가 완만하고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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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는 낙동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고령 지역은 낙동강 총 연장의 20%에 해당하는 55㎞의 연안을 끼고 있어 옛날부터 왜관과 함께 낙동강 중류의 중심 고장이 되었다. 대가야읍 고아리 일대의 지명이 ‘배울’·‘뱃골’·‘주곡(舟谷)’인 데서도 알 수 있듯 이곳은 대가야 시절 배를 건조하던 곳이기도 했다. 고령군에는 잘 알려진 것처럼 개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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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인안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배신을 제향한 서원. 배신(裴紳)[1520~1573]은 조선 중기 학자로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경여(景餘), 호는 낙천(洛川)이다. 조선시대 동인에 속했으며 남명(南冥) 조식(曺植)으로부터 수학하고 후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배웠다. 스승인 조식이 죽자 조정의 명령으로 천거되어 『남명선생언행록(南冥先生言行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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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내곡리에 있는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 내곡리산성 안에서는 시대를 알 수 있는 토기 등의 유물이 별도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근에 위치한 야정리 유물산포지와 구릉 상으로 연결되고 있다. 야정리 유물산포지는 대가야시대의 짧은목항아리, 긴목항아리 등의 토기가 출토되는 유적이다. 내곡리산성은 대가야읍 내곡리와 우곡면 속리, 사촌리 등이 서로 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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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의 내수면에서 이루어지는 어업. 내수면(內水面)이란 육지 내의 수류(水流) 또는 수면(水面)을 말한다. 한국의 내수면 면적은 전 국토 면적의 2.1%인 2,030㎢이며, 바다와 달리 내수면을 직접 소유·점용 등에 의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수면 관리자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수면 어업은 하천, 호수, 늪 등 육수역에서 이루어지는 어업으로서 해면 어업과과 구분된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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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있는 송시열, 권상하, 한원진, 윤봉구, 송환기를 배향한 조선 후기 서원. 노강서원은 영조 때인 1692년 창건하여 송시열(宋時烈)을 주향으로 하고 권상하(權尙夏), 한원진(韓元震), 윤봉구(尹鳳九), 송환기(宋煥箕)를 배향하고 있다. 당시 고령에서 유일하게 노론계 서원이었던 노강서원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성주군에 속하였다. 송곡리 하로다마을에서 상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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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있던 나루터. 노강진나루터가 위치한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는 본래 성주군 벌지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서 씨실, 송곡, 금곡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깊은 골짜기 속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가을에 단풍이 들면 비단같이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뜻에서 ‘금곡(金谷)’이라 하였으며, 산에는 소나무가 울창하여 또한 ‘송곡(松谷)’이라 하였다. 이후 1906년(고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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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는 본래 성주군 벌지면의 지역으로 낙동강변의 넓고 비옥한 땅에 논이 많다고 하여 논실, 답곡(畓谷)이라 불렀으며, 개척 당시 갈대숲이 우거져 있어 노곡(蘆谷)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후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의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암동을 병합하여 노곡동이라 해서 다산면에 편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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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척 당시 갈대숲이 우거져 있어 노곡(蘆谷)이라 하였다. 낙동강 변의 넓고 기름진 땅에 논이 많다고 하여 논실·답곡(畓谷)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성주군 벌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암동을 병합하여 노곡동이라 하고 다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다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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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노곡리 고분군[산31]은 다산면 북변에 비교적 넓게 형성된 낙동강 충적지 서단의 산등성이와 동쪽 비탈면에 위치한다. 서쪽에 분포하는 노곡리 고분군[산88-1]과 함께 낙동강 건너 동쪽 기슭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있는 문산리 고분군과 마주하고 있다. 노곡리 고분군[산31]에서는 발굴 조사된 고분이 없다. 현재는 외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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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노곡리 고분군[산88-1]은 성산가야와 접경지대인 대가야의 동북단에 위치한다. 노곡리 가죽정마을 동쪽 전방의 산88-1번지를 비롯하여 그 동쪽의 산83-1번지, 그리고 노곡리 배후 야산 북쪽 비탈면의 산79번지에 분포한다. 이들 야산의 북단은 모두 낙동강변의 단애로 되어 있다. 세 산등성이 중에서 가죽정마을 앞쪽의 산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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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에 있는 광평이씨 동성마을. 노곡리에는 논실, 월암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논실은 낙동강 변의 충적토에 넓고 기름진 논이 많아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답곡(畓谷)이라고도 하는데 논실의 한자 표기이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 낙동강 변에 갈대가 우거져 있어 노곡이라고도 하였다. 월암은 마을 중심에 달맞이하는 큰 바위가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논실마을이 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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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 노동요는 민중들이 일을 즐겁게 하고 공동체 의식을 높여서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이다. 고령 지역 민요는 「모찌기 노래」, 「모심기 노래」, 「논 매기 노래」 등 논농사와 관련된 노동요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논농사는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고령 지역은 낙동강과 크고 작은 내[川]를 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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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경제 활동. 농업은 토지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사육하여 의식주에 필요한 자재를 생산하는 인간의 경제 활동 중 가장 기본이 되는 1차 산업이다. 농업은 유기적인 생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토지와 기후 등 자연 조건에 크게 좌우되며 그 방법과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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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미륵불상. 다산면 상곡리 상곡마을 뒤편에는 해발 194m의 미륵봉이 있다. 미륵봉에서 상곡마을 쪽으로 흘러내린 미륵골의 산중턱에는 상곡리 절터라고 불리는 곳이 있고, 그곳에 돌로 만든 다산 상곡리 절터 미륵불상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불상을 미륵부처라고 부르면서 신성시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 보아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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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서 생산되는 약초. 향부자(香附子)는 여러해살이풀로 바닷가 모래땅이나 냇가의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지만 추위에는 약하다. 분포 지역은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열대 지방이나 아열대 지방이며, 개화 시기는 7~8월이다. 다산향부자는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어가고 줄기의 밑 부분이 굵어지며 뿌리 끝에 둥근 덩이줄기가 생긴다. 가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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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높은 곳에서 면 전체를 내려다보면 닭의 형상을 하고 있어 다계면이라고도 하였다. 평리리가 닭의 머리 부분, 노곡리와 나정리가 날개 부분, 송곡리가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 신라 초기에 다사지현(多斯只縣)이었다가 제35대 경덕왕(景德王) 때 하빈현(河濱縣)으로 고치고 수창군(壽昌郡) 또는 수성(壽城)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9년(현종 9) 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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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 있는 철새도래지. 다산면 철새도래지에는 큰고니를 비롯하여 흑두루미, 왜가리, 쇠오리 등의 철새가 찾아오고 있다. 큰고니는 천연기념물 제201-2호로 기러기목 오리과에 속하며 몸길이 약 152㎝, 날개 길이 약 225㎝의 대형 조류이다. 암수 모두 온몸이 흰색이며, 부리는 노란색에 끝부분이 검은색이다. 눈 앞쪽에는 털이 없고 노란색을 띤다. 호수·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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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있는 지방 산업 단지. 다산지방산업단지는 정부산업정책심의위원회의 결의로 확정한 공업 입지 공급 대책 사업의 일환으로 준공된 산업 단지로서, 대구광역시 내 각 지역에 산재한 주물업체들을 한곳으로 이전하면서 공동 협업 단지를 조성하였다. 공장 집단화, 시설 공동화, 경영 협업화, 환경 오염 방지 시설 공동화 등을 통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원가 절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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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서 생산되던 파. 다산면의 옛 지명인 닥기면에서 유래되어 닥기파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다기파라고도 불린다.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은 성산면, 개진면과 함께 경상계 퇴적암을 기반암으로 한 구릉지대에 속한다. 낙동강과 접해 있는 다산면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과 옥포면, 북쪽으로는 달성군 다사읍 및 하빈면과 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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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팔산리에서 성산면 기족리나 고탄리로 넘어가는 고개. 산세가 험하기로 소문난 담밑재는 고갯마루에 공동묘지가 있어 여름밤에는 인불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다. 이와 관련된 도깨비설화가 있는데, 옛날 팔산마을의 한 장정이 밤늦게 담밑재를 넘다가 도깨비를 만났다고 한다. 도깨비가 장정에게 씨름을 제안하며, 이기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여 장정과 도깨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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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약 500년 전 창녕성씨 성원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 논이 많았으므로 논실 또는 답곡이라 하였다. 희정골은 현풍곽씨가 개척한 마을로, 강 건너편에 곽씨 문중에서 배출한 효자·효부·열녀의 정려가 있어 후손들이 정려를 바라보고 조상들의 가르침을 본받게 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희정·시정골·희정동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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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답곡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우곡면 답곡리는 본래 현풍군(玄風郡) 지역으로, 약 500년 전 창녕 사람 성원(成元)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논이 많아 논실, 또는 답곡이라 해서 답곡방이 되었다. 현풍군 답곡방 척사(尺沙)로 칭하다가 왕지방(旺旨坊)과 병합되어 왕지면(旺旨面) 답곡(畓谷)이 되어 희정, 아곡, 조지[현재 봉산]의 4개 동을 관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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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태 씨는 500년 대가야 도읍 터인 연조리 토박이다. 그는 1932년 봉두골[현 연조2리] 256번지에서 1남 2녀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서상태 씨는 9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슬하에서 3대 독자로 자라났다. 당시 위로는 한 명의 누나[15세]와 한 명의 여동생[5세]이 있었다. 서상태 씨는 일제 치하에서 고령 금림공립초등학교[현 고령초등학교]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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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의 역사와 문화 전승의 선봉장! 고령문화원은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발굴, 집성하고 교육과 경연 대회 등을 통해 이를 전승해 왔다. 지금까지 유일성, 신용수, 유병규, 허동량, 최상호 씨 등이 차례로 문화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고령문화원장을 맡고 있는 최상호[1931년생] 씨는 여든 문턱을 넘어섰지만, 고령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착이 어느 누구보다 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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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령박씨가 정착한 후 도진리는 박씨들의 세거지가 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진리에는 대가야 시대 유적들이 현재까지 전해 오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도진리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도진리 바위구멍 유적’과 인근 사촌리에 있는 ‘사촌리 고인돌’ 등을 통해 최소한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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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미래 비전을 위한 개발 계획. 경상북도 고령군은 대가야의 고도로서 과거 유럽에서 르네상스를 통하여 인간의 지적, 창조적 힘을 부흥했듯이 신활력 사업을 통하여 대가야르네상스 고령을 이룩하고자 대가야르네상스 고령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 제1기 신활력사업: 대가야르네상스 고령만들기 사업 고령군은 경상북도 3대 문화권의 하나로 손꼽힐 만큼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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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조성 중인 생태 관광 탐방로. 경상북도는 생태 관광 탐방로를 동해안과 낙동강 축 2개로 나눠 21곳 549.8㎞의 거리에 개발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150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할 예정이다. 우선 동해안권이 녹색 관광 휴양 거점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동해안을 따라 125.8㎞의 ‘블루로드’ 10곳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블루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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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고령군 대가야읍의 옛 지역이 대가야국이 있던 지역이므로 새로운 대가야의 부흥을 목표로 지역 발전을 이어가자는 의미로 대가야읍이라 하였다. 대가야읍은 원래 옛 대가야의 중심지로서 562년 도설지왕 때 여러 가야 중 마지막으로 신라에 정복되었다. 757년(경덕왕 1) 고양군이 되었고, 고려 초 경산부에 속하였으며, 1413년(태조 13) 고령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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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규(兪炳圭)[1941년] 씨는 고령 토박이로 어린 시절 공부하느라 고향을 잠깐 동안 떠나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고령에서 살았다. 그래서 고령의 역사와 문화에 해박할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대가야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는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또 지역 유지로서 정치, 사회, 경제 분야에서 대가야 도읍지 고령을 더 큰 외부 세계와 소통시키는 역할도 해 왔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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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 있는 대갸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대곡리 유물산포지(1), 대곡리 유물산포지(2)로 구분되어 있다. 두 유적은 대곡지와 사전지 등 서쪽 골짜기에 있는 저수지에서 흘러내린 하천을 사이에 두고 약 300m 떨어진 곳에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우곡면사무소가 있는 도진리에서 도진교를 건너 남쪽으로 오면 야정리가 나온다. 야정리에서 사전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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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조3리와 쾌빈리의 경계를 이루는 국도 33호선 자락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고령 지역에 석유를 공급해 온 상점이 있다. 영창상회 로 알려진 이곳은 전동기나 절삭기와 같은 공구, 시멘트·타일·목재를 비롯해 각종 건자재와 경유·석유 등의 기름을 취급하는 곳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다. 영창상회는 현재 상점을 운영하는 김인태[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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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에 있는 나루.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는 본래 현풍군 답곡면 지역으로, 산의 모습이 나무와 비슷하고 작은 산봉우리는 새가 나뭇가지에 앉은 것처럼 생겼으므로 샛가지 또는 조지리(鳥枝理), 봉지리(鳳枝理)라 하였다. 이후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의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조지동이라 하여 우곡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조지동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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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9일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3·1운동은 국내외의 긴박한 정세에서 발생의 배경을 찾을 수 있다. 1914년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변화된 세계정세는 민족 문제에 대한 자각을 높이고 한반도를 비롯한 피압박 약소민족의 해방을 고무시켰다.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을 마무리하는 원칙으로 미국 윌슨 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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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에 있던 나루터. 도동나루터가 위치한 구곡리(九谷里)는 올밧골, 올밤골, 건진골, 월당골, 진방골, 밋골, 문안골, 골안골, 새안골 등의 아홉 골짜기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구실’ 또는 ‘구곡’이라 불렀으며, 도동나루라는 이름은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 낙동강 건너편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도동나루는 옥도 부근에 위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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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넓은 길. 조선시대 고령 지역에는 서울로 가는 제5대로의 지선과 본선에 해당하는 안림역[현 쌍림면 소재]과 무계역[현 성산면 소재]이 있었다. 안림역은 한성~유곡~고성~거제로 이어지는 5대로의 지선으로, 성주의 안언역에서 분기하여 나와 안림역에서 다시 합천의 금양역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이다. 낙동강 서변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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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가 있던 터. 도요지(陶窯址)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 유적으로, 우리말로는 가마터라고 한다. 토기 및 도자기를 원활하게 생산하기 위해서는 땔감이 되는 산림이 울창하고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제품을 옮기기 편리한 운송로, 양질의 점토와 도토(陶土)가 생산되어야 하는 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고령 지역은 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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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와 야정리를 연결하는 다리. 국가지원지방도 67호선을 따라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이르면 도진리와 야정리를 연결하기 위해 낙동강 지류인 회천을 가로질러 가설된 군도 상의 교량이다. 지방도에서 분기하여 도진리의 도진마을에서 야정리의 아치실마을로 연결되는 이 교량은 도진리와 야정리의 여러 마을을 동일 생활권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교량이 가설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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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 있던 가야시대~조선시대 나루터. 도진나루터가 위치한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는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 직후 전라도 지방 나씨(羅氏)가 이주하여 개척하였다 전한다. 당시 사부리 도요지(沙鳧里陶窯址)와 기산리 도요지(箕山里陶窯址)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타지방으로 수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진나루로 모여들자 마을 주민들이 많은 이득을 얻어 마을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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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는 고령박씨(高霊朴氏)의 세거지로 우곡면 소재지이다. 고려 말인 1350년(충정왕 2)대에 조산대부(朝散大夫) 사재감소윤(司宰監少尹)인 고령박씨 박경(朴景)[고령박씨 중조 환(還)의 8세손]이 개척하였는데, 모듬내[会川, 錦川]를 휘감아 흐르는 강변(江邊)의 아름다움이 도연명(陶淵明)[365~427]의 「도화원기(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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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도진리 고분군은 고령군 동남부에 위치한다. 대가야읍 중심부로부터 직선거리 8.3㎞ 내외의 동남동 쪽에 있으며, 동쪽의 낙동강과 서쪽의 회천 사이를 가르며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산정부에 조성되어 있다.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릉을 따라 길게 분포하는 독특한 입지를 보이며, 가장 높은 정상부에 위치한 산성을 사이에 두고 북쪽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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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별자리형 바위구멍 유적. 도진리 바위구멍 유적은 우곡면 소재지인 도진리마을의 오른쪽 뒤편의 산록 사면에 위치해 있다. 즉 우곡면사무소 앞에서 예곡리 들꽃마을 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350미터 정도 올라가면 왼쪽에 상수도 취수원이 보인다. 이곳에서 임도 왼쪽의 산길을 따라 다시 40미터 정도 올라가면 중간에 민묘가 있고, 민묘 위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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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가야시대 산성. 도진리산성은 대장산성(大壯山城), 또는 의병산성(義兵山城)이라고도 하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쌓은 산성이라 전한다. 그러나 성의 입지와 형태, 성안에서 채집한 유물 및 주변 유적 등을 참고해 볼 때 대가야가 신라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산성으로, 후대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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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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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의 가야산, 만대산, 소학산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의 종류. 고령군의 생물학적 분포 구역은 개마고원을 경계로 한 시베리아 아구와 서남의 만주 아구에 속하며, 서식하는 동물은 환경과 기후에 큰 차이 없이 우리나라 국토 전역과 비슷하게 분포되어 있다. 고령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동물군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은데, 전국 자연 환경 조사의 일환으로 가야산(伽倻山)[해발고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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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고령 둔덕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0) 8월 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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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산 사부동 도요지와 성산 기산동 도요지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질나루를 중심으로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마을 주민들이 큰 이득을 얻었다 하여 득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득성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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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 대가야읍 장리기의 망산(望山), 혹은 금산(錦山) 정상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봉수 터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등에 따르면 “현의 동쪽 7리에 있는데, 서쪽으로는 합천군 야로면의 미숭산(美崇山)과 응하고, 북쪽으로는 성주 가리현[현 고령군 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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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망산에 있는 대가야시대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9, 고령현 봉수조에 망산봉수가 “현의 동쪽 7리에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망산은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설치될 만큼, 군사·교통·통신 등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망산은 대가야읍, 개진면, 성산면, 운수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대구에서 고령 읍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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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성산면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성주군 소야면의 11개 동과 리, 도장면의 3개 동과 리, 고령군 구음면의 4개 동과 리를 병합하여 신라시대에 있었던 성산군의 이름을 따서 성산면이라 칭하고, 14개의 동리로 개편하여 관할하고 있다. 동쪽은 낙동강 건너 달성군 논공면, 남쪽은 고령군 개진면, 서쪽은 고령군 대가야읍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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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670년경(현종 11) 오씨와 김씨 등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어떤 도인이 지나가다 서남쪽으로 뻗은 세천(細川) 세 줄기는 닭의 오른쪽 날개, 동남쪽으로 흐르는 작은 내는 왼쪽 날개, 마을 뒷산은 닭의 몸통 같아 마을 형국이 마치 닭이 춤추는 듯하다 하여 무계(舞鷄)라 하였다. 그 후 손씨와 이씨가 들어와 살면서 낙동강 변에 번창하는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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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 있는 해주오씨 동성마을. 마을을 개척할 당시 어떤 도인이 지나가다 서남쪽으로 뻗은 실개천 세 줄기는 닭의 오른쪽 날개, 동남쪽으로 흐르는 실개천은 왼쪽 날개, 마을 뒷산은 닭의 몸통 같아 마을 형국이 마치 닭이 춤추는 듯하다 하여 무계(舞鷄)라 하였다. 그 후 오씨·조씨·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낙동강 변에 번창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성할 무(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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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바위구멍 유적. 무계리 바위구멍 유적은 성산면 무계리 마을 뒷산과 마을 일대의 자연 바위면 위에 새겨진 청동기시대의 윷판형 바위구멍 유적이다. 유적은 모두 4개소에서 확인되었으며, 그중 무계리 바위구멍 유적(1)과 무계리 바위구멍 유적(2)는 윷판형이다. 윷판형 유적은 무계리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 뒷산의 8부 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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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 있는 가야시대 산성. 자세한 건립 경위를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낙동강을 오르내리던 왜선을 저지하기 위해 의병들이 사용했다는 전언이 있다. 그러나 성안에서 대가야시대 토기편이 채집되는 점과 지리적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낙동강 동안의 신라 세력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산성으로 추정된다. 무계리산성은 해발 200~212m 정도의 위치에 체성이 축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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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지류인 회천(會川) 변에 자리한 도진마을은 예부터 경치 좋고 물 맑은 곳으로 이름나 무릉도원으로 일컬어졌다. 오염되지 않은 토심 깊은 곳에서 자란 농산물로 만든 일상의 먹을거리는 자연의 보약이었다. 여기에다 고령박씨 집성촌으로서 조상들이 다져 놓은 충효 전통은 일족 간, 가족 간의 섬김과 사랑의 정신으로 승화되었다. 이로 인해 도진마을은 충효마을에 더하여 장수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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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나대리에 걸쳐 있는 산. 미숭산은 고려의 장군이었던 이미숭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 대항해 군사를 모으고, 미숭산에 성을 쌓아 고려를 되찾고자 싸움을 벌였던 곳이다. 당시 대세는 조선과 이씨 왕조 쪽으로 기운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숭은 결국 고려 회복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했다고 전해진다. 본래 산의 이름은 상원산이었으나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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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민속이란 ‘민간의 풍속’ 또는 ‘민간의 지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민간의 생활인 동시에 생활의 계속, 또는 반복에서 이룩되어 전승되는 민간 공통의 습속을 말한다. 여기에는 신앙, 전설, 풍속, 생활양식, 관습, 종교의례, 민요, 속담 등 주민들이 지녀온 모든 전승 지식들이 들어 있다. 민속은 연구 대상의 광범위함으로 인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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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던 나루터. 본래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는 성주군 벌지면의 지역인데 1906년(고종 43)에 고령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의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로동과 장척동, 남양동을 병합하여 월성동이라 해서 다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면서 월성리가 되었다. 바라미나루터를 일명 ‘윗놉때기나루’라고도 부르는데, ‘윗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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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일원에 분포하고 있는 바위면 위에 구멍을 새겨 놓은 바위구멍 유적. 바위구멍[성혈(姓穴)]은 일반적으로 암각화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구별하여 바위 면에 둥근 구멍을 파 놓은 바위구멍 유적을 말한다. 바위구멍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알구멍’이나 ‘굼’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바위구멍은 보통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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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병자호란 후 성주 지역에서 박씨 성을 가진 이들이 옮겨 와 정착하였으므로 박실(朴室) 또는 박씨골·박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박곡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박곡리가 되었다. 의봉산[535m]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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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박곡리 고분군은 동쪽의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신라권역과 접경지대에 위치한다. 대가야읍 중심부에서 동쪽 직선거리로 10.4㎞ 떨어져 있는 박곡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박곡리 고분군이 위치한 산을 거슬러 올라가면 정상부의 산릉을 따라 성산가야와 경계를 이룬다. 동쪽에는 낙동강이, 전방 남쪽 코앞에는 여러 곡간 평지가 길게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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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에 있는 대가야시대 고분 유적. 박곡리 유적에서 발굴 조사된 고분 1기는 대가야 동부권에서 최대 규모인 박곡리 고분군과 불과 300m 가량 떨어져 외따로 발견된 것으로, 이 고분은 대가야시대 최고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대가 낙동강을 사이에 둔 신라권역과 관문이자 경계를 이루는 지대이고, 조성 당시 신라와의 긴장 관계에 있었으며, 외따로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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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성(子誠), 호는 운암(雲庵). 박대복(朴大福)[1558~1592]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郭再祐), 김면(金沔)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 2,000석을 지원하여 굶주리는 군사에게 제공하였다. 그리고 주둔해 있던 왜적을 대파하여 시체가 낙동강 물을 막을 정도였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37세의 나이로 전쟁터 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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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부리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성하리를 연결하는 다리. 고령군 개진면에서 낙동강 북안을 따라 대구 방면으로 군도 4호선을 따라가면 진두마을이 나오고, 여기서 낙동강을 건너 대구광역시로 연결되는 다리이다. 대구광역시에서 보면 달성군 화원읍에서 국도 5호선을 타고 낙동강의 동안을 따라 달성군 현풍면에 이르면 여기서 고령군 개진면으로 갈 때 낙동강을 건너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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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부리에 있던 조선시대 나루터. 박석진나루터가 위치한 고령군 개진면 부리(釜里)는 본래 현풍군 진촌면 지역으로서 옹기 가마가 있었으므로 ‘가암’ 또는 ‘부동’이라 하였다. 마을이 산에 둘러싸인 가마솥 모양이어서 마을 안에 샘을 파면 가마솥에 구멍이 나서 복이 나간다고 샘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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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리는 고령박씨들의 집성촌이다. 2010년 현재 마을의 전체 호수는 106호이며, 고령박씨는 89호 정도로 전체의 약 90% 정도를 차지한다. 그 외에 곽씨, 김씨, 노씨, 정씨, 한씨 등이 살고 있다. 고령박씨 외의 타성 사람들은 마을에서 식당이나 가게 등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령박씨들은 다른 성씨들에 대해서도 배타적이지 않고 잘 어울려 지낸다고 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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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군실(君實), 호는 양죽당(養竹堂). 아버지는 낙랑당 박택(朴澤)이다. 박정완(朴廷琬)[1543~1613]은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의 문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친척 동생인 박정번[김면 의병진 참모]과 가동(家僮)을 이끌고 개산포전투, 무계전투의 준비에서 승리까지 공훈을 세워 거창현감, 안음(安陰)현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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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산이 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아 와룡산이라 하였고, 용이 하늘로 올라가려면 구름이 많이 서려야 하므로 마을 이름을 반운(盤雲)이라 하였다. 마을을 돌아 흐르는 회천(會川)을 반천(盤川)으로 부른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또 앞 내가 동그랗게 사린 모양이므로 사리움이라고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에 와서 땅이름을 물으니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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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읍에서 개진면을 지나 모듬내[회천] 변으로 난 지방도 67호선을 따라오면 우곡면의 도진리에 이른다. 낙동강의 지류인 모듬내[회천] 변에 자리 잡은 도진리는 특히 고령박씨[도진박씨]들이 650여 년간 터를 잡고 살아온 곳으로 유명하다. 도진리의 연원에 대해서는, 1180년경 주(朱)씨들이 처음 마을을 개척하고 주진(朱津)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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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 있던 가야시대 산성 . 고령군의 산성은 크게 남쪽 낙동강과 회천을 방어하기 위한 우곡면의 도진리산성, 낙동강 방면을 방어하기 위한 무계리산성, 봉화산 보루성, 의봉산성, 풍곡산성, 망산성 등이 있으며, 성주군 방면으로는 운라산성, 예리산성, 노고산성 등이 위치해 있다. 서쪽 합천군 방면에는 미숭산성과 만대산성이 축조되어 있다. 본관리 성터는 서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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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에 대봉산이 솟아 있고 마을 앞으로는 넓은 늪이 있었는데, 이 늪의 형태가 마치 새가 날아가는 모습과 같고 울창한 숲과 넓은 늪에 많은 새 떼들이 서식하여 샛가지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샛가지를 한자 표기인 조지동(鳥枝洞)으로 바꾸었고, 1983년 조지동의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대봉산의 이름을 따서 봉산으로 바꾸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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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에 있는 경주최씨 동성마을. 마을 뒤에 대봉산이 솟아 있고 마을 앞으로는 넓은 늪이 있었는데, 이 늪의 형태가 마치 새가 날아가는 모습과 같고 울창한 숲과 넓은 늪에 많은 새 떼가 서식하여 샛가지라 하였다. 예전에는 각성이 많았으나 최근 들어 경주최씨가 많이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샛가지마을이 속한 봉산리는 조선 말기 현풍군 답곡면에 속했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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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에서 정월 대보름 첫 시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봉산리는 경주최씨 집성촌으로 임진왜란 이후 개척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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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와 월산리를 연결하는 다리.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봉평리의 이름을 따서 봉평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봉평교는 교장 210.0m, 총 폭 12.0m, 유효 폭 11.0m, 교고 4.5m이다. 경간 수는 15개, 최대 경간장은 14.0m이다. 상부 구조 형식은 RCS[RC슬러브교], 하부 구조 형식은 RAP[라멘식 교각]이며, 설계 하중은 DB-24이다.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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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에 있는 가야시대~조선시대의 봉수 터. 조선시대의 봉수 터가 남아 있고, 가야시대의 보루로 추정되는 석축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야시대~조선시대까지 봉수 터 등의 군사 시설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봉수는 국가의 정치, 군사적인 전보 기능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는데, 횃불과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했다. 봉화산 봉수는 낙동강을 따라 부산~서울까지 연결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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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예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부례고개는 부례나루터와 함께 고령군 우곡면 사람들이 이용하던 교통로이며, 현재도 군도로가 건설되어 있어 낙동강 서변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어 고령과 대구 지역을 왕래하고 있다. 부례고개의 남동쪽에는 우곡면 도진리 부례마을이 있는데, 옛날 이곳에서 보기 드문 열녀가 있어 그 예의가 돋보여 사람들에게 모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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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예곡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우곡면 예곡리는 본래 현풍군 답곡면 지역으로, 아치산 아래에 있으므로 아치실, 아치리, 아곡, 예곡이라 하였다.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의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미면의 부례동과 부곡동을 병합하여 예곡동이라 해서 우곡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면서 예곡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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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리(釜里)에는 가암, 늪추리, 독실, 진두, 창동(倉洞)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가암은 옛날부터 옹기 가마가 있어 가마라고 한 데서 변한 이름이다.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인 가마솥 모양이어서 마을 안에 샘을 파면 가마솥에 구멍이 나서 복이 나간다고 샘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늪추리는 마을에 늪이 있어 붙인 이름으로 늪가라고도 한다.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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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를 연결하는 다리. 고령군 다산면의 군도 5호선에서 낙동강을 가로 질러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의 화원유원지를 이어주는 군도 상의 교량이다. 사문진교가 있는 곳은 과거 사문진나루가 있었는데, 낙동강을 따라 올라온 물자들이 대구로 유입되는 요충의 나루였으나, 사문진교가 가설되면서 사문진나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고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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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에 있던 조선시대 나루터.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 마을은 조선 인조 때 개척되었는데, 낙동강 범람으로 인해 늪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 ‘늪마을’이라 하다가 120여 년 전 이씨라는 선비가 들어와 마을 앞 큰 호수를 보고 ‘호촌’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한 낙동강이 범람할 때 이곳 흙을 많이 훑어갔다고 ‘훑촌’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906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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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사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사전리 도요지는 우곡면 대곡리에서 사전리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가다가다 보면 사전리 사부골마을에 약간 못 미친 지점 도로변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낙동강[회천]과 가까이 있고, 주변의 산에서 나무를 구하기 쉬워 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숯을 얻기 편하며, 완성된 제품을 옮기기에도 적당한 곳이다. 사전리 도요지는 산 능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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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사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대가야읍에서 개진면을 지나 우곡면소재지가 있는 도진리 방향으로 군도 1호선을 따라 직진하면 우곡면 사촌리가 나온다. 사촌리 고인돌군은 우곡면 사촌리 진골마을의 민가와 마을 앞 도로변 등에 모두 5기가 있다. 사촌리 고인돌군은 두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사촌리마을회관 맞은편 도로변과 논 사이의 비탈면에 4기가 일렬로 자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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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분포하는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고령군에 분포하는 산지들은 회천을 기준으로 서쪽의 가야산에서 이어진 고산(高山)들과 동쪽의 구릉성 산지들로 구분된다. 이와 같은 지형 분포의 차이는 기반암의 성격과 지반 운동 때문이다. 서쪽의 덕유산과 지리산 등으로 이어지는 북동-남서 방향의 소백산 지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괴 가운데 하나로 침식에 강한 변성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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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방면에서 국도 26호선을 타고 고령터널을 지나면 눈앞으로 대가야읍 전체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대가야읍은 뒤로는 낙타의 등처럼 봉긋봉긋 솟아난 지산동 고분군이 위치한 주산과 앞으로는 회천이 흘러내리는 아담한 도시다. 지금은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만, 아직까지 농촌 풍경을 어렴풋이 간직하고 있어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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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에 있는 산림 공원. 과거 낙동강 대홍수로 인해 황폐해진 땅에 주민 모두가 합심하여 사방 사업 3만 4000㏊, 토사 방지 수종 4,100만 본을 심어 황폐지 녹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이에 지난 세기 식민지 수탈과 전쟁으로 황폐하였던 산림을 푸른 숲으로 가꾼 산림녹화 사업의 업적을 기념하고, 숲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과 환경의 중요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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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로 쌓아 만든 방어 시설. 성곽(城郭)이란 내성(內城)과 외곽(外郭)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시가지 전체를 에워싼 나성(羅城)을 ‘곽’이라고 한다면, 그 곽의 안쪽에 또 다른 성벽으로 둘러싸 있는 독립된 공간을 ‘성’이라고 한다. 나라를 뜻하는 국(國)이란 말이 성곽[口]을 창[戈]으로 지키고 있는 형상을 한 데서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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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470년경(성종 1) 김녕김씨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무봉산·수만산·수리봉산의 세 산 밑에 마을이 있으므로 삼산(三山)이라 하였다. 그 후 삼대(三垈)로 바뀌었다가 김녕김씨·광산이씨·김해김씨의 세 성이 모여 발전을 기약하는 마을이란 뜻에서 삼대(三大)가 되었다고 하며, 삼대(三垈)·반장(班庄)·멍더미의 세 마을을 합하여 삼대가 되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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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말~4월 초 고령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3·1운동은 서울에서부터 시작되어 5월 중순까지 비폭력·일원화·대중화 등을 원칙으로 하여 전국에서 발생하였고, 한국인이 거주하는 하와이 등 국외에서도 발생하였다. 대도시에서 농촌에 이르기까지 청년·학생과 지식인, 농민과 노동자, 여성 등 전 민족적 항일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3·1운동의 역량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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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다사지현 소재지로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점령하고 이곳에 행궁을 두었으므로 상국(上國)으로 부르다가 마을 이름으로 너무 지나치다 하여 상곡(上谷)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가 행궁을 두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을 개척 당시 위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신라 초기 다사지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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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곽촌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다산면 상곡마을과 곽촌마을 사이에 작은 골짜기가 있으며, 그 위쪽에 있는 주을지로부터 용수로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곡리 구석기 유적은 이 골짜기의 남쪽 사면 일대의 완만한 구릉성 야산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앞쪽으로는 낙동강과 접해 있고, 그 건너편으로는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금호강의 하구를 마주보고 있다.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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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소(龍沼) 위에 있는 마을이어서 상용(上龍)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 밑의 지형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어서 용기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룡동을 병합하여 상용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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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생리에서 성산면 오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새터고개는 해발고도 200m 내외의 산지 사이에 있으며, 해발고도가 80m 정도로 주변보다 상당히 낮은 안부이다. 새터고개는 고령군 개진면 생리와 성산면 오곡리를 왕래하는 길목에 위치하며, 군도 4호선 및 고속국도 45호선이 통과하는 등 여전히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새터고개의 명칭은 새로 정착한 마을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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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고령군에서 성산면을 지나 국도 5호선을 따라 화원 방면으로 가다보면 달성중학교를 지나게 된다. 여기서 약 500m 더 가서 좌회전하여 구마고속도로 밑을 지나 성산동 새마을회관 방면으로 가면 낙동강 위로 나 있는 사문진교 다리를 건넌다. 여기서 계속 직진하면 다산면 상곡리 마을이 나오는데 사문진교에서 마을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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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에 있는 서필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달성인 효자 서필원(徐弼元)은 1750년(영조 26)에 태어나 5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간 풀과 칡뿌리로 연명하면서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고 홀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계절이 겨울인데도 쓴 냉이를 원하시므로 석자나 되는 눈 아래서 냉이를 구하여 어머니에게 드렸고, 또 병환으로 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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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역에서 돌을 이용하여 칼, 도끼 따위의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고령군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 강변에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는 저평한 침식 구릉지대가 발달해 있고, 부분적으로 신생대 플라이스토세 지층이 확인된다. 행정구역상 다산면과 개진면의 일부에 해당하는 이곳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여러면석기[多角面圓球]와 찍개 등이 채집된다. 이를 통해 고령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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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로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고령 지역의 역사. 선사시대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은 시기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구석기시대의 문화적 특징은 수렵과 어로·채집을 생업으로 하는 채집 경제 단계로서 타제 석기를 도구로 사용하였으며, 토기와 마제 석기의 단계를 모르던 시대를 말한다. 고령 지역은 동부에 해당하는 낙동강 강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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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충(忠)을 실천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을! 이는 ‘650년의 역사’, ‘고령박씨 집성촌’, ‘경치가 빼어난 무릉도원’으로부터 근년의 ‘우곡그린수박마을’에 더하여 도진마을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또 하나의 별칭이다. 경상북도에서는 유일하게 충효마을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유물의 문화재 지정, 도진충효관 건립, 도원공원 조성 등은 도진리 사람들의 땀의 결실로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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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서 생산되는 멜론. 멜론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의 고온 건조지로서 비가 적은 지방에서 재배, 분화된 서양계 멜론(Western melon)과 동양의 비교적 습윤한 지방에서 발전된 동양계 참외(Oriental melon)로 구분된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적으로 멜론이라 하면 주로 서양계 멜론인 온실 멜론[머스크멜론], 캔털루프(Cantaloupe), 겨울 멜론(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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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 제석산에 있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 유적.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지도 가운데 조선 후기 고령 지역을 묘사한 지도에 성산 제석산 유적이 있는 지점을 연대(煙臺)와 관련된 지명으로 표기하고 있어 봉수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석축 주변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 고령군 성산면과 개진면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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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고령의 도공 김해김씨가 이룩한 일본 도자기 문화의 일맥. 오늘날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말한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강토 방방곡곡에서 무차별로 끌고 간 수많은 도공들을 일본의 사쓰마[薩摩]와 아리타[有田]·가라쓰[唐津]·아가노[上野]·다카도리[高取]·하기[萩]·야쓰시로[八代]·소다이[小代] 등 규슈[九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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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삼대리와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위천리를 연결하는 다리. 성산대교는 고령군 대가야읍~대구 간의 국도 26호선 대가야읍 방면 입구에 위치한 교량으로, 대구와 고령군의 경계인 낙동강을 가로질러 가설되어 있다. 대구광역시에서는 달성군 논공읍 위천리의 위천삼거리로 진입하며, 고령의 관문 역할을 하는 교량이다. 대구에서 고령군 성산면을 통과하여 고령으로 진입하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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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신라 때 있었던 성산군에서 이름을 따서 성산면(星山面)이라 하였다. 상고(上古) 때는 벽진가야(碧珍伽倻)에 속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사료는 없다. 신라시대에 일리현(一利縣)이었다가 제35대 경덕왕 때 성산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가리현(伽利縣)이 되었고, 제8대 현종 때 성주목에 속하였다. 조선 중엽 이후에 가현면이 되어 무계(茂溪)·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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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 있는 성산면 관할 행정 기관. 성산면은 신라시대에는 일리현(一利縣)에 속하였다가 경덕왕 때 성산군(星山郡)이 되었고, 고려 초에는 가리현(伽利縣)이라고 했으며, 현종 때 경산부(京山府)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성주목(星州牧)의 속현이었으며,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과거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11개 동리와 도장면의 3개 동리, 고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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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과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 남동쪽에서 발원하여 고령군 덕곡면을 지나 대가야읍 본관리에서 대가천과 합류하여 회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소가천은 가야산(伽倻山)[1,430m] 남동쪽 사면의 유역 분지에서 발원하여 고령군 덕곡면 상비계곡을 거쳐 동류하다 덕곡저수지를 형성한다. 덕곡저수지에서 남동쪽으로 흘러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와 본리리 경계를 따라 흐르는 오리천과 덕곡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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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 있는 가야시대 산성. 소학산성은 우곡면 대곡리와 합천군 덕곡면의 경계에 있는 산성으로, 대가야의 남쪽을 방어하던 관문성으로 추정된다. 정상부에 구축된 상성과 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하성으로 구분된다. 소학산성은 자세한 건립 경위를 알 수 없으나 주변의 지형적인 측면과 인접한 합천군 덕곡면 학리 고분군에서 대가야식 토기가 출토되는 점 등으로 보아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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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 삼동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에게 동민들의 무병과 풍년을 빌기 위해 드리는 마을 제사로서 대표적인 공동체 신앙이다. 동제는 마을 단위로 행해지는데, 고령 지역의 동제는 마을마다 약간의 특징과 상이함을 가지고 있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를 부르는 이름은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산신제, 동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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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곡(松谷)이라 하였다. 깊은 골짜기를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가을 단풍이 비단처럼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뜻에서 금곡(金谷)이라고도 하고, 씨실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성주군 벌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노동·삼동을 병합하여 송곡동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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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있는 수성나씨 동성마을. 송곡리는 송곡, 삼동, 하노다(下老多)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송곡은 산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붙인 이름이다. 깊은 골짜기를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가을 단풍이 비단처럼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뜻에서 금곡(金谷)이라고도 하고, 달리 씨실이라고도 한다. 삼동은 수성나씨(壽城羅氏), 함안조씨(咸安趙氏), 안동권씨(安東權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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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부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개진면 부리(釜里)는 본래 현풍군 진촌면 지역으로서 옹기 가마가 있었으므로 ‘가암’ 또는 ‘부동’이라 하였다. 마을이 산에 둘러싸인 가마솥 모양이어서 마을 안에 샘을 파면 가마솥에 구멍이 나서 복이 나간다고 샘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창동(倉洞)을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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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하순 경상북도 고령군 쌍동면[현 고령군 쌍림면]에서 계획한 만세 시위. 3·1운동은 국내외의 긴박한 정세에서 발생의 배경을 찾을 수 있다. 1914년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변화된 세계정세는 민족 문제에 대한 자각을 높이고 한반도를 비롯한 피압박 약소민족의 해방을 고무시켰다.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을 마무리하는 원칙으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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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에 있는 농공 단지. 농공 단지는 1983년 말에 제정되어 1984년부터 시행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에 의하여 지정되었다. 지방화 시대를 맞이하여 지방 자치 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고, 공업을 지역적으로 적절하게 분배하여 도시와 농어촌 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며, 공업 단지를 능률적으로 개발함으로써 지방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게 하고자 조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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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에서 성주군 용암면 동락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시리재는 해발고도 60m 정도의 낮은 안부로 불당산[172.5m]의 남서쪽에 위치한 고령군과 성주군의 경계에 위치하여 두 지역을 연결해 주는 교통로 역할을 한다. 아시리재에 있는 나정리 아시터마을과 아시리재의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아시터마을은 옛날 어느 스님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산수가 수려해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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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의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백산리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안림천은 안림을 흐르는 하천이라는 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고려 말 의성김씨(義城金氏) 김남득(金南得)이 공민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고령김씨(高靈金氏) 김자광(金紫光)을 녹대부(祿大夫)로 고양부원군에 봉하였다. 김자광이 안림천 지역을 풍해(風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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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와 대가야읍 외리를 연결하는 다리. 안성천교는 행정구역상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와 대가야읍 외리에 걸쳐 있으나, 고속국도 상의 교량으로서 이들 두 마을의 연결 기능보다는 광역 지역을 연결하는 교량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성천교가 있는 쌍림면 안림리는 과거에 교통 및 상업의 중심지였다. 안성천교는 또 다른 이름으로 안림천교라 불리는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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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岩刻畵)란 말 그대로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암벽 등에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시베리아와 중국, 몽골 등의 동북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1970년대 초 고령 장기리 암각화와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가 학계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대략 20여 개소 이상의 유적이 발견·소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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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다리.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양전리의 지명을 따서 양전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양전리는 마을 가운데로 신안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양전이란 우거진 솔밭을 불태워 밭으로 개간하여 좋은 밭이 되었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양전교는 교장 22.0m, 총 폭 8.5m, 유효 폭 7.0m, 교고 3.5m이다. 경간 수는 2개이며, 최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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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대구에서 고령으로 들어오는 고속국도 12호선[88올림픽고속도로] 동고령나들목을 나와 국도 26호선을 따라 고령 방면으로 600m 정도 오면 성산면사무소가 나온다. 어곡리 고인돌은 성산면 어곡리 금평마을, 성산면사무소와 성산중학교 사이에 있는 민가 담장 뒤편에 1기가 있고, 성산면사무소 뒤에 2기가 위치해 있다. 주민들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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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어휘, 음운, 문법적 체계와 특징. 언어는 경상북도 서남단에 위치하여 성주군, 달성군,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며, 소백산맥과 낙동강으로 둘러싸인 고령에서 사용하는 특이한 단어나 언어적 현상을 뜻한다. 이를 방언, 사투리, 지역 방언, 지역어 등이라고 한다. 고령의 지역 방언은 경상도 방언의 특성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어휘와 음운 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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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고령군의 역사. 고령이라는 지명은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대가야군(大加耶郡)을 고령군(高靈郡)으로 개칭할 때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 고령현(高靈縣)에 현감이 내려와 다스리기 시작하였고,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개정하면서 경상도 고령현을 고령군으로 개칭하였다. 1896년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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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고령 지역에서 김면이 의병을 일으켜 벌인 전투. 송암(松庵) 김면(金沔)이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첫 전과는 6월 9일 개산포대첩에서 거두었지만, 고령을 떠나 거창으로 가기 전 4월 말에서 5월초 연강(沿江)에서 한 차례 왜군과 전투를 벌인 것이 연강전투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면은 1592년(선조 25) 4월 하순 가솔을 피난시키고 사촌 아우들과 가동(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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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우곡면사무소가 있는 도진리에서 회천을 따라 객기리 방향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연리가 나온다. 연리에서 답곡리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갈림길의 동편 능선과 밭에 위치하고 있다. 연리 유물산포지는 연리의 하미마을과 연동마을 사이에 있는 우곡초등학교 뒤편 구릉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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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례동의 ‘예’자와 부곡동의 ‘곡’자를 따서 예곡(禮谷)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아치실은 고려 초기 아치산[207m] 밑에 형성된 마을로, 지형이 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꿩 혈의 정기를 받는다는 믿음으로 꿩을 보호해 오고 있다. 달리 아치리·아곡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현풍군 답곡면 지역으로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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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전에만 햇빛이 들기 때문에 오실 또는 오곡이라 하였다. 낙동강 변에 자리 잡은 자연마을인 뱃가는 수로를 이용하여 대구(大邱)·현풍(玄風) 등지를 왕래하던 나루터가 생기면서 들어선 마을이다. 달리 배두새·진두(津頭)라고도 하였다. 조선 선조 때 조일도(趙逸道) 형제가 함안 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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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에 있던 나루터. 오사마을은 본래 고령군 구곡면 지역에 속하였다. 마을 뒷산인 제석산(帝釈山)[387.1m]에 절이 있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불당골로 불렸으며, 그 절에서 5명의 도사(道士)가 태어났으므로 오사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그 절터에는 개진초등학교가 세워져 있으며, 절에서 사용하였던 우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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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에 절이 있어 불당골이라 하였는데, 그 절에서 다섯 명의 도사(道士)가 났으므로 오사(五士)라 하였다가 오사(吾士)로 바뀌었다. 현재 절터에는 개진초등학교가 들어섰고, 절에서 사용했던 우물의 흔적만 남아 있다. 조선 말기 고령군 구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도리를 병합하여 오사동이라 하고 개진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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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에 있는 달성서씨 동성마을. 마을 뒷산에 절이 있어 불당골이라 하였는데, 그 절에서 다섯 명의 도사(道士)가 났으므로 오사(五士)라 하였다가 오사(吾士)로 바뀌었다. 현재 절터에는 개진초등학교가 들어섰고, 절에서 사용했던 우물의 흔적만 남아 있다. 마을에 있는 비석에 새겨진 기록에 따르면, 약 300년 전 달성서씨를 비롯하여 경주최씨·김해김씨·경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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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는 오곡(午谷), 신곡(新谷), 뱃가라 부르는 3개의 자연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선조 때 조일도 형제가 함안 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다 오곡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꿈에 심산유곡에서 학이 날아와 앉는 것을 보고 정착하게 되었다 한다. 이때 이 마을에 오전에만 햇빛이 들었기 때문에 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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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대원(大源), 호는 죽유(竹牖)·죽계(竹溪)·백암노인(白巖老人)·율계(栗溪) 등이다. 고려 중기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오학린(吳學麟)[1009~?]을 시조로 삼는다. 10대조 오세문(吳世文)은 동각학사(東閣學士)를 지냈는데, 고려 무신란 직후 해좌칠현(海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활동한 오세재(吳世才)의 형이다. 증조할아버지 삼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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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벼슬아치들이 귀양살이하던 옥섬[玉島]이 있고, 잣나무가 많았던 잣뫼가 있어 옥섬의 ‘옥’자와 잣뫼 한자 표기인 백산(栢山)의 ‘산’자를 따서 옥산(玉山)이라 하였다. 잣뫼는 달리 잠미라고도 하는데 잣뫼의 발음이 변하여 된 이름으로 여겨진다. 적산은 옥산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름을 알 수 없는 초립동이 피리를 구슬프게 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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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옥산리에 있는 강화노씨 동성마을. 옛날 이름도 모르는 초립동이 구슬프게 피리를 불며 마을을 지나갔다고 하여 적산이라 하였다. 대나무 숲이 많아 죽산이라고도 한다. 옥산리에는 이 밖에 마을에 부자가 살았다 하여 장자곡, 낙동강이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고립된 곳이라고 하여 옥섬이라 부르는 자연마을이 있다. 입향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강화노씨들이 옥산리와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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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년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관청과 민간에서 사용하는 일본 상품을 보관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창고. 조선시대의 대일 관계는 1년 3사(使)의 정기 사행이 규정되었던 중국과 달리 교린(交隣) 체제에서 비정기적인 사행이 오갔고, 무역도 회사(回賜)·답례(答禮)·하사(下賜)를 바탕으로 하는 공무역과 사행의 왕래에 부수하여 허용된 사무역 외에는 민간 차원의 사무역을 일체 금지하였다.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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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와 성주군 용암면 용계리에 걸쳐 있는 산. 외곡산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계 신라통 함안층으로 이루어진 산지이다. 함안층은 진주층을 부정합으로 덮고 있으며, 진주층 동쪽에 있는 고령군 우곡면·다산면, 그리고 성산면 일대에서 약 1.5㎞ 폭으로 북동~남서 방향을 따라 대상(帶狀)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암과 사암이 중심이지만, 응회암질 사암·응회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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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용소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용소저수지는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와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 사이에 자리한 의봉산[551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용소천의 상류부에 위치하는데, 용소천은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의봉산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월산소류지와 함께 고령군 성산면 용소리에 소재하는 저수지이다.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의 용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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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서 생산되는 수박. 1997년 2월 수박 재배 농가 80여 집이 모여 우곡수박작목반연합회를 결성하였으며, 2000년에 우곡수박의 고유 브랜드를 개발하여 우곡그린수박이라는 상표를 등록하였다. 현재는 16개 마을 408명의 반원이 360㏊에 약 6,000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수박을 생산하고 있다. 우곡수박은 낙동강 변의 사질토양과 가야산 지류의 맑은 물로 재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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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우촌(牛村)의 ‘우’자와 답곡(畓谷)의 ‘곡’자를 따서 우곡면(牛谷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미면(下彌面) 지역으로 도진·사부·저동·대곡·아라·월오·운동·아산·부례·부동·사동의 11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촌면(牛村面)·답곡면(畓谷面)·왕지면(旺旨面)의 일부를 병합하여 우곡면이라 하고 답곡·조지·포동·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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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초순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3·1운동은 국내외의 긴박한 정세에서 발생의 배경을 찾을 수 있다. 1914년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변화된 세계정세는 민족 문제에 대한 자각을 높이고 한반도를 비롯한 피압박 약소민족의 해방을 고무시켰다.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을 마무리하는 원칙으로 미국 윌슨 대통령이 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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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성주군 벌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로동·장척동·남양동을 병합하여 월성동이라 하고 다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다산면 월성리가 되었다. 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형성한 넓은 범람원이 펼쳐져 있다. 서쪽과 북쪽은 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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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별자리형 바위구멍 유적. 월성리 바위구멍 유적은 다산면 월성리 낙동강 강변에 형성된 해발 44.2m 정도 되는 야산인 발산에 위치한다. 이곳은 다산면과 성산면, 성주군 용암면으로 통하는 삼거리와 접해 있으며, 유적의 맞은편에는 다산중학교가 있다. 이 지역은 원래 반달 모양을 한 대가야시대의 토성 유적이 위치한 곳으로, 월성리(月城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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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는 전의이씨 동성마을. 월성리에는 높음방, 장자골, 수리니미, 상노다, 바래미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높음방은 마을에서 지대가 높은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고방이라고도 한다. 장자골은 키가 8척이나 되는 강하수라는 장군이 마을에 정착하였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달리 장자리·장척리라고도 한다. 수리니미는 마을을 둘러싼 산등성이가 수레바퀴처럼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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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는 대가야시대 토성 유적. 월성리 토성 유적은 다산면 월성리의 낙동강 변에 형성된 해발 44.2m 정도 되는 돌출 야산인 발산에 위치한다. 이 산은 다산면과 성산면, 성주군 용암면으로 통하는 삼거리로서, 군도 5호선과 군도 7호선에 의해 동쪽의 다산중학교가 있는 산지와 분리되어 독립된 야산처럼 보인다. 즉, 월성리 토성 유적은 다산중학교의 남쪽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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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에 있던 나루터. 월오나루터가 있는 우곡면 월오리는 원래 고령군 하미면에 속하는데 소학산 밑에 위치하여 달오 또는 월오(月塢)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오동이 되었고 우곡면에 편입되어,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월오 윤규(尹奎)가 이곳에 피난을 와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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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53년 경상북도 고령군을 비롯한 한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선제공격에 의해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까지 3년 1개월 동안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고 셀 수 없을 정도의 물적 기반이 파괴된 전쟁이다. 전쟁은 민족 간 전쟁의 성격으로 진행되었으나, 이후 유엔 연합군과 중국군이 참전하였다는 점에서 국제전으로서의 성격도 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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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에 있는 가야시대 산성. 의봉산성은 의봉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의 석성이며, 성안의 가장 높은 위치에 봉수대가 있다. 성안에서 채집되는 유물로 보아 대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산성이다. 자세한 건립 경위는 전하지 않지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수록된 이부로산봉수가 이곳으로 비정되므로 최소한 조선 전기까지는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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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계욱(季郁), 호는 옥산(玉山). 이기춘(李起春)[1541~1597]은 어릴 때부터 성현지학(聖賢之學)을 강구(講究)하여 학문과 덕행이 높았으며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송암(松菴) 김면(金沔), 성주의 한강(寒岡) 정구(鄭逑), 현풍의 대암(大庵) 박성(朴惺), 인동의 청휘당(晴暉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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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김면이 왜선 두 척을 포획한 전투. 2차 무계전투에 대한 기록은 『문수지』와 『용사일기(龍蛇日記)』에만 보이고 『모계일기(茅谿日記)』나 『고대일록(孤臺日錄)』 등의 다른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2차 무계전투의 노획 물품은 개산포대첩의 노획품과 함께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게 보내졌기 때문에 개산포대첩에서 획득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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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거주하는 주민 또는 집단의 수. 고령군의 인구는 1981년 47,000명에서 2001년 37,000명으로 지난 20년 동안 약 10,000여 명[약 21.1%] 감소하였고, 연평균 증가율은 -1.1%이다. 하지만 인구 감소 현상에도 불구하고 세대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1981년 10,000세대였으나 2001년에는 13,000여 세대로 약 2,600가구[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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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고령군은 경상북도 남서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남도 창녕군, 남쪽은 경상남도 합천군, 서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상남도 거창군, 북쪽은 경상북도 성주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내륙 지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의 연교차가 크고, 특히 여름에는 영천시, 대구광역시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유명하다. 경관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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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인안리(仁安里)에는 꼬뫼, 인안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꼬뫼는 낙동강 변에 있는 마을로 꿩뫼에서 변한 이름이다. 마을 뒷산의 모양이 마치 꿩이 매를 피하여 엎드려 있는 형상과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한자로는 치산(稚山)으로 표기한다. 인안은 마을 동북쪽 산줄기에 두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꼬뫼에서 날아온 꿩이 두 개의 알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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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년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일리군(一利郡)은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하는 562년(진흥왕 23)에서 757년(경덕왕 16)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과 다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달리 이산군(里山郡)으로도 불렸다. 이 시기 일리군의 치소는 오늘날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원동마을로 보기도 하지만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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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경상북도 지방을 대표하는 도자기 주산지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기록된 고령현 소속 공장에 소속된 사람들을 보면 야장(冶匠)·시장(矢匠)·피장(皮匠)·목장(木匠)·석장(席匠)·칠장(漆匠)·유구장(油具匠) 각 1명, 지장(紙匠) 3명, 사기장(沙器匠) 6명 등 모두 16명이다. 이 중 도자기를 제조하는 사기장이 6명으로,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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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손인갑과 정인홍의 부대가 왜군을 물리친 전투.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후 동래로부터 좌·중·우의 삼로(三路)로 갈라 한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이때 우로의 왜군은 동래-김해-무계-지례-금산-추풍령-영동-청주-경기도를 따라 진군하였고, 경상북도를 장악한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는 개령현에 주둔하고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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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경 임나 지역의 세력을 재건하기 위하여 개최된 회의. 가야는 신라가 법흥왕 이후 제도 정비를 토대로 해서 낙동강 유역으로 팽창을 도모함에 따라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자구책을 모색하였는데, 백제 성왕의 사비 천도 이후 중흥을 모색하던 백제와 가야의 이해관계가 합치됨에 따라 임나[가야] 재건을 위한 교섭이 이루어지면서 임나부흥회의가 열렸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529년 신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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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맞서 고령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부산포를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왜군의 주력 부대는 동래-기장-좌수영-울산-경주-영천-의흥-군위-문경의 좌로(左路)와 동래-양산-밀양-청도-경산-대구-안동-선산-상주의 중로(中路), 동래-김해-창원-영산-창녕-현풍-성주-지례-금산-추풍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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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발생한 기상·지변·생물 등 자연 현상으로 인한 피해. 고령군은 한반도 남부 내륙의 경상분지 내에 위치하고 있어 쓰나미 등과 같은 해안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는 없다. 그러나 동쪽으로 낙동강이 인접해 있어 여름철 집중 강수로 인한 풍수해와 겨울철 강수량 부족으로 인한 가뭄으로 인해 봄철에 모내기를 하지 못하는 피해를 겪기도 한다. 고령 지역에서 발생하는 자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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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고령 지역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남부 내륙 지방의 경상분지 내 낙동강 중·하류부 좌안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광역시와 창녕군에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거창군, 남쪽으로는 합천군, 북쪽으로는 성주군과 경계하고 있다. 고령군의 수리적 위치는 북위 35°36′32″[우곡면 객기리]~35°50′5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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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장기리 고분군은 대가야읍 중심부로부터 동쪽 직선거리로 2㎞ 정도 떨어진 대가천 건너 산 위의 두 부분에 위치한다. 금산(錦山)[286.4m] 남쪽의 장기리 고분군 ①과 금산재 건너 대가천 쪽으로 형성된 산에 위치하는 장기리 고분군 ②이다. 두 고분군은 약 400m 떨어져 있으며, 남쪽에 양전리 고분군이 위치한다. 솔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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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 고분 및 주거 유적. 대가야읍에서 대구 방면으로 통하는 종래의 국도 26호선인 금산재 오르막길 옆의 계곡 일대에 해당하며, 주로 계곡의 북쪽 경사면에 유적이 입지한다. 즉, 대가야읍 장기리 고분군 1과 장기리 고분군 2가 위치한 능선 사이의 골짜기에 해당한다. 고령군이 시행한 낙동강 유역 산림녹화기념숲 조성 공사와 관련하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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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정월(正月)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1년의 운세를 점쳐보는 달이다. 절일(節日)로는 정월 대보름[1월 15일]·7월 백중[7월 15일]·8월 추석[8월 15일] 등이 있다. 이러한 명일(名日)은 보름을 모태로 한 세시풍속이다. 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 사회에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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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때 고령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에 맞서 싸운 전투. 1597년(선조 30) 왜군이 조선을 재침략한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8월 초순 왜군이 고령 방면으로 침입하자 정기룡(鄭起龍) 장군이 고령에서 왜군과 맞서 7월 15일 도진리전투, 8월 7~8일 둔덕대첩, 8월 16일 용담천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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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정자. 제삼정이 위치한 개포리는 남동쪽 경계를 낙동강이 흐르고, 남서쪽 경계를 회천이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성산면과의 경계 지역에는 제석산(帝錫山)[389m]이 동서로 뻗어 있으나 곳곳에 평탄한 농지가 있고, 또 낙동강 변을 중심으로 농경지가 발달하여 농산물 생산이 풍부하다. 고령 현감 이형중(李衡仲)이 부임하여 송천방(松泉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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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와 성산면 어곡리에 걸쳐 있는 산. 제석산(帝釋山)과 관련된 설화는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 위치한 어실마을의 유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중기에 어느 정승이 황제의 명을 받고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한데서 제석산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명을 받고 정승이 다녀간 마을이라 하여 어실마을이라고 한다. 제석산 남쪽으로는 앞산[210.4m]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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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경상북도 고령군에 설치되었던 수리 시설. 제언이란 바닷물이나 강물을 막아서 농업용수를 저장·관리하는 수리 시설, 즉 돌이나 흙 등으로 쌓은 둑을 말하는데 벼농사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예로부터 국가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에서 제언은 일찍이 삼한시대에도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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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대가야에서 각종 철재를 만들던 기술. 제철이란 야금의 한 분야로서, 철광석으로부터 철을 추출하고 정련해서 각종 사용목적에 적합하게 그 조성 및 조직을 필요한 형태로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고대 우리나라의 여러 유적지에서 출토된 철기 유물들이 대부분 이기류와 무기류로 구성된 것은 우리 선조들이 일찍부터 철을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는 것과, 인간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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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와 연조리에 걸쳐 있는 산. 원래 대가야시대에 수비병들이 금산(錦山)[289m]에서 망을 보고 주산에 외적이 침입하던 것을 알렸다고 한다. 즉 외적이 침입해 오면 망산(望山)이라고도 하는 금산에서 서쪽에 있는 주산(主山)을 향해 적의 내습을 알렸다고 한다. 고령의 주산을 이산(耳山)이라고 부르는 것은 망산에서 적의 침입을 알리는 소리를 들으려는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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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반영된 주거 유형과 주거 의식. 고령군은 전통적인 농촌 지역으로 우리나라의 다른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집이 한옥이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정부의 취락 구조 개선 사업으로 국도변과 관광지 주변, 고속도로 변에 다수의 마을이 조성되면서 외형이 서구식에 가까운 양옥과 기존 한옥의 중간쯤 되는 가옥들이 건축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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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주을저수지는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와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사이의 미륵령[193.5m]에서 발원하여 남동류하여 다산면 호촌리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인 개뚝천의 상류부에 자리한다. 주을저수지는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 일대의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건립된 저수지로서, 사못, 용소저수지 등과 함께 1945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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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褓負商)은 등짐, 봇짐을 지고 여러 지역의 시장을 다니면서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을 통칭한다. 여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로 500년 도읍지 고령에도 보부상은 존재했는데, 그 중에는 연조리 사람들도 있어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한기마다 등짐과 봇짐을 지고 전국을 돌아 다녔다. 고령 보부상들은 19세기 중후반부터 조직화를 꾀해 1866년에는 좌사계(左社契)를 그리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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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못이 있어 못안골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모산골로 되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지산(池山)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기동·막곡동·신기동을 병합하여 지산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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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의 기반암을 이루는 지각의 성질과 특성. 고령군은 경상분지 내에 위치하고 있어 지체 구조상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류가 높은 밀도로 분포하고 있다. 고령군의 서쪽 산지를 이루는 기반암은 선캄브리아기의 소백산 변성암 복합체에 속하는 반상변정 편마암과 동시대의 화강암질 편마암이 북서부 지역을 이루고, 남서부의 일부 지역에는 선캄브리아기의 대상 편마암 및 화강 편마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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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의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고령군은 한반도 남부 내륙 지방의 경상분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낙동강과 접하고 있어 범람원이 넓게 발달해 있고, 서쪽으로는 북동-남서 방향의 소백산맥에서 이어진 산지들이 높게 솟아 있다. 고령군의 전반적인 지형은 상대적으로 해발고도가 높은 회천 서쪽의 산지와 회천·소가천·안림천 등을 비롯한 낙동강의 지류 하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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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인안2리에 있던 나루터. 진두나루터가 위치한 마을은 꼬미마을이라 불리는데, 본래 현풍군 진촌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서 낙동강 강변 서쪽에 위치한다. 마을 뒷산 생김새가 마치 꿩이 매를 피하여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 하여 꼬미, 꽁뫼로 불리며, 한자식 표기로는 ‘치산(稚山)’이다. 즉 ‘꿩뫼→꽁뫼→꼬미’로 바뀌어 불렸다고 전해진다. 꼬미마을 남쪽 인안마을의 동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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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의 성장에는 철광 개발과 이를 통한 철의 생산이 큰 기반이 되었다. 철의 왕국으로 알려진 대가야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나라 고대 제철의 일반적 특징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고, 고령 지역은 물론 인근의 합천 지역 등 대가야의 중심 영역에서 확인되는 제철 유적들을 검토해 봐야 한다. 여기에서는 이와 관련한 문헌 자료들을 검토한 후, 이를 통해 대가야의 제철 기술을 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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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를 도구로 사용하던 시기의 고령의 역사. 지금부터 약 3천 년 전부터 2천 년 전까지의 1천 년 정도 기간에 존재한 청동기시대의 문화적 특징은 청동 주조술의 발명과 청동기의 사용이며, 신석기시대의 즐문 토기와는 다른 무문 토기의 유행과 고인돌과 같은 거대한 돌무덤의 축조와 입석 등 거석문화가 시작되었다. 고령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고인돌과 입석이 있으며 토기나 석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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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와 예곡리에 걸쳐 있는 산. 청룡산의 산지를 구성하는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계 칠곡층이다. 칠곡층은 진주층을 부정합으로 덮고 진주층 동쪽에 접하여 고령군 다산면과 우곡면의 서부 지역에서 평균 폭 1.5㎞ 정도로 북동~남서 방향으로 대상 분포하고 있다. 이암과 사암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나 응회암질사암과 응회암질역암이 부분적으로 분포하여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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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는 조선 전기 객사 유적. 1493년(성종 24)에 건립된 조선 전기 객사 유적이다. 객사(客舍)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한 국가 기관이었다. 객사는 고려 예종과 인종 이전부터 지어지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후기에 확산되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거의 모든 지방 읍치에 정착되었다. 객사는 정청(正廳)에 전패(殿牌)를 모셔두고 대궐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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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토기는 원삼국시대 와질 토기에서 발전한 것으로, 주로 낙동강 이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가야 토기는 김해 대성동 29호묘와 양동리 235호묘 출토품으로 볼 때 3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에 처음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기원은 그릇 모양이나 자연유, 성형법 등으로 보아 한(漢)의 회유도(灰釉陶)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제작 기술면에서는 이전 시기의 토기들과 차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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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의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이 풍화·분해되어 생성된 흙. 토양은 지표상에 서식하는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근본적인 토대이다. 인류의 문명이 발생한 지역은 대부분 큰 강 유역의 범람원으로, 하천의 홍수로 인해 형성된 비옥한 충적토에서 농업 활동을 시작하면서 문명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토양 조건은 인간의 농경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토양의 생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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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생산되는 특색 있는 산물. 지역마다 지형, 기온과 강수량에 차이가 있고 토질이 달라 그 지방의 풍토에 알맞은 특산물이 생산된다. 특히 한국은 예부터 지역성이 강하여 지방 특산물이 많다. 고령 지역은 낙동강의 수리 시설을 개선하고, 경지 정리 등을 통하여 농업의 근대화를 도모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고령 지역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다산 지역의 약초인 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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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서 개포나루와 떡전골목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팔만대장경 지고 나른 개포나루와 떡전골목」은 팔만대장경을 운반하던 곳이었던 개포나루와 함께 먹거리 골목인 떡전골목의 내력을 담고 있는 역사담이자 유래담이다. 고령군은 예로부터 강에 물이 많아 수로가 발달한 곳이다. 예전에는 육로가 불편하여 많은 물자를 나르기에 어려움이 많아 수로를 이용하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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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고령의 도공 팔산(八山)이 이룩한 일본 도자기 문화의 일맥. 오늘날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말한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강토 방방곡곡에서 무차별로 끌고 간 수많은 조선 도공들을 일본의 사쓰마[薩摩]와 아리타[有田]·가라쓰[唐津]·아가노[上野]·다카도리[高取]·하기[萩]·야쓰시로[八代]·소다이[小代]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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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개척할 당시 들판에 마을이 있었다 하여 들마[일명 평리]라 하였다. 달리 닷기, 다사지, 답지, 다기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성주군 다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리동이라 하고 다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1일 다산면 평리리가 되었다. 낙동강 물길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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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고도가 낮고 기복이 거의 없는 평탄한 지대가 펼쳐진 땅. 고령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만들어 놓은 영남 지역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흐르는 낙동강의 대유역 분지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평지보다 저산성 구릉지가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곡류하는 낙동강의 활주 사면을 따라 북쪽에서부터 다산평야·개진평야·우곡평야 등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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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낙동강 변에 대바우나루터가 있어 포동이라고도 하였다. 마을이 들어선 낙동강 변에 갯벌이 많이 모여 있어 개밭골 또는 갯골이라고도 한다. 현재 갯벌은 경지 정리를 하여 넓은 논으로 바뀌었다. 조선 말기 현풍군 왕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후동을 병합하여 포동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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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포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포리는 조선 말기 현풍군 왕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마을을 지나는 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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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17대 종손 김병식[1933년생] 씨는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던 17세 때 6·25전쟁을 맞았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 누나와 생질과 함께 서울을 출발하여 포연 속을 걸어서 꼬박 한 달 만에 고향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발바닥은 불어 터져 피고름이 줄줄 흘렀다. 종가(宗家)인 문충세가(文忠世家)는 6·25전쟁의 포탄에도 건재했다. 그런데 고향집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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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사부리와 고령군 운수면에 걸쳐 있는 가야시대 산성. 풍곡산성은 성산면 사부리와 운수면 운산리를 가르는 해발 300m 미만의 야산지대에 위치하는 토석 혼축의 산성이다. 남서쪽 능선으로 연결되는 가야시대 망산산성의 간성으로 추정된다. 건립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대가야읍에서 동쪽으로 약 4㎞ 떨어진 성산면 사부리 뒷산에 위치하며, 고령군에서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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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육지 표면의 자연 수계를 따라 물이 흘러 형성된 물길과 계류. 하(河)는 보통 큰 강을 뜻하고 천(川)은 작은 강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큰 강을 강(江), 작은 강을 천(川) 또는 수(水)로 나타내고 있으나 오늘날에는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표면에 내린 비나 눈은 일부는 지표면이나 수면에서 증발하고, 일부는 식물체를 거쳐 증산(蒸散)하여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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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에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낙동강권역본부 산하 고령권 지사. 한국수자원공사 낙동강권역본부 고령권지사은 경상북도 고령군, 성주군, 대구광역시 달성군 일원의 수자원 시설 건설, 관리, 개발 사업 및 수도 시설의 운영과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기업이다. 2004년 2월 5일 고령군 다산면에 영남내륙권 수도건설단사무소로 개소하였다. 2006년 12월 1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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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정치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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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이후 경상북도 고령 지역의 역사. 현대라 함은 역사학의 시대 구분 가운데 사상(思想)이나 그 밖의 것이 현재와 같다고 생각되는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동양사에서는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서양사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현대라고 말한다. 고령군은 옛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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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강화경판 고려대장경(江華京板 高麗大藏經)’[일명 강화경판]은 13세기 중반 몽고의 침략으로 야기된 민족적 수난기에 피난 수도였던 강화경(江華京)에 설치된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조성되어, 1236년(고종 23)부터 1251년(고종 38)까지 16년간에 걸친 공역으로 이루어졌다. 강화경판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운된 시기에 대해서는 고려 말기 설[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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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낙동강 변에 있어 마을 개척 당시에 늪이 많아서 늪마, 또는 호수가 있어 호촌이라 하였다. 약 500년 전 큰 홍수로 낙동강이 범람하여 큰 호수가 생기고 그곳 흙을 훑어갔다고 하여 훑촌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성주군 다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촌동을 병합하여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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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에 따르는 모든 의례와 절차. 일생의례 중에서도 혼인은 ‘대사(大事)친다’는 말이 있듯이 중대한 행사 중의 하나였다. 혼례는 음양의 상생, 곧 성적 이분법의 합일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의례이다. 혼인의 어원을 찾아보면, ‘혼(婚)’은 원래 ‘혼(昏)’으로서 해가 진 후에 예를 치른다는 뜻이고, ‘인(姻)’은 여자가 남자로 말미암아 성례한다는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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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서 발원하여 소가천·안림천 등을 합류하고,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에서 낙동강의 중류로 흘러드는 하천. 회천은 대가천(大伽川)·소가천(小伽川)·안림천(安林川)·용담천(龍潭川)이 모여서 된 하천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회천은 낙동강 권역의 낙동강 수계에 속하며, 고령군 운수면에서 시작하여 대가야읍 본관리에서 소가천이 흘러들고, 대가야읍 동남 하류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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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에 있는 다리. 회천교는 회천으로 유입되는 대가천을 통과하여 가설된 교량인데, 대가천을 광범위하게 회천의 범주에 넣는 경우도 있으므로, 회천이라는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 회천교는 교장 375.0m, 총 폭 10.0m, 유효 폭 8.5m, 교고 8.0m이다. 경간 수는 15개, 최대 경간장은 25.0m에 달한다. 상부 구조 형식은 PSCI[압축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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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외리와 장기리를 연결하는 다리. 회천대교는 행정구역상 고령군 대가야읍에 가설된 교량이지만 실제 대가야읍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전의 동고령IC[성산IC]를 이용하거나 고령군 쌍림면에 위치한 고령IC를 이용해야 한다. 즉 대가야읍 외리와 장기리에 걸쳐 있으나 고속국도 상의 교량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들 두 마을의 연결 기능보다는 광역 지역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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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와 반성리를 연결하는 다리.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후암리의 이름을 따서 후암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후암은 마을 뒷산이 바위로 둘러싸여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후암교는 교장 95.0m, 총 폭 8.5m, 유효 폭 7.0m, 교고 4.0m이다. 경간 수는 7개, 최대 경간장은 14.0m에 달한다. 상부 구조 형식은 RCS[RC슬러브교], 하부 구조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