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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만 구한 무정한 오라버니(-救-無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야정리에서 무정한 오라버니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내만 구한 무정한 오라버니」는 아내와 여동생이 함께 물살에 휩쓸려 가는 것을 보고 아내만 구해내 결국 여동생은 안타깝게 죽게 되었다는 슬픈 인간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0년에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 아동 경제 인성 캠프(兒童經濟-人性-)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시행한 청소년 대상 경제 교육 및 인성 교육 프로그램. 아동 경제·인성 캠프 사업은 지역 사회 서비스 투자 사업의 일환으로 2008년 7월 보건복지가족부에 사업을 제안하여 8월에 경상북도에서는 고령군이 처음으로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고령군에서는 관내 청소년들에게 체험 학습을 통해 합리적인 경제 습관과 리더십, 논리력, 창의력을 터득...

  • 아리랑 체조 경연 대회(-體操競演大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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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고령군 보건소 주관으로 개최되었던 체조 경연 대회. 고령군에는 딸기, 멜론, 참외, 수박 등 비닐하우스 재배 지역이 많은데, 비닐하우스 작업은 무릎을 구부린 채로 쪼그리고 앉아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무릎관절에 과도한 무리를 가져와 무릎 골관절염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골관절염 예방 관리 사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골관절염 예방 관리 사업을 지...

  • 아림(娥林)고령 안림 딸기 마을(高靈安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 있는 정보화 마을. 고령안림딸기마을은 지형적으로 경상북도의 최남서단에 위치하여 대구광역시와 접하고, 88고속도로 고령인터체인지와 바로 접하는 사통오달하는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가야산과 낙동강 사이의 환경이 쾌적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전원 도시, 근교 농업, 중소 규모의 공업지로 투자 가치가 충분한 매력이 있어 각광받는 곳이다. 고령군 쌍림면 안...

  • 아세동지(冬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태양이 동지점을 통과하는 때인 12월 22일경에 지내는 절기. 동지(冬至)는 24절기의 하나로서 1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를 ‘아세(亞歲)’, ‘작은설’이라고도 한다.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태양의 황경이 270°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고 한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 아시동(阿時洞)아시리재(阿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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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에서 성주군 용암면 동락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시리재는 해발고도 60m 정도의 낮은 안부로 불당산[172.5m]의 남서쪽에 위치한 고령군과 성주군의 경계에 위치하여 두 지역을 연결해 주는 교통로 역할을 한다. 아시리재에 있는 나정리 아시터마을과 아시리재의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아시터마을은 옛날 어느 스님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산수가 수려해 고개...

  • 아시리재(阿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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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에서 성주군 용암면 동락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시리재는 해발고도 60m 정도의 낮은 안부로 불당산[172.5m]의 남서쪽에 위치한 고령군과 성주군의 경계에 위치하여 두 지역을 연결해 주는 교통로 역할을 한다. 아시리재에 있는 나정리 아시터마을과 아시리재의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아시터마을은 옛날 어느 스님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산수가 수려해 고개...

  • 아시티아시리재(阿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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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에서 성주군 용암면 동락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시리재는 해발고도 60m 정도의 낮은 안부로 불당산[172.5m]의 남서쪽에 위치한 고령군과 성주군의 경계에 위치하여 두 지역을 연결해 주는 교통로 역할을 한다. 아시리재에 있는 나정리 아시터마을과 아시리재의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아시터마을은 옛날 어느 스님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산수가 수려해 고개...

  • 아시현(阿時峴)아시리재(阿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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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에서 성주군 용암면 동락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시리재는 해발고도 60m 정도의 낮은 안부로 불당산[172.5m]의 남서쪽에 위치한 고령군과 성주군의 경계에 위치하여 두 지역을 연결해 주는 교통로 역할을 한다. 아시리재에 있는 나정리 아시터마을과 아시리재의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아시터마을은 옛날 어느 스님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산수가 수려해 고개...

  • 아이와 아내 잃은 새 울음 소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서 원앙부부의 슬픈 사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이와 아내 잃은 새울음 소리」는 홍수로 떠내려가 죽은 아내와 아이의 목소리가 새 울음소리로 되었다는 불여귀담이다. 불여귀란 ‘돌아감만 못하다’라는 뜻으로, 소쩍새[杜鵑]를 의미하거나 소쩍새가 우는 소리의 의미로 돌아가지 못한 원혼(怨魂)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

  • 아치곡아치실 유래(阿致-由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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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예곡리에서 아치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치실 유래」는 꿩이 알을 품고 있는 지형이라 하여 ‘와치실(臥雉室)’이라고 하던 것이 아치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아치실’로도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2월 고령군청이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고령 지역 설화 DB 구축 및 아동용 설화집 제작을 위한 스토리 보드 구축 사업’...

  • 아치실아치실 유래(阿致-由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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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예곡리에서 아치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치실 유래」는 꿩이 알을 품고 있는 지형이라 하여 ‘와치실(臥雉室)’이라고 하던 것이 아치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아치실’로도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2월 고령군청이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고령 지역 설화 DB 구축 및 아동용 설화집 제작을 위한 스토리 보드 구축 사업’...

  • 아치실 유래(阿致-由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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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예곡리에서 아치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치실 유래」는 꿩이 알을 품고 있는 지형이라 하여 ‘와치실(臥雉室)’이라고 하던 것이 아치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아치실’로도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2월 고령군청이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고령 지역 설화 DB 구축 및 아동용 설화집 제작을 위한 스토리 보드 구축 사업’...

  • 아파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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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들어선 5층 이상의 서구식 주거 공간. 온돌과 단층 구조, 열린 공간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한옥이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전형이라면, 아파트는 가스 혹은 열 병합 난방 구조와 고층, 폐쇄성, 독립성, 이합집산을 특징으로 하는 서구식 주거 문화의 표상이다. 아파트 문화의 확산은 산업화 및 도시화, 서구화와 궤를 같이한다. 아파트는 인구의 도시 집중과 핵가족화를 수...

  • 악곡면(岳谷面)덕곡-면(德谷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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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산악(山岳)이 많아 악곡면(岳谷面)이라 하였다가 조선 인조 때 윤휘(尹暉)가 덕곡면(德谷面)으로 고쳤다. 조선 말기 성주군(星州郡) 악곡면 지역이었다가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덕곡방(元德谷坊)의 15개 동, 인곡방(仁谷坊)의 13개 동, 관동방(館洞坊)의 후암(後岩)·지사(志士)를 병합하여 덕...

  • 악성 우륵 상(樂聖于勒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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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는 조형물. 악성 우륵은 고령 출신의 우리나라 3대 악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악성 우륵을 기념하기 위해 현대에 제작된 조형물이다. 악성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 조사, 발굴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우륵박물관 앞에 있다. 역사적, 사료적 가치는 높지 않다. 또한 조형물의 우륵과 우륵박물관 내에 소장된 우륵의 영정 사진을 비교하면 모습과 형태가 다...

  • 악성 우륵 추모제(樂聖于勒追慕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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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우륵의 음악 정신을 기리고자 개최되는 축제.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사람인 우륵의 위업을 기리고 그의 음악 정신을 계승하고자 고령군이 주최하고 고령문화원이 후원하여 1979년 제1회 악성우륵추모제를 개최하였다. 가야금의 창시자인 우륵에 대한 추모제를 봉행하고 더불어 우륵의 창작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차원에서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1...

  • 안골내상-리(內上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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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리의 낫골 안쪽이 되므로 안골·내상곡·내상동·내상이라 하였다. 산과 산이 이어진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리 또는 내산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촌동을 병합하여 내상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

  • 안동 방-골에 얽힌 이야기(安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서 안동방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안동방골에 얽힌 이야기」는 다산면 상곡리의 지명에 ‘안동’이란 명칭이 쓰인 지명유래담이자 해가 지면 나타나는 방바꾸이 귀신의 퇴치 실패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1997년 11월 17일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현 대가...

  • 안림 교회(安林敎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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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안림교회는 ‘믿음, 소망,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회, 예수 안에서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02년 3월 5일 강재성이 최래익, 배치운, 임재하, 백경준, 조쌍례, 최주현 등의 신자를 얻고 49.59㎡ 규모의 초가집을 구입하여 예배를 보는...

  • 안림 초등학교(安林初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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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안림초등학교는 예절 바르고 슬기롭게 봉사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했다. 1933년 6월 5일 쌍림국민학교 부설 안림간이학교로 개교하였다. 1943년 6월 13일 안림국민학교로 독립하였고, 1981년 3월 10일 안림국민학교 병설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87년 12월 20일 1·2층 교실을 증축하였고, 1996년 3월 1...

  • 안림교(安林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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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와 신곡리를 연결하는 다리.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안림리의 이름을 따서 안림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안림이란 지명은 제방의 숲이 마을의 바람을 막아주어 평안하게 한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안림은 조선시대 한양으로 가는 제5대로 지선에 안림역이 있어 성산면의 무계역과 함께 고령 지역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곳이며, 안림장이 들어선 시장 취락이기도 하였다....

  • 안림-리(安林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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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에 의성김씨 김남득(金南得)이 공민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고령김씨로 분관하여 일등공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봉해지고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이 되었다. 나라로부터 3재[풍해(風害), 수해(水害), 한해(旱害)]가 없는 사패지(賜牌地)를 받고 정착하면서 안림천 변의 수목이 울창하고 물이 깊고 맑으며 숲이 아름...

  • 안림-리(安林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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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에 의성김씨 김남득(金南得)이 공민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고령김씨로 분관하여 일등공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봉해지고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이 되었다. 나라로부터 3재[풍해(風害), 수해(水害), 한해(旱害)]가 없는 사패지(賜牌地)를 받고 정착하면서 안림천 변의 수목이 울창하고 물이 깊고 맑으며 숲이 아름...

  • 안림-리 고분군(安林里古墳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안림리 고분군은 대가야읍 중심부로부터 서남쪽으로 직선거리 2.2㎞ 떨어진 고속국도 12호선[88올림픽고속도로] 서고령IC 진입로의 서쪽과 남쪽 야산에 세 곳으로 나뉘어져 분포한다. 안림리 고분군 ①은 서편의 한국도로공사 경북지역본부 고령지사가 있는 해발 203m 야산에서 동쪽 평지에 이르기까지의 범위에 분포한다. 안림리 고...

  • 안림-리 비석군(安林里碑石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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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 마을 농협 창고 정면 출입문 좌측에 자리 잡고 있다. 왼편의 비석은 앞면에"사검관이공규진구폐시□□(査検官李公圭真捄弊施□□)"라고 쓰여있다. 귀접이형으로 기단석 없이 비신 하단을 땅에 묻어 세웠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98㎝, 너비 40㎝, 두께 13㎝이다. 오른편에 있는 비석은 앞 면에 "행군수심후택진휼민...

  • 안림-리 샘에 얽힌 이야기(安林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서 샘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안림리 샘에 얽힌 이야기」는 마을에 샘을 파면 훌륭한 인물이 탄생하지 못하고 인심도 흉흉해진다는 금기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2년에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 주민 김순남[66]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1996...

  • 안림리 썩은 덤 이야기(安林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서 썩은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안림리 썩은덤 이야기」는 영웅호걸을 많이 배출하려면 썩은덤이라는 절벽을 산덤으로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도사의 충고를 따랐다가 실패하였다는 풍수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2004년 경상북도에서 발행한 『산과 숲 나무에 얽힌 고향이야기』와 2006년 고령군에서 간행한 『고령 지역 설화 자료집』, 2006년 박찬...

  • 안림장(安林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서 매 1일과 6일에 개시되던 오일장. 안림장은 조선시대에 개설되었다. 원래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는 조선시대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에 딸린 역(驛)이 있었던 지역이며, 대가야읍에서 북쪽으로 20리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경상남도 합천군과 연결되는 교통의 집산지이기도 하였는데, 1897년(고종 34) 역이 폐지되면서 주변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

  • 안림천(安林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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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의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백산리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안림천은 안림을 흐르는 하천이라는 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고려 말 의성김씨(義城金氏) 김남득(金南得)이 공민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고령김씨(高靈金氏) 김자광(金紫光)을 녹대부(祿大夫)로 고양부원군에 봉하였다. 김자광이 안림천 지역을 풍해(風害)...

  • 안림천교(安林川橋)안성천교(-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와 대가야읍 외리를 연결하는 다리. 안성천교는 행정구역상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와 대가야읍 외리에 걸쳐 있으나, 고속국도 상의 교량으로서 이들 두 마을의 연결 기능보다는 광역 지역을 연결하는 교량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성천교가 있는 쌍림면 안림리는 과거에 교통 및 상업의 중심지였다. 안성천교는 또 다른 이름으로 안림천교라 불리는데, 안...

  • 안방골안동 방-골에 얽힌 이야기(安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서 안동방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안동방골에 얽힌 이야기」는 다산면 상곡리의 지명에 ‘안동’이란 명칭이 쓰인 지명유래담이자 해가 지면 나타나는 방바꾸이 귀신의 퇴치 실패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1997년 11월 17일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현 대가...

  • 안-산(案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곡리에 있는 산. 안산의 산지를 구성하고 있는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계 진주층이다. 진주층은 하산동층을 정합적으로 덮고 있고 이암·셰일·사암이 주를 이루며 부분적으로 역질사암도 나타난다. 이 지층에 협재된 엷은 탄질셰일은 이 지층이 형성 되던 당시 환경이 배후 습지성 소택지였음을 시사한다. 북쪽에는 만산[267m]과 남쪽에는 솜등산[270.1...

  • 안성천교(-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와 대가야읍 외리를 연결하는 다리. 안성천교는 행정구역상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와 대가야읍 외리에 걸쳐 있으나, 고속국도 상의 교량으로서 이들 두 마을의 연결 기능보다는 광역 지역을 연결하는 교량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성천교가 있는 쌍림면 안림리는 과거에 교통 및 상업의 중심지였다. 안성천교는 또 다른 이름으로 안림천교라 불리는데, 안...

  • 안택(安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집안에 모신 신령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안택(安宅)은 가신에게 고사를 지내 집안의 재수와 안녕, 화평을 비는 신앙 행위이다. 이를 ‘안택굿’ 혹은 ‘안택고사’라고도 일컫는다. 안택은 보통 가을걷이를 마친 다음 음력 10월 상달에 행한다. 이는 ‘상달 성주 모시기’와도 관련되며, 지방에 따라서는 성주굿, 성주받이굿 또는 안택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

  • 안택고사안택(安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집안에 모신 신령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안택(安宅)은 가신에게 고사를 지내 집안의 재수와 안녕, 화평을 비는 신앙 행위이다. 이를 ‘안택굿’ 혹은 ‘안택고사’라고도 일컫는다. 안택은 보통 가을걷이를 마친 다음 음력 10월 상달에 행한다. 이는 ‘상달 성주 모시기’와도 관련되며, 지방에 따라서는 성주굿, 성주받이굿 또는 안택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

  • 안택굿안택(安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집안에 모신 신령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안택(安宅)은 가신에게 고사를 지내 집안의 재수와 안녕, 화평을 비는 신앙 행위이다. 이를 ‘안택굿’ 혹은 ‘안택고사’라고도 일컫는다. 안택은 보통 가을걷이를 마친 다음 음력 10월 상달에 행한다. 이는 ‘상달 성주 모시기’와도 관련되며, 지방에 따라서는 성주굿, 성주받이굿 또는 안택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

  • 안화곡안화-리(安和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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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둘러싼 산이 겨울의 세찬 북풍과 여름의 태풍을 막아 주어 주민들이 편안하고 화합하는 마을이므로 안화(安和)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 국토가 왜군에게 짓밟히자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리 안홧골·안화곡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유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부동을...

  • 안화교(安和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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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에 있는 다리.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안화리의 이름을 따서 안화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안화리는 북서쪽의 안림천 방향을 제외하고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안화마을과 가부리마을 등이 있다. 안화는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편안한 마을 또는 안림천 건너편 떨어진 곳에 있어 평안하고 화락한 마을이라는 유래를 가진다. 또 임진왜란 때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뜻...

  • 안화-리(安和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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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둘러싼 산이 겨울의 세찬 북풍과 여름의 태풍을 막아 주어 주민들이 편안하고 화합하는 마을이므로 안화(安和)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 국토가 왜군에게 짓밟히자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리 안홧골·안화곡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유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부동을...

  • 안화-리 바위 구멍 유적(安和里-遺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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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별자리형 바위구멍 유적. 안화리 바위구멍 유적은 쌍림면 안화리의 자연 바위면 위에 새겨진 청동기시대의 바위구멍 유적으로, 바위면 위에 구멍을 새기고 구멍 사이를 홈으로 연결시켜 놓은 별자리형 바위구멍이다. 고령 지역에서는 이러한 바위구멍 유적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령 나들목에서 안림교를 지나 곧바로 왼쪽으로 난 도로...

  • 안홧골안화-리(安和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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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둘러싼 산이 겨울의 세찬 북풍과 여름의 태풍을 막아 주어 주민들이 편안하고 화합하는 마을이므로 안화(安和)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 국토가 왜군에게 짓밟히자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리 안홧골·안화곡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유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부동을...

  • 알구멍바위 구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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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일원에 분포하고 있는 바위면 위에 구멍을 새겨 놓은 바위구멍 유적. 바위구멍[성혈(姓穴)]은 일반적으로 암각화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구별하여 바위 면에 둥근 구멍을 파 놓은 바위구멍 유적을 말한다. 바위구멍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알구멍’이나 ‘굼’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바위구멍은 보통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내...

  • 알터 암각화고령 양전-동 암각화(高靈場基里岩刻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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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암각화[바위그림].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1976년 8월 6일에 보물 제605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 명칭은 고령 양전동 암각화였으며, 2010년 10월 고령 장기리 암각화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대가야읍 장기리[구 개진면 양전동]의 알터마을에 위치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 마을을 알현마을, 즉 알터...

  • 알터 전설(-傳說)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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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알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알터 전설」은 김알지의 탄생담이자 가야의 건국담이며, 알터의 유래를 담고 있는 지명유래담이다. 이를 「장씨 박골 전설」이라고도 한다. 알터는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532번지[아래알터길 15-5]에 위치하고 있다. 알터마을은 개진면 양전리에 있으며, 이곳 면사무소의 책자에 의하면 양전에서 조그마한 재 너머...

  • 알터에 있는 절벽 회선대(-絶壁會仙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회선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알터에 있는 절벽 회선대」는 개진면 양전리 알터에서 전승되는 김면(金沔)[1541~1593] 장군의 효심이 서린 회선대[호선대]에 대한 지명유래담이자 효행권면담이다. 현재 회선대는 심하게 훼손된 채 방치되어 있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 암각화의 고장 고령(岩刻畵-高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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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각화(岩刻畵)란 말 그대로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암벽 등에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시베리아와 중국, 몽골 등의 동북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1970년대 초 고령 장기리 암각화와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가 학계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대략 20여 개소 이상의 유적이 발견·소개되...

  • 애국 계몽 운동(愛國啓蒙運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교육을 통해 국권을 수호하고 근대 민족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운동. 개항기 고령 지역에서는 관과 유림을 중심으로 교육기관 설립 등 각종 교육 및 문화 사업이 펼쳐져 실력 양성론에 입각한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방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신민회 등의 단체 설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06년 군수 윤하영...

  • 액유각인(額有角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이마에 뿔난 사람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액유각인」은 이마에 뿔이 난 미오사마국(弥烏邪馬国) 왕자가 소와 바꾼 흰 돌이 변신한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서 일본에까지 건너갔다고 하는 이주도래담(移駐渡来談)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11월 9일 경상북도 고령군...

  • 야정-리(野亭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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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인조 때 삼학사의 한 사람인 화포(花浦) 홍익한(洪翼漢)이 고령현감으로 부임하여 정자를 짓고 ‘들의 노인정’이라는 뜻의 야옹정[일명 양우정, 양오정]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야옹정에서 넓은 들을 바라보며 경치를 읊은 ‘야옹팔경’이 지금도 전해 내려온다. 야정2리는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변에 기러기가 많이 놀아 ‘기러기 안(雁)’...

  • 야정-리 느티나무(野亭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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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야정리에 있는 수령 약 350~470년의 보호수 세 그루. 야정리 느티나무는 높이 9~10m, 가슴높이 둘레 3.3~5.7m, 나무갓 너비 12~18m정도의 세 그루의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야정리 느티나무가 있는 곳은 일제강점기 때 간이학교가 설립되었던 곳인데, 1943년 학교가 폐쇄될 당시 세 나무가 윙 소리를 내며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야정리 느티나무...

  • 야정-리 유물 산포지(野亭里遺物散布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야정리에 있는 대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우곡면사무소가 있는 도진리에서 서쪽으로 회천을 건너는 도진교를 지나 직진하면 야정리 아치봉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속리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가면 중간에 야정리 야옹정마을이 위치해 있다. 야정리 유물산포지는 야옹정마을과 속리 웃마을에 이르는 도로변의 우측 능선과 사면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유물은 주로...

  • 야학(夜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사회 교육.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한 일제는 기존의 교육 제도를 공립화 하는 데 매진했고, 이로 인해 서당 등 향촌 자치적인 교육기관이 모두 철폐되면서 배우고자 하는 학생 수에 비해 학교 수가 턱없이 부족해졌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전국 각 지역의 청년회가 야학 또는 강습소를 설치·운영하면서 이러한...

  • 약 단술(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봄에 여러 가지 약초를 가미해서 만들어 먹었던 일종의 건강 음료. 약단술은 약선(藥饍), 약식(藥食)과 더불어 일종의 건강식품이다. 몸에 좋은 여러 가지 약초 성분을 가미하여 만들므로 ‘약식혜’라고도 불렀다. 의약 발달이 미비했던 예전에는 민간 의료 차원에서 질병 예방이나 치료를 위해 관련 약초를 가미한 약단술을 만들어 복용했다고 전한다. 약단술의 주요 재...

  • 약-샘과 효녀(藥-孝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에서 약샘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약샘과 효녀」는 병든 아버지를 구하고자 온갖 고생 끝에 신령한 약샘을 찾아서 아버지를 살린 어린 효녀의 구약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5월 11일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 173번지에 거주하는 주민 이원화[남...

  • 약식혜약 단술(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봄에 여러 가지 약초를 가미해서 만들어 먹었던 일종의 건강 음료. 약단술은 약선(藥饍), 약식(藥食)과 더불어 일종의 건강식품이다. 몸에 좋은 여러 가지 약초 성분을 가미하여 만들므로 ‘약식혜’라고도 불렀다. 의약 발달이 미비했던 예전에는 민간 의료 차원에서 질병 예방이나 치료를 위해 관련 약초를 가미한 약단술을 만들어 복용했다고 전한다. 약단술의 주요 재...

  • 양반 마을 도진리에 복음을 전하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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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진리는 고령박씨 집성촌으로 고령 지역의 대표적인 양반 마을이다. 이 때문에 충과 효를 숭상하는 유교적 풍습이 강하게 뿌리내려 기독교가 정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교회가 처음 생긴 것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51년이었다. 도진리에 처음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전한 개척 교인은 당시 우곡고등공민학교[우곡중학교 전신]의 김기윤 교장과 고령읍교회 집사인 민명수 씨였다...

  • 양전교(良田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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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다리.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양전리의 지명을 따서 양전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양전리는 마을 가운데로 신안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양전이란 우거진 솔밭을 불태워 밭으로 개간하여 좋은 밭이 되었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양전교는 교장 22.0m, 총 폭 8.5m, 유효 폭 7.0m, 교고 3.5m이다. 경간 수는 2개이며, 최대 경...

  • 양전-리(良田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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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양전리와 반운리 사이에 소나무가 우거져 송곡동(松谷洞)이라 하였고, 분지 지형인 까닭에 수리 시설이 불안전하여 밭이 많았으므로 양전(量田)이라고도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솔밭을 불태웠는데 다시 밭으로 개간하였으므로 좋은 밭이란 뜻에서 양전(良田)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알터[卵峴]는 양전에서 조그마한 고개를 넘어 회천 변에...

  • 양전-리 고분군(良田里古墳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양전리 고분군은 대가야읍 중심부로부터 동남동으로 직선거리 2.5㎞ 떨어진 대가천 건너 야산에 위치한다. 고분군의 동쪽에 양전마을이, 서남쪽에 보물 제605호 고령 장기리 암각화가 있으며 북쪽 가까이에 장기리 고분군이 있다. 양전리 고분군에서는 아직 발굴 조사된 고분이 없다. 양전리 고분군은 분포 범위의 북단 중간에 해발 2...

  • 양전-리 고인돌군(良田里-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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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대가야읍에서 회천교를 지나 금산재를 넘으면 오른쪽 개진면 양전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지방도가 나온다. 이 지방도를 따라 반운리 방향으로 1㎞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양전정미소가 있다. 양전정미소 뒤편 양전마을의 남쪽 끝부분에 해당하는 지점에 3기의 양전리 고인돌군이 위치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 양전-리 느티나무(良田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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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수령 약 400년의 보호수. 양전리 느티나무는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6.3m, 나무갓 너비 18m이다. 양전리 느티나무는 1982년 10월 29일 노거수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관리 면적은 360㎡이고, 양전2리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가로 75㎝, 세로 55㎝의 입간판에 보호수 지정번호, 보호수 지정일시, 수종 및 수령, 소재지에 관...

  • 양전-리 선사 유적(良田里先史遺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생활 유적. 금산재에서 양전리 고분군으로 이어지는 동남쪽 능선을 타고 첫 번째 정상을 지난 산 능선의 편평한 대지에 분포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알려져 왔으나 아직까지 한 차례도 발굴 조사된 바가 없었으며, 2007년 처음으로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다. 과거 산림이 우거지기 전에 채집된 유물들은 주로 평저의 민...

  • 양전이-리 내-동 동제(良田二里內洞洞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양전리는 조선 말기 고령군 송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

  • 양전정(良田井)송암정(松庵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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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우물. 송암정은 임진왜란 당시 정인홍, 곽재우 등과 함께 영남 지역 3대 의병장의 한 사람이었던 송암(松庵) 김면(金沔)[1541~1593]이 자신의 생가에 직접 파서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성산면에서 대가야읍 방향으로 가다가 금산재를 넘기 전에 우곡면, 개진면 쪽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양전리 양전마을이 나온다. 송암정은 양...

  • 양전지사못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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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사못은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 대가야읍 장기리, 성산면 사부리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금산[289m]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흘러 개진면 반운리에서 회천으로 유입하는 하천인 신안천의 상류부에 위치하는 저수지이다. 금산재의 동쪽에 위치하며, 금산의 남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소하천을 수원으로 삼고 있다.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 양...

  • 양죽당(養竹堂)박정완(朴廷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군실(君實), 호는 양죽당(養竹堂). 아버지는 낙랑당 박택(朴澤)이다. 박정완(朴廷琬)[1543~1613]은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의 문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친척 동생인 박정번[김면 의병진 참모]과 가동(家僮)을 이끌고 개산포전투, 무계전투의 준비에서 승리까지 공훈을 세워 거창현감, 안음(安陰)현감을 역임하였다....

  • 양천 최씨 오현세적비(陽川崔氏 五賢世蹟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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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5현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 양천최씨 오현세적비는 박택(朴澤), 박정번(朴廷璠), 윤규(尹奎), 박윤(朴潤), 최여설(崔汝楔) 등 5현의 사적(事蹟)을 기록한 비석이다. 낙락당(樂樂堂) 박택은 고령인 박계조(朴継祖)[양산군수]의 아들로 남명(南冥) 조식(曺植), 배신(裴紳)과 교우하여 도의가 높고 효성과 덕행이 뛰어나며 학문이 넓었다. 학암(...

  • 양촌(陽村)김수문(金秀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평경(平卿), 호는 양촌(陽村). 할아버지는 김장생(金莊生)이다. 김수문(金秀文)[1506~?]은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동래현령·김해부사·제주목사를 역임하였고, 1555년(명종 10) 을묘왜란 때는 제주도에 침입한 왜선(倭船)을 대파하기도 하였다. 이어서 한성판윤 겸 오위도총관에 이르렀다....

  • 양평(襄平)정종(鄭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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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동래(東萊). 할아버지는 정절공(靖節公) 설학재(雪壑齋) 정구(鄭矩)이다. 정구는 좌찬성을 지냈으며, 예서·초서·전서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다. 청렴하고 예의가 발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으로 옮겨 살았는데, 그의 자손들 역시 양주와 수원 등 경기 지역에서 많이 살았다. 아버지는 판관 정선경(鄭善卿)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

  • 어곡어곡-리(於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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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엽 마을을 개척할 당시 한 정승이 어명을 받고 이곳에 있는 제석산[387m]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으므로 어실 또는 어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어곡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어곡리가 되었다...

  • 어곡-리(於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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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엽 마을을 개척할 당시 한 정승이 어명을 받고 이곳에 있는 제석산[387m]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으므로 어실 또는 어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어곡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어곡리가 되었다...

  • 어곡-리 고인돌(於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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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대구에서 고령으로 들어오는 고속국도 12호선[88올림픽고속도로] 동고령나들목을 나와 국도 26호선을 따라 고령 방면으로 600m 정도 오면 성산면사무소가 나온다. 어곡리 고인돌은 성산면 어곡리 금평마을, 성산면사무소와 성산중학교 사이에 있는 민가 담장 뒤편에 1기가 있고, 성산면사무소 뒤에 2기가 위치해 있다. 주민들의 증언...

  • 어곡-리 동제(於谷里洞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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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곡리는 재석산 밑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조 중엽 성주이씨가 마을을 개척할...

  • 어곡-리 보건 진료소 유적(於谷里保健診療所遺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어곡리 보건진료소 유적은 대구에서 고령으로 이어지는 고속국도 12호선 동고령 성산나들목으로 나와 국도 26호선을 따라 고령 방면으로 약 600m 떨어진 성산면사무소 북쪽 담장과 접한 곳에 있다. 이전에는 전답과 과수원 묘목장으로 사용되었다. 2007년 대동문화재연구원이 성산면 어곡리 225-2번지에 보건지소를 신축하기에...

  • 어곡-리 왕버들(於谷里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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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 있는 수령 약 200년의 보호수. 어곡리 왕버들은 높이 10m, 가슴높이 둘레 2.8m, 나무갓 너비 10m이다. 아주 오래전 이 마을에 마음씨 좋은 가난한 농부와 마음씨 고약한 부자가 살았는데, 농부에게는 품성이 바르고 잘생긴 아들이 있었고 부자에게는 마음씨 착하고 어여쁜 딸이 있었다고 한다. 농부는 아들을 훌륭히 키우고자 들일도 시키지 않으며 공...

  • 어라성(御羅城)망산성(望山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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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망산에 있는 대가야시대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9, 고령현 봉수조에 망산봉수가 “현의 동쪽 7리에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망산은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설치될 만큼, 군사·교통·통신 등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망산은 대가야읍, 개진면, 성산면, 운수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대구에서 고령 읍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해...

  • 어머니의 무덤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서 어머니 무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어머니의 무덤 이야기」는 4남매가 묻은 어머니 무덤의 위치에 따라 가세가 번창하고, 아니면 집안이 몰락한다는 풍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5월 11일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동 예리 1573번지에 거주하는...

  • 어실어곡-리(於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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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엽 마을을 개척할 당시 한 정승이 어명을 받고 이곳에 있는 제석산[387m]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으므로 어실 또는 어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어곡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어곡리가 되었다...

  • 어은(漁隱)전영세(全永世)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인노(仁老), 호는 성재(惺齋)·어은(漁隱). 전영세(全永世)[1537~?]는 효도와 우애가 뛰어났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시묘를 하였다. 임진왜란에 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군공(軍功)을 세웠다. 난이 평정된 이후 나라에서 훈공(勳功)을 주려고 하였으나 받지 않고, 벽송정 아래에 살면서 스스로 ‘어은’이라 하였다....

  • 어은재(漁隱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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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에 있는 전영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대가야읍에서 쌍림면사무소를 지나 합천 해인사 방...

  • 언론 출판(言論出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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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방송, 신문,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하여 사실을 전달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언론이란 고령 지역의 정치·사회·문화·교육·사회 전반에 걸친 정보의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말이나 글로써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정보 전달, 문제 제기,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통틀어 말한다. 고령 지역 언론은 크게 신문과 방송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재 2개의 지방지와 1개의 케이블...

  • 언어(言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어휘, 음운, 문법적 체계와 특징. 언어는 경상북도 서남단에 위치하여 성주군, 달성군,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며, 소백산맥과 낙동강으로 둘러싸인 고령에서 사용하는 특이한 단어나 언어적 현상을 뜻한다. 이를 방언, 사투리, 지역 방언, 지역어 등이라고 한다. 고령의 지역 방언은 경상도 방언의 특성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어휘와 음운 면에...

  • 얼숙이와 까불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두 남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얼숙이와 까불이」는 부모상을 입은 얼숙이가 평소에 상대방을 속여서 골탕을 먹이던 까불이에게 속아 미친 사람으로 오해를 받게 되었다는 소화담이다. 2006년 2월 고령군청이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고령 지역 설화 DB 구축 및 아동용 설화집 제작을 위한 스토리 보드 구축 사업’의 1차년도 연구결과 보고서...

  • 엔에이치 농협 경북 지역 본부 고령-군 지부(-農協銀行高靈郡支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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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는 NH농협은행 산하 고령군 지부. 1961년 8월 15일 「농업협동조합법」[법률 670호, 1961년 7월 29일 제정]에 의해 개별 회원 농업협동조합의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회원 조합의 공동 이익 증진과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농업협동조합중앙회가 설립되었다. 1999년 3월 발표된 협동조합 개혁 방안에 따라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와 인삼...

  • 여경(汝慶)유정환(兪鼎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여경(汝慶). 유세훈(兪世薰)의 고손자이다. 유정환(兪鼎煥)[1716~1785]은 아버지가 오랜 병환으로 고생하자 13세의 어린 나이로 아버지의 인분을 맛보며 병세를 살폈으며, 생명이 위급함에 이르러서는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함으로써 연명하게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여 의원을 모시러 그믐밤에 홀로 고개...

  • 여명(汝命)김홍한(金弘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여명(汝命), 호는 의재(義齋).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재종숙이다. 김홍한(金弘漢)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종숙 김면과 함께 성산면 무계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 여보(儷甫)허항(許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여보(儷甫). 아버지는 허명신(許命申)이며,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허항(許伉)[1636~?]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이웃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병들어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꿩이 홀연히 부엌으로 날아들었고,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이 덮인 못 위로 고기가 뛰어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이 같은 기이...

  • 여상(汝常)이춘형(李春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여상(汝常). 아들로 이영숙(李永叔)을 두었다. 형은 이운(李雲), 아우는 이수(李需)이다. 이춘형(李春亨)[1541~1600]은 임진왜란 때 형제들과 아들 이영숙, 조카 이영해·이영순·이영청·이영항·이영택, 종조카 이종인 등 12명이 함께 창의(倡義)하여 고령 방위 등 각지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품계가 통덕랑에 이르...

  • 여성 이장으로 장수마을 사업을 이루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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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진리 사람들의 자랑 중 하나는 굵직한 마을 발전 사업을 척척 유치해 낼 뿐만 아니라 마을 살림까지도 잘 꾸려 나가는 여성 이장[이명희]이 있다는 점이다. 이명희[1956년생] 씨는 우곡면에서는 홍일점 여성 이장이요, 고령군내에서는 세 명의 여성 이장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경상북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농촌건강장수마을 사업을 유치해 노인들의 건강과 여가, 화...

  • 여응(汝應)이기상(李基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여응(汝應). 고조할아버지는 명종 대 유일로서 사헌부지평에 천거된 근재(勤齋) 이동례(李東禮)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현룡(李見龍)이며, 할아버지는 통덕랑 이유달(李惟達)이다. 아버지는 옥천(玉川) 이익화(李翊華)로 현종 대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그의 재주를 귀하게 여겨서 강릉참봉에 천거하였다....

  • 여인(汝引)신급(申汲)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여인(汝引). 아버지는 신경추(申景樞)이다. 신급(申汲)[1624~1695]은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급하자 자신의 피를 내어 약으로 썼다. 어머니의 장례 후에는 여막도 없이 무덤 아래에서 끼니도 거른 채 슬피 울었는데,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치는 일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몸이 상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 여인의 저주 내린 무당-바위(女人-詛呪-巫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서 무당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여인의 저주 내린 무당바위」는 궂은 날이면 바위에서 무당이 굿하는 소리가 난다고 하여 무당바위라고 부른다는 암석유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4월 5일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벌지2리 주민 배임도[남, 86]에게서...

  • 역사(歷史)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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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고령군의 역사. 고령이라는 지명은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대가야군(大加耶郡)을 고령군(高靈郡)으로 개칭할 때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 고령현(高靈縣)에 현감이 내려와 다스리기 시작하였고,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개정하면서 경상도 고령현을 고령군으로 개칭하였다. 1896년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 역원(驛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시대 고령 지역에 있던 역과 원. 역원(驛院)에서의 역(驛)은 군사적 의미가 매우 크고 관에서 설치·운영하여 교통을 지원하는 행정 기관의 역할을 한 반면, 원(院)은 민간 여행객들을 위한 시설로 숙박과 음식을 제공하였다. 역은 대로변에 12㎞마다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전국 각지에 두었다. 중앙과 지방간에 공문 전달, 관리의 사행 및 운수를 뒷받침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 연강 전투(沿江戰鬪)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592년 고령 지역에서 김면이 의병을 일으켜 벌인 전투. 송암(松庵) 김면(金沔)이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첫 전과는 6월 9일 개산포대첩에서 거두었지만, 고령을 떠나 거창으로 가기 전 4월 말에서 5월초 연강(沿江)에서 한 차례 왜군과 전투를 벌인 것이 연강전투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면은 1592년(선조 25) 4월 하순 가솔을 피난시키고 사촌 아우들과 가동(家...

  • 연극(演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 지역을 배경으로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종합 예술. 연극은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탐색하고 조망하는 예술 장르의 하나로, 무대라는 공간 위에서 연기자와 연출자·무대 스텝들의 창조적인 작업의 결과로 나타나는 종합예술이다. 모든 예술이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두듯 연극 역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탐색하는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 연-리(蓮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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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기에 형성된 마을로, 마을 앞을 흐르는 회천 변 늪에 연꽃이 만발할 때면 그 경치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연화동(蓮花洞)이라고 부르다가 연동(蓮洞)이 되었다. 마을 뒷산이 얼음 등처럼 생겨 빙등산이라 하였고, 그 산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빙등 또는 빈등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

  • 연-리 느티나무(蓮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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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연리에 있는 수령 약 320년의 보호수. 연리 느티나무는 높이 16m, 가슴높이 둘레 2.8m, 나무갓 너비 30m이다. 연리 느티나무 밑에는 뿌리 사이로 흐르는 물이 고여 우물이 생겼는데, 이 물이 위장병에 좋은 약수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상수도 수원지로서 각 가정에 공급되고 있다. 연리 느티나무는 1982년 10월 29일 노거수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 연-리 동제(蓮里洞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연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냈던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리는 조선 말기 고령군 하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 연-리 유물 산포지(蓮里遺物散布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우곡면사무소가 있는 도진리에서 회천을 따라 객기리 방향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연리가 나온다. 연리에서 답곡리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갈림길의 동편 능선과 밭에 위치하고 있다. 연리 유물산포지는 연리의 하미마을과 연동마을 사이에 있는 우곡초등학교 뒤편 구릉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

  • 연봉과 의봉-산(延鳳-儀鳳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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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서 연봉과 의봉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연봉과 의봉산」은 의봉산에서 봉황이 내려와 앉았다고 해서, 또는 새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연봉이라고 불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1996년 고령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고령군지』에도 연봉의 유래가 수록되어...

  • 연월당(燕閒堂)김선명(金善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선산[一善]. 초명은 세옥(世玉), 자는 문원(聞遠), 호는 모헌(慕軒)·연한당(燕閒堂).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8대조이며, 김종직의 넷째 아들인 김숭연(金嵩年)[1486~1539]이 7대조이다. 김숭연은 일직손씨(一直孫氏) 사이에 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인 김윤(金綸)이 일찍 졸하여 6대조인 김유(金維)[1515~1562]...

  • 연자마연자방아(硏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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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방에서 사용했던 동물의 힘으로 곡식을 빻거나 찧기 위한 농기구. 연자방아는 확돌, 절구, 절구공이, 매통, 토매, 매함지, 매판, 맷돌다리, 맷방석, 물레방아 등과 함께 알곡 및 가루를 내는 농기구의 한 종류이다.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의 종류도 동력을 만들고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연자방아[축력·인력]를 비롯하여 물방아[수력], 물레방아[수력], 디딜방아[인력]...

  • 연자매연자방아(硏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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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방에서 사용했던 동물의 힘으로 곡식을 빻거나 찧기 위한 농기구. 연자방아는 확돌, 절구, 절구공이, 매통, 토매, 매함지, 매판, 맷돌다리, 맷방석, 물레방아 등과 함께 알곡 및 가루를 내는 농기구의 한 종류이다.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의 종류도 동력을 만들고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연자방아[축력·인력]를 비롯하여 물방아[수력], 물레방아[수력], 디딜방아[인력]...

  • 연자방아(硏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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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방에서 사용했던 동물의 힘으로 곡식을 빻거나 찧기 위한 농기구. 연자방아는 확돌, 절구, 절구공이, 매통, 토매, 매함지, 매판, 맷돌다리, 맷방석, 물레방아 등과 함께 알곡 및 가루를 내는 농기구의 한 종류이다.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의 종류도 동력을 만들고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연자방아[축력·인력]를 비롯하여 물방아[수력], 물레방아[수력], 디딜방아[인력]...

  • 연조-리(延詔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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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가야에서 조서(詔書)를 발표하여 붙이던 조서문(詔書門)[지금의 게시판]이 있던 마을이므로 연조리(延詔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동·봉두동을 병합하여 연조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

  • 연조-리 고분군(延詔里古墳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연조리 고분군은 주산(主山)[310.3m] 정상부에서 동북동으로 뻗은 주능선과 치소지(治所地)를 향한 산기슭의 여러 산등성이와 비탈면에 분포한다. 산재된 토기 조각으로 보아 해발 177m 지점부터 시작하여 곡간(谷澗)의 경작 범위와 산 아래 주거지의 일부까지 분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고분군의 동남부 산등성이에서는...

  • 연조-리 느티나무(延詔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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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 있는 수령 약 340년의 보호수. 연조리 느티나무는 높이 13m, 가슴높이 둘레 4.8m, 나무갓 너비 11.7m이다. 연조리 느티나무는 대가야시대에 아홉 신하가 놀던 장소 또는 국사를 논의하던 곳이라 하여 구신정(九臣亭)이라고도 하는데, 후세 사람들에게 잘못 전해져 ‘구신나무’ 또는 ‘귀신나무’라 부르고 있다. 대가야 성지 안에 자리잡고 있는 구...

  • 연조리 여성 노인의 삶과 6·25전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령읍 연조2리에 살고 있는 신임이[1932년생] 씨는 일제 강점기 거창군 북산면 황산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고 5촌 당숙의 슬하에서 성장했다. 신임이 씨는 여자들은 길쌈만 잘하면 되는 줄 알고 길쌈과 바느질하는 데만 신경을 써 아직까지 한글을 깨치지 못했단다. 신임이 씨는 15세 때 22세의 남편[고 최월달]과 혼인 후 대구시 산격동에서 신혼 생활...

  • 연조-리 왕정(延詔里王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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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초등학교에 있는 대가야시대 어정. 고령 지역에는 대가야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이 여럿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현 남쪽 1리에 대가야 궁궐지가 있고 그 옆에 돌우물이 있는데 세상에서 어정(御井)이라 전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개항기 고령 지역의 유학자인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이 1910년...

  • 연조-리 추정 궁성 터(延詔里推定宮城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 있는 가야시대 궁성 터. 고령 주산성과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배경으로 대가야읍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설상대지(舌狀臺地)에 입지하고 있는 대가야 때의 궁성지 유적이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고령향교가 있으며, 조선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궁성지와 관련된 기록들이 전해오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 연조-리 출토 신장 상(延詔里出土神將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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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대가야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금동 불상. 불상에는 석가여래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미륵불 등의 여래불과 관음보살을 비롯한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등이 있다. 또 그 아래로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상과 팔부중상, 인왕상 등이 있고, 마지막으로 16나한상과 500나한상 등이 있다. 불상의 재질 또한 주로 돌을 다듬은 석불이 많지만,...

  • 연조-리 토기 요지(延詔里土器窯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 있는 가야시대 토기요지. 연조리 토기요지는 대가야 치소지(治所地)에 조영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오른쪽 산중에 위치하며, 1기만 확인되었다. 위치상으로 특이한 연조리 토기요지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높은 능선부에 입지한 대형분에 부장할 토기를 일시적, 혹은 단기간에 생산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고령체육관에서 고령 지산동 고분군 산책로 중간의 기념탑에...

  • 연조리에서 가장 큰 교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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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향교 가 위치한 언덕의 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고령제일교회는 부설 유치원을 운영할 정도로 연조리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교회다. 고령제일교회는 1956년에 설립되었으며, 1980년에 현재의 위치에 새로 건립되었다. 2010년 현재 목사 1명, 부목사 1명, 전도사 2명, 시무장로 7명을 비롯하여 300여 명의 신자로 구성되어 있다. 부설 유치원을 설립한 시기는 2006년으로...

  • 연조리의 대가야 문화유산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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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조리가 위치한 대가야읍은 현재는 비록 작은 농촌 도시지만,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에는 우리나라 고대사의 한 축을 이루었던 대가야의 화려했던 중심지였다. 도읍의 중심부인 연조리에는 왕이 머무르는 왕궁과 그것을 둘러싼 도성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즐비하게 늘어선 관청과 귀족들의 가옥들이 건축되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궁성에서 왕의 명령이나 포고문들이 공포될 때마다 그것을 널...

  • 열녀(烈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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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열녀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로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충·효·열 관념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 형태로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체계화되면서 열녀는 사회적으로 더욱 중요성을 강화해 갔다. 고...

  • 열매동화암-리 꽃질 마을 절강 시씨 집성촌(花岩里-浙江施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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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에 있는 절강시씨 동성마을. 마을 산 모양이 연꽃과 같고 봄이면 온 산이 꽃으로 둘러싸여 산에 오를 때면 꽃길을 걸어가는 것 같아 하여 꽃길의 사투리인 꽃질이라 하였다. 달리 꽃동네란 뜻의 화동(花洞), 꽃골이란 뜻의 화곡(花谷), 꽃이 지고 열매를 많이 맺으므로 열매동이라고도 한다. 꽃질마을은 다시 안꽃질과 아래꽃질로 나누어진다. 안꽃질은 꽃질마을에서...

  • 열매동꽃질의 유래(-由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에서 꽃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꽃질의 유래」는 화암리에 있는 꽃질이라는 마을의 이름이 봄철이면 온 산이 꽃으로 둘러싸여 꽃길을 걸어가는 듯해서 명명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1996년 고령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고령군지』와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꽃질이라는...

  • 열뫼깃대봉(-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직리와 성산면 기산리에 걸쳐 있는 산. 깃대봉은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낙동통에 속하는 진주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주층은 하산동층을 정합적으로 덮고 있고, 이암·셰일·사암이 주를 이루며 부분적으로 역질사암도 나타난다. 본층에 협재된 엷은 탄질셰일은 이층이 형성되던 환경이 배후 습지성 소택지였음을 시사하므로, 중생대 백악기에는 깃대봉 일대가 배후 습지성 소택지...

  • 열미깃대봉(-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직리와 성산면 기산리에 걸쳐 있는 산. 깃대봉은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낙동통에 속하는 진주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주층은 하산동층을 정합적으로 덮고 있고, 이암·셰일·사암이 주를 이루며 부분적으로 역질사암도 나타난다. 본층에 협재된 엷은 탄질셰일은 이층이 형성되던 환경이 배후 습지성 소택지였음을 시사하므로, 중생대 백악기에는 깃대봉 일대가 배후 습지성 소택지...

  • 열부 이야기(烈婦-)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서 선산배씨 가문의 열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열부 이야기」는 불에 휩싸여 죽게 된 시아버지를 불길에 뛰어들어 살린 선산배씨 가문의 며느리가 열부상을 받게 된 효행담이자 열녀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25일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

  • 염수재(念修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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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에 있는 중국 절강시씨 후손들이 세운 재실. 시문용(施文用)은 1572년 명나라의 예부상서(禮部尙書) 시윤제(施允濟)의 아들로, 병부좌랑(兵部佐郞)을 지내다가 1597년 명나라의 황제 신종의 명을 받아 병력을 이끌고 합천, 가야산 등지에서 왜적을 토벌하고 조선에 머물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임명되었다. 1622년 벼슬을 사직하고 타계함에 따라 그...

  • 영(岺)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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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산지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낮은 안부(鞍部)에 오랫동안 주민들이 왕래하면서 만들어진 교통로. 고개는 산지 능선의 해발고도가 높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낮은 안부로서 오랫동안 주민들이 왕래하면서 만든 교통로이다. 안부는 대체로 절리 밀도가 높은 곳이나 암석의 경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부분이 풍화 작용으로 형성된다. 고개의 영어명 ‘pass’는 ‘passabl...

  • 영(嶺)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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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산지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낮은 안부(鞍部)에 오랫동안 주민들이 왕래하면서 만들어진 교통로. 고개는 산지 능선의 해발고도가 높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낮은 안부로서 오랫동안 주민들이 왕래하면서 만든 교통로이다. 안부는 대체로 절리 밀도가 높은 곳이나 암석의 경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부분이 풍화 작용으로 형성된다. 고개의 영어명 ‘pass’는 ‘passabl...

  • 영남 사림의 자부심, 점필재 김종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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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실마을 사람들에게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 후손에게 점필재 할배[할아버지]는 삶의 사표이자 본보기입니다. 지난 칠십 평생 우리 할배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정말 애써 왔어요.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그분이야 학문적으로 대학자요, 청백리의 위정자이자 올곧은 선비의 표상인데…… 만 분의 일, 천만 분의 일이라도 흉내라...

  • 영남폭동십일 항쟁(十一抗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46년 10월 경상북도 고령군민이 참가한 시위사건. 10·1항쟁은 10·1사건, 10월 폭동사건, 10·1폭동, 영남폭동, 10·1소요, 46년 가을 폭동, 10월 폭동, 추수 폭동, 10월 항쟁, 10월 인민항쟁 따위에서 나타나듯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 만큼 역사적 평가의 편차도 매우 크다. 8·15광복 직후 경상북도의 사회 경제적인 상황이 10·1항쟁을 발생시켰다. 미군정의...

  • 영등 맞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음력 2월 초하루에 영등할머니를 위하는 의례. 영등맞이는 바람을 관장하는 영등할머니를 위하는 가정 신앙 의례이다. 음력 2월에는 하늘에서 ‘영두할매’ 혹은 ‘용두할매’로 일컬어지는 영등할머니가 내려온다고 해서 바람이 많이 분다. 그래서 매년 2월 초하루에 영등할머니를 위한 기원 의례를 행한다. 이를 ‘풍신제(風神祭)’ 혹은 ‘2월 바람 올리기’라고도 한다. 고령...

  • 영연 서원(靈淵書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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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사촌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서원. 영연서원은 신덕린(申德隣), 박은(朴誾), 정사현(鄭師賢) 3현을 향사(享祠)하였다. 그 후 운수면 운산리에 있는 운천서원과 합쳐지면서 홍익한(洪翼漢), 김수옹(金守雍)의 위패를 옮겨 함께 추향하였다. 신덕린은 여말선초의 서화가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불고(不孤), 호는 순은(醇隱)이다.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성용(成...

  • 영연 서원 묘정비(靈淵書院廟庭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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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사촌리 영연서원 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비석. 서원(書院)은 선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던 조선시대의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조선시대 최초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였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향사하기 위해 영주에 세운 백운동서원이었다. 이후 1549년(명종 4) 풍기군수 이황(李滉)이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을 추진...

  • 영정각(影幀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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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 있는 우륵 추모 사당. 영정각은 고령군에 소재한 금곡(琴谷), 즉 정정골에 위치한 우륵(于勒) 추모 사당이다. 고령 출신의 우륵이 가야금을 처음으로 연주를 하였을 때 금곡 골짜기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고 하여 지금까지도 정정골로 불리어지고 있다. 영정각은 악성 우륵의 정신을 기념, 계승, 추도하기 위하여 1980년대에 건립되었다. 정면 3칸, 측면...

  • 영주(令州)김상덕(金尙德)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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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덕(金尙德)[1891~1950]은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저전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영주(令州)이다.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상덕은 1912년 고령공립보통학교와 1915년 경신학교를 졸업한 후 1917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를 거쳐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

  • 영주-목관(靈州牧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시대 고령 지역의 지명.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고령 지역을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상도지리지』 고령현조에 고령을 “전해 오는 이야기로서 고려 때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고, 또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在高麗時稱高陽大都護府又稱靈州牧官此則諺傳也]”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 등의 다른 자료에는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 영험한 호랑이 이야기(靈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에서 호랑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영험한 호랑이 이야기」는 길에 쓰러진 젊은이를 장원 급제하도록 도와준 호랑이와 그 은혜에 감사하며 호랑이 무덤까지 만들어서 그의 넋을 기렸다는 동물담이자 보은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18일 경상북도...

  • 영화(映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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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역과 관련한 내용을 가지고 연속 촬영한 필름을 연속으로 스크린에 비추어 물건의 모습이나 움직임을 실제와 같이 재현하여 보이는 영상. 고령 지역에서는 그동안 영화 산업과 영화 관련 내용이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최근 우륵의 생애를 소재로 한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를 영화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현의 노래」는 6년여...

  • 예곡아치실 유래(阿致-由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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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예곡리에서 아치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치실 유래」는 꿩이 알을 품고 있는 지형이라 하여 ‘와치실(臥雉室)’이라고 하던 것이 아치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아치실’로도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2월 고령군청이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고령 지역 설화 DB 구축 및 아동용 설화집 제작을 위한 스토리 보드 구축 사업’...

  • 예곡(禮谷)곽율(郭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태정(泰靜), 호는 예곡(禮谷). 곽율(郭慄)[1531~1593]은 조선 중기 경상남도 성리학의 대표적 학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고제(高弟)[많은 제자 가운데 특히 뛰어난 제자]로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명종 때 생원시에 급제하여 포산오현(苞山五賢)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 특히 명종 때 영남 선비들이...

  • 예곡-리(禮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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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례동의 ‘예’자와 부곡동의 ‘곡’자를 따서 예곡(禮谷)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아치실은 고려 초기 아치산[207m] 밑에 형성된 마을로, 지형이 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꿩 혈의 정기를 받는다는 믿음으로 꿩을 보호해 오고 있다. 달리 아치리·아곡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현풍군 답곡면 지역으로 1906...

  • 예곡-리 동제(禮谷里洞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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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예곡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예곡리는 조선 말기 현풍군 답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아치산 밑에 있어...

  • 예곡재(禮谷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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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 있는 곽율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시대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대가야읍에서 쌍림면 방향으로 난 국도 2...

  • 예-리(禮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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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리(禮里)에는 예동(禮洞)·소성전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예동은 옛날 경암(儆庵) 이안징(李安徵)이 마을을 개척하고 건너 마을이 인의(仁義)의 마을인 인곡(仁谷)이니 맞은편에 있는 이 마을은 예의로써 동방의 모범이 되라는 의미로 예동이라 하였다. 예리는 예동에서 따 온 이름이다. 소성전은 달리 소형전(小荊田)·중흥(中興)이라고도 한다. 조...

  • 예-리 고분군(禮里古墳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예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예리 고분군은 곡저 평지를 이루는 소가천 유역의 중간에 비교적 너른 충적지 옆 산에 위치한다. 주로 대가야시대 구덩식 돌덧널무덤군[수혈식 석곽묘군]으로 이루어진 소가천 유역의 소단위 고분군에 해당하며, 피장자(被葬者)들은 예동마을 일대에 살았던 주민들로 추정된다. 예리 고분군은 대가야읍 중심부로부터 서북으로 직선거리 6.6㎞...

  • 예-리 예-동 동제(禮里禮洞洞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예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던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예리는 조선 말기 성주군 인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 예리산성(禮里山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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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예리에 있는 가야시대 산성. 예리산성은 대가야시대의 석축 산성이다. 대가야시대에 신라군이 침입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예리산성을 축조하였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는 설화가 전해오기도 한다. 실제 예리산성은 대가야시대에 축조되어 신라의 침입을 막는 산성으로 기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리산성의 건립 연대는 문헌 자료가 전하지 않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잘...

  • 옛 가야 구신정과 구신 나무(-伽倻九臣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1리에서 구신정과 구신나무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옛 가야 구신정과 구신나무」는 아홉 개 행정 구역 출신의 아홉 신하가 국사를 의논하던 곳이라는 데에서 구신나무라고 불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1리 434번지에 구신나무라고 불리는 큰 느티나무가 있다. 수명이 약 320년인 이 구신나무는 고령군에서 보호하고 있으며, 여름이면...

  • 오곡오곡-리 오실 마을 함안 조씨 집성촌(午谷里-咸安趙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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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는 함안조씨 동성마을. 오곡리에는 오실, 신곡, 뱃가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오실은 오전에만 햇빛이 들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마을이 다섯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신곡은 성주이씨가 들어와 새로 개척한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고향 마을 이름을 따서 상곡이라고도 한다. 뱃가는 나루터에 가까운 마을이어서 붙인...

  • 오곡오곡-리 오실 마을 연안 차씨 집성촌(午谷里-延安車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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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는 연안차씨 동성마을. 오전에만 햇빛이 들기 때문에 오실 또는 오곡이라 하였다. 마을이 다섯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연안차씨 고령 입향조 차군보가 현풍에서 성산면 오실마을로 옮겨 와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후손 일부는 다산면 호곡마을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오실마을이 속한 오곡리...

  • 오곡-리(午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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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전에만 햇빛이 들기 때문에 오실 또는 오곡이라 하였다. 낙동강 변에 자리 잡은 자연마을인 뱃가는 수로를 이용하여 대구(大邱)·현풍(玄風) 등지를 왕래하던 나루터가 생기면서 들어선 마을이다. 달리 배두새·진두(津頭)라고도 하였다. 조선 선조 때 조일도(趙逸道) 형제가 함안 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 오곡-리 오실 마을 연안 차씨 집성촌(午谷里-延安車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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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는 연안차씨 동성마을. 오전에만 햇빛이 들기 때문에 오실 또는 오곡이라 하였다. 마을이 다섯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연안차씨 고령 입향조 차군보가 현풍에서 성산면 오실마을로 옮겨 와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후손 일부는 다산면 호곡마을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오실마을이 속한 오곡리...

  • 오곡-리 오실 마을 함안 조씨 집성촌(午谷里-咸安趙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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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는 함안조씨 동성마을. 오곡리에는 오실, 신곡, 뱃가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오실은 오전에만 햇빛이 들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마을이 다섯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신곡은 성주이씨가 들어와 새로 개척한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고향 마을 이름을 따서 상곡이라고도 한다. 뱃가는 나루터에 가까운 마을이어서 붙인...

  • 오동나무(梧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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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의 군목(郡木). 오동나무는 쌍떡잎식물강 꿀풀목 오동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관목으로, 고령군을 상징하는 군의 나무이다.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가야천 변의 오동나무로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령 지역에 고르게 분포한다. 재질이 가볍고 나뭇결이 아름다우며 갈라지거나 뒤틀리지 않아 고급 가구나 악기 재료로 이용한다. 높이 15m에 달하며, 잎은 마주나...

  • 오로성 이야기(吾老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에서 오로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오로성 이야기」는 왜적들의 침입을 대비하여 성을 쌓고 임진왜란 때 여러 차례에 걸친 왜군의 침입을 마을 주민이 일심동체가 되어 막아냈다는 지략담이자 당시에 구축한 성이 오로동 뒷산에 있다고 하여 오로성(吾老城)이라고 한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

  • 오로재(吾老齋)정종(鄭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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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동래(東萊). 할아버지는 정절공(靖節公) 설학재(雪壑齋) 정구(鄭矩)이다. 정구는 좌찬성을 지냈으며, 예서·초서·전서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다. 청렴하고 예의가 발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으로 옮겨 살았는데, 그의 자손들 역시 양주와 수원 등 경기 지역에서 많이 살았다. 아버지는 판관 정선경(鄭善卿)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

  • 오름실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에서 오름실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오름실 이야기」는 호조판서 동평군(東平君)인 정선경(鄭善卿)이 내가 거주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오로실(吾老室)이라 했다가 음운이 변해 ‘오름실’이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 10월 21일 경상북...

  • 오리천(吾利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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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의 북두산 북동 사면에서 발원하여 용흥리·원송리·본리리를 지나 소가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오리천은 고령군 덕곡면 용흥리 오리동마을을 지나는 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오리동은 서흥김씨(瑞興金氏)와 동래정씨(東萊鄭氏)들이 개척한 마을로서 큰 오동나무가 있어 오리동 오릿골이라고 불렸다. 오리천은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 북두산(北斗山)[687.9m]의 북동 사면...

  • 오사-나루터(五士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에 있던 나루터. 오사마을은 본래 고령군 구곡면 지역에 속하였다. 마을 뒷산인 제석산(帝釈山)[387.1m]에 절이 있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불당골로 불렸으며, 그 절에서 5명의 도사(道士)가 태어났으므로 오사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그 절터에는 개진초등학교가 세워져 있으며, 절에서 사용하였던 우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 오사-리(五士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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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에 절이 있어 불당골이라 하였는데, 그 절에서 다섯 명의 도사(道士)가 났으므로 오사(五士)라 하였다가 오사(吾士)로 바뀌었다. 현재 절터에는 개진초등학교가 들어섰고, 절에서 사용했던 우물의 흔적만 남아 있다. 조선 말기 고령군 구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도리를 병합하여 오사동이라 하고 개진면에 편...

  • 오사-리 동제(吾士里洞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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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사리는 고령군 구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서 재석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 오사-리 오사 마을 달성 서씨 집성촌(吾士里吾士-達城徐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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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에 있는 달성서씨 동성마을. 마을 뒷산에 절이 있어 불당골이라 하였는데, 그 절에서 다섯 명의 도사(道士)가 났으므로 오사(五士)라 하였다가 오사(吾士)로 바뀌었다. 현재 절터에는 개진초등학교가 들어섰고, 절에서 사용했던 우물의 흔적만 남아 있다. 마을에 있는 비석에 새겨진 기록에 따르면, 약 300년 전 달성서씨를 비롯하여 경주최씨·김해김씨·경주이씨...

  • 오상옥(吳相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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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국서(國瑞), 호는 국포(菊圃). 오운(吳澐)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오연순(吳演淳)이며, 맏아들로 태어났다. 오상옥(吳相玉)[1847~1910]은 밖으로는 능숙한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안으로는 극진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병들어 의원에게 약을 구하러 가자, 인분을 약으로 먹이라고 하였다. 이에 인분으로 만...

  • 오실-나루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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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는 오곡(午谷), 신곡(新谷), 뱃가라 부르는 3개의 자연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선조 때 조일도 형제가 함안 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다 오곡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꿈에 심산유곡에서 학이 날아와 앉는 것을 보고 정착하게 되었다 한다. 이때 이 마을에 오전에만 햇빛이 들었기 때문에 오실...

  • 오운(吳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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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대원(大源), 호는 죽유(竹牖)·죽계(竹溪)·백암노인(白巖老人)·율계(栗溪) 등이다. 고려 중기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오학린(吳學麟)[1009~?]을 시조로 삼는다. 10대조 오세문(吳世文)은 동각학사(東閣學士)를 지냈는데, 고려 무신란 직후 해좌칠현(海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활동한 오세재(吳世才)의 형이다. 증조할아버지 삼우대(...

  • 오운 종가 문적(吳澐宗家文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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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적. 오운 종가 문적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죽유(竹牖) 오운(吳澐)[1540~1617]의 종손가에 보관되어 있던 고문서와 전적들이다. 죽유 오운은 1540년에 출생하였으며,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에 등용되어 학유, 직강 등을 지...

  • 옥계로군도 구 호선(郡道九號線)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예리에서 옥계리에 연결되는 군도. 군도9호선은 덕곡면 옥계리 앞을 지나는 도로여서 마을 이름을 따서 옥계로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가야읍에서 덕곡면을 거쳐 옥계청소년야영장에 접근하기 위해 건설된 도로이다. 고령군 덕곡면사무소 부근의 예리에서 시작하여 본리1리-본리2리-용흥리를 거쳐 옥계청소년야영장에 이르는 고령군 관리의 도로이다. 총 길이는 6.60㎞이다. 2...

  • 옥계-리(玉溪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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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계리(玉溪里)에는 옥계·무릉동(武陵洞)·모리동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옥계는 덕곡면 본리리 골짜기 가장 위쪽에 있다. 신라의 공격으로 대가야가 멸망하면서 마지막 왕인 16대 도설지(道說智)와 그의 아들 월광태자가 문수산 계곡을 따라 도망하다 이곳에서 옥대(玉帶)와 용포를 버렸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계곡이 깊고 숲이 우거져 계곡물이 옥처럼...

  • 옥계-리 무릉 동제 유적(玉溪里武陵洞祭遺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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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에 있는 민간신앙 유적. 옥계리 무릉마을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정월 대보름날에 당산나무인 소나무에서 동제를 지내 왔으나, 1980년 이후로 지내지 않고 있다....

  • 옥계-리의 무릉소야(玉溪里-武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에서 무릉소야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옥계리의 무릉소야」는 불교와 도교 간의 교류의 의미를 지닌 무릉소야라는 지명이 옥계(玉溪)로 바뀐 연유를 설명해 주는 지명유래담이다. 덕곡면 예리를 지나 길을 달리다 보면 아담한 산 아래로 그림 같은 마을이 드문드문 있다. 몇 안 되는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딴 세상에 와...

  • 옥담신-리의 옥잠(新里-玉簪)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에서 옥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신리의 옥잠」은 대가야읍 신리의 마을 형상이 반지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옥잠[옥담]이라고 부른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4월 13일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현 대가야읍] 신리 주민 장창수[남, 6...

  • 옥산 교회(玉山敎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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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옥산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옥산교회는 고령군 개진면 옥산 지역에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49년 1월 3일 최민호와 김사관 2명이 고령읍교회의 도움으로 배명동의 집에서 첫 예배를 보면서 가정 교회로 시작되었다. 고령군 개진면 옥산동 532-1번지[옥산길 20]의 초가를 구입하여 1950년 2월...

  • 옥산(玉山)이기춘(李起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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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계욱(季郁), 호는 옥산(玉山). 이기춘(李起春)[1541~1597]은 어릴 때부터 성현지학(聖賢之學)을 강구(講究)하여 학문과 덕행이 높았으며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송암(松菴) 김면(金沔), 성주의 한강(寒岡) 정구(鄭逑), 현풍의 대암(大庵) 박성(朴惺), 인동의 청휘당(晴暉堂...

  • 옥산-리(玉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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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벼슬아치들이 귀양살이하던 옥섬[玉島]이 있고, 잣나무가 많았던 잣뫼가 있어 옥섬의 ‘옥’자와 잣뫼 한자 표기인 백산(栢山)의 ‘산’자를 따서 옥산(玉山)이라 하였다. 잣뫼는 달리 잠미라고도 하는데 잣뫼의 발음이 변하여 된 이름으로 여겨진다. 적산은 옥산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름을 알 수 없는 초립동이 피리를 구슬프게 불며...

  • 옥산-리 적산 마을 강화 노씨 집성촌(玉山里笛山-江華魯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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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옥산리에 있는 강화노씨 동성마을. 옛날 이름도 모르는 초립동이 구슬프게 피리를 불며 마을을 지나갔다고 하여 적산이라 하였다. 대나무 숲이 많아 죽산이라고도 한다. 옥산리에는 이 밖에 마을에 부자가 살았다 하여 장자곡, 낙동강이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고립된 곳이라고 하여 옥섬이라 부르는 자연마을이 있다. 입향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강화노씨들이 옥산리와 가까...

  • 옥산재(玉山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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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도학자 이기춘의 묘각. 국도 33호선을 따라 성주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덕곡삼거리에서 덕곡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다시 도로변에 있는 덕곡면 반성2리 표지석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100m쯤 진행하면 반성2리 경로회관을 지난 50m 부근에 옥산재가 위치하고 있다. 옥산재는 성산인 도학자 옥산 이기춘(李起春)을 위하여 고령, 성주, 현풍,...

  • 온전전씨 집성촌신간-리 신간 마을 죽산 전씨 집성촌(新間里新間-竹山全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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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에 있는 죽산전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궁동·봉계동·물한동을 병합하여 신한동이라 하였다가 신간동으로 바뀌었다. 자연마을인 봉산리는 봉황이 살았다는 의봉산[535m] 밑에 있어 붙인 이름이다. 죽산전씨 판서공파 파조인 전충수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신간마을에 살았던 전충수의 8세손 전극창(全克昌)이 1573년(선조...

  • 와치실아치실 유래(阿致-由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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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예곡리에서 아치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치실 유래」는 꿩이 알을 품고 있는 지형이라 하여 ‘와치실(臥雉室)’이라고 하던 것이 아치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아치실’로도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2월 고령군청이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고령 지역 설화 DB 구축 및 아동용 설화집 제작을 위한 스토리 보드 구축 사업’...

  • 왕의 우물[王井]가에 인물 났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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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조리 원로들은 대가야 왕궁 터를 감싸고 있는 뒷산 자락을 ‘봉두골(鳳頭골)’ 혹은 ‘봉두동’이라고 부른다. ‘봉의 머리’라는 봉두골이란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은데, 이곳은 독립 운동가를 비롯해 고위 관료, 정치인, 군인, 실업가 등 쟁쟁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항간에서는 대가야의 정기를 받은 곳인 만큼 풍수지리적으로 터가 좋아서 인물이 많이 배출된다는 말도 있다...

  • 왜가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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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의 군조(郡鳥). 왜가리는 백의민족의 상징인 흰색과 기름진 토지를 상징하는 갈색, 가야 토기 원료인 황토 색깔이 조화를 이루며 백로와 집단생활을 이루는 생태는 이웃과의 화합을 상징하여 군조로 지정되었다. 몸길이 76㎝, 날개길이 42~48㎝, 꼬리길이 16~18㎝, 몸무게 1.1~1.3kg 정도이다. 온몸은 회색을 띠고 갈색인 다리는 길다. 부리는 황갈색 또는 적황색...

  • 왜나루구곡-나루터(九谷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에 있던 나루터. 구곡리(九谷里)는 본래 고령군의 지역으로 범이 살았던 범산골, 절이 있던 절골, 바위에 글이 있었던 문바위골, 문안 같은 문안골, 고기를 구웠던 국게골, 원당사가 있었던 원당골, 햇빛이 많이 비치는 대양골, 동에 있는 전방골, 골이 깊은 올방골 등의 아홉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어 ‘구실’ 또는 ‘구곡’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시대 ‘구실’...

  • 왜물고(倭物庫)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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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2년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관청과 민간에서 사용하는 일본 상품을 보관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창고. 조선시대의 대일 관계는 1년 3사(使)의 정기 사행이 규정되었던 중국과 달리 교린(交隣) 체제에서 비정기적인 사행이 오갔고, 무역도 회사(回賜)·답례(答禮)·하사(下賜)를 바탕으로 하는 공무역과 사행의 왕래에 부수하여 허용된 사무역 외에는 민간 차원의 사무역을 일체 금지하였다. 공...

  • 왜장 다이라 스키마스 생포 작전(倭將-生捕作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597년 고령 둔덕에서 정기룡이 왜장 다이라 스키마스를 생포하기 위한 작전.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선봉장으로 한 다이라 스키마스[平調益]가 이끄는 왜군 1,000명이 1597년(선조 30) 8월 초순에 고령 서남방 둔덕(屯德)[현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에 주둔하자 정기룡(鄭起龍) 장군은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명을 받아 기병 150명과 보병 800명을 거느리고 고령에...

  • 외곡-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와 성주군 용암면 용계리에 걸쳐 있는 산. 외곡산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계 신라통 함안층으로 이루어진 산지이다. 함안층은 진주층을 부정합으로 덮고 있으며, 진주층 동쪽에 있는 고령군 우곡면·다산면, 그리고 성산면 일대에서 약 1.5㎞ 폭으로 북동~남서 방향을 따라 대상(帶狀)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암과 사암이 중심이지만, 응회암질 사암·응회암질...

  • 외동외-리(外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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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일량면의 마을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바깥마·밖일량·외동(外洞)·외일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일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촌을 병합하여 외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령읍 외동이 되었고, 19...

  • 외-리(外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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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일량면의 마을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바깥마·밖일량·외동(外洞)·외일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일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촌을 병합하여 외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령읍 외동이 되었고, 19...

  • 외일량외-리(外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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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일량면의 마을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바깥마·밖일량·외동(外洞)·외일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일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촌을 병합하여 외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령읍 외동이 되었고, 19...

  • 요지도요지(陶窯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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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가 있던 터. 도요지(陶窯址)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 유적으로, 우리말로는 가마터라고 한다. 토기 및 도자기를 원활하게 생산하기 위해서는 땔감이 되는 산림이 울창하고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제품을 옮기기 편리한 운송로, 양질의 점토와 도토(陶土)가 생산되어야 하는 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고령 지역은 백두...

  • 욕심이 자신을 죽인다(慾心-自身-)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욕심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욕심이 자신을 죽인다」는 4명의 도둑이 자신들이 도둑질한 돈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다가 결국 모두 죽게 된 사건을 임금님이 해결하였다는 인간담이자 일종의 슬기담이다. 2006년 2월 고령군청이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고령 지역 설화 DB 구축 및 아동용 설화집 제작을 위한 스토리 보드 구축 사업’의 1차년도 연구...

  • 용 보고 날씨 점치기(龍-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에서 정초에 한 해의 강우량을 점치는 풍속. 용보고날씨점치기는 책력(冊曆)을 보아 그 해에 용(龍)이 몇 마리인가에 따라 한 해의 강수량을 예상하는 것을 일컫는다. 역법(曆法)은 천체의 운행 등을 바탕으로 한 해의 주기적 시기를 밝히는 방법이다. 책력은 1년의 시령과 그 날짜를 기록한 문서를 말한다. 일 년 동안의 월일, 해와 달의 운행, 월식과 일식,...

  • 용기상용-리(上龍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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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소(龍沼) 위에 있는 마을이어서 상용(上龍)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 밑의 지형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어서 용기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룡동을 병합하여 상용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상...

  • 용담(龍潭)박이장(朴而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숙빈(叔彬), 호는 용담(龍潭)·도천(道川). 증조할아버지는 박한하(朴漢何)이고, 할아버지는 참봉 박식(朴埴)이며, 아버지는 승지를 지낸 복재(復齋) 박양좌(朴良佐)이다. 어머니는 성산배씨(星山裵氏) 별좌(別坐) 배은(裵垠)의 딸이다. 둘째 아들로, 형은 남계(藍溪) 박이문(朴而文)이다. 부인은 충주박씨 참판 박응복...

  • 용담사(龍潭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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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성산면사무소에서 고령교 방향으로 가다가 좌회전해서 용소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박곡리 고인돌군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창리마을과 원당마을 사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용소저수지에 이르며, 용소저수지를 지나 왼쪽 길로 접어들면 용기마을 뒤편으로 의봉산(儀鳳山)을 등지고 부모은중보은 극락도량(父母恩重報恩極...

  • 용동천(龍洞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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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 미숭산 남동 사면에서 발원하여 고곡리를 지나 안림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용동을 흐르는 하천이라 하여 용동천(龍洞川)으로 부르고 있다. 용동에서 가장 큰 마을은 반룡마을로, 마을의 지명인 반룡(盤龍)은 802년(신라 애장왕 3)에 지은 반룡사(盤龍寺)가 있어 붙여졌다고 한다. 이 절을 짓기 위해 장소를 물색할 때 절 위치에서 용이 서리고 있는 것을 보고...

  • 용-리(龍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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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안고 있는 미숭산[734m]의 아홉 산줄기가 마치 아홉 마리의 용과 같아 이곳에 구룡사(九龍寺)를 지었고, 마을 입구에 있는 70m가량의 바위를 용바위[龍岩]라 하고 그 주변 돌들을 용바우돌이라 하였으므로 마을 이름도 용동(龍洞)이라 하였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마을 주변 산세가 개구리 혈에 해당한다고 하여 ‘개구리 와(䵷)’자를 쓴...

  • 용-리 고분군(龍里古墳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용리 고분군은 대가야읍 중심부로부터 서쪽으로 직선거리 5.2㎞ 떨어진 산악지에 위치한다. 배후에는 합천과 고령의 분수령을 이루는 미숭산 능선이 이어져 있다. 고분군은 미숭산 동쪽 산등성이에서 남으로 파생된 가지 능선과 비교적 완만한 서쪽 비탈면에 분포한다. 골짜기 건너 동쪽의 맞은편 비탈면에는 반룡사가 있으며, 계곡을 따라...

  • 용-리 문인석(龍里文人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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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에 있는 조선시대 석조 문인상. 문인석과 무인석은 무덤을 지키기 위해 그 앞에 세워지는 돌로 만든 인물상이다. 문인석은 문관 복장을 하고 손에는 홀을 들고 있어, 갑옷을 입고 칼을 들고 있는 무인상과는 차이가 있다. 처음에는 왕릉에서부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양반 사대부의 무덤 앞에도 세워지게 된다. 왕릉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각각 한 쌍씩 능을...

  • 용-리 제철 유적(龍里製鐵遺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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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에 있는 조선시대 제철 유적. 용리 제철 유적에서 수습한 유물로 미루어 조선시대에 철을 생산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채집 유물 가운데 소량의 토기 조각과 청자 조각이 있어 고려시대까지 소급해 볼 수도 있다. 고령에서 진주와 거창으로 이어지는 국도 26호선을 따라가다 고속국도 12호선과 만나기 직전에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반룡사로 가는 길이다....

  • 용-바위 전설(龍-傳說)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서 용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바위 전설」은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에 자식을 낳게 해 달라고 정성껏 빌어 용꿈을 꾼 뒤 아들을 낳음으로써 용바위라 부르게 되었다는 기자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고령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가면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표지와 함께 ‘푸른 마을’이라는 속칭을 가진 ‘덕곡’에 닿는다. 이 마을 뒷산에...

  • 용소 저수지(龍沼貯水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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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용소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용소저수지는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와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 사이에 자리한 의봉산[551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용소천의 상류부에 위치하는데, 용소천은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의봉산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월산소류지와 함께 고령군 성산면 용소리에 소재하는 저수지이다.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의 용기마을...

  • 용소-리(龍沼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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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있던 큰 소(沼)에서 용이 올라갔다 하여 용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리(倉里)·월산(月山)을 병합하여 용소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용소리가 되었다. 의봉산[535m]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 용소-리 동제(龍沼里洞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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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용소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던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용소리는 1660년경(현종 1) 군위방씨가 처음 개척하였는데, 이곳에...

  • 용신먹이기용왕 먹이기(龍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음력 1월 15일 저녁에 용왕에게 집안 식구들의 평안을 비는 의례. 용왕먹이기는 집안의 액운(厄運)을 막고 가족들의 무사함을 비는 일종의 가정 신앙 행위이다. 이를 ‘용신먹이기’라고도 한다. 보통 정월 대보름 안으로 행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2월과 10월에 먹이기도 한다. 일부는 가정의 필요에 따라 연중 수차례나 먹인다. 일반적으로 정월 대보름날의 것은 풍년을 기...

  • 용왕 먹이기(龍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음력 1월 15일 저녁에 용왕에게 집안 식구들의 평안을 비는 의례. 용왕먹이기는 집안의 액운(厄運)을 막고 가족들의 무사함을 비는 일종의 가정 신앙 행위이다. 이를 ‘용신먹이기’라고도 한다. 보통 정월 대보름 안으로 행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2월과 10월에 먹이기도 한다. 일부는 가정의 필요에 따라 연중 수차례나 먹인다. 일반적으로 정월 대보름날의 것은 풍년을 기...

  • 용이(容耳)신항(申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용이(容耳). 증조할아버지는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 신숙주(申叔舟)이고, 아버지는 예조참판을 지낸 신종호(申從濩)이다. 어머니는 세종의 아들인 의창군(義昌君) 공(玒)의 딸이다. 성종의 맏딸인 혜숙옹주(惠淑翁主)의 남편이다. 신항(申沆)[1477~1507]은 14세에 혜숙옹주와 혼인하여 순의대부 고원위(高原尉)에 봉해졌다....

  • 용이-리 반룡 동제(龍二里盤龍洞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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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 반룡마을에서 음력 1월 15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용2리 반룡 동제’는 ‘고령군 쌍림면 용2리...

  • 용재(慵齋)박태중(朴泰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래(仲來), 호는 용재(慵齋). 아들은 박섬(朴暹)[1696~1760], 손자는 박사연(朴思淵)[1732~1756]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박종주(朴宗冑)이다. 양죽당 정완[참판공으로 임진왜란에서 창의함]의 5대손이다. 박태중(朴泰重)[1677~1729]은 5~6세에 이미 완숙한 군자의 모습을 갖추었고, 장성하여서는 덕행을 겸...

  • 용흥-리(龍興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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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흥리(龍興里)에는 용동(龍洞)·오리동(梧利洞)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용동은 달리 용동마·용흥동(龍興洞)이라고도 한다. 조선 초기 서흥김씨(瑞興金氏)와 동래정씨(東來鄭氏)가 개척한 마을로, 마을 앞 오리천에서 놀던 용이 승천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용처럼 생긴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어서 용리라고도 한다. 용흥리는 용흥동에서 따 온 이름...

  • 우경(禹卿)김수(金銖)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우경(禹卿). 고령김씨 시조인 김남득(金南得)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참의에 증직된 김자숙(金子肅)이고, 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역임한 김장생(金莊生)이다. 동생은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고 순천도호부사를 역임한 김구(金鉤)이다. 아들로 한성판윤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을 역임한 김수문(金秀文)과 경상우도 병마우후를 역임한 김준문(...

  • 우곡 수박(牛谷-)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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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서 생산되는 수박. 1997년 2월 수박 재배 농가 80여 집이 모여 우곡수박작목반연합회를 결성하였으며, 2000년에 우곡수박의 고유 브랜드를 개발하여 우곡그린수박이라는 상표를 등록하였다. 현재는 16개 마을 408명의 반원이 360㏊에 약 6,000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수박을 생산하고 있다. 우곡수박은 낙동강 변의 사질토양과 가야산 지류의 맑은 물로 재배하여...

  • 우곡 제일 교회(牛谷第一敎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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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우곡제일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지역을 섬기고 봉사하며,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전파하여 지역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건설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1년 9월 12일 고령읍교회의 집사 민병수와 우곡고등공민학교 교사 김기윤이 주동이 되어 안림교회 목사 김종필을 모시고 도진교회의 설립 예배를 보았다. 교...

  • 우곡 중학교(牛谷中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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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우곡중학교는 올바른 인성 함양, 효율적인 교육 과정 운영, 미래 지향적 창의력 신장, 지식 정보 사회의 적응력 신장, 심신 단련을 통한 전인 교육 강화를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71년 1월 2일 우곡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2월 6일 초대 김한기 교장이 부임하여 3월 25일 개교하였다. 1971년 12월 21일 법정으로 벽지...

  • 우곡 초등학교(牛谷初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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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우곡초등학교는 바른 인성을 지닌 어린이, 소질을 키워 가는 어린이,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어린이, 전통과 문화를 애호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3년 11월 19일 우곡보통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12월 5일 4년제인 우곡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1944년 4월 1일 우곡국민학교로 개칭하였고, 195...

  • 우곡 초등학교 도진 분교장(牛谷初等學校桃津分校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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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분교장. 우곡초등학교 도진분교장은 바른 인성을 지닌 어린이, 소질을 키워 가는 어린이,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어린이, 전통과 문화를 애호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4년 3월 20일 도진국민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4월 14일 도진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69년 3월 20일 도진국민학교 회천분교장을 도진...

  • 우곡그린수박우곡 수박(牛谷-)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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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서 생산되는 수박. 1997년 2월 수박 재배 농가 80여 집이 모여 우곡수박작목반연합회를 결성하였으며, 2000년에 우곡수박의 고유 브랜드를 개발하여 우곡그린수박이라는 상표를 등록하였다. 현재는 16개 마을 408명의 반원이 360㏊에 약 6,000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수박을 생산하고 있다. 우곡수박은 낙동강 변의 사질토양과 가야산 지류의 맑은 물로 재배하여...

  • 우곡로국가 지원 지방도 육십칠 호선(國家支援地方道六十七號線)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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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에서 운수면 신간리에 연결되는 국가지원지방도. 국가와 지방 자치 단체가 역할을 분담하여 도로를 개설함으로써 부족한 도로망을 확충하기 위하여 도입한 국가지원지방도로이다. 국가지원지방도67호선은 고령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의 구지농공단지와 연결되며, 고속도로와 일반국도로 이루어진 국가 기간 도로망을 보조하는 도로이다.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서 신간리를...

  • 우곡-면(牛谷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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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우촌(牛村)의 ‘우’자와 답곡(畓谷)의 ‘곡’자를 따서 우곡면(牛谷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미면(下彌面) 지역으로 도진·사부·저동·대곡·아라·월오·운동·아산·부례·부동·사동의 11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촌면(牛村面)·답곡면(畓谷面)·왕지면(旺旨面)의 일부를 병합하여 우곡면이라 하고 답곡·조지·포동·객기·...

  • 우곡-면 봉산-리의 고목나무 이야기(牛谷面鳳山里-枯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에서 고목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우곡면 봉산리의 고목나무 이야기」는 말라 죽어가는 팽나무에 신성한 기운이 스며있다고 믿는 신앙담이자 금기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99년에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 주민 이영수[남, 68]에게서 채록한 것...

  • 우곡-면 사무소(牛谷面事務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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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우곡면 관할 행정 기관. 우곡면은 대부분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으나 회천(會川)이 면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류하고 그의 지류를 따라 약간의 좁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우곡면 지역은 본래는 고령군 하미면에 속했으나, 1914년에 우촌면과 담곡면 그리고 왕지면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면서 우촌과 답곡의 이름을 따 우곡면이라 칭하면서 새롭게 신설되었...

  • 우곡-면 삼일 만세 시위(牛谷面三-一萬歲示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9년 4월 초순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3·1운동은 국내외의 긴박한 정세에서 발생의 배경을 찾을 수 있다. 1914년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변화된 세계정세는 민족 문제에 대한 자각을 높이고 한반도를 비롯한 피압박 약소민족의 해방을 고무시켰다.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을 마무리하는 원칙으로 미국 윌슨 대통령이 내걸...

  • 우곡면의 다운타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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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진리는 행정 기관으로 2010년 현재 우곡면의 13개 법정리를 관장하는 면사무소가 있는 곳이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그 세가 크게 위축되긴 했으나 도진리는 여전히 우곡면에 있는 935가구의 2025명 면민들의 행정을 담당하는 행정과 생활의 중심지이다. 특히 1960년부터 5년 동안 면사무소 맞은편 빈터에 상설 시장이 들어서면서 도진리는 우곡면민들에게 명실상부한 생활의 중심지가 되...

  • 우동(愚童)신철휴(申哲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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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철휴(申哲休)[1898~1980]는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해영(海影)이며, 우동(愚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신진구(申鎭求)이다. 신철휴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한학과 글씨에 능하였고, 효도와 애국심이 강하였다. 20세인 1918년 5월, 민족의 비통한 참상을 개탄하여 만주로 건너갔...

  • 우두(牛頭)강수(强首)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통일신라의 유학자이자 문장가이며 문신. 강수의 아버지는 나마(奈麻)를 지낸 석체(昔諦)이다. 강수의 조상은 본래 대가야 출신이었으나 550년 이후 신라 중원경(中原京, 지금의 충주)으로 사민이 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이곳에서 유력한 세력으로 계속 지위를 유지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머니가 꿈에 뿔 달린 사람을 보고 잉태하였는데, 강수(强首)가 태어나니 머리 뒤편에 뼈가 불쑥 튀어...

  • 우륵(于勒)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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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가야금의 악성(樂聖). 우륵(于勒)의 출생과 성장 및 구체적인 활동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樂志)’에 성열현(省熱縣)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고기(古記)에 가야국 가실왕(嘉實王)이 당의 악기를 보고 가야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왕이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각 다른 소리를 내니 어떻게 일정하게 할 것인가?라면서 악사 성열현 사람...

  • 우륵 가야금 연주반(于勒加耶琴演奏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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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가야금 연주단. 우륵가야금연주반은 고령군의 대표적인 현악기 가야금을 일반인들이 친숙하게 생활 가까이에서 접하고 향유하게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1997년 3월 21일 창단되었다. 우륵가야금연주반은 가야금을 통한 민간 예술 활동과 지역민들의 가야금에 대한 인식 재고 사업 추진 및 고령군 내의 각종 문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있다. 2...

  • 우륵 기념 탑(于勒記念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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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 있는 악성 우륵을 기념하는 구조물. 고령 출신의 악사 우륵은 왕산악, 박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꼽힌다. 우륵은 가야 사람으로 가야금을 이용하여 12곡을 만들어 연주하였다. 우륵의 12곡은 가야의 12지방 이름과 관련이 있다. 우륵기념탑은 고령군에서 우륵의 업적을 기리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1977년에 건립하였다. 높이는 16...

  • 우륵 박물관(于勒博物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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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는 박물관. 우륵박물관은 악성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수집·보존·전시하여 국민들이 우륵과 가야금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건립한 전국 유일의 우륵과 가야금 박물관이다. 우륵이 활동한 정정골에 세워진 우륵박물관은 가야금 등 국악기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지역 교육 문화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06년 3월 31...

  • 우륵 십이 곡(于勒十二曲)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삼국시대 고령 출신의 우륵(于勒)이 지었다는 12곡의 가야금곡. 「우륵 12곡」은 고령 정정골을 중심으로 활동한 우륵이 지은 가야금 12곡으로, 곡의 제목만이 전승되고 있다. 곡명의 명칭은 가야시대 가야 지역 명으로, 국문학자 양주동이 증명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악지에는 “우륵이 지은 12곡은, 첫째는 하가라도[함안군, 신라 법흥왕 때의 아라가야군], 둘째는 상가라...

  • 우륵지(于勒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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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저수지. 우륵지는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와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사이에 있는 주산[310.3m]과 연결된, 동남쪽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의 상류부에 위치한다. 이 소하천은 회천의 소지류로서 대가야읍을 가로질러 본류로 유입된다. 우륵지는 당초 월기지란 이름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1945년에 건립되었다. 고령군은 2001년 ‘대가야 역...

  • 우륵추모제악성 우륵 추모제(樂聖于勒追慕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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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우륵의 음악 정신을 기리고자 개최되는 축제.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사람인 우륵의 위업을 기리고 그의 음악 정신을 계승하고자 고령군이 주최하고 고령문화원이 후원하여 1979년 제1회 악성우륵추모제를 개최하였다. 가야금의 창시자인 우륵에 대한 추모제를 봉행하고 더불어 우륵의 창작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차원에서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1...

  • 우리 마을에 아파트는 언제 들어섰을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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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 지역의 소도시 대가야읍에는 농촌형 주거 공간과 도시형 주거 공간이 혼재해 있다. 특히 대가야읍 시가지를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국도 33호선과 인접한 연조리와 쾌빈리에는 아파트나 빌라와 같은 공동 주택과 단독 주택이 혼재해 있다. 대가야읍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연조리의 경우 1990년대 이후 도시 지역에서 흔한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

  • 우영(宇瑩)김정근(金正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활동한 행정가. 김정근(金正根)[1916~]의 호는 우영(宇瑩)이며,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한 후 문경군수를 지냈다. 1948년에는 이홍직(李洪直)의 후임으로 제2대 고령군수가 되었지만, 5개월 만인 1949년 2월 퇴임하였다. 이후 광업과 상업에 종사하다가, 1958년 5월 2일 시행된 제4...

  • 우재(尤齋)이영숙(李永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도숙(道叔), 호는 송천(松川)·우재(尤齋)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이춘형(李春亨)이며, 어머니는 공인(恭人) 순흥최씨(順興崔氏)이다. 독자로 태어났다. 인천이씨(仁川李氏) 부인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 이영숙(李永淑)[1564~1630]은 1589년(선조 22)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이어서 무과에 등제하였다. 임진왜란이...

  • 우촌속-리(涑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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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깊은 골짜기 속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속골이라 하였다. 달리 솝골, 속읍리, 우촌, 속곡이라고도 한다. 마을 입구에 돌빼기라는 곳이 있었는데 옛날 성지대사가 이곳을 지나면서 세 번이나 쉬어갔고, 계곡 물에 손을 씻으며 바라본 산수풍경의 아름다움에 감복하여 ‘삼청동(三淸洞)’이라는 글을 손가락으로 바위에 새겨 놓고 떠났다고 한다. 그 뒤 경...

  • 운라산성(雲羅山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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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 있는 가야시대 산성. 운라산성은 동서로 400m 정도 떨어진 두 개의 봉우리를 각각 에워싼 내성과 그 주위를 돌려 연결한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둘레는 1㎞ 정도 된다. 운라산성에서 연결된 주변 능선에는 대가야시대의 무덤인 월산리 고분군이 있고, 성안에서 채집되는 토기편 등으로 보아 대가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건립 경위를 알 수...

  • 운산운산-리(雲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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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라산(雲羅山) 밑에 있어 운산(雲山)이라 하였다. 마을 동쪽에 큰 산이 있어 아침이면 늘 그늘진 곳에 안개가 많이 끼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구르미·구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구음면(九音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하동을 병합하여 운산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

  • 운산 일-동 동굴에 얽힌 이야기(雲山一洞洞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에서 동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운산1동 동굴에 얽힌 이야기」는 동굴 입구를 막으면 강 건너 마을 처녀가, 동굴 입구를 헐어 버리면 운산동의 처녀가 바람난다는 풍수담이자 동굴에서 기운이 센 장수가 살았다는 인물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97년에...

  • 운산-리(雲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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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라산(雲羅山) 밑에 있어 운산(雲山)이라 하였다. 마을 동쪽에 큰 산이 있어 아침이면 늘 그늘진 곳에 안개가 많이 끼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구르미·구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구음면(九音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하동을 병합하여 운산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

  • 운산-리 고인돌군(雲山里-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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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운산리 고인돌군은 운수면사무소 뒤편의 봉평리 고인돌에서 남쪽으로 1.1㎞ 정도 떨어진 운수평야의 끝자락인 운산리에 위치한다. 운산리 구름들 가운데에 모두 2기의 고인돌이 확인되고 있다. 2004년 대가야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하면서 확인하였다. 정식으로 발굴 조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고인돌 유적으로 판단된다. 2기 모두 덮개...

  • 운산-리 느티나무(雲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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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에 있는 수령 약 370년의 보호수 두 그루. 운산리 느티나무는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큰 나무는 높이 18m, 가슴높이 둘레 4.5m, 나무갓 너비 18m이다. 작은 나무는 높이 14m, 가슴높이 둘레 4m, 나무갓 너비 15m이다. 조선시대 한 왕자의 태를 묻을 곳을 찾다가 운산리에 이르렀는데, 물은 좋은데 정자가 없어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고...

  • 운산-리 새구름 마을 고령 신씨 집성촌(雲山里-高靈申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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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에 있는 고령신씨 동성마을. 운산리에는 구음동, 새구름, 삼하정(三河亭)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구음동은 운산1리의 중심 마을로, 마을 개척 당시 큰 학이 날아와 아홉 번이나 울어 길조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달리 운산(雲山)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이 운라산(雲羅山) 밑에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마을 동쪽에 큰 산이 있어 아침이면 늘 그늘 속에 안...

  • 운수 벼루(雲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에서 캔 원석(原石)으로 만든 벼루. 운수벼루는 자색, 녹색, 흑색 등 우아한 색깔과 견고성을 가진 원석을 사용한 것으로, 먹이 잘 갈리고 먹물이 마르지 않으며 글을 쓸 때 붓이 잘 나가고, 서예 작품을 오랫동안 보관해도 색이 변하지 않는 우수한 벼루이다.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조선시대에는 왕가에서 주로 애용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인들에...

  • 운수 초등학교(雲水初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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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운수초등학교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건강인],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어린이[창의인], 폭넓은 학습 경험을 가진 어린이[지식인], 전통과 문화를 애호하는 어린이[심미인], 기본 생활 습관이 올바른 어린이[생활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4년 9월 29일 운수국민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10월 20일...

  • 운수로국가 지원 지방도 육십칠 호선(國家支援地方道六十七號線)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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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에서 운수면 신간리에 연결되는 국가지원지방도. 국가와 지방 자치 단체가 역할을 분담하여 도로를 개설함으로써 부족한 도로망을 확충하기 위하여 도입한 국가지원지방도로이다. 국가지원지방도67호선은 고령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의 구지농공단지와 연결되며, 고속도로와 일반국도로 이루어진 국가 기간 도로망을 보조하는 도로이다.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서 신간리를...

  • 운수-면(雲水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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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운라의 ‘운’자와 흑수의 ‘수’자를 따서 운수면(雲水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星州郡) 운라면(雲羅面) 지역으로 운산·월성·법암·거호동·외화·금성의 6개 마을을 관할하였고,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음면(九音面)의 운산(雲山)·삼동(三洞), 성주군 흑수면(黑...

  • 운수-면 사무소(雲水面事務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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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에 있는 운수면 관할 행정 기관. 운수면은 운라(蕓羅)와 흑수(黑水)라는 지역 명을 따서 구름과 물을 뜻하는 운수(雲水)가 되었으며, 고령군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면의 북부와 동부는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고 동부의 경계 상에는 최고봉인 의봉산이 있다. 운수면은 본래는 성주군에 속하였으나, 1906년에 구음면, 흑수면, 도장면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 운수-면의 신묘한 당산나무(雲水面-神妙-堂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에서 당산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운수면의 신묘한 당산나무」 매년 정월대보름에 운수면 봉평1리에서 기복의 대상인 당산나무를 위한 제사를 지내며 풍년을 빌었다는 신앙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1년에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1리 주민 우위선[...

  • 운암(雲庵)박대복(朴大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성(子誠), 호는 운암(雲庵). 박대복(朴大福)[1558~1592]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郭再祐), 김면(金沔)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 2,000석을 지원하여 굶주리는 군사에게 제공하였다. 그리고 주둔해 있던 왜적을 대파하여 시체가 낙동강 물을 막을 정도였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37세의 나이로 전쟁터 진중에서...

  • 울타리 교회(-敎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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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울타리교회는 장애인들과 병들고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여 구원을 얻고 복을 받게 하며, 봉사와 전도에 힘써 성도들이 행복한 가정과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3년 3월 5일 집사 정연집과 권사 최정애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의 파크맨션에서 베데스다선교회를 설립하여 운영하면...

  • 웃놉닥월성-리 상노다 마을 전의 이씨 집성촌(月城里上老多-全義李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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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는 전의이씨 동성마을. 월성리에는 높음방, 장자골, 수리니미, 상노다, 바래미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높음방은 마을에서 지대가 높은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고방이라고도 한다. 장자골은 키가 8척이나 되는 강하수라는 장군이 마을에 정착하였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달리 장자리·장척리라고도 한다. 수리니미는 마을을 둘러싼 산등성이가 수레바퀴처럼 생...

  • 원가(怨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논에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동요. 「원가」는 농군들이 논에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벼농사 노래 중의 하나로서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정 민요이다. 어느 날 시누이와 올케가 강변에 일을 하러 갔다. 그런데 상류에서 비가 많이 내려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 두 여자가 물에 떠내려가게 되었다. 그때 저만치서 오빠가 배를 타고 구하러 오는 게 보...

  • 원로(元老)이조년(李兆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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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원로(元老), 호는 매운당(梅雲堂)·백화헌(百花軒). 증조할아버지는 이돈문(李敦文)이며, 할아버지는 이득희(李得禧)이고, 아버지는 경산부(京山府) 향리 이장경(李長庚)으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인은 경산부사 정윤의(鄭允宜)이다. 아들로 검교시중(檢校侍中) 이포(李褒)를 두었고, 손자로는 이포의 아들인 이인복(李仁復)·이...

  • 원로들의 대가야 문화 가꾸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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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에 결성된 ‘대가야문화가꾸기회’는 77~80세 되는 지역 원로들의 지역 사랑, 문화 사랑 모임이다.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기억이 있을 때 대가야 문화를 잊히지 않도록 해야지요.”라는 회장 서경규[1931년생] 씨의 말이 이 모임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잊혀 가는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 전승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한편으로 젊은 세대들이 잘 알지 못하는...

  • 원방 주철㈜(源邦鑄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있는 선박 부품 주물 제조업체. 1995년 3월 9일 원방주철(주)로 설립되었다. 2011년 3월 9일 디오텍(주)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디오텍(주)은 선철 주물 주조업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있다. 특히 자동차 프레스금형용 주물, 선박 엔진 부품용 주물의 제조 및 판매를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2008년 기준 2년 연속 성장 기업 및 2년 연속...

  • 원보(遠甫)곽재명(郭再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원보(遠甫)이다. 할아버지는 사성(司成) 지번(之藩),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 초(超)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이름난 곽재겸(郭再謙)의 동생이고, 곽재우(郭再祐)와는 사촌지간이다. 곽재명(郭再鳴)[1552~?]은 임진왜란 때 형 곽재겸(郭再謙)[자 익보(益輔), 호 괴헌(槐軒)] 및 서사원(徐思遠)과 더불어 의병을...

  • 원불교 고령 교당(圓佛敎高靈敎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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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2리에 있는 원불교 대구경북교구 소속의 교당. 원불교 고령교당은 정산종법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좌산종법사의 유시인 전국 군 소재 교당 설립의 뜻을 받들어 고령군 대가야읍에 원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2000년 11월 13일 설립되었다. 우주의 근본 원리인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교화, 교육, 자선의 3대 목표를 세우고, 이에 따라...

  • 원송 교회(元松敎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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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원송교회는 고령군 덕곡면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02년 합동공의회 시대에 “고령군 원송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선교사 맹의와의 전도로 교회가 시작된 후 김호준(金好俊), 전영호(全榮浩), 임문길(林文吉) 등이 조사로 상계(相繼) 시무하니라”라고 하였으며, 『경북교회사』에는 “고령군 원...

  • 원송교(元松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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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와 가륜리를 연결하는 다리. 교량이 가설된 지역인 원송리의 이름을 따서 원송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원송리는 마을 동쪽으로 소가천이 흐르고, 심어동·기동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원송교는 기동마을 입구에 있어 원송교를 기동교라고도 부른다. 기동은 원송리의 자연마을 중 가장 아래에 위치한 곳으로 가장 먼저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송교는 교...

  • 원송-리(元松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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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반송정에서 이름을 따서 원송리(元松里)라 하였다. 원송리에는 심어동·새뜸·기동(基洞)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심어동은 달리 은배실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현풍곽씨(玄風郭氏)가 처음으로 정착하였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소가천(小加川)에 물고기가 많았는데 범의 형상을 한 앞산을 보고 물고기들이 놀라 모두 서쪽으로 숨어 버리므로 물고기를 찾는다는...

  • 원송-리 우물(元松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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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우물. 마을에 우물이 다섯 개 정도 있었지만 상수도의 도입으로 우물의 기능이 사라졌고, 현재까지 마을 입구 중앙에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 중앙의 우물은 물의 빛깔이 좋고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우물과 샘은 지하수이다. 샘이 자연 발생적 용출이라면 우물은 땅속의 대수층(帯水層)에 통이나 관을 박아 끌어올리는 인위적인 것...

  • 원쉬-골 이름에 얽힌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사부리에서 원쉬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원쉬골 이름에 얽힌 이야기」는 원님이 고을을 찾아와 쉬었다 갔다고 해서 원수골로 명명하였다는 지명전설이다. 원쉬골은 부드러운 산의 능선이 겹쳐지면서 조금 잦아드는 골짜기인데 지금도 빼어난 나무들이 산에 가득 찬 울창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예전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 원앞반성-리 원전 마을 동래 정씨 집성촌(盤城里 院前마을 東萊鄭氏 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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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 있는 동래정씨 동성마을. 정구(鄭矩)와 아들인 정선경, 손자인 정종(鄭種), 정비(鄭秠)를 배향한 반암서원이 있었는데, 서원 앞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원앞 또는 원전(院前)이라 하였다. 반암서원은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으며, 이후 반암서당으로 현판하였다가 건물이 노후하여 1994년 확대 개축하였다. 15세기 후반 정종이...

  • 월계(月溪)곽유(郭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숙도(叔道), 호는 월계(月溪). 아버지는 진사(進士) 곽수강(郭壽岡)이다. 곽유(郭逌)[1655~?]는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서 학문을 하였으며, 1690년(숙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평소 부모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고, 부모가 병이 들어 위급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먹여 소생하게 하였다. 부모...

  • 월광태자도설지(道設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대 대가야의 마지막 왕.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 고령군조에 “고령군은 본래 대가야국으로 시조 이진아시왕으로부터 도설지왕까지 무릇 16대 520년이었다[高靈郡本大加耶國 自始祖伊珍阿豉王(一云內珍朱智) 至道設智王 凡十六世五百二十年]”라고 기록된 것을 통해 대가야의 마지막 왕임을 알 수 있다. 도설지는 522년 대가야 이뇌왕(異腦王)과 신라 이찬(伊湌) 비조부(比助夫)의...

  • 월담(月潭)정사현(鄭師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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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진양(晋陽). 호는 월담(月潭). 아버지는 정린(鄭麟)이다. 부인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여동생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정사현(鄭師賢)은 9세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슬퍼하기를 어른같이 하여 몸이 야윌 정도였다. 아버지의 상을 치르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또한 슬픔을 금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효성에 큰 감화를 받...

  • 월담정황산재(黃山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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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정씨 문중 재실. 대가야읍 중앙 공영주차장에서 합천 해인사 방면으로 400m가량 떨어진 고령군청 부근 도로변에 접해 있다. 450여 년 전 월담 정사현이 남명 조식과 강마도의지소(講磨道義之所)로 건립하여 월담정이라 하였으며, 150여 년 전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이건하면서 이름을 황산재로 개칭하였다. 본체 건물은 1m 정도...

  • 월막-리(月幕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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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뒷산 모양이 달과 같이 생겼고 달빛에 비친 뒷산이 마치 장막을 친 것처럼 보여 월막·달막·다르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고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막동·국전동을 병합하여 월막동이라 하고 임천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임천면과 쌍동면을 병합하여 쌍림면에 편입함에 따라 쌍림면 월막동이 되었고, 1988...

  • 월막-리 고인돌(月幕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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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대가야읍에서 쌍림면 방향으로 난 국도 26호선을 따라가면 반룡사(盤龍寺)로 들어가는 마을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보면, 쌍림면 월막리 아랫담마을이 있다. 월막리 고인돌은 아랫담마을 앞에 있는 우무이들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아랫담마을의 가장 남쪽 부분에 해당한다. 월막리 고인돌 앞으로는 용리에서 흘러내린...

  • 월막-리 다르막 마을 현풍 곽씨 집성촌(月幕里-玄風郭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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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 있는 현풍곽씨 동성마을. 월막리에는 다르막, 국밭[菊田], 산막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월막은 뒷산 모양이 달과 같이 생겼고 달빛에 비친 뒷산이 마치 장막을 친 것처럼 보여 붙인 이름이다. 달리 달막이라고 한다. 국밭은 국화처럼 마을이 번성하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산막은 공씨가 산에 막을 치고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마을에서 세 번째로 생...

  • 월산 교회(月山敎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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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월산교회는 고령군 운수면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05년 3월 첫째 주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1906년 원송교회에 출석하던 영수 김문극(金文極)과 집사 김내규(金內規) 등이 초가 3칸의 예배당을 신축하였고, 1915년 남녀 연합 전도회를 조직하였다. 1923년...

  • 월산-리(月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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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성의 ‘월’자와 운산의 ‘산’자를 따서 월산동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운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성동과 운산동을 병합하여 월산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월산리가 되었다. 가야산(伽倻山) 남쪽 끝자락에 있는 마을로 남서...

  • 월산-리 고분군(月山里古墳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월산리 고분군은 대가천으로 흘러드는 소가천의 가장 아래쪽 북쪽 연안에 위치한다. 대가야읍 중심부로부터 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4.3㎞ 떨어진 운라산성 아래쪽 여러 산등성이와 비탈면에 네 곳으로 나뉘어 있다. 월산리 고분군 ①은 운라산성의 서쪽 아래에 위치하며, 덕곡면 반성리 양산마을과 운수면 월성[선듬]마을 사이의 뒷산 산등...

  • 월산-리 고인돌군(月山里-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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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 월산리 고인돌군은 운수면 월산리 가남들 서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고령에서 성주 방향으로 국도 33호선을 따라가다가 봉평교로 이어지는 지방도 907호선과 나누어지는 가남삼거리에서 성주 방향으로 300m 정도 직진한 지점에 해당한다. 국도 33호선의 기슭 비탈면 아랫부분 일부 도로변에 묻힌 상태로 있어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고...

  • 월산-리 바위 구멍 유적(月山里-遺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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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윷판형 바위구멍 유적. 월산리 바위구멍 유적은 운수면 월산리의 자연 바위면에 새겨진 청동기시대의 윷판형 바위구멍 유적이다. 마을 뒤의 운라산[263.3m] 일대에서 모두 5개소의 바위구멍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그중 4개소는 윷판형 유적이며, 1곳은 바위구멍 유적이다. 4개소에서 21점 이상의 윷판이 분포하고 있어, 고령 지역에서 가...

  • 월산-리 선듬 마을 의성 김씨 집성촌(月山里-義城金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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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마을. 앞에 있는 듬이라 하여 선듬이라 하였다. 듬의 돌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리 선도(先道)·월성이라고도 한다. 약 600년 전 공조참의를 지낸 김용기가 덕곡면 후암리에 살다가 산이 마을을 가려 겨울에 몹시 추웠으므로 소가천 건너 앞듬 밑으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한 뒤로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 월성-리(月城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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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성주군 벌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로동·장척동·남양동을 병합하여 월성동이라 하고 다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다산면 월성리가 되었다. 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형성한 넓은 범람원이 펼쳐져 있다. 서쪽과 북쪽은 해발...

  • 월성-리 바위 구멍 유적(月城里-遺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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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별자리형 바위구멍 유적. 월성리 바위구멍 유적은 다산면 월성리 낙동강 강변에 형성된 해발 44.2m 정도 되는 야산인 발산에 위치한다. 이곳은 다산면과 성산면, 성주군 용암면으로 통하는 삼거리와 접해 있으며, 유적의 맞은편에는 다산중학교가 있다. 이 지역은 원래 반달 모양을 한 대가야시대의 토성 유적이 위치한 곳으로, 월성리(月城里)...

  • 월성-리 상노다 마을 전의 이씨 집성촌(月城里上老多-全義李氏集姓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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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는 전의이씨 동성마을. 월성리에는 높음방, 장자골, 수리니미, 상노다, 바래미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높음방은 마을에서 지대가 높은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고방이라고도 한다. 장자골은 키가 8척이나 되는 강하수라는 장군이 마을에 정착하였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달리 장자리·장척리라고도 한다. 수리니미는 마을을 둘러싼 산등성이가 수레바퀴처럼 생...

  • 월성-리 토성 유적(月城里土城遺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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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는 대가야시대 토성 유적. 월성리 토성 유적은 다산면 월성리의 낙동강 변에 형성된 해발 44.2m 정도 되는 돌출 야산인 발산에 위치한다. 이 산은 다산면과 성산면, 성주군 용암면으로 통하는 삼거리로서, 군도 5호선과 군도 7호선에 의해 동쪽의 다산중학교가 있는 산지와 분리되어 독립된 야산처럼 보인다. 즉, 월성리 토성 유적은 다산중학교의 남쪽 도...

  • 월암사종산재(鍾山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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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 있는 곽홍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곽홍지(郭弘址)[1600~1656]의...

  • 월오-나루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에 있던 나루터. 월오나루터가 있는 우곡면 월오리는 원래 고령군 하미면에 속하는데 소학산 밑에 위치하여 달오 또는 월오(月塢)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오동이 되었고 우곡면에 편입되어,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월오 윤규(尹奎)가 이곳에 피난을 와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거문고...

  • 월오-리(月塢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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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임진왜란 때 월오(月塢) 윤규(尹奎)가 이곳에 피난 와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거문고를 타면서 울분을 달래다가 왜적에게 붙들려 순절하자 마을 사람들이 윤규의 호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달오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미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오동이라 하고 우곡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

  • 월호(月湖)정숙하(鄭淑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동래(東萊). 초명(初名)은 숙남(淑男), 호는 월호(月湖). 현조는 정절공(靖節公) 설학재(雪壑齋) 정구(鄭矩)[1350~1418]이다. 정구는 좌찬성을 지냈으며, 예서·초서·전서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다. 청렴하였으며 예의가 발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으로 옮겨 살았는데, 그의 자손들 역시 양주와 수원 등 경기 지역에서...

  • 윗놉때기나루바리미-나루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던 나루터. 본래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는 성주군 벌지면의 지역인데 1906년(고종 43)에 고령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의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로동과 장척동, 남양동을 병합하여 월성동이라 해서 다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면서 월성리가 되었다. 바라미나루터를 일명 ‘윗놉때기나루’라고도 부르는데, ‘윗놉...

  • 유경민(兪景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무신. 유경민(兪景敏)은 본관이 기계(杞溪)로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군자감정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수곡[시실]에 살았다....

  • 유경해(兪景海)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아버지는 군자감(軍資監)을 지낸 유정의(兪正義)이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경해(兪景海)[1501~1589]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효성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며, 14세에 아버지가 등창을 앓아 고생하자 입으로 환부를 빨아 낫게 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운명이 경각에 이르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모두 목숨을 연장하게 하였...

  • 유곡유-리(柳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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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버드나무가 많이 있어 버들골 또는 유곡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도장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개연동·고승동을 병합하여 유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유리(柳里)가 되었다. 의봉산(儀鳳山)[535m] 동남쪽 산자락에...

  • 유교(儒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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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공자에 의해 체계화된 사상을 실천하고자 하는 학문적 활동과 의례적 행위 일반. 중국 춘추시대 말 공자에 의해 체계화된 유교는 전국시대에는 맹자·순자 등에 의해 계승되고, 한대에 이르러서는 무제가 그 왕조의 권위를 이데올로기 면에서 정당화하기 위해 유교를 공식 국교로 승인하였다. 이후 유교는 중국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하게 되었다. 유교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

  • 유두(流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유두란 말은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으로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란 말의 약어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를 ‘물맞이’라고도 한다. 유두날에는 맑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을 하고, 특히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것은 동쪽은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라고 믿는 데서 기인한다. 이러...

  • 유두날유두(流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유두란 말은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으로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란 말의 약어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를 ‘물맞이’라고도 한다. 유두날에는 맑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을 하고, 특히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것은 동쪽은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라고 믿는 데서 기인한다. 이러...

  • 유두일유두(流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유두란 말은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으로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란 말의 약어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를 ‘물맞이’라고도 한다. 유두날에는 맑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을 하고, 특히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것은 동쪽은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라고 믿는 데서 기인한다. 이러...

  • 유두절유두(流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유두란 말은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으로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란 말의 약어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를 ‘물맞이’라고도 한다. 유두날에는 맑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을 하고, 특히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것은 동쪽은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라고 믿는 데서 기인한다. 이러...

  • 유람에서 저승길로(遊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원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유람에서 저승길로」는 조채문의 혼령이 고향을 찾아 자손들에게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범인을 잡아 처벌하여 원한을 풀었다는 객사원귀담(客死寃鬼談)이다. 1982년 고령군에서 간행한 『대가야의 얼』, 1988년 고령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 지방의 민담·전설 및 지명 유래』, 2006년 고령군에서 발행한 『...

  • 유-리(柳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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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버드나무가 많이 있어 버들골 또는 유곡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도장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개연동·고승동을 병합하여 유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유리(柳里)가 되었다. 의봉산(儀鳳山)[535m] 동남쪽 산자락에...

  • 유-리 유물 산포지(柳里遺物散布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유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운수면 유리의 개련골마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운수면 소재지인 대평리 한다리마을에서 팔산리로 향하는 군도를 따라 유동교를 지나면 운수면 유리가 나온다. 유적은 유리의 자연부락인 개련골마을의 서편에 위치한 풀밭개울골의 좌측 능선 기슭 일대에 해당한다. 현재 경작되고 있는 평탄한 밭과 민묘 지대를 중...

  • 유림단독립청원운동파리 독립 청원 운동(-獨立請願運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9년 고령 유림계가 참여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한 운동.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郭鍾錫)의 문인 윤충하(尹忠夏)는 서울의 만세 시위운동 상황과 파리강화회의 등 국내외 정세를 설명하고,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을 작성, 곽종석이 대표로 나서 줄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곽종석은 김창숙(金昌淑)...

  • 유봉근(兪鳳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사회운동가. 8·15해방으로부터 미군정이 시작되는 10월 중순까지 2개월간은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시기였다. 일제강점기 주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수탈과 고문을 일삼았던 경찰에 대한 불신 때문에 경찰 업무는 조직화된 지역 조직이 접수하였는데, 고령에서도 8월 15일 이튿날 치안대가 조직되었다. 치안대는 60여 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었으며 99식 장총을 지니도록 하...

  • 유상호[정치인](兪尙浩-政治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정치인. 유상호(兪尙浩)는 고령 지역의 토성(土姓)인 기계유씨(杞溪兪氏) 주부공파(主簿公派) 후손으로 고령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17년 동안 고령금융조합에 근무하다가 해방 후 고령금융조합장이 되었으며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고령군지부 지부장을 지냈다. 1952년 5월 10일 제헌헌법 제97조에 따라 시행된 지방자치 선거에서 61명을 뽑는 초대 경상북도 도...

  • 유상호[체육인](兪尙浩-體育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정구 선수. 1930년대에 들어 고령 지역에는 정구의 붐이 크게 일어났다. 그 계기는 당시 일본 정구 대회를 10여 년간 석권해 오던 안동 출신의 조선 최고 선수인 권복인(權福仁)이 고령 영림창(營林廠)으로 부임해 온 것이었다. 권복임은 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고령에서 선수를 발굴하여 지도한 결과, 당시 정구가 성행하던 거창·합천·성주·밀양·진주·마산·부산...

  • 유석(瘐石)남형우(南亨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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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형우(南亨祐)[1875~1943]는 본관이 의령(宜寧)으로, 호는 유석(瘐石)이다.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에서 태어났다. 남형우는 1908년 문인인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의 권유로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한 뒤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평의원과 1909년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보성전...

  • 유세훈(兪世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훈혜(薰兮). 증조할아버지는 유경해(兪景海)이다. 유세훈(兪世薰)[1583~1649]은 평소 지극한 정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는데, 아버지가 학질에 걸려 오랜 병고 끝에 입맛을 잃었다가 갑자기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엄동설한이라 고기를 잡을 수 없어 두껍게 언 얼음을 두드리며 통곡하자 물새가 날아와 물고기를 떨어뜨...

  • 유의순(兪義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령 출신의 부상단(負商團) 반수(班首). 유의순(兪義淳)[1824~1885]의 초명은 도인(道仁)이며, 홍순(弘淳)으로도 불렸다. 고령 지역의 토성(土姓)인 기계유씨(杞溪兪氏) 주부공파(主簿公派) 후손이다. 유의순은 고령 관아의 아전(衙前)으로 일하다가 1874년부터 1883년까지 10년간 고령 일대의 오일장을 장악한 지역 부상단의 반수를 맡아 하였다. 행상 조직이던 조선...

  • 유정환(兪鼎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여경(汝慶). 유세훈(兪世薰)의 고손자이다. 유정환(兪鼎煥)[1716~1785]은 아버지가 오랜 병환으로 고생하자 13세의 어린 나이로 아버지의 인분을 맛보며 병세를 살폈으며, 생명이 위급함에 이르러서는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함으로써 연명하게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여 의원을 모시러 그믐밤에 홀로 고개...

  • 유치원(幼稚園)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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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어린이 교육 담당 기관. 유치원은 교육법 따라 설립·운영되는 교육 기관으로 국립, 공립, 사립 유치원으로 구분된다. 고령 지역 최초의 유치원은 1959년 고령읍교회에서 설립한 고령유치원이며 1980년 3월 1일 안림초등학교에서는 유아 교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1981년부터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 개원하기 시작했으며 박곡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의 개설을 시작으로...

  • 유통업(流通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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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상적(商的) 유통, 또는 물적(物的) 유통과 관련된 산업. 유통이란 생산자에 의해 생산된 재화가 판매되어 소비자·수요자에 의하여 구매되기까지의 계속적인 여러 단계에서 수행되는 여러 활동을 말하며 매매 거래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인 상적 유통과 재화(財貨)의 보관·수송 및 하역 등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인 물적 유통으로 대별된다. 그리고 유통 활동을 담당하는 기업을...

  • 유필준(柳弼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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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계몽운동가. 유필준(柳弼濬)은 1906년 9월 15일에 설립된 대한자강회 고령지회에서 활동한 한주학파(寒洲學派)의 계몽운동가이다. 대한자강회 고령지회는 동향인 최곤술(崔坤述)을 비롯한 55명이 지회 설립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는데, 대한자강회 동래지회와 함께 전국 최초로 결성된 지회 조직이었다. 유필준은 고령에서 태어난 양반 유생으로 한주학파의 일원...

  • 육군 장교의 6·25참전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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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진리 입향조(朴景)의 27세손인 박수헌(朴壽憲) 씨는 1923년 아버지 박경점 씨와 어머니 김필숙 씨 사이에서 4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박수헌 씨는 육군사관학교 7기생으로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대구국방경비대에서 근무했다. 고향을 지켜 왔던 박수헌 씨의 형 박성헌[작고] 씨는 살아생전 그를 회고하며, “성격이 활달하고 대쪽같이 곧으며 키가 190㎝나 되는 걸...

  • 육이오 전쟁(六二五戰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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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1953년 경상북도 고령군을 비롯한 한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선제공격에 의해 1953년 7월 27일 휴전 성립까지 3년 1개월 동안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고 셀 수 없을 정도의 물적 기반이 파괴된 전쟁이다. 전쟁은 민족 간 전쟁의 성격으로 진행되었으나, 이후 유엔 연합군과 중국군이 참전하였다는 점에서 국제전으로서의 성격도 띤...

  • 윤규 비(尹奎遺墟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에 있는 선비 윤규의 유허비. 윤규의 휘(諱)[죽은 사람의 이름]는 규(奎)요, 자는 문노(文老)이다. 관향은 파평인으로 고려 시중 문숙공(文粛公) 윤관(尹瓘)의 15세손이다. 조선 선조 때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월오촌에 은거함에 마을 앞에 대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 언덕 위에 기암괴석이 심히 아름다워 평생 외루(畏塁)하였다. 조선시대 선...

  • 윤규 유허비윤규 비(尹奎遺墟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에 있는 선비 윤규의 유허비. 윤규의 휘(諱)[죽은 사람의 이름]는 규(奎)요, 자는 문노(文老)이다. 관향은 파평인으로 고려 시중 문숙공(文粛公) 윤관(尹瓘)의 15세손이다. 조선 선조 때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월오촌에 은거함에 마을 앞에 대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 언덕 위에 기암괴석이 심히 아름다워 평생 외루(畏塁)하였다. 조선시대 선...

  • 윤량식(尹亮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량식(尹亮植)[1866~1944]은 본관이 파평(坡平)으로, 지금의 고령군 성산면 용소리에서 태어났다. 세칭 파리장서사건이라고 하는 제1차 유림단 의거는 서울에서 김창숙(金昌淑)·김정호(金丁鎬)·이중업(李中業)·유준근(柳濬根)·유진태(兪鎭泰)·윤중수(尹中洙) 등의 논의 끝에 시작되었고, 김창숙이 그의 스승 곽종석(郭鍾錫)을 만나면서 급진전되었다...

  • 윤양래(尹陽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계형(季亨), 호는 회와(晦窩). 할아버지는 윤지선(尹止善)이고, 아버지는 경주부윤 윤리(尹理)이다. 윤양래(尹陽來)[1673~1751]는 1699년(숙종 25) 진사를 거쳐, 1708년(숙종 34)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에 초임되었는데, 이때 글씨를 빨리 써서 비주서(飛注書)라는 별명을 들었다....

  • 윤지선(尹止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명종 대에 영의정을 지낸 윤인경(尹仁鏡)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윤사흠(尹思欽)이며, 아버지는 윤영(尹泳)이다. 아들인 윤리(尹理)는 경주부윤을 지냈으며, 손자인 윤양래(尹陽來)는 판돈녕부사를 역임하였다. 윤지선(尹止善)은 1644년(인조 22) 벼슬을 마다하고 지금의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로 내려와 덕...

  • 율계(栗溪)오운(吳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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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대원(大源), 호는 죽유(竹牖)·죽계(竹溪)·백암노인(白巖老人)·율계(栗溪) 등이다. 고려 중기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오학린(吳學麟)[1009~?]을 시조로 삼는다. 10대조 오세문(吳世文)은 동각학사(東閣學士)를 지냈는데, 고려 무신란 직후 해좌칠현(海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활동한 오세재(吳世才)의 형이다. 증조할아버지 삼우대(...

  • 은야(恩倻)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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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김윤이 가야의 여인 은야를 중심으로 대가야의 멸망을 그린 장편 소설. 『은야』의 시대적 배경인 5~6세기경은 신라가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으며 강국으로 떠오르고, 작은 나라 대가야는 점차 몰락의 길로 접어들던 시기이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우륵의 딸 은야와 대가야의 마지막 왕 도설지, 신라의 최고 권력자 진흥왕 사이에서 펼쳐지는 비극적 운명의 사랑 이야기가 대가야의 멸망...

  • 을미년 농민 항쟁(乙未年農民抗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895년 고령 지역에서 과도한 세금 징수에 반발하여 일어난 반봉건 농민 항쟁. 조선 왕조의 모순이 드러나는 19세기는 민란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농민층의 봉기가 빈발하였다. 당시 농민 봉기는 지방관의 학정(虐政)과 지방 사족층의 횡포, 외세의 정치 경제적 침략에 따른 위기의식의 고조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났다. 특히 삼정(三政)의 문란은 경제적으로 농민들의 고통...

  • 음식점(飮食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전문 요식 업태. 음식점은 술을 파는 ‘술집’ 혹은 ‘주점’과는 달리 ‘식당(食堂)’으로도 칭한다. ‘식당’이란 말은 조선시대 성균관의 명륜당 앞 좌우에 있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에 거처하는 선비나 유학들이 식사하던 곳을 ‘진사식당(進士食堂)’이라 한 것에서 연유한다. 음식점이 보편화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상업적...

  • 음악(音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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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소리를 소재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고령 지역의 음악은 가야금과 가야금 연주곡으로 대표된다.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사람인 우륵이 태어나고 활동했던 지역이기에 고령 음악의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역시 현악기 가야금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륵 12곡」과 현대에 새롭게 창작 국악 형식으로 작곡된 「가야금 합주를 위한 대가야의 소망」·「대가야...

  • 읍내면(邑內面)고령-읍(大加耶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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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고령군 대가야읍의 옛 지역이 대가야국이 있던 지역이므로 새로운 대가야의 부흥을 목표로 지역 발전을 이어가자는 의미로 대가야읍이라 하였다. 대가야읍은 원래 옛 대가야의 중심지로서 562년 도설지왕 때 여러 가야 중 마지막으로 신라에 정복되었다. 757년(경덕왕 1) 고양군이 되었고, 고려 초 경산부에 속하였으며, 1413년(태조 13) 고령현이 되었...

  • 읍내장(邑內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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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와 지산리 일원에서 매 4일과 9일에 개시되던 오일장. 읍내장은 고령 지역에서 열리던 오일장 중 규모가 가장 큰 시장으로서, 조선 후기부터 대가야읍 관문 밖 동쪽 1리쯤에서 대가야읍내에서 개설되었다. 관문 부근에서 서던 읍내장은 1868년(고종 5) 장기동(場基洞)[현 대가야읍 장기리]으로 옮겨졌다. 장기동에서 열리던 시장은 1906년(고종 43)부터...

  • 읍취헌 유고(挹翠軒遺稿)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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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5년에 간행된 조선 전기 고령 출신 학자 박은(朴誾)의 시문집. 고령 출신의 학자 박은[1479~1504]은 1496년(연산 2) 관직에 나아갔다. 1501년(연산 7) 유자광(柳子光)과 성준(成俊)의 간사함에 대해 상소를 올렸다가 무고죄로 몰려 파직되었고, 이후 갑자사화(연산 10) 때 동래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의금부에 투옥되어 사형을 당했다. 박은은 중국 강서파의 시풍을...

  • 응지(譍之)정응(鄭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증조할아버지는 경산현령을 역임한 정효경(鄭孝卿)이고, 할아버지는 통훈대부 행고양군수를 지낸 정수(鄭穗)[1435~1497]이며, 아버지는 통훈대부 행장예원사평을 지낸 정인후(鄭仁厚)[1454~1532]이다. 어머니는 충주최씨(忠州崔氏) 중군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 최순(崔洵)의 딸이다. 부인은 둘을 두었는데 고령신씨(高靈申氏) 부사(府使) 신...

  • 의례 음식(儀禮飮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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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명절이나 혼례, 상례, 제례 등 특별한 의례 때 먹는 음식. 의례 수행자가 음식을 통해 위하는 대상 신격에게 기원과 바람을 표현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의례음식은 의례 주관자와 대상 신격, 참여자 사이의 의사소통의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전통 혼례의 폐백 음식 중 대추와 밤이 다산(多産)을 희구하듯이 의례음식은 종종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동시에...

  • 의례복(儀禮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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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역 사람들이 전통 의례를 거행할 때에 특별히 갖추어 입는 예복. 의례복은 관례나 혼례, 상례, 제례를 수행할 때 착용하는 의복이다. 관례 복식은 성인 의례 때 입는 의복이며, 혼례 복식은 혼인식 때 입는 의복이다. 상례 복식은 장례를 치를 때 상주를 비롯한 유복친의 복장이며, 제례복식은 기제·차례·묘제 등 각종 제의를 주관할 때 착용하는 의복이다. 의례 복식은 의례...

  • 의례복식의례복(儀禮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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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역 사람들이 전통 의례를 거행할 때에 특별히 갖추어 입는 예복. 의례복은 관례나 혼례, 상례, 제례를 수행할 때 착용하는 의복이다. 관례 복식은 성인 의례 때 입는 의복이며, 혼례 복식은 혼인식 때 입는 의복이다. 상례 복식은 장례를 치를 때 상주를 비롯한 유복친의 복장이며, 제례복식은 기제·차례·묘제 등 각종 제의를 주관할 때 착용하는 의복이다. 의례 복식은 의례...

  • 의례옷의례복(儀禮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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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역 사람들이 전통 의례를 거행할 때에 특별히 갖추어 입는 예복. 의례복은 관례나 혼례, 상례, 제례를 수행할 때 착용하는 의복이다. 관례 복식은 성인 의례 때 입는 의복이며, 혼례 복식은 혼인식 때 입는 의복이다. 상례 복식은 장례를 치를 때 상주를 비롯한 유복친의 복장이며, 제례복식은 기제·차례·묘제 등 각종 제의를 주관할 때 착용하는 의복이다. 의례 복식은 의례...

  • 의료 법인 고령 영생 병원(醫療法人高靈靈生病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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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헌문리에 있는 병원. 의료법인 고령영생병원은 고령군 지역 최초의 의료 법인으로서, 50년 이상 지역 주민의 보건과 의료를 책임지고 있다. 지역의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에는 산하에 고령군립노인복지병원과 고령영생요양원을 개원하여 운영 중이다. 고령군립노인복지병원은 노인 전문 병원으로서 노인성 질환인 치매, 중풍 등에 중점을 두고 치료하고 있으며, 고령영생...

  • 의병(義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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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국가가 위급할 때 백성이 스스로 조직했던 자위군. 의병이란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나라의 부름을 받기 전에 스스로 일어난 민군(民軍)을 말한다.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의병은 민군이다. 나라가 위급하면 바로 의병이 일어나는데 조정이 명령하는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종군하여 적개(敵愾)하는 자이다. [중략]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

  • 의병산성도진리산성(桃津里山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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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가야시대 산성. 도진리산성은 대장산성(大壯山城), 또는 의병산성(義兵山城)이라고도 하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쌓은 산성이라 전한다. 그러나 성의 입지와 형태, 성안에서 채집한 유물 및 주변 유적 등을 참고해 볼 때 대가야가 신라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산성으로, 후대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 의복문화의생활(衣生活)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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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 지역 사람들이 착용해 온 의복이나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복식의 풍속은 식생활, 주생활과 함께 기층문화의 알맹이일 뿐만 아니라 예의와 의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문화 현상이다. 다른 문화 현상이 그러하듯, 우리나라의 복식은 외래 복식과 고유 복식의 이중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왕실과 귀족층 일부를 포함하는 상류층에서는 외래 복식의 영향을 받은 반면, 서민층에서...

  • 의봉-산 봉수 터(儀鳳山烽燧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 대가야읍에서 동북 방향으로 9㎞ 정도 떨어진 표고 551.5m의 의봉산에 위치한 의봉산성의 맨 꼭대기에 있다. 의봉산의 북쪽 산정은 고령읍과 성주군으로 통하는 길목이며, 인근에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요처에 해당되어 봉수대 설치에 적지이다. 의봉산 봉수 터에는 장축 석축이 둘레 80m, 긴 지름 3...

  • 의봉-산 약수와 힘센 장군(儀鳳山藥水-將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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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에서 의봉산 약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의봉산 약수와 힘센 장군」은 의봉산에 위치한 솟아나는 약수를 먹고 힘이 세진 장군의 무용담이자 산의 혈을 잘라 장군의 힘을 무력화했다는 풍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